인간은 변화 앞에서 당황한다. 변하게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칼로 무를 자르면 무가 잘려나갈 뿐 칼은 잘리지 않는다. 주체는 변하지 않고 객체가 변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근원의 불변을 찾아 의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변한다. 객체가 변하면 주체도 변한다. 무가 잘리면 칼도 무뎌진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앞에서 인간은 당황한다. 그들은 허무주의, 회의주의, 상대주의로 도피한다. 의지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로 좌절하고 포기하고 퇴행하는 것이다. 변하게 하는 것과 변하는 것이 있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A와 B가 있다. A가 변하면 B도 변한다. B가 변하면 A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둘의 관계다. 관계도 변한다. 진정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관계가 변하는 방향이다. 남자가 변하면 여자도 변한다. 여자가 변하면 남자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둘의 관계다. 관계도 변한다. 남자사람친구에서 남자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남편이 된다. 그 변화의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화의 메커니즘은 변하지 않는다. 둘의 상호작용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바퀴가 돌면 축은 돌지 않는다. 축도 움직인다. 축이 움직여도 엔진은 그 자리에 있다. 엔진도 움직인다. 엔진은 돌아도 차는 그 자리에 있다. 차가 움직여도 길은 변하지 않는다. 길도 움직인다. 길에서 차와 엔진과 축을 거쳐 바퀴로 가는 순서는 변하지 않는다. 공격이 변하면 수비도 변한다.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오고가는 셔틀콕의 랠리는 변하지 않는다. 랠리도 변한다. 랠리의 간격이 변한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상호작용의 방향성은 불변이다. 변화는 상호작용구조 안에서 일어나고 상호작용은 대칭을 만들며 대칭은 또다른 대칭을 만들며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길과 차의 대칭 > 차와 엔진의 대칭 > 엔진과 축의 대칭 > 축과 바퀴의 대칭으로 전개한다. 한 방향으로 계속 대칭이 추가되는 것이다. 그 반대는 없다. 길에서 차를 거쳐 엔진으로 넘어와버리면 엔진과 길 사이에는 차가 막고 있다. 차와 축 사이에는 엔진이 막고 있다. 엔진과 바퀴 사이에는 축이 막고 있다. 역주행은 불가능하다. 구조론은 이 하나의 그림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진보도 변하고 보수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진보가 앞에서 끌고 보수가 뒤에서 미는 변화의 순서다. 우리는 이 하나의 진리를 도구로 삼고, 나침반으로 삼아 의지하여 문명의 진보라는 거대한 항해에 나서는 것이다. 무사는 칼을 믿고, 선비는 지식을 믿고, 인간은 도구를 믿는다. 도구는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질서를 만들고, 질서는 전략을 만들고, 전략은 선택을 요구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전략이다. 그 전략의 실천이다. 상호작용구조 안에서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계속하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