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20705184005933 <- 한겨레 고명섭 칼럼 힘은 도구에서 나온다. 민주주의 힘은 생산력에서 나온다. 지식인이 세 치 혓바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오게 되어 있는 것을 빨리 오도록 재촉하거나 어차피 가게 되어 있는 것을 조금 붙잡아둘 수 있을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는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국가는 커지는데 광장은 작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도 마찬가지다. 로마가 팽창하자 원로원이 있는 로마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다.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 앉아서 로마를 주무르려고 하니 될 리가 있나. 공화정이라는게 나쁘게 보면 귀족정치에 불과하다. 비슷한 예로 폴란드가 있다. 왕을 투표로 뽑는 선거군주제다. 그때 폴란드가 잠시 잘나갔다. 농민을 소외시키므로 금방 한계를 보였다. 조선왕조의 공론정치도 일부 민주적 요소가 있다. 어느 쪽이든 잠시 흥하게 했을 뿐 시대의 한계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국민의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지 못한다. 최대한 동원하려면 계속 변해야 한다. 계속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 집권당만 바뀌는건 의미 없고 계급간 세력교체가 일어나야 한다. 생산력의 혁신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수단을 먼저 장악한 자와 늦게 뛰어든 자 사이에서의 세력교체가 민주주의다. 이러한 본질을 도외시하고 세 치 혓바닥으로 어떻게 수를 내보려는 자는 예로부터 많았다. 묵가들은 어리석게도 천하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진시황을 밀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는 폭망. 묵가도 망하고, 중국도 망하고, 천하도 망하고 다 멸망. 후대까지 멸망. 정의당 행동이 바로 묵가의 행동이다. 국힘당을 이용해서 민주당을 평정하고 진보를 통합하겠다는 망상.
신라 - 당나라를 이용해 삼한을 통일하겠다. 힘이 없는 자가 강자에게 빌붙어서 뭔가 수를 내보려고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데모스테네스가 세 치 혓바닥으로 알렉산더를 저지할 수 없고,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저지할 수 없다.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와 한비자는 결과와 상관없이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진중권이 죽는 것도 운명이고 윤석열이 죽는 것도 운명이다. 진궁이 죽는 것도 운명이고 여포가 죽는 것도 운명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죽는다. 잠든 용을 깨우려면 누가 역린을 건드려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