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099 vote 0 2009.04.12 (21:25:40)

1239167330_81-ciprian-strugariu-portraits-photo.jpg


당신은 왜
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좋으니까?' 이건 답이 아니다.

'꽃이 예쁘니까 사진을 찍고 모델이 고우니까 그림을 그리고' 이건 아니다.
달콤하니 먹고, 맛있으니 먹고, 이건 진정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달콤한건 설탕 들어간 것이고, 맛있는건 조미료 들어간 거다. 설탕 빼고 조미료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
'난 이게 좋아. 그래서 이걸 그려'.. 이건 아니다. 그딴거 가짜다. 진짜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간이 먹는 이유는 맛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배가 고프기 때문도 아니다.
맛있다는 건 이것과 저것 중에서 하필 이걸 먹는 이유다.

배고프다는건 한시간 전과 지금 중에서 하필 지금 먹는 이유다.
그것은 선택되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메뉴가 선택되므로 가짜이고

한시간 전과 지금 중에서 타이밍이 선택되므로 가짜다.
내가 원하는 정답은 선택될 수 없는 '필연의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존재한다. 고로  (  ?  ) 한다'

그 존재의 조건 안에 정답이 세팅되어 있다.
왜 시계바늘은 돌아가는가? 바늘이 돌아가지 않으면 시계가 아니다.

이것이 필연의 메커니즘이다.
나는 17살 때 이 원리를 확립하고 오도송 같은 것을 만들었다.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조건' 중에서 '먹는다'도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달리는 이유는 달리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달려야만 자동차다.
자동차의 존재 그 자체가 자동차의 달리는 진짜 이유다.

자동차가 서울을 가고 싶어서 혹은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먹고 싶어서 부리나케 달리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기름을 먹어야 잘 달리지만 기름 먹으려고 달리지는 않는다.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며 그 사건의 이름은 '삶'이다.
그 삶의 메커니즘 안에 '밥먹는다'와 '떵싼다'가 세트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왜 먹는가? 
맛있기 때문도 아니고 배고프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가? 
그것이 좋기 때문이 아니고 그리고 싶기 때문도 아니다.

'나'를 비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좋으니까'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심장이 뛴다.
좋아서 뛰는 것이 아니라 뛰고 싶어서 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심장은 뛴다. 그게 나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며 그 사건은 내가 탄생되기 전에 이미 촉발되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는 단지 그 자연스러운 전개를 받아들일 뿐이다.
그 흐름 가운데로 난입하여 무리하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뿐이다.

그 흐름을 존중하여 겸허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사파리를 여행하는 중에 코끼리 떼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끼리떼가 제 갈길을 가도록 조용히 길을 비켜줘야 한다.
인간의 그리기는 그 사파리를 지나가는 코끼리떼의 행렬처럼 존재하여 있었다.

나는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어갈 그 그림의 행렬을 방해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화살에게 왜 날아가는가고 묻지를 말라.

누군가가 쏘았기 때문에 날아가는 것이며 그 비행은 그 화살이 선택한 바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존재의 엔진에 점화하였고 그러므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것은 사건이며 그 사건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오래전에 이미 일어났고 나는 그 사건의 끝이 궁금할 뿐이다.
나의 그리기는 그렇게 계속된다.


20as.jpg


아름다운가?
좋은가?

이쁜가?
천만에!

웃기지 마시라.
길은 원래 외길이었다.

이 길 외에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가는 거다.


35166_Naomiontablemountain_101105_027_122_531lo.jpg


나는 지금 정상에 서 있다.
왜 나는 여기에 서 있는가?

이곳이 좋아서가 아니다.
알겠는가? 여기까지 헐레벌떡 올라왔기 때문에 바로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1239087598_g0bbs2iolpymuthj789f.jpg


그 사건은 아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는가? 우공의 1백만번째 손자는 여전히 그 산을 마저 옮기고 있다.

아담의 1천만번째 손자인 나는 여전히 그리고 있다.
단지 내 대에서 그 위대한 행진을 무리하게 멈추려들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내가 임의로 격발한 사건이 아니며 '인류문명 전체의 디자인'을 건 대사건이고
1백만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 1백만년 후에도 계속될 대사건이며

그 전달되고 전달되어 온 사건이 지금 내 손을 거쳐서 누군가에게로 전달되어 가는 것이며
내가 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1백만년 전 선조가 석회암 동굴에 그렸던 그 그림이 계속 이어져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 페이지를 그린데 이어
세잔과 고흐가 인상주의 시대를 그린데 이어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가 20세기 페이지를 그려서 채워넣은데 이어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인 지금 바로 이 지점까지 그려왔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 페이지를 그리는 것이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이 페이지가 확실히 그 다음 페이지가 맞느냐 뿐이다.

바로 그것이 현대성이다. 그린 페이지 또 그리지 않는다. 뒤에올 누군가가 이어갈 페이지를 그린다.
백남준이 그리고 김기덕이 그린 그 다음 컷이 내가 그려넣어야 할 몫으로 남겨진 페이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존재를 만들어간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그린다'가 아니라 '나는 그린다. 그려서 내 존재를 완성한다'가 옳다.


s640x640.jpg


식탁 위의 글라스
비스듬히 들어오는 조명

여인의 곡선과 등돌린 남자의 직선
지금 여기까지 그렸다.


Streit0H.jpg


심 1과 날 2.. 계속 그려간다.


Streit_E.jpg


계속 그려가야만 한다. 그것이 내 존재의 메커니즘이다. 그렇게 내 존재를 완성시킨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내가 된다.
내 존재라는 시계의 작동방법이다. 먼저 온 누군가가 이미 그 시계의 태엽을 감아버렸기 때문에

현대성이라는 시계는 지금 이 순간 째깍 째깍 진도 나간다. 알겠는가?
'위하여 그리지 않는다. 의하여 그린다'는 사실을.

신의 커다란 화폭 안에 나의 작은 한 점이 그렇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그림 안에서 당신의 한 점이 내 바로 옆을 차지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List of Articles
No. Title Name Date Read
  • 117

    김동렬
    2009-04-30         Read 6570


  • 116

    김동렬
    2009-04-29         Read 8550


  • 115

    김동렬
    2009-04-28         Read 4835


  • 114

    과녁 image 3
    김동렬
    2009-04-27         Read 8476


  • 113

    김동렬
    2009-04-24         Read 8344


  • 112

    김동렬
    2009-04-22         Read 4455


  • 111

    김동렬
    2009-04-21         Read 4931


  • 110

    김동렬
    2009-04-20         Read 4841


  • 109

    김동렬
    2009-04-19         Read 7670


  • 108

    김동렬
    2009-04-16         Read 5906


  • 107

    김동렬
    2009-04-16         Read 7210


  • 106

    김동렬
    2009-04-15         Read 4771


  • 105

    김동렬
    2009-04-14         Read 5291


  • »

    김동렬
    2009-04-12         Read 5099


  • 103

    김동렬
    2009-04-10         Read 10688


  • 102

    김동렬
    2009-04-09         Read 6839


  • 101

    김동렬
    2009-04-08         Read 9429


  • 100

    김동렬
    2009-04-07         Read 4678


  • 99

    김동렬
    2009-04-06         Read 17969


  • 98

    김동렬
    2009-04-05         Read 3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