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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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29 vote 0 2018.05.28 (17:07:27)


    행복이니 쾌락이니 자유니 사랑이니 성공이니 하지만 다 개떡같은 소리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걸로 어린아이를 유혹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다. 눈이 번쩍 뜨이는 진짜는 하나 뿐이다. 생각의 끝에서 알아냈다. 모든 생각을 넘어서는 최후의 생각이다. 그것은 거기서 이탈할 수 없음이다.


    풍덩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에너지다. 그것은 사건이다. 에너지는 거센 물결과 같아서 한 번 휩쓸리면 그 사건 속에서 결코 이탈할 수 없다. 음악가는 좋은 곡에서 빠져나갈 수 없고 화가는 좋은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도박꾼은 하던 게임을 중간에 그만둘 수 없고 배우는 무대에서 함부로 퇴장할 수 없다.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누구도 임의로 전장에서 이탈할 수 없다. 에너지만이 진실하다. 생각에 생각을 더한 끝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있음이다. 인생의 비밀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우주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어쩌라고? 흥미없다. 인간 존재에 대해서는 진작에 실망한 바다.


    비참 그 자체다. 그 때는 그랬다. 전쟁 직후의 산천은 메마르고 인심도 메말랐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눈빛이 죽어 있었다. 아름다움도 없고 고귀함도 없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치에 수치를 더하는 일이었다. 사탕이 달다고 해도 1분간 혓바닥을 간지럽힐 뿐이다. 사랑이 진실하다 해도 들판에서 흘레붙는 개다.


    될 수 있다면 술취한듯 비틀대는 이 별에서 내리고 싶다. 어릿광대 노릇에 신물이 난다. 눈을 떠 보니 무대에 올려진 신세다. 어처구니 없이 말이다. 그만 내려가 버리고 싶지만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니 받아주게도 된다. 말을 받아주니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간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점점 더 어이가 없어진다.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언어였다. 모든 것은 시시하고 추하고 비참하지만 언어는 각별하다. 그 언어를 얻었다. 어처구니 없는 세상 속에서 어처구니 있는 언어를 얻었다. 중요한 것은 설명할 수 있느냐다. 개라면 답답할 것이다. 대단한 것을 봤다 해도 말로 나타낼 수는 없다. 사람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무엇을 보든 당신은 그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 세상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것을 시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이없는 것을 어이없다고 말할 수 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한 뼘의 막대 자를 손에 넣었다면 아직 재보지 않았어도 이미 재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가 짧다면 이어서 길게 연결하면 된다. 그것은 수학이다. 당신이 가진 자가 10센티든 30센티든 상관없다. 당신이 수학을 가졌다면 그 자의 길이를 천배 만배로 늘릴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 연결하여 거리를 잴 수도 있다. 시초에 서서 끝단을 헤아린다. 한 개의 막대자에 불과하지만 생명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


    자를 꿰어 콤파스를 만들 수도 있고 콤파스를 꿰어 됫박을 만들 수도 있고 됫박을 꿰어 저울을 만들 수도 있고 저울의 추를 움직여 미적분을 풀 수도 있다. 일단은 자가 하나 있어야 한다. 내게는 언어가 하나 있다. 언어를 잇고 꿰고 틀고 구부리고 휘고 단련하여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그렇게 구조론을 만들었다.


    구조론은 에너지를 설명하고 추론하여 사건을 풀어내는 강력한 언어다. 색다른 언어다. 자가 있으면 셈하여 무엇이든 계량할 수 있다. 물도 계량하고 좁쌀도 계량하고 비중도 계량한다. 정지한 것도 계량하고 움직이는 것도 계량하고 가속도까지 계량하고 파장의 전환까지 계량한다. 모든 것을 계량하고 추론한다.


    최후에 만나는 것은 대표성이다. 지구를 조사할만큼 조사했다. 숫자를 셀 만큼 세어봤다. 계량되는 것은 물질이고 설명되는 것은 에너지고 추론되는 것은 사건이다. 물질은 펼쳐져 있어 계량될 수 있고 그것을 계량하는 것은 수학이며 에너지는 엮여 있으므로 설명되고 그것을 설명하는 강력한 언어는 구조론이다.


    조각난 퍼즐을 모두 맞추었더니 커다란 형태가 얻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설명했더니 대표성이 드러났다. 인간은 지구에 내던져진 존재다. 사람들은 버스의 구석구석을 수색하여 그것을 계량하였다. 수학치였던 나는 셈하지 못하므로 운전기술을 알아냈다. 버스의 형태는 보이지만 운전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셈할줄 알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추론할줄 모른다. 추론했더니 운전사가 발견되었다. 대표성이다. 신은 존재하고 기적은 있고 기도는 먹힌다. 운전기사는 당연히 있고 버스가 달려갈 도로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운전할 수 있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가슴 뜨거운 진짜 이야기는 이런 거다.


    진실을 말하자. 진정한 세계에는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정의도 없고 불의도 없고 도덕도 없고 부도덕도 없고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다. 오로지 에너지의 업상태와 다운상태가 존재한다. 대중은 눈이 없어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극하여 대중이라는 야생마를 흥분시킬 수가 있다.


    자극하여 격동시키거나 혹은 진이 빠지게 만들어 길들이거나다. 다만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갈림길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려고 한다. 우리는 선과 악 중에서,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도덕과 부도덕 사이에서,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선택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거 다 개소리다.


    그것은 기수에게 고삐를 잡힌 말의 역할이다. 말은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길을 잘못들면 기수가 갑자기 고삐를 홱 낚아채거나 박차를 가한다. 옆구리를 발로 찬다는 말이다. 선악이든 정의든 도덕이든 옳고그름이든 이념이든 무언가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이 재갈을 물린 말의 신세로 기수에게 잡혀 있다는 말이다.


    참된 사람은 잡혀있지 않다. 이것은 진짜 이야기다. 정의 좋아하네. 도덕 좋아하네. 선악 좋아하네. 당신은 입에 재갈물린 채 당근냄새에 흥분하여 질주하는 한 마리 가련한 말에 불과하다. 창피하지 않은가? 졸업해야 한다. 넘어서라. 선악을 넘고 정의를 넘어라. 도덕을 넘고 이념을 넘어 진정한 세계로 나아가라.


    에너지가 있을 뿐이다. 오로지 에너지의 업된 상태와 다운상태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불을 운전해야 한다. 당신은 쉬었다가 단 번에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게 사건을 연결시켜야 한다.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나아갈 때와 머무를 때를 판단해야 한다. 공간에서 선택하는게 아니라 시간에서 타이밍 맞게 결단하기다.


    뜸 들이고 부채질해야 한다. 때로는 부추겨야 하고 때로는 진정시켜야 한다. 눈치를 읽어야 한다. 그것은 불을 다루는 방법이다. 당신은 그동안 입에 재갈을 물린 말이 되어 도덕과 정의와 선악과 진실과 이념의 갈림길들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지만 졸렬하다. 이제는 불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신은 있고 기적도 있고 기도가 필요하다. 신이 있는 이유는 그대가 불을 질러야 하기 때문이고 기적이 있는 이유는 그대가 불길을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고 기도가 있는 이유는 그대가 부싯돌과 마른 섶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결단해야 한다. 아버지를 쳐죽이고 자기만의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껍질을 벗어던져야 한다. 동족을 배반해야 한다. 관습을 부수어야 한다.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래서 신이 있다. 그대는 멈추어야 한다. 기적은 한 순간에 온다. 그대는 배달부와 같다. 달리는 말에서 달리는 기차로부터 우편물을 넘겨받는다. 그때 멈추어야 한다. 둘은 일치해야만 한다. 기적은 비행기의 공중급유다.


    그대는 빠르게 달리면서도 상대적인 정지상태를 연출해야 한다. 타오르는 불은 멈출 수 없다. 멈추지 않으면서 멈추는 것이 기적이다.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준비하는 것이며 기적은 기다리는 것이며 신은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천하에 큰 불을 질러야 한다.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천장을 뚫고 탈주해야 한다. 당신은 우주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 거대한 역사의 천칭저울을 움직이는 마지막 한 개의 깃털이어야 한다. 하나의 작은 깃털이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으로 우주를 움직이지만 그 우주는 준비되어 있다.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대 대표할 수 있다. 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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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7:34:04)
*.92.147.219

신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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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7:34:25)
*.92.147.219

무신론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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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7:34:37)
*.92.147.219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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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1: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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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신의 개념을 바로 정립해야 한다. 기독교의 신은 일단 잊어라. 종교마다 신의 모습이 다르다. 공자와 노자가 말한 신은 다른 것이다. 구조론의 신은 종교의 신이 아니며 이신론의 신도 아니다. 구조론의 신은 사건 안에서 의사결정의 중심이다.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의사결정은 언제라도 중심에서 일어난다. 단 신이 희미한지 분명한지는 사건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사건이 클 때 신은 분명하고 사건이 작을 때 신은 희미하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의사결정은 연결의 중심에서 일어나며 그러므로 신은 있고 기적도 있고 인간의 기도는 먹힌다. 


 기적이 일어나는 이유는 확률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기도가 먹히는 이유는 그 확률에 대응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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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8 (1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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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입장


    필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껴두었던 말이다. 입이 근질거렸다. 에너지는 소년기에 형성되는 법이다. 유년의 나는야 제멋대로 행복했다. 봄만 되면 춘궁기에 어머니가 밥을 굶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마냥 행복했다. 소, 돼지, 토끼, 염소, 강아지와 친구였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마구 행복했다. 그러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비애를 맛보았다. 인간에 대한 회의다. 제대로 된 사람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혹부리도 많고 손에 갈고리를 차고 있는 상이군인도 많고 깡통 하나씩 차고 10여명씩 몰려다니는 떼거지도 많았다. 얼빠진 사람에 넋나간 사람에 하여간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마누라를 패죽인다며 도끼 들고 쫓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코찔찔이 아이들도 머리에 헌 데가 나 있기 다반사다. 기계충 땜통도 하나씩 달고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 하나가 없었다. 7살 소년의 눈에는 그랬다.


    행복과 비참 사이에서 에너지는 극적으로 고양되는 법이다. 이미 볼 것을 봐버렸다. 금단의 열매를 먹어버린 셈이다. 인간 존재가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행복타령을 하지만 행복은 유년기에 충분하게 맛본 다음이다. 시큰둥할 밖에. 세상은 신의 실패작이니 차라리 부숴버리는게 낫겠다. 신이 창피하다. 홍수로 싹 밀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노아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사람들의 행위동기는 대개 타인과의 비교에서 얻어진다. 보통은 자기보다 못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겨냥한다. 만만한 타깃을 찾아내고야 만다. 엘리트는 대중을 경멸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진중권들이다. 대중은 소수자나 약자를 괴롭히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어떻게든 약자를 찾아내고야 만다. 다문화든 조선족이든 자기보다 못하다 싶은 만만한 대상을 겨누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보통 그렇게들 살더라.


    인간에게 힘을 주는 근원은 신분상승 의지다. 권력의지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그것은 계통을 만드는 것이다. 계통은 3대까지 가줘야 의미가 있다. 1대는 족장이니 그들은 주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2대는 왕이니 권력서열을 만든다. 남을 짓밟고 올라선다. 3대는 왕자이니 비로소 심중에 있는 자기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이는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3대가 되고 싶은 것이다. 거기서 에너지가 나와주니까.


    좋은 평판을 얻고 주변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은 일대다. 그들은 에너지가 없다. 눈치나 보다가 끝난다. 출세지향주의자는 이대다. 에너지가 있지만 범위가 좁아 호연지기가 없다. 경쟁자를 이기려 한다. 남을 의식하면 이미 진 거다. 3대는 원래부터 왕자다. 왕자는 평판을 구하지도 않고 경쟁자도 없다. 판이 다 정리되어 있다. 3대에게는 왕국이 주어져 있고 그 왕국에 흥미가 있다. 그런데 이 왕국은 비참이었다.


    아기는 누구나 왕자요 공주다. 내게도 왕국이 주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내멋대로 행복했는데 자세히 내막을 들여다보니 온통 비참이었다. 인간세상의 약점을 봐버린 이상 내게는 약점을 들켜버린 신이야말로 만만한 존재였다. 때려줄만한 존재였다. 남들이 자기보다 못한 지위에 있는 소수자나 약자를 찾아 눈을 흘길 때 나는 신을 흠씬 때려주기로 했다. 신이 가장 만만했다. 신을 이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졌다.


    왕창 깨졌다. 신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럴 때 신의 입장을 이해하게도 된다. 조잡한 그림을 졸업작품이라고 내걸어 놓은 불쌍한 미대생들을 보면 저렇게 그리느니 자살해버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품없는 세상을 작품이라고 내놓고 창피해하는 신을 보노라면 내가 저 양반 입장이라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살 두 살 살아가다 보면그런 신을 이해하게도 된다.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신은 내 바깥의 타자가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했다는 거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지극한 마음을 얻는 것이며 그것은 다른 것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었을 때 내게도 정복할 땅이 남겨져 있다는 안도감이다. 아버지 필립의 위세에 조바심 느꼈던 알렉산더의 마음이며 거침없이 흉노를 토벌했던 곽거병의 마음이기도 하다. 왕자의 마음으로 바꾸자 다른 것이 보였다. 신의 부끄러움은 나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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