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구조로 봐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조금씩 잘살게 되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다지 의미가 없고 초반에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크게 잘살게 되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이동수단 혹은 연결수단이 바뀌어야 진보의 의미가 있다.
언어와 문자, 정부와 관료 그리고 제도의 등장, 말과 배, 자동차와 전기와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
그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시대는 봉건시대다. 봉건시대는 국가주의가 난무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국가가 내게 해준게 뭔데?’ 이런 생각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국가주의 고정관념이다. 인도라면 카스트가 지배한다. ‘인도가 내게 해준게 뭔데?’ 하는 생각을 가진 인도인은 없다. 카스트가 결정하지 정부가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가문에 속해 있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대성이고 명문이며 양반이었다. 그들은 세력이 있었고 위세를 떨쳤다. 문중의 힘이 중요했다. 이런 점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청이 멸망한 이유는 지나친 문중과 성씨의 득세 때문이었다. 지방에 무슨 일이 생겨도 조정에 보고하지 않는다.
문중에서 알아서 처리할 뿐이다. 조정의 개입은 만족의 개입이고 만인이 끼어들어 좋은 일은 없더라는 경험칙 때문이다. 객가족이라면 객가족 가문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객가족이 뭉쳐서 잘 살면 그만이고 청나라 사정은 만주족이 지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다. 청나라 조정보다 객가족이 더 높은 의사결정단위다.
‘조선이 내게 해준게 뭔데?’ 이런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굳이 말하면 ‘조정이 내게 해준게 뭔데?’ 이래야 한다. 대중은 조정의 편이 아니었다. 조정의 위신은 날로 추락했고 조선말기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조선이 망한게 아니라 조정이 망한 것이며 조정은 양반들의 관심사였고 백성들은 문중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부분 원수진 문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웃마을 조씨집안을 박살내고 우리 양씨집안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수 있을까? 이런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조정이 망해도 달라진 것은 없다. 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주소가 바뀐 건데 청나라 속국일 때도 아무 일이 없었으니 일본의 속국이 되어도 무방한 거다.
청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다. UN 비슷한 거다. 지금도 한국이 미국의 반 식민지가 되어 있지만 미국을 미워하는 인간보다 추종하는 인간이 많다. 청나라 속국이나 미제의 속국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청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그냥 세계다. 서양으로 치면 기독교 문화권이다. 교황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왕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관심이 없다. 지방 봉건영주가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조선의 조정이 망한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게 큰 충격이었다. 중국 중심의 천하관이 깨진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 된 것도 아니다.
중심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에 민중들은 어찌되나 보자 하고 팔짱을 끼고 관망하다가 그 중에서 가장 하층민 백정과 노예들이 공을 세워 새 세상을 열어보자고 의병에 가담하였던 것이다. 양반들은 의병활동을 하지 않았다. 가문의 입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씨 문중이 양씨 문중을 이겨야 하는데 의병을 왜 하느냐고?
그러나 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왜냐하면 가문이 없기 때문이다. 대성이 아니고 각성받이면 어디를 가도 손가락질을 당한다. 차별받는다. 공을 세워서 위세를 떨치려면 동학당에라도 들어봐야 한다. 국가의 혜택을 전혀 받은 바 없는 가장 낮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고려 때도 천민들이 대몽항쟁에 앞장섰던 거다.
전란은 천민들에게 기회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은 자들은 그냥 관망하고 있었고 기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부랑자들이 의병에 가담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병은 가족이고 집안이며 식구이고 패거리이고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보다 동료가 필요했다. 동료와의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
동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가장 밑바닥의 버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의병항쟁을 했을까? 동료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친척이 있고 문중이 있고 세력이 있고 패거리가 있으므로 조정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이 밥 먹고 살면 된다. 농사지어 밥 먹으면 그만이지 뭘 어쩌라고?
일본을 이겨야 한다느니 중국을 제쳐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박정희 이후에 등장한 관념이다. 국가에 뭘 바란다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뭐가 잘못되었다면 우리 오씨 문중이 잘못한 거다. 문중이 제사를 잘 지내지 않아서 자손이 발복하지 못하니 무덤자리를 옮기든가 무슨 수를 내봐야 한다고 할배가 말하지 않았던가?
조상의 산소를 이장하느냐 마느냐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친척이 없고 문중이 없고 세력이 없는 백정들과 천민들과 해방된 노예들과 유랑민들과 부랑자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왜? 동료가 불러주었기 때문에. 현대의 국가주의 관점으로 봉건시대를 해석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동료와의 의리가 우선이다.
미스터 선샤인의 터무니
시대는 봉건시대다. 봉건시대는 국가주의가 난무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국가가 내게 해준게 뭔데?’ 이런 생각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국가주의 고정관념이다. 인도라면 카스트가 지배한다. ‘인도가 내게 해준게 뭔데?’ 하는 생각을 가진 인도인은 없다. 카스트가 결정하지 정부가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가문에 속해 있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대성이고 명문이며 양반이었다. 그들은 세력이 있었고 위세를 떨쳤다. 문중의 힘이 중요했다. 이런 점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청이 멸망한 이유는 지나친 문중과 성씨의 득세 때문이었다. 지방에 무슨 일이 생겨도 조정에 보고하지 않는다.
문중에서 알아서 처리할 뿐이다. 조정의 개입은 만족의 개입이고 만인이 끼어들어 좋은 일은 없더라는 경험칙 때문이다. 객가족이라면 객가족 가문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객가족이 뭉쳐서 잘 살면 그만이고 청나라 사정은 만주족이 지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다. 청나라 조정보다 객가족이 더 높은 의사결정단위다.
‘조선이 내게 해준게 뭔데?’ 이런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굳이 말하면 ‘조정이 내게 해준게 뭔데?’ 이래야 한다. 대중은 조정의 편이 아니었다. 조정의 위신은 날로 추락했고 조선말기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다. 조선이 망한게 아니라 조정이 망한 것이며 조정은 양반들의 관심사였고 백성들은 문중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대부분 원수진 문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웃마을 조씨집안을 박살내고 우리 양씨집안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수 있을까? 이런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조정이 망해도 달라진 것은 없다. 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주소가 바뀐 건데 청나라 속국일 때도 아무 일이 없었으니 일본의 속국이 되어도 무방한 거다.
청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세계다. UN 비슷한 거다. 지금도 한국이 미국의 반 식민지가 되어 있지만 미국을 미워하는 인간보다 추종하는 인간이 많다. 청나라 속국이나 미제의 속국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청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그냥 세계다. 서양으로 치면 기독교 문화권이다. 교황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관심이 없다.
마찬가지로 왕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관심이 없다. 지방 봉건영주가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조선의 조정이 망한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게 큰 충격이었다. 중국 중심의 천하관이 깨진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 된 것도 아니다.
중심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에 민중들은 어찌되나 보자 하고 팔짱을 끼고 관망하다가 그 중에서 가장 하층민 백정과 노예들이 공을 세워 새 세상을 열어보자고 의병에 가담하였던 것이다. 양반들은 의병활동을 하지 않았다. 가문의 입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씨 문중이 양씨 문중을 이겨야 하는데 의병을 왜 하느냐고?
그러나 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왜냐하면 가문이 없기 때문이다. 대성이 아니고 각성받이면 어디를 가도 손가락질을 당한다. 차별받는다. 공을 세워서 위세를 떨치려면 동학당에라도 들어봐야 한다. 국가의 혜택을 전혀 받은 바 없는 가장 낮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고려 때도 천민들이 대몽항쟁에 앞장섰던 거다.
전란은 천민들에게 기회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은 자들은 그냥 관망하고 있었고 기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부랑자들이 의병에 가담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병은 가족이고 집안이며 식구이고 패거리이고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보다 동료가 필요했다. 동료와의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
동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가장 밑바닥의 버려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의병항쟁을 했을까? 동료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친척이 있고 문중이 있고 세력이 있고 패거리가 있으므로 조정이 망하든 말든 상관없이 밥 먹고 살면 된다. 농사지어 밥 먹으면 그만이지 뭘 어쩌라고?
일본을 이겨야 한다느니 중국을 제쳐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박정희 이후에 등장한 관념이다. 국가에 뭘 바란다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뭐가 잘못되었다면 우리 오씨 문중이 잘못한 거다. 문중이 제사를 잘 지내지 않아서 자손이 발복하지 못하니 무덤자리를 옮기든가 무슨 수를 내봐야 한다고 할배가 말하지 않았던가?
조상의 산소를 이장하느냐 마느냐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친척이 없고 문중이 없고 세력이 없는 백정들과 천민들과 해방된 노예들과 유랑민들과 부랑자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왜? 동료가 불러주었기 때문에. 현대의 국가주의 관점으로 봉건시대를 해석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동료와의 의리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