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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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570 vote 0 2018.07.30 (13:09:38)

      
    에너지의 이해


    세상이 대칭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물리학자들은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다. 왜 지식이 전달되지 않을까? 물리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귀납적으로 알고 결과측으로 아는 것이다. 관측해 보니까 대칭이네. 이건 결과다. 원인측으로 알고 연역적으로 알고 선험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일반에 널리 알릴 수 있다. 왜? 담론의 문제 때문이다.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으로 조직된다. 이게 안 되므로 일반에 담론을 던지지 못하고 학자들이 자기네만 알고 있는 것이다. 연역적으로 알고 선험적으로 알지 않으면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언어가 그럴듯한 문장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전제와 진술의 갖추어진 형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파되지 않는다. 학계와 일반을 잇는 연결고리가 없는 거다.


    세상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사건의 원인이다. 원인은 통제가능성이다. 계가 통제되어야 에너지다. 예컨대 이런 거다. 엔트로피는 나도 인정해. 그렇지만 말야. 거기에 지구의 중력에너지와 물질의 운동에너지를 더하면 어떨까? 무한동력 아저씨들이 이런 식의 개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것이다. 중력은 에너지가 아니다. 닫힌계에 가두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대칭인 이유는 대칭이 닫힌계에 가두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칭적인 것은 가둬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 살다가 부부로 대칭을 이루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둬지는 것과 같다. 에너지는 두 방향이 하나의 축을 공유할 때 통제된다. 가둬진다. 대칭이다. 계를 이루어야 축을 공유한다. 군중이 10만명이라도 지도자가 없으면 에너지는 없다. 


    그것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다. 엔트로피 증가 상태다. 에너지가 수렴방향일 때 대칭을 이루어 축을 공유한다. 비로소 통제가능한 상태가 된다.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여 계를 이루고 축을 도출해야 에너지가 된다. 에너지의 이용은 축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대표성을 얻어야 에너지가 된다. 가둬지고 축이 도출되고 방향성을 얻으면 에너지다.


    축은 여러가지 이유로 만들어진다. 물질의 점성이나 혹은 좁은 공간에서의 밀도나 혹은 전자기력이나 혹은 온도의 증가에 따른 분자의 운동에 의해서도 혹은 외력의 작용에 의해서도 물질은 계를 이루고 축을 도출한다. 외력이 작용하여 축을 이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에너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다. 그런데 명명되어 있지 않다.


    엔트로피는 이름이 없어 헷갈린다. 엔트로피 증가나 감소라는 말을 쓴다는게 웃긴 거다. 닫힌계 개념의 부재 때문이다. 에너지는 대칭을 통해 닫힌계를 만든다. 계가 성립하면 반드시 축이 도출된다. 축이 도출되면 방향성이 생긴다. 전위차에 따른 전류처럼 방향이 생긴다. 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효율적인 배치가 된다. 에너지는 늘 효율성을 따라간다.


    대칭의 성립과 대칭성 깨짐은 사건 안에서 5회 반복해 일어난다. 둘이 하나를 공유한 상태가 대칭이다. 2가 대칭되어 짝이 지어져 있을 때 외력이 1의 작용으로 2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에너지다. 사건의 전개는 에너지 손실을 유발하므로 보다 효율적인 상태로 다시 세팅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방법은 축의 이동이다. 축은 5회 성립하고 이동한다.


    에너지는 고유한 활동성을 가진다. 그것은 원래부터 있다. 빅뱅때부터 플라즈마는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 분자의 운동 형태로 물질은 그것을 내부에 숨기고 있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 형태로 물질은 그것을 감추고 있다. 그것을 특정한 형태로 배치시켰을 때 계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대칭이다. 대칭을 붕괴시키면 축이 움직인 다음 다시 대칭된다.


    축이 움직이는 만큼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그 비용이 청구되는 것이다. 즉 대칭이 붕괴되고 다시 대칭될때는 이전상태보다 더 효율적인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입자는 질보다, 힘은 입자보다, 운동은 힘보다, 량은 운동보다 효율적이다. 그러한 전개과정에서 효율성을 소비하고 량에서 바닥나므로 에너지가 부족해서 량의 상태를 다시 질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그 과정에 손실된 에너지를 주워모아 다시 투입하면 되는데 그 작업과정에 또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자동으로는 안 되고 인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 인위적 작용에 드는 비용이 청구되므로 무한동력은 안 된다. 부스러기 에너지는 주로 열의 형태로 변해 있다. 외력의 작용없이 자연상태에서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한다.


    


    가능태와 현실태


    구조론은 에너지와 사건을 다룬다. 가능한 것이 에너지라면 나타난 것은 사건이다. 그것을 인간이 알아보면 존재가 되고 만져보면 물질이 된다. 알아보고 만져본 것은 인간의 사정이니 자연의 본래가 아니다. 인간의 사정을 말하면 그게 하지말라는 자기소개가 되어 혼선을 빚으니 배척한다. 오직 자연의 사정으로 논해야 한다. 존재라거니 물질이라거니 하는 말은 다분히 비과학이므로 배척해야 한다.


    자연에는 오직 가능한 것과 나타난 것이 있을 뿐이다. 가능한 것이 에너지라면 나타난 것은 사건이다. 에너지는 사건의 자궁이다. 사건은 에너지에 의해 낳아진 자식이다. 에너지가 무질서라면 사건은 질서다. 에너지가 카오스라면 사건은 코스모스다. 에너지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원래부터 그랬다. 플라즈마 상태를 떠올릴 수 있다. 자연은 원래 동적인 존재이며 일정한 조건에서 정으로 변한다.


    에너지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연결되고 연결되면 계를 이루고 계는 방향을 정하고 방향은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속도차를 낳고 속도차는 상대적인 효율성을 낳고 효율성은 상대를 이기게 하며 승패가 갈라져 질서를 낳는다.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속도차가 발생하며 에너지는 언제라도 빠른 길로 간다. 세상은 이기는 방향 곧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진행하며 그 역은 원래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엔트로피 곧 무질서도의 증가는 효율성의 소모다. 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지만 그만큼 자원을 소모하므로 추가적인 효율성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옥돌의 원석을 가공하여 가치가 증대될수록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그 효율성이 소비된다. 이미 가공되었으므로 더 이상 추가적인 가공은 불가능해지며 그러한 효율성의 소비에 따른 의사결정능력 차이가 천하의 질서를 이루는 바탕이다.


    어떤 둘이 토대를 공유하면 2가 1로 행세하므로 효율적이다. 확산방향 <-->이 수렴방향 -><-로 바뀔 때 보다 효율적이다. 이때 토대가 공유된 만큼 토대를 상실했으므로 방향을 되물리지 못한다.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외부와 접촉하는 경계면의 상실이다. 각자 승용차를 몰던 두 사람이 합승하면 기름값을 아끼지만 차 하나를 잃어서 원위치가 안 되는 것이 엔트로피다.


    최초의 상태는 무질서한 플라즈마와 같으며 균일하지 않다. 외력의 작용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균일해야 핵을 이룬다. 핵이 발생하면 핵을 중심으로 대칭되며 대칭된 둘은 토대인 핵을 공유한다. 계의 내부가 균일하면 의사결정속도가 빠르다. 이때 방향은 최초 플라즈마 상태의 느린 확산방향에서 빠른 수렴방향으로 바뀐다. 구조론으로는 에너지의 확산방향과 수렴방향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없다. 


    불균일하면 확산이고 균일하면 수렴이며 파동은 확산이고 입자는 수렴이며 자연의 본래 모습은 모두 확산이고 균일이라는 일정한 조건에서 수렴한다. 일정한 조건에서 확산에서 수렴으로 방향이 바뀌는 것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다. 입자와 파동의 대립은 학자들이 그냥 해 본 소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우주 안에 입자는 없다. 파동이 계에 갇혀 외력에 대한 균일성을 나타내는 것이 입자다. 


    불균일하면 파동이다. 원래는 모두 불균일하며 균일은 일정한 조건에서 우연히 발생하거나 아니면 인간의 개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다. 불균일하면 의사결정속도가 느려지고 균일하면 의사결정속도가 빨라지며 만물을 규정하는 것은 속도차다. 균일한 쪽이 내부에 모여 코어를 형성하고 불균일한 쪽이 외곽을 둘러싸서 껍질을 이룬다. 플라즈마 상태에서 외력은 계 내부에 고루 전달된다.


    입자를 이루면 외력은 코어를 통해 빠르게 처리되어 빠져나간다. 이때 외력의 크기가 변하면 입자가 코어를 움직여 또다른 균일을 생성하는 것이 힘이다. 질은 플라즈마 상태의 외력이 상대적인 균일을 만나 계로 갇히며 입자는 외력이 상대적인 균일에 도달한 코어로 직결하며 힘은 코어를 움직여 외력의 변화에 맞서는 또다른 균일을 도출하고 운동은 시간적 반복이며 양은 최종적 이탈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회에 걸쳐 계에 침투한 힘은 계 내부에서 상대적인 균일을 찾아 움직이며 최종적으로 계를 이탈하여 외부의 대상에 침투한다. 에너지는 최초 플라즈마의 확산 상태에서 수렴으로 바뀌며 그 상태에서 다시 부분적 수렴으로 바뀌길 5회 반복하며 점차 범위가 압축된다. 압축될수록 외부와의 접점을 상실하여 원상복구가 안 되므로 이를 엔트로피 곧 무질서도의 증가라 한다.  


    무질서도 증가란 표현은 오해될 수 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접점을 잃고 가지런해지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상실한 자유한국당이 겉보기로는 오히려 질서있게 보일 수 있다. 무질서의 가능태에서 질서의 현실태로 갈수록 가능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엔트로피를 무질서도 증가로 볼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상실로 봐야 한다. 구조론은 이에 따른 혼선을 피하기 위해 마이너스라는 표현을 쓴다.  

   

      
    에너지는 실과 같다


    에너지는 실과 같다. 실은 실패에 감겨 있다. 정확히는 공간의 대칭과 시간의 호응으로 꼬여 있다. 그런데 과연 꼬여 있는가? 우리가 에너지를 떠올릴 때는 플라즈마처럼 풀어져 있는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물은 그릇에 가두고 기체는 풍선에 가두고 에너지는 닫힌계 개념에 가둬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둬져 있지 않다면? 


    에너지를 가두는 그릇이 포착될때까지 사건을 확장시켜야 한다. 지구라면 중력에 갇힌 것이며 지구의 중력이 닿는 범위까지 계를 확장시켜야 한다. 에너지의 통제가 이 논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지구와 우주를 구분하는 선은 지구 중력의 전달범위 곧 인공위성이 궤도를 잃고 지구로 추락하는 선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최초상태는 갇힌 상태 즉 실이 꼬인 상태다. 꼬인 것이 일정한 조건에서 외력의 작용이 없이 내부요인에 의해 우연히 풀릴 수는 있어도 저절로 감길 수는 없다는데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풀리는 것은 내부요인에 의해 스스로 결정하지만 감기는 것은 외부환경과 각도와 타이밍을 맞춰 잘 감아야 한다. 


    부부라면 이혼은 내부요인에 의해 일어나지만 결혼은 외부환경과 맞아야 한다.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게 아니고 신부와 의견이 맞아야 하고 법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성년자는 허락이 안 된다. 풀림은 사건이 안에서 일어나고 감김은 사건이 밖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실을 감아보면 안다. 고양이는 실패의 실을 푼다. 두루마리 휴지도 풀어놓는다. 실을 감아놓는 고양이는 없다. 두루마리 휴지를 감아놓는 고양이도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쌀포대를 뚫어놓는 쥐는 있어도 꿰매놓는 쥐는 없다. 그런 쥐는 없다. 마이너스는 있어도 플러스는 없다. 에너지는 동動이다. 동은 움직인다.


    움직이다 보면 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움직이다 보면 감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감겨있기 때문이다. 감기려면 그 이전에 풀려야 한다. 여기서 풀기와 감기는 하나의 연속된 사건이다. 그런데 풀기가 먼저다. 먼저 풀리고 다음 감길 수는 있어도 먼저 감기고 다음 풀릴 수는 없다. 감으려면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닭이 먼저고 달걀이 나중이며 창이 먼저고 방패가 나중이며 빛이 먼저고 그림자는 나중이며 진보가 먼저고 보수는 나중인데 우리가 이 점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닫힌계를 지정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풀렸다가 감겼다가 한다. 순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에너지로 보면 분명히 순서가 있다.


    씨줄날줄이 꼬여 베를 직조하려면 순서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한다. 조합을 맞추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획득하는 데 비용이 든다. 게다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층위가 있으므로 량이 질로 꼬이려면 중간의 입자, 힘, 운동을 차례로 거쳐와야 하는데 이는 외력의 작용이 없이 불가능하다. 닫힌계를 쳐보면 명확하다.


    그러나 저절로 풀어질 수는 있다. 에너지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힘이 있다. 방향이 있으며 그 방향은 확산이다. 확산된다는 것은 풀린다는 것이다. 왜? 균일해지려는 속성 때문이다. 풀어서 균일해질 수는 있어도 꼬여서 균일해지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꼬인다는 것은 층위가 상승한다는 즉 불균일이기 때문이다.


    열은 대류와 복사와 전도에 의해 저절로 균일해진다. 그러나 저절로 불균일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국소적으로는 일정한 조건에서 저절로 불균일해질 수 있다. 2층에서 풀어진 것이 1층에서 꼬일 수 있다. 그러나 닫힌계 전체로는 무조건 풀어진다. 혹은 51 대 49로 눈꼽만큼이라도 풀어지는 쪽이 조금이나마 우세해야 한다.


    만약 저절로 꼬이는 경우가 있다면 위험하다. 즉 어떤 지점에 외력의 작용이 없는 데도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그 경우 지구는 파멸한다. 예컨대 무한동력이 가능하다고 치자. 자연에 우연히 무한동력 현상이 발견되어야 한다. 즉 어떤 지점에 갑자기 온도가 1억도로 올라가버리는 것이다. 그 열로 발전하면 좋잖아.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가?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지구는 단박에 파멸이다. 지구 어느 부위에 온도가 10억도로 올라간다면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버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을 때다. 우라늄이 우연히 임계에 도달하여 핵분열을 하다가 비가 오면 냉각되어 원위치 된다.


    그리고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기를 반복하는 자연 핵발전소가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있다. 이는 우연히 밸런스가 맞아떨어진 바 지극히 예외적인 현상이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핵분열이 가속적으로 일어나서 터져버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실을 풀어가는 마이너스는 통제될 수 있지만 실을 감는 플레스는 통제될 수가 없다.


    그런데 통제되는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지구의 생태계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왜 폭주하여 파멸하지 않고 균형에 이르는 것이며 인류문명은 왜 폭주하여 파멸하지 않고 절묘한 균형에 도달하여 있는가? 아니다. 트럼프와 같은 꼴통들 때문에 인류문명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태계 역시 초기에는 폭주를 거듭하여 산소가 너무 많아져서 생태계가 전멸직전의 위기에 도달하는 등의 위태로운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우리는 비교적 운이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6천만년 전 공룡의 멸종과 같은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우리들은 기적 곱빼기 기적으로 운이 좋다.


    골디락스 존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구는 매우 운이 좋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우주는 넓고 별은 많으므로 지구처럼 운 좋은 별도 하나쯤 있을 수 있고 지구 역사는 수십억 년이므로 그 중에 우리시대와 같이 운 좋은 시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이 계속된다는 법은 없다. 트럼프 세력이 발호하여 지구의 운을 망치고 있다.


    에너지가 실과 같은 이유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면 선이다. 에너지는 내부적인 요인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만 어떤 이유로 꼬여서 교착되면 움직임을 멈추는데 그것이 우리가 아는 물질이며 그러나 물질도 내부적으로는 맹렬히 움직인다. 모든 물질은 불타고 있다. 단지 꼬여서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이다.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물질은 내적인 모순으로 붕괴하고 있고 비교적 안정된 물질이라도 전자기력에 의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중력이 공간을 흔들어대고 있으므로 모두 커다란 움직임의 장 안에 있다. 물질은 점 선 각 입체 밀도의 형태를 가지며 이는 움직임을 가두는 장치다. 겉으로는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심장이 뛰고 있다. 완전히 정지하면 완전히 상호작용을 멈추게 되며 그 경우는 존재가 부정된다. 즉 완전히 멈춘 것은 완전히 풀린 것이며 그러므로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꼬여서 정지한 것을 물질로 보지만 겉보기 등급일 뿐 내부적으로는 활동한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균일할 때 멈춘다. 긴 밧줄의 한쪽 끝을 잡고 탁 치면 파동이 만들어진다. 그 파동은 꼬인 형태다. 그런데 머무르지 않고 파동이 계속 전달되어 간다. 가면서 지속적으로 파동은 풀린다. 그리고 풀리면서 그만큼 꼬인다. 파동의 전달이란 꼬임과 풀림의 무한반복이다. 그런데 풀림이 먼저고 꼬임이 나중이다.


    닭이 먼저고 달걀은 나중이다. 창이 먼저고 방패는 나중이다. 반드시 순서가 있다. 밧줄의 한쪽 끝을 잡고 내려칠 때 팔을 굽힌다. 닫힌계로 꼬임을 만드는 것이다. 팔을 풀면서 밧줄을 꼬아 파동을 일으킨다. 풀림이 먼저고 풀림에 통제권이 있다. 꼬임은 저절로 일어나며 통제권이 없다. 수동적으로 파동을 받아들여야 한다.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우리는 자연을 관찰해서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하는데 이런 식의 귀납적 접근방법은 언제나 오류를 일으킨다. 자연을 관찰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자연을 관찰해보면 엔트로피의 증가와 감소가 동시에 관찰된다. 그러므로 오판하는 것이다. 관찰하지 말고 정의해야 한다. 엔트로피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는게 중요하다.


    구조론의 방법은 이것 저것 엮어서 통짜덩어리 하나로 보는 것이다. 1은 아는데 2는 모르겠다는 사람은 사실 1을 모르는 것이다. 남자는 아는데 여자를 모르겠다는 사람은 남자를 모른다.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안읽었다는 사람은 로미오를 안읽은 것이다. 둘은 엮여 있으며 그 엮임을 판단하는게 중요하다. 파편화된 부스러기의 관찰은 의미가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엔트로피는 간단히 계의 밸런스다. 닫힌계 안에서 외력의 작용이 없을 때 밸런스는 자체적으로 회복된다는게 엔트로피 증가다. 대표적인 현상이 열적 평형이다. 열은 닫힌계 안에서 외력의 작용이 없이 자체적으로 대류와 전도와 복사에 의해 평형을 회복한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러나 자연을 관찰하면 반대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계를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다. 계를 정의한다는 것은 확률로 접근한다는 말이다. 엔트로피의 증가가 있으면 반드시 감소가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동시에 엔트로피 감소다. 이층에서 벽돌 한 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층에서는 엔트로피 감소가 일어나고 일층에서는 엔트로피 증가가 일어난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가? 아니다. 


    그래도 엔트로피 증가다. 왜? 2층에서 벽돌은 안정적인 밸런스 상태에 있었으며 1층에서 불안정한 언밸런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2층에서 언밸런스가 1층의 밸런스로 될 수 있다. 운이 좋은 벽돌이라면 마침 1층에서 절묘하게 아귀가 딱 맞아버릴 수 있다. 그래도 엔트로피 증가다. 왜? 아귀가 맞을 확률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계 안에서는 확률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엔트로피의 본질은 밸런스다. 닫힌계 안에서 밸런스는 언제나 회복된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밸런스를 깨트리려면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밸런스를 깨는 비용이 2면 회복비용은 1이다. 왜? 바로 그게 밸런스Balance다. 배Ba라는 말은 2배를 의미한다. 런스lance는 천칭의 접시다. 접시 두개가 축 1을 잡았다.

 

   천칭저울은 접시 둘이 축 하나를 붙잡고 있으므로 밸런스를 깨는 방향은 확산<-->방향이고 밸런스를 이루는 방향은 수렴-><-방향이며 외력에 대해 확산은 2고 수렴은 1이므로 1이 2보다 비용을 1만큼 절약한다. 마트에서 하는 원 플러스 원 행사와 같다. 한개 비용으로 두개를 살 수 있으니 이익이다. 밸런스라는게 원래 오로지 회복만 가능한 것이다.


    우주는 오직 밸런스에 의해 작동하며 밸런스는 효율적 배치를 의미하고 닫힌계를 걸어닫았으므로 외부에서 새로 들어오는 에너지는 없으며 자체적으로 운동한다면 우연히 밸런스를 이루게 되고 이 밸런스를 깨는 비용은 밸런스를 성립하는 비용보다 높으니 확률적으로는 언제나 밸런스를 이룰 뿐 깨뜨리지는 못한다. 자연은 언제나 평형을 추구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자연은 언제나 평형상태로 되어 있다. 왜 그럴까? 평형비용이 불평형 비용보다 싸기 때문이다. 상자에 사과를 담는다고 하자. 숫자는 짝수가 좋을까 홀수가 좋을까? 짝수가 좋다. 왜 인간은 사각형 집을 지을까? 사각형은 짝수이기 때문이다. 왜 물질은 양자역학에 지배될까? 양자는 짝수이기 때문이다. 짝수는 효율적인 배치가 된다.


    왜 벌은 5각형이 아닌 육각형 벌집을 지을까? 6이 짝수이기 때문이다. 짝을 짓는다는 것은 가운데 접촉면을 공유한다는 말이다. 공유하면 효율이다. 효율비용이 1이면 그것을 깨는 비효율 비용은 2이므로 닫힌계 안에서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면 세상은 언제나 짝수가 된다. 이런 것은 실험과 관찰이 필요없다. 개념의 명확한 이해가 중요한 거다.


    엔트로피=밸런스임을 알아야 한다. 엔트로피 증대는 밸런스 증대이며 밸런스 증대는 짝수의 증대이다. 세상은 홀수에서 짝수로 간다. 싸우면 짝수가 이긴다. 짝수는 둘이고 홀수는 하나이므로 짝수가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짝수가 된다. 에너지는 자유운동을 한다.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되 효율적 방향으로도 움직이고 비효율적인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그런데 확률 안에서 효율적인 방향이 비효율적인 방향을 이기므로 점차 안정되는 것이다. 왜? 효율적이니까. 물론 인위적으로 특수한 게임을 설계하면 비효율이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은 자연이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자연이다. 비효율은 에너지 소모가 많다.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쪽이 확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쪽을 이기게 된다.


    일시적으로 혹은 국소적으로 엔트로피 감소가 일어난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닫힌계는 확률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엔트로피 감소가 있어도 전체적으로 엔트로피 증가가 크면 엔트로피 증가로 보는게 닫힌계의 의미다. 그래서 닫아거는 것이다. 확률로 접근하려고. 로또당첨은 엔트로피 감소지만 로또제작비용과 판매비용, 세금이 따라붙는다.


    이것저것 제하면 엔트로피 증가다. 닫힌계는 모든 부분을 포괄하여 판단할 목적으로 설정된다. 엔트로피는 간단히 밸런스 원리에 의해 외력의 작용이 없는 닫힌계 에서 에너지의 자유운동은 구성소들을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정렬시킨다는 것이다. 효율은 비효율보다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비효율적 배치는 자유운동에 의해 안정된 상태로 변한다.


    안정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지는 않는다. 왜? 바로 그것을 안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면 그게 안정이냐고? 쇠가 녹쓰는 것은 불안정이고 금이 녹쓸지 않는 것은 안정이다. 안정된 것이 불안정으로 변하면? 금이 녹쓸면 그게 금이냐고? 세상이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불안정으로 가면 안정이 아니다.


    안정이라는 단어 속에 답이 있는 것이다. 관찰과 실험은 필요없고 단어를 정의해야 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사기꾼들이 사람을 속일 수 없도록 하는 확실한 장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언제나 엔트로피 감소를 말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필자가 엔트로피를 거듭 말하는 이유는 이게 구조론적이기 때문이다.


    실험은 전혀 필요없다. 관찰은 전혀 필요가 없다. 수학과 같다. 용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개념을 정확히 알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게 수학이다. 엔트로피가 밸런스고 밸런스가 안정이라는 사실을 알면 모든 것은 명확해진다. 구조론은 언제나 밸런스를 추적한다. 엔트로피를 알면 구조론을 이해한 것이다. 이거 모르면 아직 대화할 수준이 안 되는 거다.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갈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안정은 안 변하는 상태다. 안 변하는 상태에서 변하는 상태로 갈 수는 없다. 왜? 안변한다고 했잖아. 변하면 그게 변하는 상태지 안 변하는 상태이겠는가? 언어 안에 답이 있으니 관찰과 실험은 필요가 없다. 불안정에서 안정으로는 간다. 왜? 불안정이라는 말이 어디로 간다는 말이잖아. 


    산 것이 죽을 수는 있어도 죽은 것이 되살 수는 없다. 왜? 산다는 말 속에 죽을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죽음이라는 말 속에 살아날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삶=변화이고 죽음=변하지 않음인데 삶은 변화이므로 변화하다보면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은 변하지 않음이므로 죽어있다 보면 살아나는 일은 없다. 만약 살아난다면 죽은 것이 아니다.


   - 자연에는 변화(가능태)와 불변(현실태)이 있다.

   - 변화는 변화하므로 불변이 될 수 있다. 왜? 변화가 변화하면 불변이니까.

   - 불변은 불변하므로 변화가 될 수 없다. 왜? 불변은 불변하니까.


    이것은 언어과 개념의 영역이지 관찰과 실험의 영역이 아니다.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를 만나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플러스는 플러스와 만나도 마이너스가 될 수 없다. 마이너스는 변화고 플러스는 불변이다. 그러므로 엔트로피는 플러스화 된다. 이것은 실험이나 관찰이 아니라 개념의 정의다. 닫힌계를 지정했을 때 자연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이너스와 플러스, 변화와 불변, 삶과 죽음을 원인과 결과라 해도 된다. 원인은 결과로 될 수 있으나 결과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닫힌계를 닫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원인이 되려면 열린계를 열어 새로 사건을 조직해야 하며 추가적으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그것은 별개의 다른 사건이다. 결과는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그 자체로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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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13: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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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1회의 에너지 입력을 받아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단계에 걸쳐 처리하여 출력하면서 5회에 걸쳐 에너지의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며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원인에서 결과까지 진행시킨다. 이때 사건의 앞단계가 뒷단계를 통제한다. 사건의 다음 단계는 앞선 단계가 만들어놓은 대칭구조 안에서만 작동하며 코어를 관통하는 방법으로 효율을 달성하고 그 효율의 힘으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앞단계에 권리가 있고 권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추론하여 일의 다음 단계를 예견할 수 있다. 


의사결정비용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은행에서 100원짜리를 천원짜리로 바꿔주는데 비용을 받지 않는다. 그럼 그게 공짜냐? 자연에는 공짜가 없다. 반드시 비용이 지불된다. 비용조달이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이 결따라 가는 것이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진행해야 비용조달 문제가 해결된다. 인간은 수시로 역주행을 한다. 부분에서 전체로 간다. 아버지 빽 믿고 가는 거다. 아버지가 개입했으므로 전체가 움직인 것이다.


A면 B다.세상은 역설이다.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만물은 서로 붙잡고 의지하여 일어난다.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다.


구조론을 배우면 말을 잘하게 된다. 남들이 보이는 현상을 말할 때 보이지 않는 관계를 말하기 때문이다. A를 A라고 말하면 금방 할 말이 바닥나지만 A면 B다고 말하면 할 말이 태산같이 많아진다. 논쟁에서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 상대가 량을 말하면 운동을 말하면 이긴다. 상대가 운동을 말하면 힘으로 이긴다. 상대가 힘을 말하면 입자로 이긴다. 상대가 입자를 말하면 질로 이긴다. 산이 높다고 말하면 보통사람이고 산이 높으면 물은 깊다고 말하면 구조론이다.


세상은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쪼개져서 만들어졌다. 1+1은 2보다 작다. 2에는 1+2에 없는 상호작용이 숨어 있다. 붙는 경우는 큰 것이 쪼개질 때 그 여파로 작은 것이 붙는 것이다. 쪼개지는 것은 내부모순으로 일어나지만 더해지는 것은 외부에서 개입해야 한다. 닫힌계 안에서 내부모순에 의해 저절로 붕괴할 수는 있어도 저절로 결합할 수는 없으며 결합하려면 반드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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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16: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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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작가이고 악기가 연주자이고 그림이 화가여야 한다. 부분이 결합되어 전체가 되었다면 그것을 결합시켜준 것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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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17: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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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게 좋다


    Truth is ever to be found in simplicity, and not in the multiplicity and confusion of things. 진리는 항상 단순함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성과 혼란이 아니라. ― 아이작 뉴턴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에게 구조론을 소개하면 대개 다양성을 주장하며 반발하기 마련이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의사결정구조 하나로 모두 설명한다. 에너지의 방향성 하나로 전부 설명한다. 모두 한 줄에 꿰어 하나의 원리로 일관되게 밀어붙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에 각각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사결정원리로 설명한다.


    벌써 답답함을 느끼고 반발한다. 구조론은 너무 획일적이라는 거다. 다양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거다. 직관적으로 봐도 그럴 리가 없다는 거다. 그들은 괴력난신을 추구한다. 그들은 세상은 복잡하며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학을 부정하고 싶어하고 명확한 진리를 의심하고 싶어한다. 세상에는 인류가 미처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구조론을 음모론들 중의 하나로 알고 왔다가 실망하기도 한다. 기라든가 귀신이라든가 초능력이라든가 외계인이라든가 초고대문명설이라거나 달착륙음모론이나 지구평평설과 같은 삿된 것을 찾아다니는 무리들이 구조론연구소를 방문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들은 과학과 수학을 혐오한다.


    그들에게 구조론은 엎친데 덥친 격이다. 그들은 딱딱하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학계의 과학보다 구조론이 더 딱딱하다며 화를 낸다. 기도 있고 귀신도 있고 내세도 있고 초능력도 있고 외계인도 있고 초고대문명도 있고 초자연현상도 있어야 좋은데 과학이 세상을 단순화 시켜 싱겁게 만들었다고 화를 낸다. 구조론이 거기에 한 술 더 뜬다며 매우 화를 낸다.


    그들은 어리광을 부리는 아기처럼 떼를 쓴다. 소인배의 권력의지다. 그들은 실상 권력을 원한다. 세상이 뭔가 다양하고 복잡해야 자기들도 끼어들어 비빌 구석이 있다는 거다. 세상이 단순하면 천재들이 다 먹어버리지 바보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있을 리 없잖아. 이런 식이다. 약자의 관점이다. 약자는 뭐든지 복잡해야 뒷문으로 들어갈 기회가 주어진다.


    단순하면 실력대결이 벌어지고 똑똑한 한 명이 독식하기 마련이다.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을 단순하게 해서 독식하는 것을 그들은 봤다. 복잡해야 다양한 상품이 팔릴 거 아닌가. 그래야 중소기업도 먹고 살지. 이는 패배자 관점이다. 강자의 관점으로 갈아타야 한다. 주최측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당신이 주최측이라면 되도록 룰을 단순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야 통제되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이 있다면 지도자가 한 명이어야 한다. 아프리카 부족처럼 여러 장로와 추장과 주술사가 암투를 벌이며 경쟁하고 있다면 피곤하다. 그 경우 외교가 안 된다. 나라에 대통령이 두 명이면 피곤해진다. 에너지가 있고 힘이 있고 실력이 있고 기술이 있는 사람은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 복잡의 선호는 바보들의 자기소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것이 있다. 뭐든 복잡하게 설명하면 잘못된 것일 확률이 높다는 거다. 상식적으로 보자. 세상이 다양한 것은 외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과 귀와 코와 입과 피부로 세상과 연결한다. 그래서 다양하다. 다양한 것은 외부 연결이다. 그런데 말이다. 인간의 뇌는 하나다. 인간의 뇌가 여럿이라면? 눈에는 눈의 뇌가 별도로 있다면? 


    귀에는 귀뇌가 있다면? 다중인격이다. 조현병 걸릴 일 있겠는가? 다야하면 좋지 않다. 통제가능성을 잃는다. 그렇다. 약자는 통제되지 않으려고 한다. 노예는 다양하길 원한다. 권한이 분산되어야 흥정할 수 있다. 남편이 화를 내면 부인편에 서고 부인이 화를 내면 자식의 편에 붙어 호소하면 된다. 여우는 약하므로 여우굴 입구를 아홉개씩 만들어 놓는다.


    막연한 다양성의 추구는 약자의 생존술이다. 강자의 눈높이를 얻어야 한다. 당신이 세상을 만드는 창조주라면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다. 복잡하면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업을 운영하는 CEO라 해도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회사 안에 복잡하게 파벌이 존재한다면 직원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단순한 것이 좋은 거다.


    진지해져야 한다.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안 물어본 자기소개라면 곤란하다. 내가 노예니까 남편따로 부인따로 자식따로 주인집이 콩가루집안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공부를 못하니까 수학 따위 없었으면 좋겠어. 내가 약자니까 출입문이 여우굴처럼 아홉개였으면 좋겠어. 이런 식이라면 한심한 거다. 개판치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복잡의 복은 같은 패턴이 중복된 것이며 잡은 이질적인 것이 섞여든 것이다. 구조론의 출발점은 복잡을 제거하고 단순화 시키는 방법으로 숨은 질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목도하는 세상은 복잡하다. 백금, 금, 은, 구리, 납, 철, 텅스텐 등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아니다. 비중으로 줄 세우면 단순화 된다. 색깔도 복잡하다. 빨주노초파남보 있다. 


    아니다. 파장으로 줄 세우면 단순화 된다. 바둑판에 바둑알이 복잡하게 놓여 있어도 밸런스로 보면 단순하다. 연탄은 구멍이 많아서 복잡하지만 석유는 1리터 통에 담으면 단순하다. 어떤 것이든 단순화 될 수 있다. 석유도 있고 경유도 있고 중유도 있고 항공유도 있어서 복잡하지만 칼로리로 보면 단순하다. 관점의 차이다. 대상의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어떤 둘을 보면 복잡하지만 그 둘의 사이를 보면 단순하다. 영희와 철수 얼굴을 각각 바라보면 복잡하지만 촌수로 보면 단순하다. 고등어 두 마리는 복잡하지만 자반고등어 한 손으로 보면 단순하다. 연필은 열 둘이 한 타스로 가고 바늘은 스물넷이 한 쌈으로 가고 달걀은 열개가 한 꾸러미로 간다. 이는 대상과 인간의 관계다. 관계로 본다면 단순해진다. 


    적군이 쳐들어온다. 도망치려고 하는 자는 복잡하기를 원한다. 이 동굴과 저 바위 뒤에 숨을 수 있다. 손자병법이 복잡할수록 좋다. 이기려고 하는 자는 단순하기를 원한다. 들판에서 회전으로 건곤일척 승부하자. 오자병법은 단순해서 좋다. 복잡하기를 바라는 태도는 비겁한 것이며 학문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단순하기를 원해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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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2 (13: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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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언어다. 자연의 언어는 구조다. 인간의 언어에는 문법이 있고 자연의 구조에는 시스템이 있다. 인간의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고 자연의 구조는 에너지를 처리한다. 인간의 언어에는 의미의 맥락이 있고 자연의 시스템에는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언어의 맥락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대화이고 구조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에너지의 효율성이다. 인간은 대화하고 자연은 대칭한다. 인간의 대화는 둘의 공통분모를 찾는다. 자연의 대칭은 반대로 공통분모를 배척하고 이탈한다. 인간은 부유하고 자연은 가난하다.


    인간은 문제가 생기면 동료를 부르지만 자연은 문제가 생기면 자기 팔을 자른다. 문제는 대칭의 어긋남이니 평형이탈이다. 인간은 동료를 불러 부족분을 채워 평형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자연은 동료가 없다.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지 못하니 넘치는 부분을 자른다.


    자연을 자연으로 부르는 것은 자연自然이 외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말미암아 일어서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을 인간人間으로 부르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돕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고 서로 돕는다. 자연은 스스로 해결한다. 인간과 자연은 진행방향이 반대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자自가 있고 인간은 사이 간間이 있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므로 언제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에너지에 여유가 있다. 집단 안에 비축해둔 에너지로 문제를 해결한다. 자연은 스스로 나아가므로 서로 돕지 못한다. 언제나 평형이며 에너지의 여유가 없다.


    인간은 부분에 서서 전체를 본다. 개인에 서서 집단을 바라본다. 자연은 전체에 서서 부분을 바라본다. 전체가 움직여 에너지를 이루고 에너지를 운행하여 부분에서 일어나는 내부모순을 해소한다. 자연과 인간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여기서 인간의 오류가 일어난다.


    문제는 인간도 무언가 일을 벌이면 따뜻한 인간의 법칙이 아닌 냉혹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일을 벌이지 않으면 인간의 법칙을 따른다. 사고를 치지 않으면 주변의 도움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작심하고 일을 벌이면 갑자기 싸늘한 시선을 받게 된다.


    소년은 부모의 도움을 받지만 어른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개인은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CEO나 글을 쓰는 작가나 적과 대결하는 정치인은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따스한 인간의 법칙이 아닌 냉혹한 자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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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15: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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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의 세계 다름에 주목한다. 사물. 속성. 형태. 크기. 결과

    기하의 세계 같음에 주목한다. 사건. 에너지. 방향성. 완전성.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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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6: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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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에 가두어진 에너지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중에 하나의 상태다. 마이너스는 에너지가 부족하므로 계가 해체되어 사라지고 제로는 변화가 없으며 플러스는 점점 자란다. 마이너스가 사라지고 플러스만 남으므로 우주는 점점 진보한다.

* 구조론은 세상을 통제가능성으로 보는 관점이다.


* 에너지의 고유한 활동성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다.

* 자연은 대칭성을 통해 에너지를 통제한다.

* 구조론은 세상을 양자역학적 대칭성 위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 대칭은 공간적 방향과 시간적 순서가 있다.


* 대칭은 축과 날개의 공간적 구조가 있고 에너지를 태웠을 때 축이 움직여 날개를 선택하는 데서 시간적 순서가 성립한다.

사회적 권력원리를 자연적 질서원리와 일치시킬 때 집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져서 비로소 집단이 통제되며 사회가 다스려진다.


* 자연은 대칭에 의해 통제되며 대칭에는 코어가 있고 코어의 움직임에 의해 주도권이 성립한다. 


* 대칭의 작동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면 순서의 앞단계가 뒷단계를 지배하는 데서 권력이 발생한다. 


* 사건은 에너지의 잉여에 의해 다음 단계와 연결되며 사건의 뒷단계가 앞단계의 에너지 잉여에 의존하는 데서 권력질서가 발생한다.


* 대칭구조가 에너지의 효율성을 달성하며 효율성이 에너지의 잉여를 이루어 모든 진보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 자연의 대칭원리가 사회적인 통제가능성을 이루며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를 성립시킨다.

* 세상은 원소가 집합되는 것이 아나리 계 안에서 에너지의 통제구조가 복제되고 연결되고 증폭되는 것이다.

* 사건 진행의 각 단계에서 대칭구조를 조작하여 에너지를 연결하고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으며 여기에 진보의 희망이 있다.


 ###


*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언어이고 자연의 언어는 구조다.


* 구조론은 의사결정학이다.

* 구조론은 수학의 수학이다.

* 구조론은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한다.


* 사건을 조직하는 매개변수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다.


*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든다.


* 의사결정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상은 작동한다.

* 세상은 마이너스다.


* 마이너스 방향은 의사결정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방향이다.


* 작아질 때 잉여가 얻어지고 그 에너지 잉여에 세상은 작동하며 그 잉여가 의사결정비용으로 지불된다. 


* 구조론은 최초 무질서 상태에서 어떻게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에너지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또 운행되는지 자연의 구조적인 유도과정을 해명한다.


* 우주의 제 1 원리는 의사결정원리다. 무엇보다 자연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해명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것은 이 하나의 원리를 복제한다. 


*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사물은 인간의 관측을 근거로 하고 사건은 존재 그 자체의 내재적 질서를 근거로 한다. 인간의 관측이 개입함으로써 일어나는 혼선을 막는 것이 구조론의 중핵이다.


* 우주는 하나의 사건이고 사건의 주인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의사결정하고 의사결정은 양자적이며, 양자는 2 1로 행세하고 , 여기서 공유되는 1과 구분되는 2 사이에는 방향성이 있고 방향성은 엔트로피이며 엔트로피는 마이너스다


* 에너지의 양자적 성질은 우리가 아는 물질 입자와 달리 인간에 의해 가리켜지고 지목되는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들 사이의 관계로 존재하며 관계가 곧 존재다.


* 지구와 달의 거리가 멀어지든 좁혀지든 부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든 좁혀지든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관계는 상보성을 가지며 겉보기 형태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 보통 각운동량이나 관성이나 가속도나 열의 형태로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 세상은 어떤 개별적인 것들이 모여서 곧 작은 입자가 모여서 크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가 널리 복제된 것이며 잘게 쪼개진 것이다.


*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원인이 일어나면 결과가 일어난다. 빛이 일어나면 어둠이 일어난다. 공이 일어나면 색이 일어난다. 진보가 일어나면 보수가 일어난다. 미래가 일어나면 과거가 일어난다. 삶이 일어나면 죽음이 일어난다. 만남이 일어나면 이별이 일어난다. 왼쪽이 일어나면 오른쪽이 일어난다. 앞이 일어나면 뒤가 일어난다. 전체가 일어나면 부분이 일어난다. 둘은 대칭과 호응을 이루며 홀로 있을 수 없고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이는 에너지의 양자적 속성이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은 없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는 없다. 원인이 현재 있으면 결과는 미래의 것이므로 지금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없다. 빛을 이루는 광자는 있어도 어둠을 이루는 암자는 없다. 어둠은 빛의 상태를 설명하는 언어일 뿐이다. 삶은 있어도 죽음은 없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삶 바깥에 별도로 없다. 진보가 있으면 보수는 없다. 보수는 진보의 속도조절이다. 공이 있으므로 색은 없다. 색은 공의 운동상태를 설명한다. 신이 있으면 천국은 없다. 신이 있으면 귀신이 없다. 신이 있으면 내세는 없다. 양자가 있으므로 물질은 없다.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오직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이며 시간이든 공간이든 물질이든 한 가지 에너지의 다양하게 전개된 상태를 설명하는 수식어로 기능할 뿐이다. 대칭되는 둘은 공존할 수 없다. 앞은 있어도 뒤는 없다. 미래가 있으므로 과거는 없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을 뿐 현실에 없다. 그러나 미래는 현실로 닥친다. 대칭되는 둘 중에서 하나는 실제로 있고 하나는 그 존재의 그림자다. 하나는 잠정적으로 빌려 쓰고 지워버리는 가상의 개념이다. 우주는 마이너스만 존재하고 플러스는 없다. 플러스는 계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편의다. 우주는 반드시 쌍으로 존재하며 둘 중에서 하나는 잠정적으로 포지션을 유지하다가 곧 사라진다. 그것은 그림자와 같아서 인간의 눈에 관측될 뿐 자연의 실체는 없다. 자연에는 원인만 있고 결과는 없다. 둘이 있으면 실제로는 하나가 있다. 그 하나가 움직이므로 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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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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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는 방향전환이다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방향을 틀지 않으면 현재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현상유지가 되면 의미가 없다. 논할 만한 건덕지가 없다. 그러므로 무조건 방향을 틀어야만 한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려면 먼저 그 방향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방향을 생산하지?


    대칭을 조직하면 방향이 만들어진다. 대칭은 2다. 2에서 1로 가는게 방향전환이다. 부메랑을 던지면 되돌아온다. 부메랑은 전진하는 힘과 되돌아오려는 힘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하나 안에 2가 있다. 전진하는 힘을 버리고 되돌아오는 힘을 남긴다. 방향은 전환된다.


    부메랑과 같이 모순되는 두 방향의 힘을 동시에 갖추면 에너지다. 한 방향으로 가는 중력은 에너지가 아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범선은 돛과 키를 이용하여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므로 에너지다. 에너지 개념을 방향을 틀 수 있는 상태로 좁게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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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이룬 다음 ●를 버리고 ○를 취하는게 방향전환이다. →←로 대칭시킨 다음 를 버리고 →를 취한다. 두 개의 파도가 만나면 서로 상쇄되기도 하고 상승하기도 한다. 상쇄되면 파도가 잠잠해지고 상승하면 커다란 너울이 일어난다. 닫힌 계에서는 상쇄만 된다.


    상승효과는 열린계에서 일어난다. 바다의 바람은 지속적으로 불어온다. 바다는 열린 계다. 식물은 햇볕을 받아 계속 자란다. 햇볕도 열린계다. 사건은 닫힌계 곧 에너지가 상쇄되는 상황에 성립한다. 결국 상쇄되어 에너지는 사라지고 말지만 최대한 버텨볼 수는 있다.


    당구공을 치면 공은 굴러가다가 멈춘다. 그러나 멈추기 전에 최대한 여러 번 쿠션을 맞출 수 있다. 어쨌든 쿠션이 있어야 쿠션을 맞춘다. 수구를 쳐서 적구를 맞추면 2다. 적구는 머물러 있고 수구는 전진해 간다.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적구가 없다면?


    사건이 일어나면 대칭이 발생하고 대칭은 2로 쪼개지면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는 그 쪼개진 것을 큰 덩어리로 합칠 수 없으므로 사건 전체의 방향전환은 불가능하다. 범선이 항구를 떠나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비행기가 공항을 이륙하면 그만이다.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면 발로 땅을 차서 지구와 대칭시킨다. 그 반작용의 힘으로 상체와 하체의 대칭을 만들고 하체를 멈춘 후 상체를 틀어 방향전환 하며, 다시 상체를 멈추고 팔을 틀어 방향전환을 한다. 다시 팔을 멈추고 손을 틀며 다시 손을 멈추고 공을 내던진다. 


    방향전환은 땅에서 몸통으로, 몸통에서 상체로, 상체에서 팔로, 팔에서 손으로, 손에서 공으로 5회에 걸쳐 일어난다. 다섯 번 대칭시키고 다섯 번 대칭을 깬다. 그 대칭되는 범위는 점점 좁아진다. 몸통>상체>팔>손>공으로 갈수록 뾰족해진다. 점차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밖에서 안으로는 가능해도 안에서 밖으로는 절대 방향전환이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체에서 부분으로는 가능해도 부분에서 전체로는 안 된다. 몸통을 틀어서 펀치를 날릴 수는 있어도 손목을 틀어서 몸통을 움직일 수는 없다. 엔트로피의 일방향성이다. 


    손목은 작고 몸통은 크다. 큰 것을 잘게 쪼갤수 있어도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끌어낼 수는 없다. 100의 금덩이를 쪼개서 90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90의 금덩이를 부풀려서 100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은행이나 고리대금없자는 100원으로 천 원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외부와 접촉하는 열린계의 일이고 사건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사건은 배가 항구를 떠나고 비행기가 공항을 이륙하여 외부와 단절된 상태만 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보면 우리는 언제나 단절되어 있다. 처음에는 엄마와 붙어있지만 곧 단절이 된다.


    방향성의 이해의 요지다. 사건은 대칭을 통해서만 작동하고 밖에는 대칭될 그 무엇이 없다. 왜냐하면 밖이기 때문이다. 밖이라는 표현은 곧 제한을 걸었다는 의미다. 운동회날 달리기 출발선에 선 소년이 총성을 듣고 내달리면 밖은 없다. 밖에 있는 엄마가 돕지 못한다.


    엄마가 트랙에 난입하여 소년의 등을 밀어주려고 하면 심판이 제지한다. 사건은 닫힌계에서만 일어나고 달리기는 트랙 안에서 진행된다. 그라운드 바깥의 관중이 레이저 빔으로 메시의 눈을 맞추면 반칙이다. 열린계도 있지만 사태의 규모가 커지면 닫힌계로 바뀐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몸통>상체>팔>손>공으로 가는 과정은 내부로 범위를 좁혀들어가는 것이다. 대칭시켜야 방향전환이 되는데 대칭은 2고 외부에서 그 2를 외부에서 조달할 수 없다. 외부는 밖이고 밖을 쓰면 반칙이다. 투수는 자기 몸 안에서 힘을 짜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에너지 조달은? 그것은 식물을 성장시키는 햇볕이나 범선을 밀어주는 바람이나 모두 밖에서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통제권 바깥에 있다. 빅뱅 이후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며 나의 통제권 밖이다. 자동차도 기름은 외부에서 주어진다.


    없는 에너지를 자동차 내부에서 짜낼 수는 없다. 내부의 힘으로 가려면 자동차 부품을 파괴해서 던지고 그 반동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미끄러운 빙판 위라면 바퀴를 빼서 던지는 방법으로 약간의 반동력을 얻어 자동차를 1밀리 정도는 전진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구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최대한 짜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다. 최적의 경로가 있다. 결대로 가는 거다. 내부에서 대칭을 조직하면 5회에 걸친 축의 이동으로 최적화된 코스를 얻는다. 사건의 방향성은 점차 좁혀가는 방향이고 쪼개지는 방향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를 만들면 외력에 의해 쪼개진다. 축을 만들면 내부적으로 쪼개진다. 축을 틀면 공간적으로 쪼개지고 이동시키면 시간적으로 쪼개진다. 량은 시스템의 파괴다.


    밖을 닫아걸고 내부에서 자체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쪼개서 에너지의 최대효율을 꾀할 수 있다는게 구조론이다. 방향성의 이해가 중요하다. 무조건 밖에서 안이고 전체에서 부분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반칙이거나 외부의 도움에 의해 조건부로 혹은 억지로 되는 거다. 


    근본적인 방향성을 파악하면 직관적으로 사건의 추이를 판단할 수 있다. 에너지만 보고 일의 진행상태를 알 수 있다.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가 보인다. 사건이 몇 단계로 더 갈 수 있는지 그 한계가 보인다. 뭉치면 구석에 몰려서 몰살되고 흩어지면 각개격파가 된다. 


    지금 흩어져야 할지 뭉쳐야 할지 알 수 있다. 제병협동 작전으로 가면 뭉치기와 흩어지기를 자유자재로 해서 불패의 군대가 된다. 보병과 전차와 폭격기와 포병을 유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1로 몰리면 진다. 언제든 2를 도출하고 다시 1로 틀어야 승리한다.


    보병이 적을 끌어내고 항공기로 타격하거나 전차가 장애물을 제거하고 보병을 전진시키거나 항상 2를 예비하되 1로 받치고 남는 1로 타격한다. 보병을 모루로 받치고 전차로 타격하거나 전차로 적을 유인하고 포병으로 타격하거나다. 로멜과 구데리안의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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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6: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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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향성의 의미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곧 엔트로피다. 이를 골치 아픈 수학으로만 알고 있으면 곤란하다. 엔트로피는 우리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는 윤리와 도덕의 문제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엔트로피의 문제다. 에너지의 방향성 문제다.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과 연동된다. 그래서 방향성이 생긴다. 보이지 않지만 계가 있다. 


    계 안에서 에너지 상태는 세 가지다. +와 - 그리고 0이다. 플러스면 점점 증가하고 마이너스면 점점 감소하며 0이면 멈춘다. 에너지의 상태가 셋뿐이므로 방향성이 있다. 점점 좋아지거나 아니면 점점 나빠지거나 혹은 똑같거나다. 문제는 이것이 개별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사건과 연동되어 한꺼번에 결정된다.


    사건은 중첩된다. 작은 사건 위에 더 큰 사건 있다. 사건은 진행되다가 더 큰 단위 사건을 만나 흡수된다. 위에서 다 결정해놓고 있다. 에너지의 입장은 빅뱅 때 결정되었다. 137억 년 전에 빅뱅은 우리 우주의 에너지를 플러스로 결정했다. 137억년 동안 우주의 방향이 바뀐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에너지는 결국 플러스로 수렴된다. 


    사건은 언젠가 전부 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만다. 문명도 이와 같다. 정체 혹은 보수 혹은 진보다. 그러나 결국은 진보하게 된다. 진보 일변도로 수렴된다. 상생상극의 문제다. 바람이 잦아들면 작은 파도는 다른 파도와 합쳐져서 커다란 너울을 만든다. 너울이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 공진효과다. 물결은 한 방향으로 점점 커진다. 


    테크노마트 빌딩이 흔들린다. 출렁다리가 끊어지기도 한다. 작은 힘들이 모여서 커다란 힘을 이룬다. 이는 상승효과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병사들이 무질서하게 걸으면 출렁다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상쇄되기 때문이다. 작은 파도가 상생으로 가서 커다란 너울을 만들지 혹은 가라앉을지 그 방향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상생상극에 상승상쇄다. 사물은 방향성이 없지만 사건은 반드시 치고나가는 방향성이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머리와 꼬리가 있다. 움직이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 거대한 힘이 만들어진다. 멈추면 서로 마찰하여 사라진다. 계에 에너지가 들어온 정도가 결정한다. 에너지의 방향성을 컨트롤 하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 그네파와 명박파가 있다. 선거철에는 둘이 경쟁하면서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낸다. 선거가 끝나면 서로 잡아먹는다. 둘 다 망한다. 이런 현상은 지금 민주당에도 일어나고 있다. 2002년 노무현 시절에도 있었다. 열린우리당 세력과 민주당 세력이 경쟁하면서 상승효과를 만들기도 하고 상쇄효과를 만들기도 했다. 


    가끔 TV에는 천재개가 나온다. 말귀를 알아듣는 개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개 전체의 수준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은 거기서 중단된다. 사람은 다르다. 아인슈타인의 성과는 인류 모두에 공유된다. 세종의 한글은 모두가 공유한다. 한 사람의 깨달음은 모두의 깨달음으로 된다. 가만히 앉아 이득을 본다. 반대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선악이 있다. 어떤 행동이 선이고 악인 이유는 파급되기 때문이다. 연동되기 때문이다.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개는 천재개가 있어도 그 개가 죽으면 끝이다. 사람은 한 명의 천재가 인류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언어가 인간을 균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모두 달랐다. 양반 상놈 신분이 달랐다.


    남녀가 다르고 노소가 다르고 적서가 달랐다. 문명이 평등시켜 버렸다. 대표성이 평등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막강해졌다. 이는 인류의 상승효과다. 반대로 안다만 제도의 섬들에 흩어져 사는 부족민들은 아이큐가 낮은 쪽으로 하향평준화 된다. 보수주의다. 상쇄효과다. 부족 중에 가장 낮은 자가 전체의 기준을 정해버린다.


    애초에 방향을 잘못 정하면 이렇게 된다. 당신은 부족민 마을의 족장이다. 부족민 중에 누군가 셈을 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셈은 부족에 차별과 불화를 가져온다. 모두가 셈을 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셈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모두가 셈을 하기는 벅차므로 모두가 셈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보수주의다. 그렇게 된다.


    방향이 정한다. 고립된 섬은 에너지가 간당간당하므로 그렇게 된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은 상대적인 고립으로 인해 강한 보수주의 압력을 받는다. 트럼프 수준에 맞추어 하향평준화 되고 아베 수준에 맞추어 하향평준화 되고 이명박 수준에 맞추어 하향평준화 된다. 물론 그 반대 방향의 압력도 있다. 열린 상태는 에너지가 있다.


    인터넷이 열고 스마트폰이 열고 AI가 반도와 섬의 닫힌 문을 열어젖힌다.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와 정렬하게 하므로 오바마가 되고 노무현이 되고 문재인이 된다. 왜 인류는 셈을 하게 되었을까?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제사장의 무리와 장사치 무리가 처음 셈을 시작했다. 그리고 계급이 발생했다. 차별이 일어났다. 재앙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다. 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강해졌다. 1만 년 사이에 인류의 평균아이큐는 50에서 100으로 점프했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닫힌 공간에서는 점점 낮아져서 하향평준화 된다. 모두 바보가 된다. 셈을 하지 않게 된다. 보수주의 방향성이다. 열린 공간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모두가 똑똑해진다. 열리면 서로 연동되된다. 연동되면 하나의 에너지원을 여럿이 공유하므로 효율적이고 따라서 에너지는 플러스 상태다. 조금씩 남아도는 에너지가 모여서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쓰러지면 저것이 쓰러진다. 에너지원을 공유하면 그 효율성에 의해 상생상승 한다. 


    외부와 연결되는 에너지원이 끊어지면 상극상쇄 된다. 그래서 사회에는 윤리와 도덕이 있다. 왜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는가? 중간에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탈길에서 멈추지 못하듯이 계속 굴러간다. 조금씩 남아도는 에너지가 추력을 발생시켜 계속 가게 된다. 지하철에서 우르르 몰려가면 등을 떠밀려서 계속 가게 된다.


    도둑질을 한 번 하고 끝내지 못한다. 도박을 한 번 하고 끝내지 못한다. 나쁜 짓을 한 번 하고 멈추지 못한다. 하나의 에너지원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무인도에 두 명이 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거기에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없다. 살인이 나쁘다고 규정할 근거가 없다. 무인도에 세 명이 사회를 이루었다. 


    하나를 죽이면 다른 하나가 가만있지 않는다. 셋이면 이미 선도 있고 악도 있다. 방향성이 있다. 둘은 방향성이 없다. 머리와 꼬리가 없다. 상대적이다. 절대성으로 올라서야 방향성이 생긴다. 셋이면 축과 대칭의 구조가 만들어져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가는 방향성이 생긴다. 되돌아가는 상대성이 아니라 일방향의 절대성이다. 


    A가 B를 때리면 B가 A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상대성이다. A가 B를 때리면 B가 C를 때리고 C가 D를 때리는게 절대성이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간다. 셋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둘이면 남편이 아내에게 명령할 수 없고 아내가 남편에게 명령할 수 없다. 커플은 깨진다. 자녀가 탄생하면 셋이다. 가족이 셋이면 방향성이 생긴다. 


    불평등의 평등이 가능하다. 때로는 아내가 명령하고 때로는 남편이 명령하는데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세 번째 사람 곧 아기다. 아기가 코어다. 코어를 중심으로 축과 날개를 이루어 대칭되니 분명한 방향성이 생긴다. 문제는 적절히 격리하는 방법으로 세 명을 두 명으로 줄인 다음 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훼법을 쓸 수 있다. 


    적절히 격리하여 셋을 둘로 줄인 다음 하나씩 제거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한중일 셋이 있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이간질하여 떼어놓고 한국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만약 그게 된다면 한 번 은행을 털고 멈출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는 안 된다. 다음에도 은행을 턴다. 결국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는 거다.


    에너지가 부족하므로 한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듯 그쪽으로 쭉 간다. 적절히 격리하려면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닫힌계 안에서는 안 된다. 에너지는 언제나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계속 노력하여 성공하거나 계속 놀다가 망한다.


    그 중간은 잘 없다. 가만두면 계속 놀다가 망하는게 보통이다. 인간은 같으면 상생하고 다르면 상극한다. 같으면 상승하고 다르면 상쇄된다. 똑똑한 사람은 같음에 주목하고 바보는 다름에 주목한다. 그런데 전체로는 상생한다. 인류 전체의 진보방향, 문명 전체의 발전방향, 우주 전체의 팽창방향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다.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한 가지 상태밖에 없다. 모두 같아져서 마침내 균일해진다. 같음이 효율을 낳고 효율만큼 남는 에너지가 새로운 이웃을 끌어들이고 이 패턴을 반복하여 결국 모두가 전염되어 버린다. 에너지의 세계는 그러하다. 사건의 세계는 그러하다. 금과 은과 구리와 납이 별도로 존재하지 못하고 모두 합쳐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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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6: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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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결정비용의 문제


    에너지의 작용에 방향성이 있는 이유는 첫째 모든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지불되기 때문이고 둘째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이루면서 짝수의 형태로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막에 홀로 고립되어 있다. 구조를 요청할 수단이 없다. 휴대폰으로 119를 부를 수 있다면 고립된게 아니다. 사건은 이런 형태로 일어난다.


    사건은 계를 움직이고 움직이면 외부와 단절된다. 수학에서 사건은 event다. 이벤트는 주사위를 1회 던지는 것이다. 공중에 던져진 주사위는 외부와 단절된다. 만약 뒤로 몰래 연결한다면 반칙이다. 주사위 도박에서 속임수를 쓴 것이다. 알아야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당신은 공중에 던져진 주사위 신세가 된다.


    안철수가 대선후보로 TV토론에 나오면 공중에 던져진 주사위와 같다.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끈 떨어진 연과 같다.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되어도 머리를 잘 쓰면 최대한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게 구조론이다. 끈이 떨어지는 즉시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대칭을 조직해야 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해도 바람을 잘 타면 100킬로를 날아갈 수 있다. 누구라도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끈 떨어진 연이 된다. 잘나가는 남자라 해도 여자에게 먼저 고백하는 순간에 그렇게 된다. 싸대기 맞지 않으려면 처신을 잘해야 한다. 침실에서는 본 실력이 나온다. 아빠도 돕지를 않고 엄마도 도와주지 않는다.


    사막에 고립된 당신은 최대한 버텨야 한다. 오줌을 마시면 하루를 버틸 수 있고 자기 피를 빼먹으면 사흘을 버틸 수도 있다. 뭔가 플러스가 되는 외부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고 오직 자기를 고갈시키는 마이너스 방법만 가능하다. 이때 취해야 하는 조치는 자신을 50 대 50으로 쪼개는 것이다. 반드시 50 대 50이어야 한다. 


    자기를 둘로 나눈 다음 하나로 뒤를 받치고 다른 쪽을 움직이는 식으로 이동한다. 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 것이 그러하다. 왼발로 뒤를 받치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이 동작을 교대한다. 그런데 만약 6 대 4로 기울어지면 곤란하다. 6으로 뒤를 받치고 4를 이동시킬 수 있으나 4로 받치고 6을 이동시킬 수는 없다.


    계산이 안 되는 하수는 여기서 무너진다. 왜냐하면 6은 4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엔트로피다. 6으로 4를 이동시킬 수 있으나 4로 6을 이동시킬 수는 없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50 대 50도 정답은 아니다. 48 대 48 대 4라야 한다. 48로 받치고 48을 움직이며 4는 그 과정에 소비된다. 4는 의사결정비용으로 지불된다.


    항상 짝수로 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50 대 49 대 1은 안 된다. 양자역학의 원리다. 비용도 짝수가 되고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도 짝수여야 한다. 49대 49대 2도 안 된다. 49 안에도 별도로 대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왼발을 움직이려면 무릎을 중심으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대칭시켜야 한다. 계속 짝수로 가는 거다.


    그러므로 움직일 때마다 자투리의 손실이 일어난다. 비용이 1이라면 1만 소비해도 되는데 짝수를 만드느라 추가로 1을 더 소비한다. 그렇게 괜히 소비된 1은 대개 열로 변하여 빠져나간다. 열은 언제나 평형을 이루는 성질이 있으므로 그 과정에 열 자신을 소비시킨다. 열은 열을 멈추는 것이 등장할 때까지 움직여 간다. 


    그것이 평형이다. 인체도 평형이고 소비도 평형이고 열도 평형이며 자연계는 모두가 평형을 이룬다. 움직일 때마다 평형을 이루므로 그 평형비용이 소비되어 계속 마이너스 된다. 무언가 조금씩 손해를 본다. 의사결정비용이 청구되는 것이다. 이 도리를 알면 바둑을 두어도 상대방의 다음 수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 


    상대방은 대칭을 이루려고 하므로 대칭을 깨면 된다. 상대방이 두어서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위치에 내가 먼저 두면 된다. 물론 상대방이 개념없는 하수라면 그런 거 없다. 그 경우는 상대의 행마를 무시하고 내 말의 대칭을 만들면 된다. 균형을 만들면 이기고 균형을 허물면 이긴다. 적을 6 대 4로 기울게 만들면 이긴다. 


    한나라당은 노빠와 호남의 균형을 이용하려고 하고 우리는 박빠와 명박의 대칭을 이용하려고 한다. 상대방이 내부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도록 몰아가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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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9 (16: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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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운 엔트로피


    엔트로피라는 난해한 열역학 용어에 현혹될 이유는 없다. 괜히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머릿속에서의 사고실험으로 충분하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구조론은 쉽다. 사건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방향이 있어야 한다.


    방향을 만드는 것은 대칭이다. 대칭은 2로 성립하고 사건은 그 둘에서 하나로 받치고 나머지 하나로 틀어서 방향전환을 일으킨다. 사건의 진행은 2에서 1로 곧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받치는 하나를 거기에 남기고 다른 하나를 움직이는데 그 움직이는 것에서 사건은 다음 단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받치는 부분이 진행하는 부분보다 커야 하므로 사건의 범위는 점차 축소된다. 더 작아질 수 없으면 평형을 이루고 사건은 종결된다. 평형상태는 대칭을 조직할 수 없으므로 방향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방향전환이 일어나려면 닫힌계 바깥에서 에너지가 추가로 유입되어 계의 평형을 깨뜨려야 한다.


    에너지가 새로 투입되면 그것은 다른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은 계 안에서 에너지의 모순에서 촉발되고 남는 에너지를 처리하다가 평형상태에 이르러 종결된다. 사건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외부와 연결이 끊어지므로 닫힌계가 성립하고 이후로는 정해진 법칙대로 가므로 사건은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


    이게 어려운가? 쉽잖아. 과학의 역사는 겉보기가 다르다에서 알고 보니 같다로 바뀌는 역사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바뀌듯이 인간의 진보는 사물의 다름에서 사건의 같음으로 바꾸어 간다.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와 시공간의 같음을 규명했다. 같으면 대상을 통제할 수 있어 인류의 진보가 된다.


    구조론의 탄생은 열역학과 무관하다. 열역학에서 구조론이 나온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같다. 결론이 같다. 에너지의 방향성이야말로 모든 변화를 추적하는 열쇠가 된다. 바둑을 두어도 어떻게 흘러갈지 정치를 해도 어떻게 돌아갈지 장사를 해도 어떻게 진행될지 방향을 알 수 있다면 멋지다.


    사건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것이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같이 두면 같아져 버린다. 추시계 두 개를 같은 방에 두면 시간이 같아져 버린다. 막대에 추를 여럿 매달아 놓고 일제히 흔들면 처음에는 제각각 흔들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주 같아져 버린다.


    두 사람이 길을 가도 발을 맞춰서 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폭이 맞다. 왜? 연동되기 때문이다. 서로 간섭하는 것이다.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토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군중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몰려간다. 메뚜기떼는 크게 무리를 이루고 날아간다. 좌측통행 혹은 우측통행을 한다.


    기러기가 무리를 이루는 것이 그러하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기러기도 대열을 지으면 더 편하게 갈 수 있다. 자전거부대가 대열을 이루고 가는 것도 편하게 가려고 그러는 것이다. 국도를 가는 자동차도 맨 앞에 가는 차가 불리하므로 뒤차가 앞차를 계속 추월한다.


    앞차는 판단해야 할 것이 많지만 뒤차는 앞차를 보고 눈대중을 하므로 편하게 가면서 앞차를 비웃는다. 앞에 가는 저 자슥은 초보인가? 이러지만 자기도 추월한 다음에는 버벅거린다. 세상은 다양하지만 움직이면 환경의 간섭에 의해 획일화된다.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버리면 비중대로 줄을 선다.


    물고기는 모두 유선형의 몸매를 하고 있다. 말이든 치타든 잘 달리는 동물은 몸매가 늘씬하다. 뭐든 움직이면 같아진다. 이런 수렴진화 현상은 무수히 관찰된다. A와 B가 반반씩 섞여 있어도 조금 지나면 A만 남는다. 몰아주기다. 숫자가 많을수록 이 경향은 가속화되어 중국처럼 독재정권이 등장한다.


    대략 6으로 받치고 4를 움직인다. 큰 수로 받치고 작은 수를 움직인다. 움직여간 4에서 다시 6 대 4로 쪼갠다. 단계별로 계속 쪼개면 그만큼 자투리 손실이 일어나니 엔트로피 증가다. 반대로 4로 받치고 6을 움직일 수는 없다. 4는 6보다 작기 때문이다. 7 대 3이나 8 대 2로 쪼개면 빨리 끝난다.


    열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같다. 40도의 물과 30도의 물이 있다면 뜨거운 쪽이 차가운 쪽으로 이동한다. 뜨거운 것이 차가운 것을 이기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를 비좁은 집에 함께 있으면 약자가 밀려 나온다. 약자가 강자를 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원심분리기를 돌리면 가벼운 것이 밀려난다.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추운날 안방에 모여있다면 덩치 큰 사람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왜소한 사람이 윗목에 자리잡는다. 이렇게 정렬해 있는게 통제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면 매번 싸움이 일어나서 피곤해진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점차 서열정리가 되어 막내만 남는 거다.


    앤트로피 증가란 외부개입이 없이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라고 하면 다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가장 약한 자만 남는다는 말이다. 힘 있는 자들은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버티고 있으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다. 그래서 무질서하다. 이 표현은 오해되곤 한다. 사실은 평형에 도달한 안정상태다.


    1) 전체가 한 방향으로 간다.


    여럿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서로 간의 간섭작용과 공유하는 토대에 의해 연동되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우리은하의 나선 팔이 한 방향으로 도는 것과 같다. 배가 정지했을 때는 각자 움직이지만 배가 항구를 떠나 움직이면 일제히 같은 리듬을 타게 된다.


    2) 대칭을 이루는 형태로 간다.


    대칭이 방향을 생산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므로 대칭을 이루지 못하면 사건은 멈춘다. 운동이 지속되려면 최대한 대칭에 가까워야 한다. 정치가 양당제로 수렴되는 것과 같다. 도덕이 선악 이분법인 것과 같다. 하나로 받치고 하나를 움직이므로 대칭이 일을 수월하게 한다.


    3)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전체는 크고 크면 대칭을 조달하기 쉽다. 사건은 닫힌계를 이루어 전체를 도출한 다음 시작된다. 여기서 반을 멈추고 반을 이동시키므로 사건의 범는 1/2로 축소된다. 사건의 각 단계에 1/2씩 빠져나가서 사건의 진행은 점점 범위를 좁히는 형태로 일어나 결국 평형에 이른다.


    4)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사건은 대칭의 성립에 의해 일어나며 사건의 진행은 대칭의 축을 움직여 에너지의 모순을 처리한다. 축이 움직이면 계는 비대칭이 된다. 축이 움직여서 다시 대칭시킬 수 없으므로 자체적으로는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계의 통제불가능성을 무질서도의 증가라고 표현한다.


    5) 사건은 짝수로만 작동한다.


    사건이 일어나는 시작점은 한 지점이어야 하며 그 점을 도출하려면 연동되어야 하고 연동되면 균일해지고 균일한 계가 움직이면 앞과 뒤의 두 방향이 되고 두 방향의 중심에 어느 방향에도 속하지 않는 코어가 발생한다. 코어를 중심으로 둘로 나누어져 짝수로만 의사결정한다.


    6) 수렴진화를 일으킨다


    칸나이 회전이나 해하전투나 전술은 비슷하다. 뭐든 움직이는 것은 토대의 공유에 의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 생물의 진화도 그러하다. 출발점이 달라도 환경이 같으면 비슷해진다. 움직이는 것은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스포츠카는 대략 생김새가 비슷하다. 에너지가 강할수록 비슷하다.

    


    엔트로피는 구조론의 지극히 작은 일부를 구성할 뿐이지만 처음 좌표를 그리기에 앞서 기준선을 긋는 문제이므로 중요하다. 방향을 분간하려면 먼저 동서남북을 정해야 한다. 왜 지도를 그릴 때는 항상 북쪽이 위로 가는가?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륙이 대략 북반구에 몰려 있으므로.


    나침반을 이용하여 방위를 찾고 북극성을 이용하여 길을 찾듯이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 없고 시간이 없다면 약속을 정할 수 없어 만날 수 없다. 공간과 시간이 있어도 주소가 없고 시계가 없다면 만날 수 없다. 사전에 프로토콜을 맞춰놔야 한다. 엔트로피는 모든 사건의 대략적인 윤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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