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과 창발주의 http://gujoron.com/xe/1228732 <- 환원주의와 창발주의 비교 창발주의와 환원주의가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창발주의는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입장이고 창발주의는 전체에는 부분의 합에 없는 무엇이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론은 창발주의를 수용한다. 그런데 창발주의는 이론이 부실하다. ‘아직까지도 창발이라는 현상의 메커니즘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완성되지 않았다.’ [나무위키] 창발주의는 단지 환원주의를 비판할 뿐 자체 논리가 없다. 창발이라는 개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제부터 논의해보자고 제안할 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간단하다. 환원주의로 보면 학문의 정점에는 수학이 있다. 모든 학문은 수학으로 환원된다. 수학의 출발점은 집합론이다. 즉 모든 이론은 궁극적으로 집합론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존재는 집합론으로 해명된다. 그런데 존재의 단위를 정靜이 아닌 동動으로 보면 집합의 성립에는 둘을 묶어주는 플러스 알파가 요구된다. 움직이는 야생마 두 마리의 집합은 정지해 있는 통나무 두 개의 집합과 다르다. 새옹지마의 고사와 같다. 새옹이 잃어버린 말을 되찾았는데 덤으로 수컷 한 마리가 딸려 왔다. 두 마리 말은 호르몬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장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말을 사려고 한다. ‘말을 주시오.’ ‘말은 저 들판에 있소. 잡아가시오.’ 이건 아니지. 생선장수가 물고기를 판다. ‘고등어를 주시오.’ ‘동해바다에 풀어놓았으니 가져가시오.’ 이러면 안 된다. 그냥 곰 세 마리와 엄마곰과 새끼 두 마리가 가족으로 묶인 곰 세 마리 집단은 다르다. 솔로 두 사람과 커플을 이룬 두 사람은 다르다. 커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다. 묶여야 집합이다. 묶여있어야 한다. 존재는 동動이므로 묶여서 통제되어야 한다. 구조론은 대칭으로 묶는다. 그런데 말이다. 통나무 두 개는 묶여 있지 않다고? 아니다. 가만있는 통나무 역시 중력에 의해 묶여 있다. 중력이 없다면 통나무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1+1=2는 환원주의고 1+1<2는 창발주의다. 집합 2는 원소 1+1보다 크다. 통나무 두 개의 집합은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 위에서나 먹히는 논리다. 우주공간에서는 둘을 묶어줄 동아줄이 필요하다. 존재를 정靜으로 보지 않고 동動으로 보면 창발은 당연하다. 움직이는 것은 용기에 담아야 한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우리를 묶는 것은 관계다. 구조론은 관계중심적 사유다. 창발주의는 창발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구조론은 창발현상을 설명한다는 차이가 있다. 창발은 갑툭튀된 개념이다. 갑자기 뭔가 플러스가 된 것이 아니고 내부에 구조가 작용한 것이다. 어떤 둘이 집합을 이루고 공존한다면 반드시 구조가 가세해 있다. 존재의 근본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내부에 움직임을 감추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는 동動이다. 동動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집합이 깨진다. 묶는 것은 관계다. 지구에서는 중력이 묶어주고 사회에서는 신용이 묶어준다.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하므로 오판을 저지른다. 당연히 묶여있다고 생각했는데 묶여있지 않다면? 묶는 비용은 누가 지불하지? 이것이 엔트로피 원리다. 묶는 비용문제 때문에 우주 안에서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고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효율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전개되며 기보다 승이, 승보다 전이, 전보다 결이 더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비용이 적게 드는 안정적인 묶임형태다. 그 차액만큼이 효율이다. 효율이 존재하는 방향으로만 사건이 진행된다. 다른 말로는 에너지 낙차다. 사건이 일어나서 보다 효율적인 배치가 이루어지는 경우만 묶는 비용을 사건 안에서 자체조달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연은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플러스는 묶는 비용이 필요하지만 마이너스는 비용이 청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모의 도움, 환경의 도움, 인맥의 도움, 세력의 도움, 학벌의 도움으로 이 비용을 절감한다. 뒷배를 봐줄 인맥이 없는 사람은 손해본다. 문제는 이 묶는 장치는 재활용된다는 점이다. 한 번 시스템을 세팅해 두면 반복적으로 묶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붕어빵은 붕어빵틀의 도움을 받는다. 붕어빵 장수가 한 번 붕어빵틀을 사면 매번 재사용한다. 고장도 없다. 그러다가 잉어빵이나 국화빵으로 바꾸려면 난감해진다. 갑자기 비용이 청구된다. 시스템 안에서 묶어주는 질의 혜택을 누리다가 문득 시스템 밖으로 나가서 아무도 묶어주지 않을 때 인간은 당황한다. 정치판에서 그러하다. 조중동 뒷배 믿고 어리광 부리다가 한 방에 간다. 모든 혁신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그곳에는 묶어주는 무엇이 없다. 그 묶어주는 장치를 새로 만드는 일은 천장을 뚫는 일이다. 강력한 저항을 만나게 된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는 부품 하나하나를 다 바꿔야 한다. 그러나 한 번 돌파하면 일은 쉬워진다. 맨 처음 가는 자가 험한 꼴을 당할 뿐 뒤에 묻어가는 자는 쉽다. 앞서간 자가 시스템과 매뉴얼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묶어주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질의 균일 형태로 존재한다. 어떤 집합이 균일한 집합이라면 이미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학교, 같은 성별, 같은 직업, 같은 경험, 같은 언어. 같은 관습으로 묶여 있는 무리들은 자신이 묶여서 보이지 않게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새로 묶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묶는 비용을 절감하려고 불균일을 발생시키는 이질적인 존재를 차별하여 집단에서 찍어내려고 한다. 그 비용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며 불균일한 존재를 배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묶어야 한다. 그렇게 묶는 장치를 만들어야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묶인 사실을 모르고 묶여 있지 않은 불균일한 외부인을 차별하여 배척하는 편한 길을 선택하지만 그러다가 묶는 기술을 잊어버린다. 성장도 진보도 불가능해진다. 그것이 보수의 멸망공식이다. |
구조론과 창발주의 언어가 문제다. 인간의 언어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언어에는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데 관측자가 기준인지 관측대상 자체가 기준인지가 모호하다. 사과는 붉다. 사과 자체에 붉은 색소가 있다는 건지 내 눈에 붉게 보인다는 건지 헷갈린다. 보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게 그거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들어가면 문제가 된다. 헷갈리기 딱 좋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엔트로피를 알면 다 풀리는데 엔트로피를 모르므로 대화가 막히는 것이다. 과학가는 엔트로피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의 순서는 환원주의나 창발주의나 같다. 분명히 순서가 있다. 그런데 말하다보면 반대로 말하게 된다. 엔트로피가 그렇다. 무질서도의 증가다. 복잡해진다. 사실은 단순해진다. 골 때리는 것이다. 무질서도 증가라는 것은 질서가 없다는 말이고 그러므로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관측자가 보기에는 질서가 없으면 복잡한 것이다. 질서있는 군대와 무질서한 군중이 있다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복잡한가? 군대가 복잡하다. 군대는 대장, 장교, 부사관, 사병으로 각이 잡혀 있다. 그러므로 구조가 복잡하다. 아니다. 군중이 더 복잡하다. 군대는 젊은 남자 위주로 단순한데 군중은 남녀노소 별 놈이 다 있다. 사실 둘 다 복잡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곤란하다. 구조론에서는 통제가능성 위주로 사유한다. 즉 통제하기 힘든 쪽이 복잡한 것이다. 군중을 격파하기 쉽고 군대를 격파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군대가 복잡한게 맞다. 근데 군대는 명령을 잘 따르고 군중들은 따르지 않으므로 군중이 더 복잡하잖아. 이러고 어깃장 놓으면 피곤한 거다.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면 입씨름 하다가 진이 빠진다. 이러지 말자. 대상 내부에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질서의 정도로 판단해야 한다. 군중은 편제가 없으므로 편제가 갖추어진 군대가 상대적으로 복잡도가 높다. 이를 학문에 적용하면 순수학문이 복잡도가 높다. 수학이 어려운 이유다. 환원주의는 다르게 본다. 물질을 계속 쪼개면 원자만 남는데 원자는 단순하잖아. 이런다. 이런 밥통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 어거지 생떼로 우기는 자와는 대화하지 말자. 수학이 100이면 물리학은 50이고 화학은 30이다. 수학이 가장 복잡하고 물리학은 절반이며 화학은 쉽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한다. 물리학자는 수학을 배우므로 수학+물리학으로 150이다. 물리학이 훨씬 어렵다. 어휴! 100은 수학자가 해주잖아. 아인슈타인도 수학자 도움 받았다구. 수학자는 연구를 하지만 물리학자는 수학자가 해놓은 것을 가져다 쓰므로 100은 빼야지. 뒤에 붙는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은 앞단계가 해놓은 것을 가져다 쓰므로 쉽다. 뒤에 추가되는 부분만 파면 된다. 수학 100, 물리 50, 화학 30, 생물 20, 심리 10, 사회 1 정도로 보면 된다. 수학이 사회학보다 100배는 어렵다. 이걸 다 더해서 사회학은 211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화가 안 된다. 수학 아는 사회학자 있나? 마르크스 따위가 수학을 알아?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합당한 판단기준을 가져야 하며 그 기준은 엔트로피가 되며 엔트로피는 계를 정하고 계 내부의 질서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그 질서는 사건의 기승전결을 따라 전개할수록 질서가 낮아진다. 이를 엔트로피 증가라 한다. 대장은 주변의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 하고, 참모는 현안만 해결하면 되고, 간부는 작전만 성공하면 되고, 졸병은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졸병이 제일 변수가 적다. 판단할게 없다. 아니다. 전쟁은 졸병이 다 하잖아. 대장은 막사에서 잠자고 있잖아. 대장은 초딩도 할 수 있어. 낮잠만 자면 되재. 이러면 대화가 안 된다. 억장이 무너지는 거다. 박근혜가 그렇다. 대통령 노릇이 제일 쉬웠어요. 토요일도 놀고 일요일도 놀고 수요일도 놀고. 대통령은 맨날 놀아요. 이런 밥통들은 패죽여야 한다. 어휴! 구조론은 대상 자체에 내재하는 질서를 본다. 질량이라는 것은 상태를 변경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질량이 무거운 것은 변화시키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근데 실제로는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 금은 질량이 무겁다. 사실 금을 옮기기가 가장 쉽다. 같은 가격의 납을 옮기려면? 지게차라도 불러야 한다. 1억원어치 금을 옮기는데는 2킬로그램을 들 수 있는 힘이면 된다. 어린이도 옮길 수 있다. 납 1억원어치를 옮기려면? 이런 개똥 같은 소리를 하면 안 된다. 대부분은 이걸로 헷갈리는 것이다. 같은 부피의 금과 납이 있다면 금이 더 무겁다. 누가 가격 말했냐고? 가격은 사회에서 적용되는 상대적인 논리고 물질 자체와 상관없다. 절대성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보면 환원주의는 대착각을 하고 있다. 물질을 계속 쪼개면 최후에 남는 것은? 가장 단순한 원자가 있다? 아니다. 최종보스로는 완전성이 있고 거기에는 복잡한 구조가 있다. 맨 위에 있는게 가장 어렵다. 사장노릇이 제일 쉬웠어요. 사장은 맨날 골프만 치러 다니던데. 골프는 나도 친다구. 이건 아니다. 사장 되기가 쉽지 않다. 겉보기 말고 내막을 들추어 진실을 말하자는 거다. 대부분 여기서 막힌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구조론을 배울 수 없다. 대장노릇이 제일 힘들고, 대통령이 제일 일이 많고, 사장노릇이 힘들다. 국회의원은 사진만 찍으러 다니면 된다고? 아니다. 류호정도 하는데 나도 하겠다. 이러지 말자. 세상을 관계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피라미드 꼭지점이 가장 주변과 많이 엮인다. 피라미드 밑바닥에 낑겨 있으면 주변과의 관계맺기가 불가능하다. 질량 중심의 눈, 엔트로피 중심의 눈을 얻어야 한다. 가장 순수한게 가장 무겁다.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순으로 갈수록 단순해진다. 수학은 그물의 기둥줄처럼 맨 앞에서 이 모든 학문을 끌고 간다. 컴퓨터도 OS가 가장 복잡하고 추가되는 프로그램, 파일, 데이터 순으로 단순하다. 데이터가 많아도 량은 안 쳐준다. 다른 것과 연결되는 촉수의 숫자, 라인의 숫자로 논하는 것이다. 그릇에 내용물을 담는다면 그릇이 내용물보다 복잡하다. 그릇에 짬뽕을 담아놓고 이거 짬뽕이라서 꽤 복잡한데요? 이러는 넘은 쳐죽여야 한다. 어휴. 그릇은 사방을 커버하지만 내용물은 중력 반대방향만 책임진다. 저울, 됫박, 콤파스, 자, 물체 순으로 복잡도가 있다. 저울이 가장 복잡한 구조다. 그런데 저울을 살펴보면 두 개의 됫박이 연결되어 있다. 천칭저울이 그렇다.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저울은 됫박 두개 + 양자를 연결하는 코어다. 마찬가지로 됫박은 콤파스 두 개+판자를 합친다. 마찬가지로 콤파스는 자 두개 +나사못이다. 마찬가지로 자는 눈금이 물체 두 개를 담당한다. 자는 재려는 물체보다 길어야 한다. 무조건 더 커야 한다. 여기서 파악되는 것은 상부구조는 무조건 하부구조보다 복잡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므로 부분의 합은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 됫박 두 개를 합쳐도 저울이 안 된다. 거기에 막대기 하나 걸쳐야 저울이 된다. 물리학 두 개로 수학에 미달하는 것이다. 화학 두 개로 물리가 안 된다. 생물학 두 개로 화학이 안 된다. 반드시 라인을 연결하는 플러스 알파가 주어져야 한다. 원소 두 개로 집합이 안 된다. 집합은 별도로 원소의 위치를 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이지 환원주의로는 환원이 잘 안 된다. 솔로 두 명이 만나면 커플이 안 된다. 중매쟁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천하에 솔로가 넘치는 것이다. 창발주의도 틀렸다. 갑자기 짠 하고 생겨나지 않는다. 사실은 완전성이 복제되는 것이다. 개미가 모여도 개미집을 못 만든다. 호르몬이 작동한다. 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포착을 못한다. 그런데 있다. 반드시 있다. 배후에 질량이 있고, 중력이 있고, 호르몬이 있고, 관계가 있고, 라인이 연결된다. 묶어주는 그 무엇이 반드시 있다.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구조론이 안내한다. |
환원주의와 엔트로피
모든 것을 단순한 근본적 법칙들로 환원시키는 힘은 그런 법칙들로부터 시작하여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학자 P.W.앤더슨]
환원주의는 사회과학 위에 심리학, 심리학 위에 뇌과학, 그 위에 생리학과 생물학, 그 위에 화학, 그 위에 물리학, 정점에 수학, 수학 중에서도 군론이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물론 구조론으로 보면 수학 위에 구조론이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량 위에 운동, 운동 위에 힘, 힘 위에 입자, 입자 위에 질이 있다. 여기에 인과관계가 있다. 량은 운동으로 설명되고, 운동은 힘으로 설명되고, 힘은 입자로 설명되고, 입자는 질로 설명되며, 항상 높은 단계에 의해 낮은 단계가 설명된다. 수학이 모두 설명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열거할 뿐이다. 가장 높은 단계의 질은 완전성으로 설명된다. 완전성은 에너지의 속성이다. 그것은 움직이는 성질이다. 그것은 원래 그렇다. 우주가 원래 그렇게 창조되었다. 그 이상은 신에게 물어보자.
구조론과 환원주의가 어긋나는 지점은 엔트로피의 방향성이다. 환원주의 개념에는 엔트로피가 적용되어 있지 않다. 과학가는 과학가의 언어를 써야 한다. 엔트로피를 적용해서 대상 자체에 내재한 질서로 판단해야 한다. 엔트로피가 질서도를 측정하여 사건의 머리와 꼬리를 구분한다.
환원주의는 앞뒤를 거꾸로 판단한다. 환원이라는 것은 되돌리는 것이다. 여기에 방향착각이 있다. 사회학은 조금 더 복잡한 심리학이다. 사회학은 심리학의 응용에 불과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회학이 더 단순하고 심리학은 복잡하다.
왜냐하면 심리학에는 사회학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응용학문은 순수학문에 종속된다. 다시 말해서 사회학은 심리학을 쪼개서 열거한 것이다. 열거하면 단순하다. 콩을 항아리에 담아놓으면 심리학이고 항아리를 깨뜨려 흩어버리면 사회학이다.
순수학문은 항아리에 담긴 복잡한 학문이고 응용학문은 항아리를 탈출한 단순한 학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 방향을 헷갈리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복잡이란 말은 중복과 혼잡인데 겉보기로는 응용학문이 더 복잡하게 보인다.
그런데 엔트로피로 보면 단순한게 더 무질서하다. 즉 엔트로피로 보면 복잡한 것이 더 단순한 것이다. 과학가의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 달리 엔트로피를 적용한 것이어야 한다. 그림을 봐도 추상화가 더 복잡하다. 추상화는 잘 그렸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쌀 한포대와 밭에 있는 벼 한 포기는 어느 쪽이 단순할까? 마트의 쌀은 순수한 쌀이고 논밭의 벼는 왕겨와 쭉정이가 섞인 복잡한 쌀이다. 그런데 말이다. 마트의 쌀은 탈곡+도정+선별+포장을 거친 복잡한 것이고 들판의 벼는 단순하다.
구조론으로 보면 복잡한 것이 단순한 것이고,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이다.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무질서도가 높다. 그런데 더 단순하다. 무질서하니까 단순하지. 환원주의가 말하는 복잡개념은 엔트로피가 적용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언어사용인 것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에서 질이 가장 복잡도가 높다. 질서도가 높다. 량은 무질서도가 높다. 엔트로피가 높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질이 좋은 것은 단순하고 량이 많은 것은 복잡하다. 일단 량이 많아서 복잡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게 과학이냐?
거지와 신사가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복잡할까? 신사는 직업도 있고, 가족도 있고, 임무도 있고, 돈도 있어서 복잡하다. 거지는? 아무 것도 없다. 단순하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신사는 차림이 말쑥해서 단순하고 거지는 깡통이 가득해서 복잡해 보인다.
서랍에 옷을 정리한 것은 질이 높고 바닥에 흩어놓으면 량이 많다. 어느 쪽이 복잡할까? 서랍에 옷을 잘 정리한 것이 복잡한가, 아니면 옷을 바닥에 흩어놓은 것이 복잡한가? 겉보기의 복잡함과 내밀한 질서의 복잡함은 다르며 그래서 엔트로피가 있다.
여기서 판단기준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기준이 되면 곤란하고 대상 그 자체에 내재하는 질서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서랍에 정리된 것은 종류별로, 색깔 별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옷+종류+색깔로 질서도가 높다. 바닥에 던져진 옷은 그런게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수학은 물리학을 포함하고, 물리학은 화학을 포함하고, 화학은 생물학을 포함하고, 생물학은 심리학을 포함하고, 심리학은 사회학을 포함한다. 학문의 원본에 가까울수록 질서도가 높고 사회학으로 응용하여 갈수록 질서도가 낮다. 반대로 엔트로피가 높다.
사회학은 그냥 사회문제를 열거한 것이다. 그 단계에서 해법은 제시될 수 없다. 경영학이 대표적이다. 그냥 경영사례를 열거한다. 그게 전부다. 지극히 단순하다. 복잡하지 않다. 가장 순수한 수학이 내부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그래서 어렵다.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환원주의는 엔트로피 개념이 적용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접근이며, 아마추어의 잘못된 언어사용이며, 엔트로피로 보면 질서도가 가장 높은게 수학이다. 사회학은 쓸데없이 사례를 열거해서 복잡하게 보일 뿐 실제로는 단순한 나열에 불과하다.
환원주의는 방향판단을 잘못해서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수학으로 갈수록 단순해지고 단순하면 0에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어떤가? 양자역학이 물질의 근본을 파헤칠수록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궁극에는 단순한 알갱이 원자가 있는게 아니라 복잡한 메커니즘과 그것을 연결한 시스템이 있다.
구조론은 질이 가장 복잡하고 량이 가장 단순하다. 수학으로 갈수록 더 복잡해진다. 순수학문이 복잡하고 응용학문은 단순하다. 복잡하다는 것은 거기서 하나를 변화시켰을 때 맞물려서 동시에 변하는 변수의 숫자가 많다는 말이다.
수학이 바뀌면 굉장히 많은게 동시에 변한다. 사회학이 바뀐다고 생물학을 뜯어고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생물학이 바뀌면 사회학을 고쳐야 한다. 인간도 생물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개소리는 간단히 무시된다. 닥쳐! 그냥 희망사항을 열거한 것이다.
물리학이 바뀌면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을 다 고쳐야 한다. 사실이지 아인슈타인에게 다들 한 방을 먹었지 않은가? 물리학이 더 상위의 학문이고 더 계급이 높고 더 복잡한 학문이다. 사회학이 바뀐다고 물리학이 눈이나 깜짝하겠는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순수한 학이 더러운 까마귀 눈치를 보겠는가?
순수한 것이 단순하다는 엉터리 관념은 아마추어의 착각이다. 가장 순수한 것은 원본이며 원본에는 완전성이 있다. 원본이 가장 복잡하다. 거기서 하나가 마이너스 되면서 낮은 단계로 내려간다. 겉보기로 번잡해질 뿐 복잡하지 않다. 내부질서는 낮다.
아프리카 부족민 사회가 복잡한가, 선진국 사회가 복잡한가? 선진국은 누가 지도자인지 알 수 있다. 단순하다. 그러나 아프리카로 가면 누가 족장인지 알 수 없다. 저마다 자기가 족장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회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매우 복잡하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고도로 복잡한 사회인가? 천만에.
수학이 가장 복잡하다. 그래서 어렵다. 사회과목은 누구나 쉽게 만점을 받는다. 엔트로피를 모르면 세상을 거꾸로 알고 반대로 해석하게 된다. 순수할수록 단순하고 단순하면 허무해진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모르는 대착각이다.
과학가는 탐구대상 그 자체에 내재한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겉보기 느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복잡하게 보일수록 단순하다. 통제하기가 쉽다. 아프리카 부족민 사회에 돌아가는 논리가 복잡하지만 지극히 단순하다. 돈만 주면 쉽게 통제된다. 중국이 돈을 뿌려서 아프리카 다 넘어갔다.
순수한 것은 완전하며 완전한 것은 복제되고 복제되는 것은 유의미하다. 허무하지 않다. 순수한 것에 권력이 있다. 허무한 이유는 권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순수한 종이는 사용되므로 권력이 있다. 불순한 종이는 이미 사용되었으므로 버려야 한다. 사용된 것은 권력이 없다. 수학은 권력이 있고 사회학은 권력이 없다.
신차와 폐차가 있다면 어느 쪽에 권력이 있는가? 신차는 사람을 태울 수 있다. 폐차는 사람을 태울 수 없다. 신차는 사람을 골라 태우며 권력을 누린다. 폐차는 골치아플 뿐이다. 어느 쪽에 권력이 있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폐차가 다 깨져서 복잡해 보인다고 그게 복잡한게 아니다. 고물상에 전화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