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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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98 vote 0 2020.05.11 (16:55:59)

      
    구조론의 개요

       


    ● 구조론은 사건의 과학이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다. 사물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사건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사건의 연결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구조론의 요체다.


    ● 구조론은 사건의 플랫폼이다.
    사건은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이 있다. 모든 사건은 에너지를 처리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구조론은 우주 안의 모든 사건이 공유하는 근원의 플랫폼이다.


    ● 사물은 다르고 사건은 같다.
    사물은 관측자인 인간이 드러난 결과를 보고 사건은 원인자인 에너지가 계 내부에 숨은 플랫폼을 운용한다. 사건의 결과는 데이터가 각기 다르지만 사건의 원인은 플랫폼이 같다. 원인의 같음에 주목해야 플랫폼을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세상은 패턴의 복제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패턴의 복제다. 플랫폼에 에너지가 입력되면 사건의 진행에 따라 동일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복제되므로 우주는 널리 망라된다. 원인측에서 하나의 플랫폼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많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 존재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외력의 작용에 맞서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이며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려면 계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어야 하며 계 내부에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고 외력의 작용을 1회 처리하는 것이 바로 사건이다.


    ● 사건은 에너지를 처리한다.
    양자역학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면 사물은 사라지고 사건만 존재한다. 사건은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1사이클을 진행하면서 계 내부의 에너지 모순을 처리한다. 1회의 에너지 작용에 따른 원인에서 결과까지 일처리의 진행이 사건이다.


    ●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구조는 사건의 플랫폼 안에서 축과 대칭을 써서 계 내부의 모순을 처리한다. 구조는 축과 대칭을 갖추고 갈림길에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한다. 구조는 에너지 처리에서 효율적인 쪽을 선택한다.


    ● 사건은 다섯 매개변수가 있다.
    하나의 사건은 질, 입자, 힘, 운동, 량 다섯 매개변수로 이루어진다. 다섯 개의 의사결정구조가 하나의 사건을 이루며 단계적으로 작동한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량은 침투한다.


    ● 구조론은 의사결정학이다.
    하나의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입력에서 출력까지, 시작에서 종결까지, 머리에서 꼬리까지, 문제에서 해결까지 일처리를 진행하며 그 과정에 세상은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의 다섯 차례에 걸쳐 의사결정한다.


    ● 세상은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다.
    에너지는 고유한 활동성이 있고 활동이 수렴방향으로 교착되면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어 물질이 되며 공간은 축의 이동이고 시간은 에너지 보존에 의한 패턴의 반복이며 정보는 외부의 대상에 침투한 그 결과값을 인간이 인식한다.


    ●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의 고유한 활동성과 생명성에 따른 사건의 방향성이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에너지의 활동성은 플라즈마와 같은 고유한 움직임이며 생명성은 에너지가 수렴방향일 때 1회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드러하는 사건의 완전성이다.


    ● 존재의 방향은 확산에서 수렴이다.
    플라즈마의 확산방향 ←→에서 물질의 수렴방향 →←로 바뀌면서 계를 성립시키고 사건은 계를 중심으로 1회의 에너지 입력을 처리하여 내부의 모순을 해소한다. 방향의 2에서 1로 가는데 따른 효율을 사용하므로 역방향의 진행은 없다.


    ●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든다.
    대칭은 짝수이므로 자투리가 발생하는 만큼 비효율적이다. 사건은 계 안에서 손실되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 계는 닫혔으므로 외부개입은 없으며 자체해결만 가능하므로 사건은 결따라 간다.


    ● 세상은 대칭과 비대칭이다.
    대칭은 외부 에너지 작용을 받아 축의 형태로 특이점을 형성하여 비대칭을 도출한다. 대칭에 따른 효율성이 방향을 조직하고 비대칭이 방향을 틀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형태로 의사결정하여 사건은 진행한다.


    ● 세상은 마이너스다.
    대칭은 토대의 공유를 통해 효율을 달성하며 효율성이 사건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 방향은 엔트로피 증가방향이며 곧 마이너스 방향이다. 손실이 일어나는 방향이다. 이 방향일 때 에너지 손실에 따른 잉여에 의해 사건은 통제가능하다.


    ● 속성이 아니라 관계다.
    문제해결의 답은 언제라도 바깥에 있다. 사물 내부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사건은 주변환경과의 관계가 결정한다. 내적 속성은 대칭에 의해 교착되므로 의미없다. 내부교착을 타개하는 에너지는 외부에서 조달된다. 답은 외부에 있다.


    ● 계는 균일해야 한다.
    계가 균일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계 전체에 전달되지 않아 외부 에너지의 작용에 일의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계가 깨지고 흩어져서 플라즈마 상태로 복귀한다. 계가 불균일할 때 사건은 불발하거나 혹은 희미해진다. 죽거나 시들어간다.


    ●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계가 에너지 작용을 처리할수 있는 균일상태인지가 중요하다. 에너지 전달방식이 사건의 향방을 결정한다. 인간은 가족이나 학교 등 상부구조에 형식을 의존하므로 내용만 감당하면 되지만 자연은 모두 책임지며 형식이 우선이다.


    ●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사건의 계에는 부분의 집합에 없는 에너지의 경로가 지정되어 있다. 계는 균일성을 갖추고 입자는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춘다. 보이지 않는 질서가 세팅되어 플랫폼을 이룬다. 인간은 플랫폼의 갖춤을 무시하는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 세상은 통제가능성으로 이루어진다.
    에너지는 계의 통제가능성이다. 외력의 개입 없이 자체의 통제가능성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가 균일한 계에서 축과 대칭의 구조를 이루면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은 질서가 있다.


    ● 세상은 엔트로피로 모두 설명된다.
    사건의 진행은 축의 이동을 통해 계 내부의 모순을 처리하는 것이다. 100에서 50으로 받치고 50으로 진행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각 단계에서 50씩 제외되므로 점차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사건은 진행하면서 질서를 잃는다.


    ● 사건 안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사건은 균일한 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각 단계에 보다 작은 내부 계가 작동하며 사건 진행 중에는 그 단계의 계가 작아진 만큼 닫힌계 전체의 통제가능성은 사라져서 질서를 잃고 그만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 세상은 균일과 불균일이다.
    계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균일하나 대칭과 비대칭의 작동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지점에서 국소적으로 불균일하여 통제가능성은 사라지고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완전히 처리하면 다시 균일해져서 제 2의 사건을 맞이한다.


    ● 양질전환은 없다.
    사건 진행 중에 단계적으로 통제가능성이 줄어든다. 이미 시동이 걸린 차에 시동을 걸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나 움직이는 상태에 개입할 수 없다. 통제하려면 사건을 종결시킨 후 외부 에너지를 끌어들여 제 2의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 세상은 상대성이 아니라 절대성이다.
    둘이면 상대성-주관성이고 셋이면 절대성-객관성이다. 둘이면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 방향성이 없고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사건은 통제되지 않는다. 셋이면 축과 대칭이 조직되고 축의 이동에 따라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 세상은 3으로 작동하고 5로 복제된다.
    축과 대칭의 구조를 이루는 3자에 에너지 입출력을 더하여 5자를 이루면 플랫폼을 완성하고 사건은 복제된다. 복제본은 원본 주변에 자리잡고 에너지를 의존한다. 플랫폼에 에너지를 태우면 세상은 생명성을 얻어 발달한다.


    ● 세상은 귀납이 아니라 연역이다.
    귀납은 관측자 인간이 개입한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사건 안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외부의 인간이 아니라 사건 내부 구성소가 관측해야 한다. 사건 내부에서 축과 대칭의 3자를 도출하여 방향성을 얻어야 답을 알 수 있다.


    ● 자연은 에너지고 사회는 권력이다.
    자연은 에너지의 방향성이 통제가능성을 이루고 사회는 권력의 진보성이 통제가능성을 이룬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의사결정원리를 적용하여 해석할 수 있다. 자연의 진화원리와 인간의 진보원리는 같다.


    ● 구조론은 수학과 과학의 중개자다.
    물리학은 주체의 맞은 편에 대상인 물物이 있지만 구조론은 대상이 없다. 구조론은 대상화 되지 않는 주체의 학문이다. 구조론은 수학이지만 모든 수학의 위에 있다. 구조론은 보편의 의사결정원리를 제 분야에 적용하여 해석한 철학이다.


    ● 구조론은 쉽다.
    구조론은 간단히 세상은 사건이며 원인에서 결과로 가는 방향성이 있고 축과 대칭의 구조를 움직여 통제할 수 있다는 견해다. 사물 내부를 보지 말고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보라고 말한다. 어렵게 들어가면 어렵지만 이러한 근본은 쉽다.


    ● 구조론사람이 되라.
    모든 사람이 수학 전문가는 못되어도 좋지만 수학적 사유는 익혀야 한다. 구조론은 간단하다. 세상을 사물로 보지 말고 사건으로 보라는 거다.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고 진보의 편에 서는 자세가 중요하다.


    


   

      
    구조론의 세계



    구조론의 세계가 방대해서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과목을 나눈다면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구조론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구조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매개변수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에너지에 의한 사건의 복제와 연결이다. 하나의 사건은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5회의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다.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5회의 대칭과 대칭성 깨짐을 통해 에너지의 모순을 처리한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시작에서 종결까지, 입력에서 출력까지, 질문에서 답변까지, 머리에서 꼬리까지 진행하며 그 안에 3개의 매개변수를 포함하여 다섯 단계를 가진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 가운데 셋은 저울 형태의 대칭구조를 만든다. 가늠자와 가늠쇠와 타겟을 정렬시킨다. 우리가 아는 사물 자체의 고유한 속성은 실제로는 없으며 어떤 둘의 양자역학적 간격과 상관관계가 칼라를 결정한다. 그 관계를 바꾸고 간격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사건의 전개에 대응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 사물을 소유한다는 관점을 버리고 에너지의 통제를 통해 사건에 대응한다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1) 존재론 

    

    세상의 근원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전체에서 부분의 한 방향으로 가며 그 역은 없다. 이는 연역법에 해당된다. 점차 범위가 좁혀진다는 점에서 세상은 마이너스다. 플러스는 통제할 수 없고 마이너스는 통제된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에너지는 고유한 활동성에 의해 계를 이루므로 방향성이 있다. 계를 깨지 않는다는 전제를 지키는 것이 방향성이다. 에너지는 결따라 간다. 의사결정이 쉬운 쪽으로 결정한다. 에너지는 효율성을 따른다. 5단계에 걸쳐 범위를 압축하여 잉여를 발생시키고 그 힘에 의지한다. 엔트로피는 닫힌계에서 성립하며 열린계는 비축된 에너지나 외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착오가 일어난다. 열린계라도 사건의 규모가 커지면 닫힌계가 되므로 플러스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옳고 그름의 논리보다 집단의 결정하기 쉬운 방향으로 결정한다. 집단이라는 계를 깨지 않는다는 전제 때문이다. 집단은 에너지를 보존하고 의사결정구조를 유지하려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게 보통이다. 집단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2) 인식론


    존재론이 자연의 전개방식이면 인식론은 인간의 접근방식이다. 인식은 부분에서 전체로 가는 점에서 엔트로피와 어긋난다. 이는 귀납법에 해당된다. 인간은 사건의 원인단계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바둑알이 놓이기 전에 바둑판 전체의 형편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역설이다. 계 내부에 감추어진 의사결정구조라는 저울이 작동해서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얻게 한다. 우리는 사물을 건드리지만 배후의 에너지가 작동하여 복원시키므로 실패한다. 이중의 역설에 의한 동적균형이 정답이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사물을 건드려서 배후의 에너지를 끌어내고 다시 그 에너지를 점령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배후의 에너지는 주도권이다. 사건 안에서 두 번 방향을 틀어 주도권을 얻어야 한다. 그 과정에 내부에 대칭구조를 조직하여 저울을 이루어야 한다. 사물 뒤에 사건 있고 하부구조 위에 상부구조 있다. 인간은 사물을 건드리다가 실패하지만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배후의 에너지를 끌어내면 통제에 성공할 수 있다.



    깨달음 


    인간은 집단의 일원으로 존재하며 호르몬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통제를 받는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집단으로부터 에너지와 동기를 부여받으며 자기도 모르게 집단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은 쾌락과 명성과 평판과 지위에 얽매이지만 이는 집단이 개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수단이다. 링위에 올라 게임을 뛰는 선수의 관점을 버리고 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최측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돈을 따는 것이 주최측이다. 사건의 주최측이 되어야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은 평판, 명성, 쾌락, 신분, 재화 등의 형태로 작동하는 심리적 에너지에 지배되지만 에너지는 쉽게 고갈된다. 에너지 없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소승적 차별주의 이원론의 집착을 끊고 팀의 결성을 통해 에너지를 조달하여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승적 일원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맞게 자신의 무의식과 호르몬을 바꿔야 한다. 사건 안에서 3대의 계통을 조직함으로써 집단의 대표성을 얻어 에너지를 끌어내고 통제하는 것이 의리다.



    1) 언어 


    집단의 일원인 개인은 직접적인 문제해결보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하므로 인간의 언어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맞추어져 있으며 이 때문에 인간은 대화를 통해서만 집단과의 부단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우연히 진실에 도달하게 되며 스스로의 사유로는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진실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언어가 틀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부분 관측대상에 자기를 대입시켜 대칭구조를 끌어내는 자기소개형 언어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언어는 인간의 대화를 떠나 사건을 반영해야 한다. 자기를 배제하고 객관화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어는 담론, 명제, 문장, 어구, 단어로 조직되며 각각 조건문과 반복문, 전제와 진술, 주어와 술어, 명사와 동사, 기표와 기의의 대칭구조를 가진다. 인간은 답을 찾지 못하는게 아니라 문제를 명확히 파악지 못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언어 그 자체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이다. 언어를 바로잡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사건의 전개절차에 맞게 언어를 바르게 사건에 대입시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 인간 


    인간은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다. 인간이 추구하는 명성, 평판, 지위 따위가 모두 권력과 긴밀하다. 인간은 정확히 주어진 환경 안에서 의사결정권의 행사를 원한다. 집단의 권력구조 안에서 호흡하기를 원하고 역할을 가지기를 원한다. 집단과 밀접하고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이며 동시에 전쟁을 통해 역할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평화가 오면 자식을 낳아 가부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이 없고 경쟁이 없다면 가부장은 필요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모순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에 필요한 상호작용 행동을 한다. 집단의 주목을 끌고자 일을 벌인다. 소규모 부족민 사회라면 상관없지만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무의식적인 권력지향적 상호작용 행동은 위험하다. 대중의 평판권력, 지도자의 정치권력, 자본가의 경제권력, 예술인의 문화권력, 개인의 도덕권력이 있다.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는 집단의 통제가능성 곧 권력에서 얻어지며 이를 팀 안에서의 역할분담으로 조직하는 것이 의리다.



    3) 마음 


    사건의 원인과 결과 중에 인간은 결과측의 보상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원인측의 에너지를 원한다. 결과측의 보상이 행복이라면 원인측의 에너지는 무의식이라서 이름이 없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마음은 정신, 의식, 의도,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각각 존엄, 자유, 사랑, 성취, 행복으로 나타난다. 결과측인 행복의 감정은 표현할 수 있으나 원인측인 존엄의 정신은 표현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자존감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에너지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그것을 설명하는 단어가 없으므로 오판한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안다. 에너지를 주는 원인은 집단에서 나오므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랑의 감정은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의 원인은 유년기부터 뇌에 축척된 무의식이므로 깨닫지 못한다. 환경과의 관계설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성격문제로 잘못 알려졌지만 대부분 호르몬 차원의 대인관계 장애다. 잘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회피하는 패턴이 습관화 되면 그것을 성격으로 규정하지만 오류다.




    사건철학 


    인생은 게임이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며 인간은 사건의 전개과정 대응할 수 있다. 그것을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링 위의 선수가 되어 사물을 획득할 것이 아니라 게임의 주최측이 되어 사건의 흐름을 통제해야 한다. 사물에 맞서는 자는 진학과 결혼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불리해진다. 사건을 통제하는 자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거꾸로 상대방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에너지의 입구를 틀어쥐어야 한다. 약자의 철학이 아닌 강자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승객이 아닌 운전기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물을 건드리면 에너지의 작용에 의해 반대효과가 나지만 에너지를 틀어쥐고 사건을 통제하면 일은 순리대로 풀린다. 사건의 원인측에 서서 주도권을 쥐고 상황을 이겨야 한다. 적을 제거하기보다는 달고다니며 제압해야 한다. 노자는 약자의 철학이고 공자는 강자의 철학이다. 게임에 이기려면 3대의 계통을 만들어야 한다. 사건 내부에 대칭을 조직하여 저울을 이루고 그 저울을 장악해야 한다.



   1) 진화 


    자연의 존재는 정적 존재가 아니라 가속도를 통해 상대적인 위치를 가지는 동적 존재다. 그러므로 우주도 진화하고 생물도 진화하고 사회도 진보한다. 생물의 진화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유전자 시스템의 수학적 완결성에 따라 고유한 방향성이 있다. 에너지가 계를 이루면 엔트로피에 따라 방향성이 생긴다. 에너지의 작동은 효율성을 따르며 효율적인 배치가 수학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것이 진화의 방향성이다. 생물의 진화는 유전자가 외부환경을 생물체의 통제권 안으로 끌어들여 내면화 해온 역사다. 바깥에 빛이 있으면 눈의 형태로 끌어들이고 소리가 있으면 귀의 형태로 끌어들이고 바람이 있으면 털의 형태로 끌어들인다. 생존전략과 세력전략이라는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환경이 나쁠 때는 유전자를 남길 확률을 높이는 생존전략을 추구하고 환경이 좋을 때는 영토를 장악하는 세력전략을 추구한다. 종은 환경을 보다 깊게 장악하는 한 가지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 결과 종은 환경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의 진보도 이 원리를 복제해야 한다.



   2) 역사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권력을 행사하려는 지식인 특유의 비뚤어진 권력의지가 영웅주의와 계몽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영웅주의로 사람을 차별하는 방법으로 목표를 제시하고 학생을 다그치며 그 과정에서 권력을 행사하려는 교육자의 나쁜 의도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탓 하지 말고 역사주체가 과연 주어진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느냐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해도 운이 없으면 결과가 나쁠 수 있으므로 확률로 판단해야 한다. 결과를 떠나 인류전체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의사결정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인간은 시행착오와 오류시정를 통해 전진하는 존재이므로 설사 잘못된 결정이라 해도 집단 전체의 성공확률에 기여할 수 있다. 전쟁에 패배해도 싸우면 경험치를 얻는데 그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개인의 영웅성이 아닌 시스템의 효율성을 위주로 논해야 한다. 역사는 대부분 지정학적 구조와 집단 내부의 의사결정구조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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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은 철학과 다르다. 분류하기에 따라 깨달음을 철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겠지만 철학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곧 문제에 내가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라면 깨달음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노예의 대응법과 주인의 대응법은 다른 것이다. 노예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그만이지만 주인은 집단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그런 점에서 나의 존재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먼저 깨달아 자신의 존재를 확정한 다음에 환경의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구조론은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이렇다는 것이며 깨달음은 내 존재가 이렇다는 것이며 철학은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관계이고 나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이겨야 한다.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든다.


    구조론은 한마디로 의사결정학이다. 의사결정에는 비용이 든다. 자연은 의사결정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그 방향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는 수렴방향이다. 역방향은 없다. 확산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 곧 엔트로피다. 은행에서 만 원짜리를 천 원짜리로 바꿔주는데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럼 공짜인가? 자연에는 공짜가 없다. 은행이 선심을 쓰는 거지 반드시 비용이 지불된다.


    자연은 결따라 간다. 닫힌계 안에서 자체적인 비용조달이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한다. 그런데 인간은 수시로 역주행을 시도한다. 부분에서 전체로 간다. 아버지 빽 믿고 가는 거다. 이때 아버지가 뒤로 개입했으므로 사실은 전체가 움직인 것이다. 자연에 없는 이런 식의 외부개입이 착시를 불러 일으킨다. 부분에서 전체로 갈수 있을 듯 착각된다. 구조론은 닫힌계를 설정하여 이런 오류를 걸러낸다.


    닫힌계 내에 대칭과 호응의 구조를 조직하는 방법으로 비용조달은 가능하다. 이때 구조는 효율화되며 닫힌계 안에서 이를 뒤집을 수 없다. 뒤집으면 비효율이므로 비용이 추가되는데 계를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에너지의 방향전환이며 방향이 바뀌므로 추가 에너지 투입은 불가능하다. 날아가는 총알을 다른 총알로 맞춰 밀어주기는 불가능하다. 총알은 이미 총구를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자단위로 사고하지만 사건단위로 사고해야 바르다. 사건은 1회의 에너지 투입에 의한 원인에서 결과까지의 전개다. 에너지를 투입하면 방향이 바뀌므로 추가 에너지 투입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데서 오류가 일어난다. 날아가는 총알을 다른 총알로 밀어주겠다는 식이다. 밀어줄 수 없다. 등교한 학생의 시험을 아버지가 밀어줄 방법은 없다. 이에 천하의 질서가 작동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

   

    질이 뭐냐며 어렵다는 분이 많은데 이보다 쉬운게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은 원인과 결과다. 원인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필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사건의 원인 말고 그냥 원인 말이다. 결과 앞에 있는게 원인이다. 반대로 결과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없다. 원인 뒤에 따라오는 말이 결과다. 너무 쉽잖아.


     앞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없다. 뒤가 아니면 앞이다. 뒤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없다. 앞이 아니면 뒤다. 앞과 뒤는 쌍을 이루고 항상 같이 다니므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특정한 사건의 질을 모르겠다는 말은 성립하지만, 그냥 질 자체를 모르겠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원인이 질이다. 국어사전을 참고하자.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된 일이나 사건.' 어이쿠! 이게 뭐야? 어렵게도 써놨다. 결과는? '어떤 원인으로 결말이 생김.' 이건 더하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국어사전은 잊자. 하나의 사건 안에서 앞의 결정과 뒤의 결정이 맞물려 일어날 때 앞의 결정이 원인이고 뒤의 결정이 결과다.


    둘 이상의 서로 다른 변화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에서 앞에 오는 놈은 원인이고 뒤에 오는 넘은 결과다. 너무 쉽잖아. 원인과 결과는 두 단어다. 구조론은 좀 풀어서 다섯 단어나 된다. 원인은 문제요 결과는 답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람도 없다. 답을 찾게 하는 바로 그것이 문제다. 


    답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없다. 어떤 특정한 문제의 답을 풀어내는 방법은 몰라도 그냥 답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 문제를 풀어놓은 것이 답이다. 반대로 답을 꼬아놓으면 그것이 문제다. 량을 꼬아놓으면 운동이다. 운동을 꼬아놓으면 힘이다. 힘을 꼬아놓으면 입자다. 입자를 꼬아놓은 것이 질이다. 간단하다. 


    질은 입자 두 개가 하나의 토대를 공유하여 꼬인 것이다. 토대의 공유라 하면 어렵게 느껴질 텐데 그냥 겹친 거다. 질은 입자의 원인이다. 입자는 힘의 원인이다. 힘은 운동의 원인이다. 운동은 량의 원인이다. 입자가 겹치면 질이다. 힘이 겹치면 입자다. 운동이 겹치면 힘이다. 량이 같은 위치에서 겹치면 운동이다.


    겹친다는 것은 반복한다는 거다. 한 방 맞았는데 한 방 더 맞으면 운동이다. 냄새나 소리와 같은 신호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면 량이고 길게 이어지면 운동이다. 량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몸의 감각으로 느낀다. 인간 내부로 들어온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운동하여 들어왔다. 


    그러므로 운동은 량의 원인이다. 어떻게 운동했을까? 힘으로 방향을 틀었다. 힘은 자리바꿈이다. 힘은 운동의 원인이다. 어떻게 틀었을까? 방향을 틀려면 코어가 계를 장악하여 축과 대칭의 구조를 갖추고 대칭이 자리를 바꾸어 힘을 행사한다. 그것이 입자다. 어떻게 입자는 계를 장악했을까? 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계가 만들어졌을까? 질은 결합한다. 결합해서 계가 만들어졌다. 왜 결합할까? 에너지의 확산방향이 수렴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주변의 사물들은 인공적인 것이다. 목수 아저씨가 나무를 짜 맞추어서 결합되어 있다. 만두는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요리사가 주물러서 반죽이 결합되어 있다.


    도자기는 1600도의 고온에 구워서 결합되었다. 자연상태에서는 어떤 균일한 구성소들이 흩어져 있을 때 외력이 작용하면 일정한 조건에서 결합된다. 잘 결합되지 않으면 에너지를 더 강하게 작용시키면 결합된다. 끝까지 결합되지 않으면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혹은 암흑물질이다. 대개 일정한 조건에서 결합된다.


    결합조건은 중력과 강력, 약력, 전자기력으로 설명된다. 인간들은 대개 외부의 적이 침투할 때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서 결합된다. 혹은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이 부모를 떠나지 않고 주변에 머물러 있으므로 계통을 이루어 결합된다. 즉 인간은 먹고살려고 먹이활동을 하다 보니 그 사건에 의해 결합된 거다.


    맘모스를 이기려면 적어도 100개체의 무리가 필요하므로 부족이 탄생한다. 네안데르탈인은 결합규모가 작아서 적은 씨족의 구성원 숫자로 맘모스를 용이하게 사냥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절한 것이다. 전기차라 치자. 사건이 여러 가지다. 사람을 태우는 기능도 있고 전기차 하나에 여러 가지 있다. 핵심만 논해야 한다.


    에너지 계통만 가지고 이야기하자. 배터리가 질이다. 에너지를 모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결합되어 있다. 입자는 모터다. 힘은 모터의 회전이고, 운동은 바퀴 구동이고, 량은 주행거리다. 주행하면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동안 에너지를 통제한다. 핵심만 추려서 생각하는 추상능력이 없어서 산만해진다.


    핵심은 에너지고 에너지만 보면 된다. 너무 쉽잖아. 문제와 답은 쌍이다. 원인과 결과는 쌍이다. 문제와 답 사이에 과정이 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의사결정이 있다. 구조론은 문제를 질로 놓고 답을 량으로 놓고 그사이 풀이과정으로 포지션 셋을 추가한다. 중간에 자리 잡은 것들은 밸런스의 성립과 붕괴과정이다.


    밸런스가 만들어지면 입자고, 밸런스가 작동하면 힘이고, 붕괴의 진행은 운동이며, 그 결과로 에너지 이탈은 량이고, 최초의 에너지 유도는 질이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밸런스 성립과 밸런스 작동과 밸런스 붕괴가 있으며 그 앞뒤에 에너지의 유도와 에너지의 처리가 있다. 모든 것은 에너지의 밸런스 하나로 설명된다.


    질이 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질은 문제요, 원인이요, 최초단계다. 시작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다. 시작은 끝이 아닌 것이 시작이다. 시작과 끝 사이에 중간과정이 있다. 그 과정은 밸런스의 성립과 작동과 붕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질은 닫힌계를 지정하여 외부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입자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천칭저울처럼 축과 대칭의 구조를 만든다. 힘은 천칭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운동은 계속 기울어지는데 한참 기울었는데도 더 기울 수 있는 것은 바퀴다. 사람이 팔을 움직이는 것이 저울을 움직이는 것이다. 팔을 움직여 가는 방향을 정하는게 힘이요 팔을 움직여 가는게 운동이다.


    량은 그 과정에서 이탈하여 멈추게 되는 것인데 멈추지 않고 계속 운동하는 것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다. 그러나 언젠가는 멈추게 된다. 지구도 해마다 태양과 멀어지고 있다. 일 년에 15센티씩 태양과 멀어지니 표가 안 나지만 말이다. 15센티를 수억 년 모으면 꽤 멀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에너지 처리는 그러하다.


    이 쉬운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내용을 보지 말고 형식을 보라고 백번쯤 말해도 악착같이 내용만 보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그냥 앞뒤의 순서를 정한 것이며 질과 량은 동시에 성립하므로 모를 수가 없다. 질을 모른다면 량도 몰라야 한다. 질량이라는 말도 있다. 량은 측정되므로 량이고 질은 측정이 안 되니 질이다. 
   

    풀어져 있으니까 측정되고 꼬여 있으니까 측정이 안 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정해놓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량의 질이 운동이고, 운동의 질이 힘이고, 힘의 질이 입자고, 입자의 질이 질이다. 꼬임과 풀림이다. 입자가 둘 꼬여있으면 질이다. 남자와 여자가 꼬여서 가정을 이루면 질을 이룬다. 에너지는 꼬인 상태다.


    토대의 공유로 설명하지만 걍 꼬인 거다. 에너지 작용은 꼬인 것이 풀리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니 엔트로피다. 문제의 답은 푸는 것이다. '답을 풀었냐'고 말하지 '답을 꼬았냐'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왜 답을 꼬았냐고 하지 않고 풀었냐고 할까? 묻는 말 자체가 꼬는 것이다. 물음표?만 봐도 꼬여 있잖아. 


    고리 ?가 있어서 걸고 자빠진다. 물을 때는 까?를 쓰는데 쿠오바디스나 퀘스천이나 Q가 까다. 영어의 의문사는 모두 H나 WH로 시작되는데 원래는 C다. 라틴어 Q다. 목에 가시가 캑 걸리는 소리다. 꼬이고 걸렸다. 풀어야 한다. 입자가 꼬이면 질이고 풀리면 량이며 그 과정은 밸런스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자꾸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의리 없는 배신자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그냥 포지션이고 순서라고. 얽히면 질, 풀려고 잡으면 입자, 풀려고 당기면 힘, 풀면 운동, 풀리면 량이라고. 질이 뭐냐고 물으면 안 된다. 량이 아니면 바로 질이다. 운동도 량에 대해 질이고 힘도 운동에 대해서는 질이 된다.


    무조건 순서가 앞에 있으면 질이다. 머리가 앞에 가므로 질이다. 꼬리는 량이다. 진보가 앞에 가므로 질이다. 보수가 량이다. 전기차라면 배터리에서 에너지가 작동하므로 배터리가 질이다. 모터에서 사건이 시작된다고 우기는 자는 개념이 없는 자다. 보통은 입자가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입자에 홀린다.


    눈에 띄는 형태에 홀리지 말고 에너지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 이건 절대다. 순서 1번은 질이다. 반대로 뒤에 있으면 량이다. 입자는 질량, 힘은 입자량, 운동은 힘량, 량은 운동량이다. 그냥 순서이므로 공부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 외우면 된다. 저울을 작동시키는 순서와도 정확히 같다. 천칭과 물체가 결합한다.


    결합하면 질이다. 결합했다는 것은 꼬였다는 말이다. 풀어야 한다. 물체가 올려지면 축이 움직인다. 사람과 상관없이 저울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니 독립하여 입자다. 저울이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면 지구 중력과 교섭하니 힘, 추를 움직여 계량하면 변화하니 운동, 바늘의 눈금 정보가 인간 눈에 침투하니 량이다. 


    저울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마찬가지다.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자. 연필을 잡아야 한다. 결합해야 한다. 에너지가 꼬여야 한다. 질이다. 연필에 힘을 가하면 연필 자체의 내적인 밸런스가 작동하니 입자다. 연필이 종이와 교섭하니 힘이다. 글씨가 움직여가니 운동이요 그 씌어진 글자가 나타나 눈에 보이니 량이다. 


    어떤 것이든 에너지가 드나드는 출입이 있으면 모두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있다. 질은 입력이요 량은 출력이며 그 과정의 에너지 처리는 입자 힘 운동이다. 전기를 입력하면 전구에서 입자, 불이 켜지면 힘, 빛이 쏟아져 나오면 운동, 빛이 사람 눈에 도달하면 량이다. 일의 시작과 끝 사이에 의사결정을 추가한 거다.


    어려울래야 어려울 수가 없다. 질과 량은 쌍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면 그게 량이고 량이 아닌 것이 질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보이는 결과가 량이고 결과가 아닌 것이 원인이며 원인이 네 가지다. 결과, 원인,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의 원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다. 시간과 장소와 주체를 특정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에너지와 주체와 장소와 시간과 결과로 존재하며 이 중에 하나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이 중에 하나만 알아내면 원인을 알았다고 착각한다. 태풍이 왜 오지? 여름이니까 태풍이 오지 겨울이면 태풍이 오겠냐? 아 그렇구나. 여름이니까 태풍이 오는구나. 알았다. 태풍이 오는 이유는 여름이기 때문이었어. 


    이런 식이다. 원인을 구성하는 에너지, 주체, 공간, 시간 중의 시간만 알아놓고 원인을 다 알아낸 듯이 의기양양해 한다. 인간들 수준이 이 정도다. 사건을 구성하는 에너지, 주체, 공간, 시간, 결과를 다 알아야 원인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주체, 공간, 시간, 결과를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라 하는 건 구조론 용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그 이상은 없다. 꼬임과 풀림 곧 에너지를 들여와서 계 내부에서 처리한다는 사건의 본질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에너지로 시작된다. 에너지를 들여오는 루트를 확보하면 사업을 하든 정당활동을 하든 뭐를 하든 성공된 것이다. 거기서 완결된다. 질을 모른다는 말은 량도 모른다는 말이다.


    에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밸런스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아는 게 하나라도 있어야 그걸 고리로 설명하지 참. 사건은 각 포지션들이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고리가 ?이며 고리는 꼬여있는 것이며 꼬임을 푸는 것이 답을 찾는 것이며 그 절차는 밸런스를 작동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표현을 쓰지만 같은 말이다. 원인과 결과나 시작과 끝이나 앞과 뒤나 문제와 답이나 꼬임과 풀림이나 질과 량이나 에너지와 데이터나 전부 같은 말이다. 시작과 끝은 아는데 질은 모르겠다는 말은 시작도 모른다는 의미다. 문제와 답이 뭔지는 아는데 질은 모른다는 말은 사실 문제가 뭔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에너지는 오직 꼬인 상태와 풀린 상태가 있을 뿐이며 그 풀리는 절차를 해명한 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며 저절로 풀리는 수는 있어도 저절로 꼬이는 수는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며 곧 우주의 근본질서가 된다. 질은 에너지이며 시작이며 원인이며 꼬임이며 문제이며 앞이며 두 개의 방향성이 겹쳐진 것이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입자를 찾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입자는 보이기 때문이다. 자석은 보여도 자기장은 보이지 않는다. 태풍은 보여도 기압골은 보이지 않는다. 모터는 보여도 배터리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잘 보면 배터리가 잘 보인다. 기상도를 보면 기압골도 보이고 쇳가루를 뿌리면 자기장도 눈에 잘 보인다.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보인다. 볼 줄 모르므로 못 보는 것이다. 개인은 보이지만 사회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사회도 보인다. 대통령은 보이는데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국민도 보인다. 차는 보이는데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운전기사도 잘 보인다. 앞을 봐야 보인다. 앞을 살펴라.

     

    원인과 결과는 관념적 한자어다. 관념어를 쓰므로 모르는 것이다. 꼬임과 풀림으로 해야 한다. 쉬운 우리말 놔두고 어려운 한자말 쓰니까 모르는 것이다. 원인이라고 하면 막연하지만 꼬임이라고 하면 어디가 꼬였는지 언제 꼬였는지 누가 꼬였는지 연애해 보면 알 수 있다. 다 꼬드김에 넘어가는 절차와 과정이 있는 거다.


    보이스 피싱에 꼬여도 그렇고 남자한테 꼬여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 누구 때문에 꼬이는 거지 그냥 꼬이냐? 회사에 취직했다면 1) 돈에 꼬이고 2) 대기업 회사에 꼬이고 3) 직책 팀장자리에 꼬이고 4) 실무 판매일에 꼬이는 거다. 가장 크게 꼬인 것은 결국 돈에 꼬인 것이다. 돈이 인간을 꼬드기므로 꼬이는 게 질이다.


    cause와 effect도 그렇다. cause는 꾸짖는다는 뜻이고 effect는 업히다는 뜻인데 까?를 반복하는 것 왜 그랬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하고 반복하여 까?를 시전하는 것이 꾸짖는 거다. 까+짖다(반복하다)가 꾸짖다이다. 엄마가 아기한테 너 왜 그랬니? 왜 그랬니? 왜 그랬니? 하고 반복하면 안 좋다.


    effect는 업히다인데 량은 침투한다고 했지만 량은 업힌다고 해도 된다. 페인트를 칠하면 덧입히는 것인데 업다나 입다나 어원은 같다. 아기를 업는 것이나 옷을 입는 것이나 드레스 업이나 같다. 업 하는 것이 입히는 것이요 결과다. 꼬인 것을 풀면 풀어 해쳐진 것이 어딘가에 달라붙는데 그게 업히고 입히는 것이다. 


    cause는 꾸짖다이고 꾸짖다는 까?+짖다이고 짖다는 반복한다인데 까?를 반복해야 한다. 원인과 그 원인의 원인과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과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effect는 입혀진 것이며 원인은 시간이고, 원인원인은 장소이고, 원인원인원인은 주체이고, 원인원인원인원인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계는 두 가지 방향성이 꼬여 있는 것이다. 꼬임이 풀리는 절차를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설명하는데 입자는 천칭저울 형태로 꼬여 있는 것이고 힘은 천칭의 두 접시가 자리를 바꾸는 것이고 운동은 하나가 튕겨 나가는 것이며 량은 그렇게 튕겨 나온 것이 어딘가에 업혀 effect 된다. 


    김연아가 피겨를 하더라도 크게 원을 그리며 속도를 올려 에너지를 얻은 다음 회전을 하며 에너지 방향을 바꿔 몸을 꼰다. 상체와 하체를 틀어 몸을 꼬아서 천칭저울을 만들었다가 그 저울을 풀어버린다. 그 저울을 만들고 풀어내는 역동적 과정을 보고 심판들이 점수를 주는 것이다. 오승환이 공을 던져도 마찬가지다. 


    와인드업을 해서 몸을 꼰다. 천칭저울을 만든다. 그 저울을 풀면서 공을 패대기치는 것이다. 공에 에너지가 입혀진다. 공이 에너지를 업고 간다. effect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몸을 꼬아서 두 개의 방향을 만든 다음 두 방향이 자리바꿈을 하는데 그 과정에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몰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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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8: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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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론의 이해


    구조론은 관계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나의 사건은 다섯 개의 연결로 이루어진다. 그 연결의 라인이 하나씩 끊어지면서 사건은 진행된다. 그런데 왜 다섯이어야 하는가? 구조론은 자체적인 의사결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건을 이해하는 개념은 원인과 결과다. 관측자가 있다.


    사건 내부의 자체적인 단서는? 그게 구조론이다. 쉽게 말하면 관측자를 사건 내부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원인, 원인을 보는 자, 결과, 결과를 보는 자, 보이는 자와 보는 자의 관계까지 다섯이다. 당구공은 어디로 굴러갈까? 그것은 당구를 치는 사람이 결정한다. 


    자체의 내재한 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이 일어난다면? 핵폭발이 일어나는 이유는? 핵폭탄 자신이 결정한다. 내부의 환경이 임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씨앗은 언제 발아하는가? 봄이 되어야 싹이 튼다. 달걀은 언제 부화하는가? 그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 알람이 울리는 이유는?


    그것은 내재적인 원인이 있다. 외부에서 타격했더라도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내부구조가 있기 때문에 내부질서는 반드시 있다. 축구공이 골이 되는가 노골이 되는가는 메시가 결정하지만 공에 펑크가 났다면? 공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간다면? 그 부분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그 내재하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다섯인 이유는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범위, 변화의 시작점, 공간의 변화, 시간의 진행, 변화의 종결까지 내부적인 결정요소는 다섯이다. 모든 변화는 둘 이상의 자리바꿈이기 때문에 다섯이 되는 것이다. 


    어떤 하나가 갑자기 변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질량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모든 변화가 자리바꿈일 뿐 즉 관측자에게 다르게 보일 뿐, 어떤 시공간적 범위 안에서의 변화일 뿐 에너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겨나거나 사라진 것이 없이 변화한다면?


    생겨나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졌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의 라인이 연결되거나 혹은 끊어진 것이다. 커플이 깨졌다고 치자.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있다. 단 두 사람의 시선의 방향이 바뀌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바라보는 눈의 각도만 틀어진 것이다. 질량보존을 충족시키려면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공간적 자리바꿈이어야 한다. 혼자서는 자리를 바꿀 수 없다. 하나가 변했다면 실제로는 둘이 변한 것이므로 A의 변화 원인과 결과, B의 변화 원인과 결과, 둘이 공유하는 부분까지 다섯이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이 하나의 원리를 따른다. 즉 변화가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해 관계의 변화, 라인의 변화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둘이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고 점, 선, 각, 체, 계로 연결될 때 존재 자체의 논리를 따라 사건이 일어난다.  


    점과, 점의 점인 선, 선의 선인 각, 각의 각인 체, 체의 체인 계로 연결될 때 자체적으로 사건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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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야 한다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존재가, 자연이, 언어가, 인간의 뇌구조가 모두 깨달음의 복제구조, 연쇄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하나를 바꾸면 전체를 다 바꾸어...

구조론의 기원 [6]

구조론의 기원 구조론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쉽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쪽을 보고 있으므로 어려운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

언어의 이해 [3]

언어에는 문법이 있다. 언어에는 방향이 있다. 언어에는 대칭이 있다. 언어에는 담론이 있다.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으로 구성된다. 언어에는 명제가 있다. 명제는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언어에는 문장이 있다. 문장은 주어와 ...

역사의 오류 [1]

역사를 구조로 봐야 한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조금씩 잘살게 되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다지 의미가 없고 초반에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크게 잘살게 되려면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 이동수단 ...

진화의 구조 [3]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 진화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도 진화하고 우주도 진화하고 물질도 진화한다. 그냥 제 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외력이 작용한다. ...

사건철학 [7]

강자의 철학으로 갈아타라 세상을 물질적 존재가 아닌 에너지적 사건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물질은 고유한 속성이 있고 인간은 그 물질들 중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은 선택하는 자가 ...

인간의 이해 [13]

대중의 권력의지에 해답이 있다. 인간은 에너지가 고양될 때 권력의지를 발동하며 그럴 때 인간은 공부를 한다. 남자는 운동하고 여자는 화장한다. 에너지가 약해질 때 편한 길을 가려고 한다. 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한다. ...

신의 입장 [5]

행복이니 쾌락이니 자유니 사랑이니 성공이니 하지만 다 개떡같은 소리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걸로 어린아이를 유혹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 가슴을 뛰게 할 수는 없다. 눈이 번쩍 뜨이는 진짜는 하나 뿐이다. 생각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