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오판하게 되는 이유는 확률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로또복권의 당첨확률을 2분의 1로 착각한다. 당첨되거나 혹은 당첨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식이다. 실제 당첨확률은 800만 분의 1이다. 아니다. 100퍼센트다. 로또 800만 장 사면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된다. 모든 경우의 수를 사는 것이다. 구조론을 잘 알 필요는 없다. 단지 옆 사람보다 조금 더 알면 된다. 승부는 언제나 한 끗 차이로 결정되는 법이다. 호랑이가 쫓아온다. 옆 사람보다 반걸음만 앞서도 살 수 있다. 여러분이 구조론의 대가는 못되더라도 다른 사람이 모르는 지식을 하나 더 안다는 게 그게 어디냐 말이다. 위급할 때 호랑이 아가리에서 탈출할 수 있다. 왜인가? 다른 지식은 경쟁이 붙어 있어서 도움이 안 된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다른 사람도 위급하면 제갈량의 세 번째 주머니를 열어본다. 친구에게 물어보고, 부하에게 알아오게 하고, 구글검색 해본다. 그러나 누구도 구조론에서 답을 찾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알아온 답을 여러분이 중복하여 알아왔다 해서 그게 도움이 되겠는가? 남들은 모르고 오직 당신만 알고 있는 지식 하나가 위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세이버매트릭스라는 건 확률이잖아요? 그래서 믿을 수가 없어요.” 안경현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나무위키] 다행히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바보들이 매우 많다. 세이버매트릭스는 확률이라서 확실히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안경현은 반대로 확률이라서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은 확률을 못 믿는 게 아니고 확률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확률은 원래 헷갈린다.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확률을 믿고 써먹으려면 특별한 기술을 배워야 한다. 로또 확률은 800만 분의 1이라서 믿을 수 없다고. 바보 아냐? 800만 장의 로또를 사면 확실히 된다니깐. 확률은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 한 명은 호랑이에게 물려가게 되어 있다. 호랑이 아가리에는 안경현이 먼저 들어간다. 문제는 이런 바보들이 우리 주변에 흔하다는 거다. 그래서 여러분은 구조론을 조금만 알아둬도 돈을 벌 수 있다. 머니볼의 빌리빈이나 넥센 구단주 이장석이 그러하다. 그들은 프로야구판의 많은 바보 덕에 쉽게 챙겼다. 사실이지 평생 운동만 해온 프로야구 선수나 감독들이 뭐를 알겠냐고? 야구했지 공부했냐? 바보들만 모인 곳에서 용 되기 쉽다. 조금만 공부하면 단번에 뜬다. SK 염경엽 단장이 그러하다. 1할 타자가 공부 좀 하더니 감독 거쳐서 단장까지 됐다. 왜? 아무도 공부를 안 하니까 그렇지. 그런 지점이 있다. 염경엽이나 이장석이나 빌리빈이 학계나 관계로 진출했다면 그 능력으로 성공할 수 없다. 프로야구판은 공부를 안 하는 사람들만 모여있기에 조금 공부한 사람이 거저먹은 것이다. 잘 살펴보면 사회의 허술한 구멍들이 있다. 다른 곳은 경쟁이 치열한데 의외로 경쟁이 없는 사회의 약한 고리가 있다. 그 지점을 포착하고 슬그머니 끼어들어 낼름 삼키면 된다. 그 지점은 뭔가 새로운 것이 부단히 탄생하는 곳이다. 2천 년대 초반의 벤처업계가 그랬다. PC통신 시절에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알고 보니 죄다 벤처업계에 가 있더라. 70년대는 재벌이 그랬다.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재벌을 만들었다. 왜 그들은 재벌을 했을까?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한 우물을 파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고 삼성이고 간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이것저것 시도해서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보로 문어발을 했다. 거저먹기였다. 단지 뇌물만 바치면 재벌이 될 수 있었다. 김우중 말이다. 기술 없이 로비 실력 하나 믿고 뛰어들었기 때문에 거의 망했다. 현대 삼성은 그나마 기술을 익혀 살았다. 무수히 많은 재벌이 개판 치다가 망했다. 한화가 프로야구 하듯이 개판 친 것이다. 역대 한화 감독과 코치가 이름값으로는 밀리지 않았다. 왜 이런 사람들로만 죄다 뽑았을까? 책임을 지지 않을 속셈 때문이다. 김응룡이나 김인식이나 김성근이나 누구나 인정하는 명장이다. 이들이 잘못하면 이 사람들 잘못이지 이들을 스카웃한 사람의 잘못은 아닌 거다. 우리나라 재벌 수준이 그렇다. 책임을 안 질 비겁한 생각으로 대마불사를 외치며 문어발을 한다. 안 죽을 생각만 하니 꼭 죽는다. 이런 수준이니 맨땅에 헤딩하기로 뛰어든 이장석에게도 발리는 것이다. 구조론을 알면 여러분도 이장석 정도는 할 수 있다. 이장석도 빌리빈도 염경엽도 우승은 못 했다. 구조론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나 써먹는 것이다. 구조론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다. 우승하려면 구조론만으로 안 되고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못해도 구조론이 위기 상황에서 여러분을 구해줄 제갈량의 세 번째 주머니는 된다. 제갈량도 천하통일은 못했다. 지혜만 가지고는 힘들고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 그러나 지혜만으로도 최악은 면할 수 있다. 동일한 조건에서 나란히 달리는 옆 사람은 제쳐낸다. 그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특히 허술한 구멍이 많은 곳이 정치판이다. 정치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이 어수선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신문도 챙겨보지 않는 필자가 정치칼럼으로 아는 척하는 것이 그 구멍 덕이다. 정치는 항상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 룰바꾸기 게임이 정치다. 룰을 어기는 사람이 이긴다. 그래서 정치판이 특히 구멍이다. 노무현이나 트럼프나 대중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반칙을 저질러 성공했다. 이 바닥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렸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 이인제가 보여준 그것 말이다. 의원들과도 짬짜미하고, 조중동과도 짬짜미하고, 야당과도 몰래 내통하는 게 암묵적으로 합의된 이 바닥의 규칙이다. 그래서 설렁탕을 열심히 사준다. 노무현이 깼다. 특권세력과의 짬짜미를 깨자 국민과의 짬짜미가 만들어졌다. 그들 입장에서는 반칙이다. 백주대낮에 대놓고 국민과 짬짜미를 하기 있냐? 이런 식이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언론과 짬짜미를 했다고 우겼다. 안철수와 몰래 뒷배를 맞춘 한경오는 단지 짬짜미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재인을 깠다. 낡은 규칙을 깨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정치다. 규칙을 어겨본 적이 없는 모범생 안철수는 깨지는 거다. 그래서 구멍이다. 사람들이 확률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확률이 30퍼센트나 혹은 40퍼센트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장치들에서고 자연에는 거의 백 퍼센트 아니면 0퍼센트다. 적당한 확률은 없다. 자연에는 오직 일치와 불일치뿐이다. 왜? 자연은 기본적으로 뭐가 많다. 우주의 곡률은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다. 플러스면 우주는 공모양이 되어 수축하다가 짜부라진다. 마이너스면 도너츠모양이 되어 흩어져서 얼어붙는다. 관측결과 이도 저도 아닌 중간값으로 관측되어 과학자들을 당황케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해 간다. 관측기술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보통은 이거 아니면 저거로 된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고 치자. 이 바이러스를 제거할 확률은? 백 퍼센트다. 단, 시간은 걸린다. 초반에는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지만, 인체의 면역기능이 어떻게든 거기에 맞대응을 한다. 왜?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으므로 일부는 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염속도에 대응한다. 면역기능이 어떻게든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거다. 독감이 유행해서 수백만 명씩 죽던 시절도 있었으나 어떻게든 인류는 이 문제를 극복했다.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든 맞대응을 하므로 시간문제일 뿐 결국 백 퍼센트 퇴치가 된다. 이것이 확률의 세계다. 그러므로 자연이 붕괴되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슈퍼바이러스의 등장이 없는 것이다. 사실 위기는 있었다. 여러 차례 생물대멸종이 일어난 거다. 그러나 완전멸망은 없었다. 맞대응이라는 게 상당히 절묘한 거다. 처음에는 후달리지만 어떻게든 극복해낸다. 상대가 강하면 이쪽도 강해진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성범죄를 당했다. 가해자 잘못일까 피해자 잘못일까? 당연히 가해자 잘못이다. 그런데 왜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이 있을까? 안경현병에 걸렸다. 범죄시간은 새벽 3시고 범죄장소는 허름한 창고다. 새벽 3시에 허름한 창고에 여자가 왜 갔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사건의 원인은 새벽 세 시라는 시간과 허름한 창고라는 장소에 있다고 믿는다. 왜 감기에 걸렸지? 환자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접촉한 장소와 시간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보통사람의 보통판단은 보통 틀린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제시한다. 원인 다섯에 결과도 다섯이다. 보통 세 번째 힘과 네 번째 운동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힘은 장소이고 운동은 시간이다. 그 장소에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성범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거다. 질이나 입자는 원인으로 치지 않는다. 왜? 원래 상부구조는 포착되지 않는다. 원인을 물으면 일단 시간과 장소를 생각한다. 왜 상부구조를 못 볼까? 집단을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좁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을 안 배웠으니 확률을 모르는 것이다. 확률은 반드시 맞대응해야 한다. 맞대응해야 상부구조가 보인다. 노조가 회사에 맞서야 상부구조인 조중동이 보인다. 채동욱 자른 국정원과 조중동과 박근혜와 새누리의 팀플레이가 보인다. 이런 거다. 독일군은 기술에 걸었고, 소련군은 물량에 걸었고, 일본군은 정신력에 걸었다. 승리는 소련의 것이었다. 정신력은 초반 기습에만 먹힌다. 미군이 맞대응하자 바로 깨졌다. 독일군의 기술력은 일정한 성과를 냈다. 최종적으로는 러시아군의 물량이 이겼다. 독일의 티거 전차는 소련군 전차를 압도했지만 소련은 T34를 수만 대나 생산했다. 기술에 걸 것인가 물량에 걸 것인가? 질이 양을 이긴다. 당연히 독일의 기술이 소련의 물량을 이겨야 맞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다. 백 년 동안 계속 영국이 이겼다. 영국은 귀족이 약했고 헨리 5세의 리더십이 있었지만, 프랑스는 귀족이 강했다. 귀족들은 잘나서 통제가 안 된다. 말을 탄 귀족이 농노신분인 영국 궁병을 짓밟아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프랑스 귀족들은 무리한 돌격을 하다가 진창에 빠졌는데도 체면 때문에 말머리를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무장이 빈약한 영국군 궁병을 밟아버리려고 했지만, 영국 궁병들이 도끼를 들고 저항하는 바람에 되레 학살되었다. 귀족과 농노가 싸우면 당연히 귀족이 이겨야 하는데 왜 프랑스군은 패했을까? 전술적인 지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위하고 유인하고 측면을 때리고 매복하고 기습하고 그런 거 없다. 그런 것은 야비한 짓이며 정정당당하지 않다. 용감한 기사가 어찌 좀도둑과 같은 매복이나 기습을 한다는 말인가? 왕이 시키면 되잖냐고? 귀족이라서 왕의 말도 안 듣는다. 꼴에 귀족이라고 고집은 세다. 잔 다르크가 출현했다. 농민을 군대에 동원한 것이다. 농민들은 다 겁쟁이들인데? 잔 다르크가 신탁을 들었다고 선전했으므로 갑자기 용맹해졌다. 무엇인가? 귀족들은 말을 안 듣지만, 농민은 말을 잘 듣는다. 매복하라면 매복하고 기습하라면 기습하고 하룻밤 사이에 40키로를 행군하라고 하면 행군한다. 보통 농민은 절대 이렇게 안 된다. 농민은 당연히 오합지졸이라서 대오를 유지하지 못하고 도주한다. 그러나 훈련된 농민군이라면? 척계광은 귀족의 자제로 왜구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농민의 자제들을 모아 원앙진을 치자 무적이 되었다. 평양성 전투에서도 활약했다. 구한말에 조선이 양반의 자제들을 유럽에 유학 보냈더니 기술을 배워오지 않았던 것과 같다. 양반이라고 기계를 만지려 들지 않았던 거다. 선교사가 테니스를 치자고 하니 이런 건 하인에게 시키면 되지 하는 식이다. 바빕이론이라는 게 있다. 특히 투수들은 삼진이나 홈런이 아니고 일단 공이 배트에 맞아 그라운드 안에 떨어지면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는 오로지 운에 달렸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통계를 내보니 형편없는 선수를 제외하고 일정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은 바빕이 비슷했다. 그러나 오승환이면 다르다. 오승환은 땅볼을 맞더라도 내야수에 잡힌다. 바빕이론은 대체로 맞지만, 최고의 투수와 최악의 투수에게는 전혀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고와 최악을 알아야 한다. 극한의 법칙이 사용된다. 축구를 하는데 11명인 선수를 12명으로 늘려야 골이 많이 터질까 아니면 9명으로 줄여야 골이 많이 터질까? 수비가 중요한가 공격이 중요한가? 1초 만에 판단하기 어렵다. 구조론은 맞는 답을 제시한다. 야구성적을 하위팀에서 중위팀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은 공격에 올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위팀을 우승권으로 올리려면 투수에 올인해야 한다. 축구는 공격과 수비 중에서 수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축구는 대표팀의 경기만 관객들이 시청하기 때문이다. 11명이 뛰는 경기를 10명으로 줄이면 골이 증가한다. 구조론은 이런 것을 1초 만에 판단하게 한다. 방향성이다. 방향성이란 극한의 법칙을 적용하여 극단적으로 높이거나 늘리는 것이다. 예컨대 소련군의 영토는 무한히 크게 인구도 무한히 많다고 잡는다. 이 규모를 제한하면 무조건 독일군의 기술이 이기게 되어 있고 늘리면 무조건 소련군의 물량이 이기게 되어 있다. 물론 양이 질을 이기는 게 아니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면 다른 질이 등장해 준다. 귀족과 농민이 붙으면 귀족이 이긴다. 독일의 기술과 소련의 물량이 대결하면 당연히 독일군의 기술이 이긴다. 그런데 왜 잔 다르크의 농민군과 그 이전에 백 년 동안 계속 패배한 프랑스 귀족군은 그 반대일까? 일본의 세이난 전쟁도 그러하다. 사무라이와 농민이 붙으면 당연히 사무라이가 이긴다. 그런데 농민이 이겼다. 이런 건 원래 판단하기가 어렵다. 귀족이 농민을 이기는 공식과 농민이 귀족을 이기는 공식이 있다. 보통은 헷갈린다. 중국은 농민을 대거 동원했다가 참패한 역사가 많다. 소수 정예가 낫다. 그러나 결국은 다수가 소수를 이긴다. 단, 훈련된 다수여야 한다. 다수를 훈련하려면 편제를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 개인전술에서 대대전술로 바꾸고 전술적 기동에서 전략적 기동으로 바꿔야 한다. 농민을 동원한 주제에 여전히 매복, 기습, 우회기동, 전술적 후퇴, 야습, 포위, 유인이 없이 그냥 용맹성을 강조하면서 일본군의 반자이어택이나 러시아군의 우라돌격을 감행하면 전멸을 당할 뿐이다.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썼다지만 실제로는 매복, 기습, 우회기동, 전술적 후퇴, 야습, 포위 등을 현란하게 구사했다. 인해전술은 패자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스템을 다 바꾼 다음에 농민을 동원하면 무적이다. 나폴레옹이 그렇게 했다. 소련군도 이차대전 말기에 종심전투를 완성했다. 철저하게 시스템으로 이긴다. 손자병법의 중공군도 마찬가지다. 척계광의 원앙진도 같다. 개인전술이 아니라 소대전술이다. 사무라이가 아무리 칼을 잘 써도 등패수와 낭선수와 장창수의 협공은 못 이긴다. 무조건 이기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를 적용하려면 방향성을 판단해야 한다. 전술과 시스템을 다 바꾸려면 시간과 공간이 넉넉해야 한다. 제한된 전장에서 제한된 시간에 승부를 내려면 소수정예가 이긴다. 이 경우는 장교가 사병을 이기고 귀족이 농민을 이기고 기술이 물량을 이긴다. 선제기습으로 적의 전투의지를 꺾은 다음 신속하게 종결해야 한다. 무엇인가? 확률을 알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은 좁은 전장, 제한된 시간, 단기전이라는 전제를 걸기 때문이다. 우주는 넓고 자연은 크다. 세포 숫자는 많다. 무제한이다. 무한대에 가깝다. 그러므로 물량이 기술을 이기고, 농민이 귀족을 이기고, 시스템이 고수를 이긴다. 천재적인 게르만족 족장이 교범대로 우직하게 싸우는 로마군을 절대로 이겨내지 못한다. 왜? 극한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고수의 대결에는 무조건 수비가 이기므로 숙영지를 튼튼하게 건설하고 방어에 능한 로마군이 이기도록 되어 있다. 신출귀몰한 일본군의 제로센이 둔중한 미군의 와일드캣을 못 이긴 거다. 선회력이 뛰어난 제로센이 재빨리 꼬리를 잡지만 기관포를 쏴도 방호력이 뛰어난 와일드캣을 뚫지 못한다. 안 되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확률이 들쑥날쑥이지만 극단화시켜서 보면 승패는 명확해진다. 나중에는 무조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학살하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항체를 이기지만 나중에는 무조건 항체가 이긴다. 항체가 물량작전을 쓰기 때문이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문재인이 안철수 조지듯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안철수가 저항할수록 더 망하게 된다. 그 방향성을 판단하는 게 구조론이다. 한 번 방향성이 주어지면 거기에 더 많은 물량과 시간과 공간을 투입해서 밀어붙여야 한다. 이때 승부는 확률이라서 알 수 없는 게 아니고 백 대 빵으로 된다. 무조건 이긴다. 단, 방향성이 어중간한 중간지대는 잘 안 들어맞는다. 최고와 최하에는 명백해진다. 그런데 자연과 우주는 항상 최고 아니면 최하고 중간이 없다. 예컨대 여성과 남성이 대결한다고 치자. 여성이 이길 수도 있고 남성이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지구 전체를 다 동원한다면? 지구는 계속 더워지거나 계속 추워지거나 아니면 중간에 딱 걸리거나 셋 중에 하나다. 더워지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지면 더위가 더위를 불러 갈수록 더워진다. 추운 방향이면 겨울에 내린 눈이 여름까지 녹지 않고 햇볕을 반사한다. 갈수록 추워져서 지구는 빙하기가 온다. 중간극에 걸리면 더우면 구름이 생겨 햇볕을 막고 추우면 건조해서 구름이 생기지 않으므로 햇볕이 달려들어 딱 중간온도에 걸린다. 지난 45억 년간 지구역사를 보면 계속 더워지거나 계속 추워지거나 아니면 딱 중간에 걸렸다. 확률대로 안 간다. 무조건 더 추워지거나 무조건 더 더워지거나 무조건 딱 중간이 된다. 여기에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프레임 공격을 하는 이유가 있다. 한 번 프레임에 걸리면 호재가 나와도 주가 폭락, 악재가 나와도 주가 폭락, 뉴스만 나오면 주가 폭락, 뉴스가 없으면 뉴스를 억지로 만들어서 주가 폭락 이렇게 된다. 프레임을 걸므로 절대 확률대로 안 간다. 어중간하게는 안 가고 안철수는 무조건 멸망하는 것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라는 다섯 개의 프레임이 있으므로 이 중에 어느 프레임에 걸리는지 잘 봐야 한다. 방향성을 두어 질의 방향이나 양의 방향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확률과 상관없이 무조건 이기거나 무조건 지게 만들어야 한다. 우주는 무한하고 시간은 영구하므로 자연은 그렇게 간다. 단, 인간은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고 있으므로 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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