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우리는 인종을 흑백황 3종으로 분류하지만, 과학적으로 분류하면 흑인만 99종에 황백은 합쳐서 1 정도 된다. 통상적인 흑백황 인종분류는 단지 날아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나비를 새로 분류하는 식의 오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비는 새가 아니다.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고 악어는 어魚가 아니다. 외견상 피부색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종인 것은 아니다. 전혀다. 족보로 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올바른 전개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방식은 관측자인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이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니 과학적이지 않다. 어떤 대상이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를 떠나서 물物 자체의 고유한 내적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 인간과 물物은 서로 맞서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방향이 틀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물物이 가는 방향을 관측자인 인간이 따라가야 한다.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면 어떨까? 상대방을 거울로 삼아 그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본다. 우리는 타인을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서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어떻다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있다. 상대방을 빌어 자기소개 한다. 그러므로 바보들에게는 안철수의 머저리됨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왜? 안철수를 보지 않고 안철수라는 거울에 자기를 비추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잘 보이는 안철수의 대단한 바보됨이 한경오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취재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는 말한다. ‘나는 저 아름다운 미녀가 좋아.’ 얼핏 미녀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마음 속의 공허를 들키고 있다. '내 마음 속에 공허가 있어서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 미녀를 만난다면 그 구멍이 채워질 것도 같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자기를 개입시킨 상대성이다. 절대성의 언어를 갖추지 않으면 과학하지 못한다. 관측대상인 물物과 관측자인 인간이 마주보는 방향이면 상대성이 작동하므로 이미 틀려버렸다. 물物 자체에 내재하는 고유한 질서를 포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풀린다. 세상은 얽힘과 풀림이다. 얽힘은 문제를 만들고 풀림은 답을 낸다. 풀리는 방향은 정해져 있으니 물物과 마주보는 방향이면 상대성이 작동하여 풀린 만큼 도로 얽혀버린다. 풀리는듯 풀리지 않는다.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쭉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려면 먼저 탑포지션을 얻어야 한다. 마주보면 안 된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는 관점이 아니면 안 된다. 절대성의 시선을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방향성을 판단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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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아름다운 미녀가 좋아.’
동렬님 말씀 중에 '나는 자장면이 좋아' 와 비슷한 말씀이네요.~
동렬님 글을 읽은 후로 사람들의 대부분 대화가
'나는 자장면이 좋아' 이런 화법인게
자꾸 귀에 거슬리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