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동쪽에서 뜬다. 틀렸다. 사실은 지구가 서쪽에서 돈다. 우리는 무심코 해가 지구 안에 있다고 여긴다. 해는 지구 바깥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관측기준 바깥에 있다. 관측자와 관측기준인 지구를 연결시켰을 때 해는 그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심코 관측대상이 관측자인 인간의 관측기준 안에 있다고 여긴다. 관측대상은 관측기준 안에 있어야 한다. 자로 사물을 잰다면 자가 사물보다 커야 한다. 눈으로 코끼리를 관측한다면 인간의 시야가 코끼리보다 넓어야 한다. 코끼리가 인간의 시야보다 크다면 계산을 해야 한다. 골치 아파지는 것이다. 인간은 작은 것을 잘 본다. 콩이나 팥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큰 것은 실측해봐야 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 중에서 암마이산이 높은지 수마이산이 높은지는 늘 헷갈린다.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암마이봉이 6미터 더 높다. 진안읍내에서 남남서쪽을 바라보게 되는데 정남향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수마이산이 진안읍내와 조금 더 가깝다. 사물은 헷갈려도 실측해보면 되는데 사건은 실측할 수 없는 게 문제다. 사건을 실측할 수 있다. 그것이 구조론이다. 우리는 사물의 안을 보고 판단하는 데 익숙해 있을 뿐 사건의 밖을 보고 판단하는 데는 익숙해 있지 않다. 사건은 특히 밖을 바라봐야 한다. 밖에서 에너지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사건의 주인이다. 안과 밖을 가르는 것이 닫힌계다. 닫아걸고 통제하는 데 대한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는 벼락이 하늘에서 땅으로 친다고 믿지만,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는 벼락은 양전하를 띤 입자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사이에 장이 있다. 그 장은 작은 빗방울 입자들의 충돌이 만들어낸 마찰전기다. 이런 것을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태풍은? 기압골은? 장마전선은? 우박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위성사진으로 태풍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떨어지던 빗방울이 상승기류를 타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면서 얼어붙어 우박이 된다. 우리는 하늘에서 비가 땅으로 내리는 줄만 알았지 반대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떨어지던 빗방울이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면서 충돌하여 얼어붙어 골프공만큼 커진다. 충돌하면 커지고 커지면 무거워지고 무거우면 떨어지고 떨어지다가 상승기류를 만나 재차 상승하면서 우박이 점점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현상이 정치판에도 있고, 예술분야에도 있고, 군중심리에도 있고, 남녀 간의 밀당에도 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관계를 봐야 그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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