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을 깨닫기
성(聖)은 산의 정상처럼 스스로를 뾰족하게 날을 세워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속(俗)된 것은 무리들 속에 묻혀 흘러가 버린다. 속된 자는 부름에 응답할 수 없다. 속물은 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고 진리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고 역사의 부름에도 응답할 수 없다. 라디오는 안테나를 가진다. 안테나가 꺾이면 반응하지 않는다. 칼날이 무뎌지면 반응하지 않는다. 전축의 바늘이 무뎌지면 반응하지 않는다. 한 곡의 음악을 들을 때,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할 때 나의 심장은 뛴다. 반응한다. 성(聖)은 그 예리한 날을 휘둘러 잠든 나를 깨운다. 그러나 과연 반응하는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슬픈 음악을 듣고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그대의 성(聖)은 흐려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그 넉넉한 품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대의 성(聖)은 이미 바래어지고 만 것이다. 독재자의 폭력을 보고도 모른체 눈 감는다면, 미치광이 제국의 침략책동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날은 닳아 무뎌진 것이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솟구치게 하는 것, 나로 하여금 반응하게 하는 것, 나를 일깨워 불러내는 것이 성(聖)이다. 당신의 존재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가? 당신은 분노해야 할 때 응당 분노하는가? 당신은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설 수 있는가? 그대 역사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가? 그대 위대한 역사의 순간에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켰는가? 역사가 그 현장으로 그대를 초대하던가? 만약 그리하지 못하였다면 그대의 성(聖)은 황폐해진 것이다. 진리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였다면. 자연의 유혹에 넘어갈 용기와 배짱이 없었다면. 날이 서 있어야 한다. 부름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반응해야 한다. 팔팔해야 한다. 예민해야 한다. 팽팽하게 긴장이 곤두서 있어야 한다. 자동차 엔진은 600도 온도에서 최대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최적화된 지점이 있다. 연인과의 첫 키스처럼 바짝 달아오른 상태. 섬세해야 한다. 예리해야 한다. 치열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성(聖)은 속(俗)에 맞선다. 당신은 속물이 아닌가? 안테나가 없는, 날이 무뎌진, 반응하지 않는, 예민하지도 섬세하지도 않은 속물과는 대화할 수 없다. 반응하지 않는 인간과는 사귈 수 없다. 반응하지 않으므로 사귈 수 없다. 짝을 지을 수도 없고 함께 설 수도 없고 하나될 수도 없고 소통할 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