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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18 vote 0 2015.10.07 (17:44:33)

     

    언어와 자연


    언어는 대칭원리에 의해 작동하므로 추론이 가능하다. 나무의 잎에서 잔가지를 찾고, 잔가지에서 큰가지를 찾고, 큰가지에서 줄기를 찾고, 줄기에서 뿌리를 찾으면 추론은 완성된다. 나무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연결되는가? 대칭에 의해 연결된다. 언어는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형식이다.


    두 사람의 대칭이 있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된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동사다. 동사는 명사와 대칭되고, 명사는 주어와 대칭된다. 여기서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지만 하부구조다. 언어의 상부구조가 있다. 하부구조의 언어는 자신이 관측한 사실을 상대방에게 보고하는 대화의 형식을 가진다.


    문장은 상부구조에서 진술부를 이루고 다시 전제부와 대칭되어 판단이 가능한 형태의 명제를 이루어야 한다. 명제는 다시 조건문과 대칭되어 사건을 복제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담론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어는 말을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의미가 통하는 하부구조의 대화어다.


    이 방법으로는 나무의 가지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 나무의 줄기를 넘어 뿌리까지 도달하려면 거기서 두 단계의 층위를 더 올라가야 한다. 신문기사든 게시판에 쓰는 글이든 말을 받아주는 상대가 없다. 일방적으로 지껄이려면 형식이 요구된다. 첫째는 포장을 해야 하고 다음 상자에 담아야 한다.


    홀에 온 손님에게는 짜장면을 내 오면 그만이다. 그러나 배달해야 한다면 일단 국물이 넘치지 않게 비닐랩으로 포장해야 한다. 다시 철가방에 담아야 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하부구조의 대화는 말을 주고받는 상대와 대칭되지만 상부구조의 담론은 하부구조와 대칭된다. 언어 자체에 대칭이 있다.


    대칭의 고리들이 사슬처름 연결되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연도 이러한 대칭원리에 의해 작동하므로 추론할 수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그것이다. 량의 대칭이 운동을, 운동의 대칭이 힘을, 힘의 대칭이 입자를, 입자의 대칭이 질을 호출한다. 이를 모두 연결하면 전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완전한 언어는 자연의 완전성을 반영한다. 깨달음이다. 완전한 언어에는 두 번의 반전이 있다. 감독이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것과 같다. 첫 번째 반전은 지식인이 잘 쓰는 관점노출 방법이다. 관객이 ‘높다.’고 말하면 지식인은 ‘밑에서 봐서 그렇지,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를걸.’ 하고 약올려 준다.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식인은 이 하나의 수법으로 에헴하지만 불완전하다. 그 판단기준을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동서남북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구가 만들어낸 것이다. 동서남북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사과는 앞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 앞에 있을 뿐 상대방 뒤에 있다. 말다툼이 벌어진다. 이때 지식인이 에헴 하고 나타나서 ‘갑돌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을돌이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우리 모두의 동쪽에 있는 거야.’ 하고 객관화 시켜주면 다들 감탄한다. 그러나 이는 촌놈들을 골려먹은 얕은 지식에 불과하다.


    북극의 북쪽에는 남극이 있다. 동서남북은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낸 것이며 지구가 돌지 않는다면 동쪽도 없고 남쪽도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림이든 그 분야에서 자기류의 북극과 남극을 만들어냈다면 그 사람은 작가로 불릴 자격이 있다. 예술가다.


    다른 사람이 만든 북극과 남극을 빌어 쓰고 있다면 표절이나 모방이다. 작품 안에 그러한 판단기준의 제안이 있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도 이렇듯 물질이 움직여서 연출한 것이다. 무지한 자는 판단기준의 존재를 모르고 자신의 느낌을 내세우나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는 자기소개가 되고 만다.


    아는 자는 객관적 기준을 들이대지만 그 기준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사회는 돈이 있다면 알아주지만 그러한 기준은 결함투성이 한국사회가 만든 것이지 인간 본래의 것은 아니다. 나는 서양인들이 음식재료를 각각의 그릇에 나눠담지 않고 한 접시에 담아서 망쳤다고 본다.


    이 맛과 저 맛을 함부로 섞어버린다면 용납할 수 없다. 맛은 음식재료 안에 숨어 있는데 중국인은 석탄을 세게 때서 전부 밖으로 빼버린다. 결국 소스가 되어버리는데 다양한 재료를 써서 획일적인 맛을 낸다. 조진 것이다. 요리의 맛은 재료 밖으로 삐져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사상이다.


    아무리 좋은 요리라도 내 기준으로 보면 그게 꿀꿀이죽이다. 이런 식으로 고집스럽게 자기 기준을 주장해야 사회적인 발언권을 얻는다. 자연에도 그러한 기준이 있으며 기준을 만들어내는 절차가 질, 입자, 힘이고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이 힘, 운동, 량이다. 각각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이룬다.


    태양열이 바다의 공기를 데우면 공기가 팽창한다. 태양열에 의해 데워진 공기는 질의 상태다. 공기분자의 운동이 커진 상태다. 이때 분자들은 서로 밀어내는 척력을 가진다. 분자들이 충돌하여 밀어내면 풍선처럼 팽창한다. 팽창하면 이동하고 이동하면 진공이 만들어져 공기를 빨아들인다.


    척력이 인력으로 바뀐 것이 힘이다. 이에 가속적인 쏠림이 연출되면 태풍이다. 처음 태양열로 데워진 공기는 무질서하게 움직이지만 태풍이 만들어지면 회전방향은 언제나 같다. 태풍은 적도부근에서 발생하여 북반구로 올라온다. 은하들의 모습도 같다. 하나의 자궁에서 닮은 형제가 나온다.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객관적 판단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식인이 된다. 둘째 그 판단기준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깨달음이다. 진짜는 두 번 관객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 두 번 역설이 작동하면 담론은 완성된다. 이야기는 완결된다. 그리고 구조의 무한복제가 시작된다.


   DSC01488.JPG


    그냥 보이는대로 보고 느끼는대로 말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소개가 됩니다. 이때 지식인은 비웃으며 관점의 상대성을 사용하여 되치기를 걸어옵니다. 문제는 지식인은 항상 나중에 말한다는 거죠. 상대방이 제 발로 걸어와 낚일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말하면서도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은? 의도를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포지션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판단기준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 정도쯤 진도를 나가주면 상대방이 지식인 모드로 갈아타고 그 판단기준이 문재인의 아전인수 셀프재신임이 아니냐며 슬슬 시비를 걸어옵니다. 이때 그 판단기준을 바꿔버리면 성공. 낚시공식을 써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5.10.08 (15:14:18)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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