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건은 의사결정을 일으킨다. 의사결정은 대칭을 쓴다. 대칭은 일의성에 의해 성립한다. 일의성은 에너지의 작용을 따른다. 에너지는 일한다. 일은 동動이다. 동은 움직임이다. 세상은 움직임의 마디들로 이루어져 있다. 1회의 에너지 입출력이 사건이다. 세상은 '사건≫의사결정≫대칭≫일의성≫에너지'로 되어 있다. 왜 그것이 그렇게 되는가 하면 원래 그랬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원래의 상태를 이루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원래 동動의 상태로 존재하며, 동은 움직임이며, 에너지가 한 번 움직이는 것이 존재의 단위가 된다. 탈레스는 세상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다만 탈레스는 에너지의 동動적인 속성을 물에 비유한 것이다. 근래의 원자론은 물질이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다만 원자론은 에너지의 단위짓는 성질을 말하려 한 것이다.
◎ 탈레스 - 에너지는 동動적 속성을 가진다. 최근에 주목되는 초끈이론은 세상이 흔들리는 작은 초대칭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다만 초끈이론은 에너지의 의사결정원리인 대칭성 원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동양사상의 뿌리가 되는 주역의 음양론도 참고가 된다. 주역 역시 대칭성 원리를 말하려 한 것이다. 구조론은 에너지의 동動적 속성을 척력으로 설명한다. 세상의 근본은 미는 힘이다. 밀면 꼬인다. 꼬이면 대칭이다. 대칭은 의사결정한다. 의사결정은 척력을 인력으로 바꾼다. 인력은 단위를 만든다. 에너지의 속성인 동動은 자유로운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주로 동그라미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지만 실제로는 둥글게 모여서 무리를 이루는 것과 같다. 동動은 자연히 둥글게 된다. 에너지는 둥글게 움직여 형태를 얻으니 물질이 된다. 겉모습은 둥글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일대일 대칭들의 집합이다. 콤파스로 원을 그려도 실제로는 무수한 일대일의 반복이다. 음양의 대칭이든 초끈의 초대칭이든 의사결정원리다. 원리가 작용하면 단위를 이룬다. 세상은 의사결정단위의 집합이다. 존재의 근본원리는 에너지의 동動적 속성이며 그 전개는 대칭이고 그 결과는 둥근 모양의 단위가 되며 그것의 실체는 사건이다. 거기서 어느 부분에 주목하느냐다. 둥근 모습에 주목하면 원자론과 같은 알갱이 입자를 주장하게 된다. 에너지의 자유로운 속성에 주목하면 탈레스의 물 일원론이 된다. 에너지의 의사결정과정에 주목하면 음양론이나 초끈이론과 같은 대칭론이 된다. 그렇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동적이면서 대칭적이면서 입자적이다.
◎ 의사결정원리≫의사결정과정≫의사결정단위 존재의 근본은 사건이며, 사건은 에너지에 의해 촉발되고, 에너지는 물과 같이 일원적이면서, 그것이 전개할 때는 음양과 같이 대칭적이면서, 우리가 관측할 때는 쪼개지지 않는 원자처럼 입자적이다. 사건은 세 가지 다른 모습을 가진다. 그런데 이는 사건의 시작≫결정≫종결에 해당된다. 어떤 사건이든 처음에는 무정부적이고 자유롭고 혼란스럽다. 민주주의와 같이 어수선하다. 그러나 점차 여야로 나눠져 양극화 된다. 무질서하게 난립하던 정당들이 양당체제로 재편된다. 그리고 최후에는 하나의 집권당이 독주하게 된다. 인생도 그러하고 사업도 그러하고 뭐든 그러하다. 우리는 이것이 옳다거니 저것이 옳다거니 하고 다툴 뿐 그것이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모른다. 처음 만날 때는 분위기가 자유로워야 하고, 다음 짝지을 때는 서로 영역을 나누고 존중해어야 한다. 다음 실행할 때는 어느 한 쪽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교대하는 것이다.
세상은 ‘에너지≫일의성≫대칭성≫의사결정≫사건’이 전개하여 단위를 이루니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에너지는 동적이고, 일의성은 척력이며, 대칭성은 인력으로 바꾸고, 의사결정은 대칭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사건은 무언가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마침내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일부의 모습만을 보고 소립자니 초끈이니 하며 양자역학이니 하며 허둥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