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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07 vote 0 2012.12.08 (13:12:48)

 

    깨달음의 종류 같은건 없다. 깨달음의 여러 스타일 같은건 없다. 시의 형식은 하나 밖에 없고, 소설의 형식 역시 하나 뿐이며, 그림의 형식 역시 하나 밖에 없고, 음악의 형식 역시 하나 뿐이다.

 

    어떤 형식이 나오면 그걸 비틀어 여러 가지 개성있는 모양들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그딴건 찌질한 거고 안 쳐준다. 본질과 무관하다. 모든 문학 예술은 긴장을 유발하여 카타르시스를 주는 점에서 같다.

 

    이런 말 듣고 시에도 정형시, 자유시 있고 시조에도 엇시조, 사설시조가 있는데 왜 형식이 하나 밖에 없다는 거죠? 하고 반문하는 사람은 말귀가 안 트인 사람이니 필자가 구태여 대답하지 않는다.

 

    지구에 60억이 있으니 60억개의 스타일이 있겠지만 그딴건 논외다. 어떤 문학이든 결국 언어라는 형식을 통해야 한다. 본질에서는 같다. 생장점은 하나 뿐이며 생장점이 없으면 논외가 된다.

 

    진화론이 있되 퇴화론이 없는 것과 같다. 퇴화는 당연히 있지만 그 또한 진화의 일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발’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지는 분이 있다면 피곤한 아저씨다.

 

    한국이 왜 제트기를 만들지 않는지 아는가? 만들 수는 있다. 만들어봤자 쓸모가 없어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는 대충 만들어도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만 비행기는 세계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라디오는 대충 만들어도 되는데 스마트폰은 세계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 생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이 세계최고를 경쟁하고 있고 다른 회사들은 몰락하는 이유가 있다. 현대성의 문제다.

 

    이 시대에 깨달음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석가 시대에는 제자 500비구가 모두 깨달았다. 왜?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석가 밑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시절 다른 학문이 없었으니까. 그 시점에는 불교가 전위에 서 있었고 사회의 모든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던 거다.

 

    육조 혜능의 제자들도 모두 깨달았다. 그때만 해도 유교나 도교 등의 다른 분야들이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이 혼란해서 왕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20여개 이상의 왕조가 동시에 공존하던 때도 있음.) 제왕의 통치를 뒷받침하는 유교가 기를 펴지 못하고, 대신 귀족들을 뒷받침한 불교가 융성했기에 중국 최고의 두뇌들이 거기에 모여 생장점을 형성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왕의 등장이후 귀족문화가 몰락하면서 불교도 몰락했다.

 

    최고가 모이면 현대성이 생기고 현대성을 얻으면 된다. 그런데 2등은 안 쳐준다. 현대성은 생장점이고 생장점은 반드시 나무의 가지 끝에만 있다. 조금 밑에는? 없다. 2등은? 낄 데가 없다.

 

    지금 세계최고는 과학이다. 과학에 인류문명의 생장점이 형성되어 있다. 깨달음이 세계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2등은 안쳐주는 법칙에 의해 누가 뭘 깨닫든 말든 그딴건 안 쳐주는 것이다.

 

    깨달음의 다른 스타일? 없다. 그딴건. 그런 걸로는 도무지 세상과 반응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가 되어 세계시장을 다 먹겠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애시당초 글러버린 것이다. 구조론연구소는 느리게 가도 세계시장을 다 먹고 세계 전체를 다 바꾸는 방향으로 간다. 내년 부터는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 100년이 걸려도 되는길로만 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내가’ 깨달았는냐에 관심이 있을 뿐 ‘깨달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이 깨닫든 말든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안 쳐준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세상을 바꾼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그 하나는 종교와 철학의 탄생이다. 둘은 전쟁인데 전쟁 그 자체보다는 이동기술의 혁신이 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전쟁을 하려면 남의 나라로 가야 하는데 말을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전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셋은 르네상스다. 미학적 기준이 바뀐 것, 인류의 눈높이가 바뀐 것이다. 이 점은 종교와도 관련성이 있다. 네 번째는 산업화다.

 

    ◎ 종교철학≫전쟁이동≫르네상스≫산업화
≫?

 

    여기서 생각의 변화와 기술의 변화가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변하거나 물질이 변할 때 인류문명은 크게 변화했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또 한 번의 변신 기회를 맞았다.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산업화의 결과물이지만 그 인터넷이 작동하는 논리는 정신문화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정신문화 역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정신이 낮은 정신을 지배한다.

 

    인터넷은 무엇이 다른가?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다. 즉 인터넷 시대에는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머리를 잘 수집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수집하려면? 애초에 그릇이 커야 한다. 작은 접시로 출발한 사람은 그 접시를 채울 뿐이고 작은 찻잔으로 출발한 사람은 그 찻잔을 채울 뿐이다. 우주적으로 큰 그릇을 가져온 사람이 다 먹는 시장이다.

 

    가장 큰 그릇은? 돈오다. 점수는 작은 그릇이며 개인의 만족에 도달할 뿐이다. 돈오는 혼자서는 힘을 못 쓴다. 돈오는 만남이며 만남의 네트워크다. 돈오는 모일수록 힘을 쓴다. 떼거리가 많아야 한다.

 

    돈오는 의미를 부정하고 관계를 열어간다. 의미는 그 그릇에 담는 거다. 담을수록 담을 수 없게 된다. 비울수록 연결된다. 돈오는 플래시몹과 같다. 의도나 목적이 있을수록 사람을 모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십알떼가 실패하는 이유는 의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의도와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뻔하다. ‘도를 아십니까?’ 이 아저씨 의도있다. ‘물건 한 번 보실래요?’ 이 아저씨 의도 있다.

 

    삼성에 취업해서 많은 연봉을 받겠다. 이건 의미다. 삼성맨타이틀을 달면 장가를 갈 수 있다. 이건 관계다. 만나서 무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나는가 아니면 그냥 스쳐가는가에 주의해야 한다.

 

    진정한 깨달음은 내가 깨달아서 무엇이 된다는 그런 따위가 아니다. 진정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획득할 때 만날 사람을 만나게 되며 만날 사람이 만나게 될 때 세상이 변한다는 거다.

 

    이는 우리가 21세기를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21세기를 디자인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을 필자는 만나지 않는다. 만나봤자 만나지지 않는다. 얼굴도 기억 못한다.

 

    우리는 세상을 통째로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대가 그 사업에 참여할 것인가이다. 내가 깨달았다느니 하며 ‘내가’를 내세우면 이미 틀려버렸다. 자기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왼쪽에 큰 다이아몬드가 하나 있다. 오른쪽에 작은 은반지가 하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주의가 가는가? 큰 다이아몬드 앞에는 사람이 버글버글하고 작은 은반지 앞에는 아무도 없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작은 은반지를 취해야 한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은반지는 내가 독점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비오는 날 쌍방울 메리야스 팀의 야구경기와 같다.

 

    관중은 50명 뿐이니 경품의 당첨은 따논 당상이다. 냉장고냐 세탁기냐 컬러TV냐만 고민하면 된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비 오는 날 쌍방울 팀의 야구경기를 보러가는 것이다. 가서 경품을 받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라면 곧 죽어도 사람이 버글버글 하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만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반지를 내가 취하느냐가 아니라 그 다이아몬드가 진짜냐다. 하나 뿐인 세계최고의 다이아몬드냐다.

 

    만약 하나 뿐인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라면 그 현장에서 당신은 세계 최고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 현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의미를 버리고 실속을 버리고 진정한 만남을 얻어야 한다.

 

    인터넷은 하나 뿐이다. 자본도 하나 뿐이다. 세계의 모든 자본은 전부 연결되어 하나의 공룡을 이루고 있다. 조폭도 하나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폭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깨달음도 하나 뿐이다.

 

    인류를 바꾸는 계획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종교철학≫전쟁이동≫르네상스≫산업화≫정보화로 전개하는 라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월드컵도 하나 뿐이다. 한국기원도 하나 뿐이다. 부산에 국제기원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걸 누가 쳐주는가이다. 중요한건 하나냐 둘이냐가 아니다. 전부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다는 본질이다. 관계는 애초에 전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상이 있고 다양한 철학이 있고 다양한 종교가 있다. 그런데 과학은 하나 뿐이다. 원래 가짜는 여럿이고 진짜는 하나다. 과학이 하나이므로 그 과학을 운용하는 인간의 정신문화능력을 의미하는 깨달음도 하나인 것이다.

 

   

 

   

 

    ###

 

   

345678.jpg

 

    싸이는 유튜브라는 세계시장 앞에서 얼쩡거렸고 이수만은 작은 시장을 독점하여 짭짤하게 집금했습니다. 어느 길이 옳습니까? 곧 죽어도 큰 길로 가야 합니다. 돈오는 개인의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습니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면 개인의 문제는 그 흐름 안에서 저절로 용해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번뇌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고, 과연 인류의 정신이 지금 한계에 다다른 과학을 제압할 수 있느냐입니다. 내가 깨달아서 어떻게 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인류 전체의 아이디어를 몽땅 수집할 수 있는 큰 그릇을 세팅할 때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2.12.08 (14:04:11)

깨달음이란 단어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큰 걸림돌인것 같습니다.

사고를 제한해버리는 느낌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2.08 (14:18:24)

맞소.

내가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하는 아집을 버리고

진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주목해야 하오.

 

[레벨:10]하나로

2012.12.08 (22:21:56)

깨달음에 그시대나 역사에따른 적합성이 요구됩니까? 아니면 깨달음에는 다른 부수적인 잡다한게 필요없지만 시대가 자기에게 요구되는 필요에따라 주문을 내리는건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2.08 (22:51:08)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것소이다만

깨달음은 관계이고 관계는 상호작용을 하므로

자연히 시대의 호흡이 반영되는 것이오.

 

움직이지 않고 춤 추는 사람은 없고

움직이지 않고 노래하는 사람은 없고

움직이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없고

바늘이 가지 않는 시계는 없고

흐르지 않는 시간은 없고

흐르지 않는 강물은 없고

파도가 없는 바다는 없고

바뀌지 않는 계절은 없고

빛나지 않는 태양은 없고

그것은 존재의 본래 모습이오.

 

예컨대 나는 노래를 부를 줄 안다. 그러나 노래는 하지 않겠다는 가수는 없소.

나는 바둑을 둘 줄 안다. 그런데 바둑은 두지 않겠다는 바둑기사는 없소.

나는 소설을 쓸 줄 안다. 그런데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작가는 없소.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 시대와의 상호작용은 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은 없소.

나는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운전은 하지 않겠다는 운전기사는 없소.

여기서 중요한건 노래든 춤이든 바둑이든 스포츠든 소설이든 운전이든 깨달음이든

반드시 동(動)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오.

그러므로 시대와 역사를 떼놓고 깨달음은 없소.

 

어떤 존재든 동(動)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 존재가 있거든 하나만 대보시오.

우주 안에 단 하나도 없소. 

세상에는 정과 동이 있는게 아니고 동만 있고 정은 없소.

동은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이오.

어떤 것이 관계를 맺는게 아니라 관계 그 자체가 어떤 것이오.

관계없는 그냥 어떤 것은 인간의 망상일 뿐이오.

그딴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소.

있으면 말해보시오.

 

[레벨:10]다원이

2012.12.08 (22:33:43)

책의 목차보다 윗줄은 책 제목. 제목은 표지에 있다. 그 위의 레벨은 "책" 이다 그 위는? .... ... ... ! 이걸 말하는 것.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2.08 (22:43:13)

구조는 사건을 중심으로 판단하오.

눈에 보이는 물체는 진짜가 아니고 관계가 진짜요.

책 위에는 지식이 있지 않겠소?

[레벨:10]다원이

2012.12.08 (22:54:21)

맞습니다.
[레벨:10]다원이

2012.12.08 (22:57:52)

지식은 짜여있는 구조이고 그것은 더 이상 하위 구조로 환원할 수 없는 필연성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2.12.08 (22:59:56)

음악을 예로, 비틀즈를 알고나면 그 다음은 답 나오고 마이클 잭슨을 알고나면 그 다음은 답 나오고 레드 제플린을 알면 록에 대해 답 나오고 노무현을 알면 지금의 정치 답 나오고 아닙니까?알고나면 주악 풀면서 답 나오는 것 그게 구조라고 생각 함.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2.12.09 (03:09:00)

다양하지 않은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일원론이란 말도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당연히 그런것 아닌가요?
우리는 당연한 것들을 발견하는것 아닌가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저 신의 도구를 알아보는 과정 아닌가요?
너무나 당연한 것들 아닌가요?
[레벨:11]큰바위

2012.12.09 (03:57:45)

승자독식

전쟁필수

약육강식

부익부빈익빈은 당연한거.

 

이렇게 보면 존엄은 어디에 들어서야 하는 건지.

 

경쟁이 인류를 발전시켰다. 이건 모든 인류 역사, 교육, 철학, 경제, 정치가 그렇게 부추겨 온 것인데,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할 수 밖에 없다고 그러는데, 거기에 존엄과 공동체가 어떻게 들어서야 하는 건지.......

 

나는 승자독식을 싫어하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좋아하고,

약육강식보다는 약자돌봄

부익부빈익빈을 당연한 것이 아닌 잘못된 구조로 보는데, 깨달음이 오질 않음.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예수, 석가, 카테리 테카키타, 화이트헤드, 데스몬드 투투, 유영모, 김구, 함석헌, 손양원, 틱낫한, 하워드 제어, 토마스 머튼, 소로우 같은 사람들을 좋아함. 국가, 민족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놓고 소통하고 관계했던 사람들이기에.........

 

동렬님의 답을 듣고 싶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2.09 (11:27:29)

이런 질문 흔하다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위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답을 썼는데 그 답을 읽고 질문을 하다니 엉뚱하지 않습니까?

답은 현대성입니다.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예수, 석가, 카테리 테카키타,

화이트헤드, 데스몬드 투투, 유영모, 김구, 함석헌, 손양원, 틱낫한, 하워드 제어, 토마스 머튼, 소로우

들이 어떤 사람인지 다는 모르겠으나 현대성을 획득한 사람은 옳고 봉건성을 획득한 사람은 틀립니다.

율곡은 현대성을 획득했으므로 옳고 퇴계는 봉건성을 고집했으므로 틀립니다.

승자독식을 싫어합니까? 그렇다면 현대성을 획득하십시오.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현대성을 획득하십시오.

약육강식보다는 약자를 돌보기를 원하신다면 당연히 현대성입니다.

부익부빈익빈이 잘못되었다면 역시 답은 현대성입니다.

반장을 학기초에 정해놓고 1년간 맡긴다면 봉건성입니다.

매일 새로 반장을 뽑는다면 그것이 현대성입니다.

재용이처럼 아버지 것을 제것이라고 우기면 봉건성입니다.

아마 본문에서 1등만 가치있고 2등은 의미없다는 식의 표현에 걸리셨나 본데

그런 자구에 얽매인다면 기본적으로 글읽기의 태도가 잘못된 거죠.

구조는 관계, 깨달음은 관계입니다. 관계는 만남이고 그 만남의 시간은

특정됩니다. 하나 밖에 없다는 거죠. 예컨대 친구를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 거죠. 여기서 언제의 시간도 어디서의 장소도

누구의 대상도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거죠. 1+2=3입니다. 답은 하나라는 거죠.

왜 3만 예뻐해? 4와 5는 밉상이라는 거냐 하고 시비하면 곤란하죠.

현대성은 시간이고 시간은 무한하며 그러므로 모두에게 기회가 가는 겁니다.

4는 2+2를 취하면 되고 5는 2+3을 취하면 됩니다. 공평하다는 거죠.

1등을 없애버리고 모두가 꼴등을 하자 이건 답이 아니죠.

모두에게 1등할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합니다.

존엄은 절대적으로 1입니다. 2는 이미 존엄이 없어요.

교회앞을 지나가다 찬송가 소리를 듣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찬양소리를 들은 하느님이 불쾌할 거란 생각은 못할까요?

찬양한다면 낮다는 이야긴데 낮은 사람을 만나면 유쾌할까요?

낮은 사람은 노예입니다. 노예를 통제하는 사람은 마름이구요.

그 사람들 졸지에 하느님을 마름으로 취직시켰다 말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건 찬양이 아닙니다.

북은 북채를 원하고 북채는 북을 원하지만 진짜는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북도 북채도 필요없고 소리가 진짜입니다.

하느님은 친구를 원하며 그 친구는 대등하게 만나야 하고 북채의 북이 되어야 하고

범종의 당목이 되어야 하고 서로 대등하게 1 대 1로 만나야 합니다.

1 대 1로 만날 뿐 1 대 와로 만나지는 않습니다.

100000명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만난다면 만나는게 아닙니다.

그건 만남이 아니라 지나쳐감입니다.

당신은 60억명의 군중 속에서 1/60억의 자격으로 하느님과 만나겠습니까?

아니면 일대일로 대등하게 만나겠습니까?

1초를 만나도 대등하게 만나야 진짜입니다.

하느님이 60억초의 시간을 내면 60억명을 다 만날 수 있습니다.

길어졌으므로 본글로 다시 쓰겠습니다.

 

 

 

 

[레벨:11]큰바위

2012.12.09 (13:09:19)

질, 존엄을  현대성으로 표현하셨군요.

현대성과 봉건성의 대비를 통해서 이 사람들의 입장과 위상이 설명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면 현대성이 뭐냐? 는 질문이 관건인데, 거기에 대해 시간과 기회로 설명을 하셨네요.

제 질문은 아예 왜 등수를 매기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냐는 겁니다.

 

우리는 계속 등수를 매기고 비교하고 싸움을 붙이는 세상 속에서 살아왔는데, (교육도 절대적인 기여를 해왔음)

그래서 북미의 원주민이나 호주의 애보리지날이나 아마존의 원주민들을 경쟁력이 없는 존재들로 보아 왔는데,

지금은 과거 힘 우위의 정복이 잘못된 것으로 보고 다시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요.

 

대등하게 만나야 진짜라는 거.

신을 만날 때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진짜라는 거.

동의 합니다.

 

그러나 신은 사람들을 경쟁시키지 않았고,

모든 사람 하나 하나의 존엄을 인정한다는 거.

그것이 진정한 현대성인데, 그 부분이 해석이 안되어 질문한 겁니다.

 

논리로 따지자면 적자생존, 승자독식, 전쟁필수, 약육강식, 부익부빈익빈 이런 것은 등수를 매기거나 이기고 지는 경쟁 구도를 전제로 한 거라서 현대성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현대성을 시간과 기회의 균등함으로 표현한 것은 좋으나, 경쟁구도를 앞에 놓고 현대성을 대입하는 것이 기본 전제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리.... 또 글올립니다.

 

김동렬 님께서 본글로 글을 다시 쓰신단. 글 기대해봅니다.

 

* 어떤 사람들이 경쟁 없이 사는 데, 그리고 평화주의로 사는데, 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대뜸 하는 말이, 저 사람들이 사는 건 사는게 아냐. 경쟁력이 없어 한마디 하고 말더군요. 말한 사람은 자신의 패러다임과  구조가 완전 뽀롱나는 줄도 모르고...말이죠.

 

* 기회의 균등. 시간의 공평성 - 많이 들어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러냐? 현대성이 그걸 보장해 준다는데, 정말 그러냐는 것이 제 안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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