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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763 vote 0 2012.11.23 (19:42:41)

 

    돈오와 점수의 대립을 수행방법에 관한 의견차 정도로 본다면 큰 착각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대륙과 해양의 대립, 중앙과 지방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립, 율곡과 퇴계의 대립, 대승과 소승의 대립과 궤를 같이하는 본질적인 차이다. 존재의 결이다.

 

    성철과 숭산의 차이도 그러하고 진보당 참여계와 주사파의 대립도 그러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정희 등이 주제에 가끔씩 노무현 장사를 한다는 점이다. 주사파의 핵심은 품성론이다. 품성론을 주장한 자가 퇴계다.

 

    품성론으로 보면 노무현은 수령님 품성의 좋은 샘플이다. 주사파들이 갑자기 노무현을 팔기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사파를 배후조종하는 이석기 등이 자기네의 배후조종을 정당화 하려면, 수령론이 필요하고 수령론을 근거로 댈만한 케이스가 일부 신격화된 노무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판단오류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다. 격리불안이다. 격리된 섬이나 혹은 부분격리된 반도지역에 군주제가 유지된다. 영국과 일본, 이탈리아(교황), 북한(김조)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등 왕족이나 유사왕족이 남아있는 곳은 대개 격리된 지역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왕을 추종한다.

 

    왜? 현대성의 부족 때문이다. 현대성이란 도시의 새로운 소식이다. 신문도 없고 정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현대성을 생산할 곳은 결혼식과 장례식 뿐이다. 현대성이 없으면 존재불안에 시달리므로 명예살인과 같은 야만적인 희생제를 통하여 존재불안을 해소하게 되며, 그 결과는 열녀를 빙자한 자살강요, 삼년상 치르기 등의 자학행동으로 된다.

 

    무엇인가? 도시사람들은 신문을 보므로 스포츠계와 연예계, 문화계 등에서 끝없이 새로운 트렌드가 공급된다. 따라서 존재불안이 약하다. 시골사람들은 모두 왕족을 주시한다. 왕이 교체되거나(김정일 사망) 왕자가 장가를 들거나, 왕비가 아기를 낳거나 해야 시골사람들이 존재불안을 극복하는 뉴스가 된다.

 

    시골사람들은 마을 구성원 모두가 주시할 하나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사나운 눈초리는 눈에 띄는 표지를 향한다. 그들은 소녀가 언제 결혼하는가? 콧대도 높은 권양숙 여사를 잘난척 잘하는 노무현 청년이 꼬셔내기에 성공하는가? 청상과부가 과연 재가를 할 것인가? 열녀가 과연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인가? 춘향이 과연 몽룡을 기다릴 것인가? 몽룡은 과연 돌아올 것인가?

 

    이것을 표지로 삼아 눈이 빠지게 주시하면서, 온갖 참견을 다 하면서 이걸로 뉴스를 생산하려고 한다. 이때 무언의 압박을 받은 희생자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죽음의 길로 뛰어들고 만다. 이때 죽음이 억울한 죽음일수록 공동체는 큰 정신적 상처를 받고, 그 정신적 상처가 클수록 결속력은 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주목열기를 정당화시켜 주는 논리가 퇴계의 품성론이다. 퇴계는 점수로 수행을 해서 양반의 특별한 우월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마을의 시선은 그 희생자인 열녀나 효녀, 과부에게서 족장의 궁정으로 바뀐다. 지체높은 족장의 집에 오늘은 누가 인사를 왔는가? 인사하는 절차는 어떠하였든가 따위로 뉴스를 생산하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때 족장은 가혹하게 아랫사람을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이목이 집중되고 군중의 카타르시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억울할수록 좋다. 만약 인자한 족장이 착하게 다스리면 성난 군중들은 반드시 그 족장을 죽인다.

 

    왜인가? 아이유를 좋아하는 삼촌팬들은 사실 아이유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아이유라는 쿠마리를 통하여 접신하려고 한 것이다. 아이유는 신전의 여제사장이며 신탁을 통해 신을 매개할 뿐이다. 이 부분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사람들은 족장에게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사실이지 족장 따위가 무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족장은 하릴없는 착취자에 불과하다.) 족장이 대리하는 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신은 천둥벼락같아야 한다. 천둥이 날을 가리지 않고 벼락이 때를 가리지 않는다. 시도때없이 덮쳐야 사람들은 긴장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선한 족장에게는 신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으므로 폐기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고립된 정글족의 모의전쟁으로 된다. 매년 한 차례씩 전쟁을 벌여 인구를 줄인다. 그것으로 두려움과 슬픔과 추억을 생산하여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존재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호랑이를 숭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흉포한 호랑이가 사람을 몇 죽여야 ‘우리 산신님 답지.’ 이렇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존재하는 한 점수의 무리들, 보수의 무리들, 퇴계의 무리들, 족장의 무리들, 주사파의 무리들, 숭산의 무리들, 소승의 무리들, 이원론의 무리들은 계속 출몰한다.

 

    지리적인 격리, 정서적인 격리는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정보에서 소외되고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며 그들은 눈이 뒤집어진 채 또다른 희생자를 찾아내어 살육의 파티를 벌인다.

 

    퇴계의 무리들도 그 지점에서 일정부분 밥값을 한다. 시골에서 퇴계의 존재감은 확실히 그러한 살육을 감소시킨다. 점수가 추구하는 수행과 눈이 뒤집혀진 무리가 추구하는 살육은 본질에서 같다.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도 지리적, 심리적으로 격리된 지역에는 필요하니까 존재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전족하는 이유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입술접시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고통은 각성의 효과가 있다. 그들은 깨달음의 희열보다 고통의 각성을 추구한다. 그런데 뻘짓이다. 도시에서 뉴스와 패션과 트렌드와 진보로 그것은 대체된다.

 

    도시에는 존재불안이 없다. 충분히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뉴스다. 그것은 트렌드다. 그것은 패션이다. 그것은 진보다. 그들은 우일신한다. 신을 느끼고, 완전성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고, 진리를 느끼고, 역사를 느낀다. 그들은 떳떳하고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뻘짓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륙에는 왕이 없다.

 

    중국은 대륙이나 죽의 장막이 있고, 소련은 대륙이나 철의 장막이 있고, 미국은 대륙이나 텍사스의 고립이 있다. 대륙이라고 해서 왕에 대한 숭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륙 중에서도 중국, 러시아, 미국과 같은 초국가에는 기이한 수구꼴통이 있다. 미국인 특유의 슈퍼맨 숭배, 외계인 숭배, UFO 집착이 그 예다. 러시아가 푸틴을 짜르처럼 섬기거나 중국 공산당이 영도라 불리우며 특혜를 받는 것이 그렇다. 그들 역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반면 프랑스는 안정되어 있다.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는 없는 상호작용이 1년에 8천만명 가까이 다녀간다는 관광대국 프랑스에는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600만), 러시아도 관광객은 있겠지만 국력으로 보면 그 밀도는 낮다. 반면 한국이 올해 1천만을 돌파한 것은 의미가 있다. 많은 외부인의 방문을 받을수록 심리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점점 꼴통화하는 것은 방문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은 대학생이 격리된 지역의 노인을 방문하게 하고 이것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수구화를 막으려면 우리라도 일본을 좀 관광해줘야 한다.

 

    불교계에서 점수가 주장되는 이유는 불교가 산중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립된 지역에는 새로운 패션보다 의지할 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시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를 따른다. 그러나 인터넷은 넓고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 이 시대에 점수는 필요없다. 우리가 끝없는 강남스타일을, 다리꼬지마를, 새로운 트렌드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계는 시골에 머물렀고 율곡은 도시에 머물렀다. 그 차이다. 도시에는 선비집단이 있고 그들은 끝없이 새로운 뉴스를 생산한다. 선비집단 그 자체가 상부구조 역할을 하고 질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별도로 족장이 필요하지 않다. 존재감을 충분히 생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교 승려들이 돈오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격리,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700공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사회는 유럽으로 치면 일종의 사교계였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루이 14세의 궁정이 상부구조 역할을 했고 19세기에는 파리 귀족들의 사교계가 상부구조 역할을 했다. 당나라 때는 스님들이 일종의 사교계를 만들었다. 선바람이 크게 불었다. 사교계가 해체되자 돈오는 사라졌다.

 

    돈오는 절대적으로 사교계(?)와 같이 가는 것이다. 세력을 이루고 스타일을 만들고 유행을 생산해야 한다.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끝없이 세상을 흔들어 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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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불행은 욕망 때문이 아니고 소외 때문입니다. 흔들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흔들지도 흔들리지도 못하고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욕망이라는 발톱을 세워 세상의 중심으로 끼어들려고 합니다. 숨어서 욕망을 가라앉힐 것이 아니라 나서서 세상을 흔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반응해야 합니다. 민감해야 반응합니다. 스타일을 얻어야 민감해집니다. 이 한 권의 책을 권하는 바입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2.11.23 (23:32:15)

15년 전 프랑스 식민지 였던 튀니지에 있을 때 유료 케이블 방송이 대부분 프랑스 방송이였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막혔다는 느낌 이었고 미국 방송 프로그램이 주는 시원함을 못 느꼈습니다.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과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 다른데 이건 땅의 크기로 봐야 되는 건지 아니면 유럽의 문화와 아메리카의 문화가 다른건 지 궁금합니다.


전 땅의 크기로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1.24 (00:13:06)

영화는 이미지입니다.

가두는 이야기는 무조건 노벨상

떠나는 이야기는 무조건 꽝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는 이미지와 효과에 가두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영화가 스토리를 따라가면 곤란합니다.

그건 떠나는 거지요.

이야기는 원래 떠나는 겁니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집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문학성이 사망합니다.

역으로 가두어야 문학이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영화는 이미지와 효과에 가두어

과학성을 반영하고 이미지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전성기의 홍콩영화와 일부 헐리우드 영화가 이런 기본에 충실합니다.

유럽영화는 문학성에 빠져서 소설 쓰고 있지요.

그런 차이는 상업주의에 따른 시장규모에 원인이 있을 겁니다.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여든 때문도 있고.

이미지와 효과에 대한 과학적 탐구심이 없는 영화는 영화도 뭣도 아닙니다.

 

[레벨:4]AcDc

2012.11.24 (10:18:06)

니뽕은 방사능 때문에 ㅎㅎㅎ
일본인들이 거길 나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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