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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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14026 vote 0 2012.10.21 (17:55:01)


  월남전은 민족해방전쟁인가?

 

  최근에 토론되고 있는 북한문제에 관한 대화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월남전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존재규정적 사고’에 반대합니다. 그런 태도야말로 구조론연구소에서 비판하고 있는 ‘귀납적 사고’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런 식의 사고에는 큰 틀에서의 ‘성격규정하기’ 싸움에서 이기면 작은 부분의 오류는 건들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는 저의가 숨은 전제로 깔려 있습니다. 비겁한 거죠. 그건 정치가의 사술이지 진정성 있는 과학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본질을 보지 않고 짜맞추기식 사고를 하므로 부질없는 종파주의에 빠지는 거죠. 진보통합당의 난맥상처럼. 본질은 국민이고 유권자인데 ‘당원’만 강조하죠. 그 사람들은. 저의가 있는 거에요. 비열하기 짝이 없는.

 

  태평양 오지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서양인의 큰 배가 지나가면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배를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는 거에요. 배가 워낙 크니까 설마 인간이 만든 물건이라고는 생각 못하고 기상현상으로 보는 거죠.

 

  떠다니는 구름에 신경쓰지 않듯이. 서양인의 큰 배가 섬 앞을 지나갔고 많은 사람이 해안가에 있었는데 아무도 발견을 못해요. 작은 카누가 오면 당장 난리가 나겠지요. 작은건 보이는데 큰게 안 보여. (이 이야기의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최근 복수의 사람들에게 전해들음.)

 

  진보통합당의 난맥상.. 작은 당원은 보이는데 큰 국민은 안 보여. 월남전이나 북한 문제에 대한 답답한 아저씨들의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작은 내부사정은 보이는데 세계사의 큰 흐름은 안 보여. 보고도 못 봐. 눈을 감고 다녀.

 

  인류역사의 큰 흐름으로 보지 않고 아랍의 시아파, 수니파 종파분쟁처럼 가면 곤란한 거죠. 미래가 아닌 과거로 논쟁하는 거.

 

  어떤 집단이 더 똑똑하고 더 의식있고 더 선량하다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또 ‘옳다/그르다’는 도덕적 신념으로 역사를 판단해도 안 됩니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역사 자체의 내재한 합법칙성에 맡겨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을 하면서 왜 역사에 대해서는 역사 자체의 내재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역시 비겁한 태도에요. 학자적 양심이 없는 거죠. 북한에는 북한의 논리가 있고 사정이 있다? 천만에. 역사에는 역사의 논리가 있고 사정이 있습니다.

 

  예컨대 오해와 착오, 헛소문에 의해 일어난 농민봉기라 할지라도 그 저류에 농민이 힘을 가질만한 물리적 에너지의 변동이 있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역사가는 농민의 분노와 그 분노를 유발한 착취에 대한 선악구도의 판단을 버리고 농민이 봉기할 수 있었던 에너지의 원천을 탐색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면 그건 옳은 거에요.

 

◎ 틀린 생각 – 양반이 착취했다. 농민이 분노했다. 농민이 옳다.
◎ 바른 생각 – 농민이 힘을 가졌다. 그 힘을 사용했다. 잘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옳은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고 그러한 가능성이 역사의 합법칙성으로부터 유도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부군수가 학정을 해서 농민이 봉기한 것이 아니라, 봉기할 수 있는 역량이 물리적으로 갖춰졌기 때문에 봉기한 겁니다.

 

  구조론의 질이 세팅된 거죠. 양반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안 되던 시대에 그것은 엄청난 성공인 거죠. 역으로 농민봉기가 실패하는 것도 애초에 역량이 안 되기 때문에 대개 내부분열이 일어나서 망하는 겁니다. 대부분 그래요. 내부분열은 역량부족의 증거죠. 그런데 동학은 내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독립운동을 영불의 전쟁중에 여왕을 배반하고 프랑스편에 붙은 매국노들의 반역이라고 본다면 곤란한 거죠. 당시 영국이 바다건너 미국을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게 문제의 본질입니다. 에너지의 문제입니다. 영국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두고 왕실 결혼지참금문제로 본다면 허무한 거죠. 애초에 전쟁의 발단이 어떻게 되었던 상관없는 것입니다.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의사결정의 법칙, 세계사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내재한 합법칙성입니다. 역사 자체의 내재적 접근입니다.

 

  월남전의 경우 여러 방향으로 꼬여 있으므로 이거다 저거다 하고 재단하기 곤란합니다. 에너지의 흐름으로 본다면 제국주의의 종말로 보아야 합니다. 미국이 물리적으로 베트남을 지배할 수 없는 것은 200년전 영국이 미국을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잘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이건 물리학입니다. 역시 에너지의 문제죠. 에너지가 없는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막을 수 없었듯이 에너지가 없는 미국이 주제에 베트남을 건드린건 오버죠.

 

  그렇다면 호치민은 잘했느냐? 민족주의 관점으로 좁혀놓고 보면 그건 잘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박정희가 그래도 경제는 잘했잖느냐는 태도와 같다고 봅니다. 세계사와의 상호작용은? 안했습니다. 박정희가 심판되어야 하는 이유는 세계사와의 상호작용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카터시절에 반미하다가 죽었는데 역시 상호작용의 결과로 심판받은 거죠. 오바마가 아프리카와 아랍을 일깨웠듯이 카터가 한국인의 가슴에 바람을 집어넣은 것이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호치민 입장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은 동정할 수 있으나 에너지 흐름, 세계사 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용납될수 없는 고립주의이며 인류역사에 대한 배신이며, 고립주의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마존의 정글족처럼 지적 역량이 떨어지는 경우 밖에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시골의 무지막지한 가부장이 ‘내자식 내 패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내마누라 내가 패는데 니가 왜 간섭해?’ 이런 항변과 같습니다. 민족 앞세우며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역사적 책동입니다.

 

  그러므로 호치민이 정당화 되는 경우는 중국과 소련이 옳다는 전제가 숨어 있는데 보시다시피 소련이 해체되는 순간 호치민의 정당성은 사라진 것입니다. 그게 오판이라고 해서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들도 다 일본이 전쟁에 이기고 중국을 다 먹을줄 알고 오판한 거에요. 일본이 중국을 다 먹으면 조선에 떡고물이 안 떨어지겠냐 이걸로 친일한 겁니다. 이광수와 박정희들 말이지요. 떡고물 먹으러 만주로 간거죠.

 

  친일파는 판단착오가 아니고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호치민은 잘못한 겁니다. 당시 형편으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해도 잘못입니다. 따질건 따져야죠. 민간인을 학살한 미군 병사가 상관의 지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해도 학살죄입니다. 운명의 시험대에 오르면 용서가 없습니다.

 

  광주에서 살인을 저지른 계엄군은 상관의 지시에 따랐다 해도 유죄입니다. 사법판결에서 법관의 정상참작은 가능하나 역사의 심판은 인정이 없습니다. 역사의 심판은 추상같아서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정황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마존의 부족민들에게 당신들도 알파벳 배우고, 옷입고 살아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은 원래 역량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인종차별이라고 하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현실입니다. 아마존의 부족민들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치든 공산주의를 가르치든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냥 부족민으로 살도록 놔두는게 맞습니다.

 

  우리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나 쿠바의 독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그 사람을 아마존의 부족민으로 보는 겁니다. 모욕이죠. 쿠바 애들은 수준이 떨어져서 민주주의 한다고 껍죽대다가 아이티 꼴나는거 아녀? 쿠바가 아이티보다는 낫잖아? 냅둬. 이거 모욕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긍정해서 베트남은 베트남이니까 그렇게 하는게 맞다는 식으로 본다면 베트남 사람을 모욕하는 겁니다. 아프리카에 자본주의건 민주주의건 뿌리내리기에 실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의 역량이 안 되기 때문이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명분도 ‘어차피 니들은 역량이 안되잖냐?’ 하는 것인데, 사실 1905년 그 당시에는 역량이 안되었지요. 그러나 역사는 큰 흐름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잘못한건 확실하지만, 베트남의 운명은 베트남에게 맡겨두는게 맞지만, 당시 호치민이 인격자이든 어떻든 상관없이, 베트남의 특수한 사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고립주의-공산주의로 가서 세계와의 대화를 기피한 것은 반역사적, 반문명적 행동이며 잘못된 것입니다.

 

  시골에서 어떤 무지몽매한 아저씨가 마누라 패고 자식 패면서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래 하는건 용납되지 않습니다. 설사 그 부인과 자식이 동의했다 해도. 내재적 사정이 있다고 해도. 세계와의 대화를 거부한 죄가 큽니다.

 

  만약 우리가 호치민을 긍정한다면 베트남의 역량에 대한 모욕입니다. 걔네들은 원래 수준이 그러니까 걍 그렇게 살도록 놔둬 이런거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지금 민주화 되어야 하며, 우리가 중국의 독재상태를 구태여 따지지 않는 것은 중국에 대한 모욕이죠.

 

  제가 왜 중국은 당장 민주화 하지 않는가 하고 글을 쓴적이 없는데 그게 중국을 모욕한 거죠. 중국은 원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니까 섣부르게 민주주의 실험하다가 수억 죽는 수가 있어. 그러니 걍 그렇게 살도록 놔둬 이런 거죠.

 

  베트남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 동정적인 태도, 착해보이는건 맞는데 베트남의 역량을 무시하는 모욕입니다. 아랍인들은 원래 안돼. 그냥 히잡 쓰고, 터번 두르고, 고립주의로 자기네들끼리 오순도순 그렇게 살도록 놔둬 이거 모욕입니다.

 

  사실 정 역량이 안 되면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흑인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프리타운으로 되돌아간결과 어떤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흑인들 역량이 안되는 것 맞습니다. 방치한 백인에게도 문제는 있지만. 아프리카는 지금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안 됩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량의 문제에요.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이집트와 리비아와 튀니지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만큼 역량이 나아진 거죠. 시리아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고. 근데 아프리카, 아랍은 그렇고 베트남은? 베트남은 원래부터 한자문화권입니다. 한국보다 못할거 없죠. 한국이 이 정도 하는데 베트남이 왜 못하겠어요? 해야합니다.

 

  아프리카처럼 역량이 안 되어서 부족시스템으로 가겠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역량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고립상태에서 자기네들끼리 이상한 시스템을 실험하겠다면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미국이 잘못했다고 해서 베트남이 용서되는건 아니에요. 일본이 잘못했다고 고종의 잘못이 용서됩니까? 둘 다 잘못한 겁니다. 구조론이 강조하는 바 우일신 해야 합니다. 계속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세계와의 대화 관점을 버리면 곤란합니다. 북한이 비판받는 이유도 세계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고립시켰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어쨌든, 과거사정 핑계되면 박근혜죠. 516이 옳았다는 말은 지금 쿠데타 하겠다는 위협입니다. 이거 범죄에요. 지금 박근혜는 반국가언동을 한 겁니다.

 

  고립하지 않고 개방하면 자연법칙을 따라가는데 북한을 자연법칙에 맡기면 민주화 된다고 보는 것은 북한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고, 북한을 자연법칙에 맡기면 대란이 일어나서 수백만 죽는다고 보는 것은 북한을 모욕하는 겁니다. 물론 리스크 관리는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방치하는건 답이 아닙니다.

 

  자연법칙에 맡기면 내전이 일어나서 인명이 희생될 위험이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는건 오히려 폭탄에 장약을 늘리는 것입니다. 북한은 세계와의 대화에 나서야 하며 폐쇄는 어떤 경우에도 죄악이고, 역사의 판단은 세계사 중심으로 가야 하며, 내재적 접근으로 북한의 사정을 고려한다는 것은 동정심이나 감상주의 수준인데 학자의 태도는 아니고 종교가의 태도는 됩니다.

 

  목사님이나 스님은 그런 말씀 해도 됩니다. 학자가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죠. 비겁한 겁니다. 부족민이 앞바다에 지나가는 배를 보고도 안 본 겁니다. 견적이 안나오니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끊기로 담합. 보통 사람은 그래도 되는데 과학자는 그러면 안 됩니다.

 

  세계와의 대화, 부단한 상호작용, 에너지의 흐름 여기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답을 모르면 흐름에 맡기는게 맞습니다. 소련도 개방과정에서 수억 죽을 위기를 넘긴 겁니다. 고르바초프가 무분별하게 개방을 해서 망쳐놓았다고 해도 할말이 없는 거에요. 그러나 결국은 개방이 옳은 것이며 답은 미지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거지 미리 짜맞춘 각본으로 이루어진 노선타령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북한이 개방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답은 그 의문부호 안에 있는거지 내 손안에 있소이다 하고 허풍 떠는 자는 다 사기꾼이에요. 답은 의문부호 안에 있고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는 북한사람의 역량에 달린 거에요. 아슬아슬한 긴장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전쟁은 미국에 대해서 민족해방전쟁이지만, 그건 미국에 대한 관점이고, 미국을 논하는 것이고, 베트남에 대해서는 흔한 원시 부족민의 고립주의죠. 그냥 시골 깡패가 마을 입구 닫아걸고 제멋대로 행패 부리는 겁니다.

 

  모택동이 장정때 서쪽의 오지에서 그런 꼴을 많이 봤지요. 시골 족장이 마을 사람을 돼지 취급하는 것. 모택동이 그 시골사람들을 다 해방시켰습니다. 그건 찬양하면서 호치민이 그 시골족장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이건 아니지요. 세계와의 대화를 거부한 죄는 절대 용서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호치민 개인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세계사 관점입니다.

 

  박정희 역시 세계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한국식 민주주의 어쩌고 하며 닫아건 것이 죄악입니다. 정답은 진리에 있고 진리는 자연법칙으로 나타나며 자연법칙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실현되고 상호작용은 세계와의 부단한 대화이며 이를 배반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배반, 자연에 대한 배반, 진리에 대한 배반입니다.

 

  구조론으로 보면 세계사라는 에너지 장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 이는 투명해서 잘 안보이지만 눈이 밝은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세계사는 제 멋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 지적 역량의 총합이라는 한 방향으로 일제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라 확률적 필연입니다. 그 확률은 장기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로 시점을 고정시켜 놓고 본다면 곤란입니다.

 

  시점을 고정시켜 놓고 보면 박정희도 그 때는 옳았고 김일성도 그 때는 옳았고 이렇게 되는데 궤변하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이지요. 천년의 역사를 통찰하는 열린시야로 보아야 합니다. 세계사와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전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세계사를 주도한다는 관점을 잃으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인류사 일만년을 지금 설계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일만년을 설계하는 설계가가 북한 사정 봐주고, 베트남 동정심 베풀고, 차베스 형편 봐주고, 이건 아니지요. 인류에 대한 모독입니다. 북한은 더 잘할 수 있고 베트남은 더 잘할 수 있고 베네수엘라는 더 잘할수 있습니다.

 

  세계와의 부단한 상호작용 안에 답이 있습니다.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 베트남이 세계와 더 많은 인적, 물적 교류를 했는데도 그 정도 밖에 안된다면 할말없는 거죠. 그런데 교류를 했으면 살길을 찾았을 것이며 교류를 안 한 것은 비겁해서입니다. 쫄았죠.

 

  부족민이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논쟁으로 당장 결론을 낼 수 있는 범위로 좁혀놓고 제한전을 하자는 겁니다. 10명 타는 카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이 나오는데 서양의 큰 증기선은 답이 안나와. 답이 안나오는 문제는 없는 걸로 쳐.

 

  근데 구조론은 무제한전입니다. 결론낼 수 없는 분야까지 확전해야 합니다. 답이 안나오면? 부단한 상호작용 안에 답이 있고 의문부호 안에 답이 있으며 용감하게 그 물음표 안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잘못되면? 역시 작용에 대한 대응행동으로 해결합니다. 그때의 답은 그때 그 현장에서 찾아집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역사를 믿는 자의 낙관주의적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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