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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9289 vote 0 2012.10.21 (17:59:09)


    싸이, 김기덕, 노무현, 주성치

 

    싸이, 김기덕, 노무현, 주성치의 공통점은 타고난 ‘끼’가 있다는 거다. 싸이의 노래 중 도무지 어느 부분이 미국인에게 어필했을까? 아마 싸이 본인도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을 못했을 거다.

 

    뮤비를 세세히 뜯어보면 확실히 탁월하기는 하나, 부분부분 성의없이 대강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에 쫓겨서 그랬을 수도 있다. NG컷 모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도입부의 이 장면부터 NG다.

 

 

 

    장기 두는 할아버지가 점프하는 장면도 어색하다. 노홍철이 나오는 엘리베이터 장면은 48시간 연속촬영으로 녹초가 되어 드러누운거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대박을 예상 못하고 성의없이 만든 거다.

 

    하여간 트집 잡으려면 강남스타일에 트집거리는 매우 많다.

 

    김기덕 영화의 소소한 헛점들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개소리는 싸이의 뮤비를 시비하는 것과 같다. 뮤비평론가 집단이 있었다면 강남스타일도 신랄하게 까지 않았을까 싶다. 깔 건 많다. 근데 왜 까?

 

    주성치 영화도 마찬가지다. 허접하기가 이를데 없는데 그 중에서 압권은 ‘007 북경특급’이 아닌가 한다. 즉흥적으로 생각해낸듯한 줄거리는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데 하나하나가 다 명장면이다.

 

    

 

    흐름을 끊고 몰입을 차단하니 짜증난다. 그러나 곧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썰더라도 마티니 한 잔은 폼나게 마셔야 한다’는 그의 미학에 굴복하게 된다. 비디오를 되감기 해서 그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그렇다. 그는 관객을 굴복시킨다. 김기덕은 말만 많은 평론가들을 굴복시켰다. 굴복할 때 됐다.

 

    주성치 영화도 분명 트집거리가 있다. 깔 수 있다. 근데 왜 까? 무엇인가? 주성치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었다. 관객과 감독과의 관계를 바꾸었다. 처음 관객은 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를 들으러 극장에 왔다.

 

    근데 뭐야?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그런 설교가 어딨어? 주성치는 대답한다. ‘설교 아닌데?’ 그렇다. 감동적인 설교는 없다. 이건 다른 거다. 그것은 주성치가 창의해낸 주성치만의 게임이다.

 

    불만 있으면? 나가라. ( X )

 

    짬뽕을 먹으러 왔는데 여기는 짜장이 전문이고 짬뽕은 안 판다고 하면 누가 나가야 할까? ‘그래 나 싫어. 나갈래.’ 하는 관객은 자격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21세기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메뉴가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다.

 

    불만 있으면? 니가 틀렸어. 계속 봐! ( O )

 

    김기덕 영화는 메뉴가 다르다. 화를 내고 중간에 극장을 나가면 자격없다. 주성치 영화를 보다가 ‘내가 원한건 이게 아냐. 이 영화의 장르는 나와 맞지 않아.’ 하고 박차고 나가는 자는 현대인의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21세기는 주성치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관객들은 ‘내가 원한건 이게 아냐!’ 하고 화랑을 박차고 나갔다. 나가면서 침 뱉고 나갔다.

 

    그런데 말이다. 그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만 남고 전통적인 회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상주의가 주류가 된 것이다. 주류가 전복되었다.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었다. 이게 진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건 정말 예술이다. 근데 끝났다. 더 이상 화가들은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꿈 깨시라. 더 이상 짬뽕은 팔지 않는다. 짜장먹어! 강제다.

 

    먹기 싫어도 먹어! 그게 21세기다. 21세기는 짜장의 시대이다. 더 이상 짬뽕은 없다. 니가 졌다. 굴복하라. 강제로 짜장먹는 시대다.

 

 

 

    “미술사에서 올랭피아만큼 사람들의 비웃음과 야유를 산 작품은 없었다.” –루이 오브리-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자. 이 그림은 확실히 관객을 화나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근데 왜 이런 그림을 그렸지? 그렇다. 화나라고 그린 것이다.

 

    예술이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하고, 아름답고 시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키게 할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초딩은 없을 테니까 하는 말이지만(근데 이런 초딩 꼭 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예술의 본질이다.

 

    예술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끝까지 봐야 한다. 장르가 내 취향이 아니니까 하고 거부할 권리 없다. 당신들은 19세기로 도망칠 수 없다. 모든 길은 차단되었다. 갇혔다. 짜장먹어!

 

    중요한건 싸이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싸이의 타고난 끼다. 끼는 공명한다. 그게 진짜다. 서태지의 춤은 사실 많이 연구되고 훈련된 것이다. 이건 가짜다. 왜? 미국 흑인들 때문이다.

 

    자메이카 하면 우사인 볼트다. 이 나라는 특수하다.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수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노예장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강인한 흑인을 특별히 끌고온 곳이 자메이카다.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흑인들이, 특히 뛰어난 신체적 유연성을 가진 자메이카인들이 미국 음악시장을 흔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보이의 현란한 춤처럼 진정성이 결여된 묘기대행진이 되어버렸다.

 

    타고난 유연성을 가진 흑인들의 현란한 춤동작을 굼뜬 엉덩이를 가진 백인들이 따라하기는 불능이다. 나는 싸이가 흑인 특유의 뛰어난 운동능력에 의해 주눅든 백인들의 잠재적인 끼를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다.

 

    서태지 이후 한국의 아이돌은 SM의 연습생들처럼 스파르타식 훈련을 거쳐 춤 추는 기계가 되었지만 이건 가짜다. 이주노와 양현석의 춤은 그들만 할 수 있는 거다. 정형돈은 할 수 없다. 뒤뚱대겠지만 실패다.

 

    미국의 대중들이 이주노의 춤을 따라하기는 불능이다. 레게머리를 하고 흑인을 흉내낸건 진짜가 아니다. 결론을 내리자. 싸이는 진짜다. 바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한 묘기대행진이 아니다.

 

    싸이의 춤은 20여년부터 한국의 여러 클럽에서 실제로 추어졌던 춤이다. 그래야 진짜다.

 

    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아름다운 그림’이 퇴조하고 마네의 올랭피아와 같은 관객을 열받게 하는 ‘뻔뻔한 그림’이 대세가 되었는가? 왜 더 이상 짬뽕은 팔지 않게 되었는가? 왜 관객은 강제로 짜장을 먹어야만 했는가?

 

    정답 – 가짜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아카데미파 회화는 ‘이런 그림 그려주면 관객들이 좋아하겠지.’하고 맞춤주문한 OEM이다. 시장조사를 하고 관객의 니드를 예측해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웰 메이드. 온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가짜다. 인간의 영혼 속에 잠재한 끼를 드러낸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어야 한다. 그것을 노출시켜 거리에 풀어버림으로써 인류의 상호작용을 드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관객의 기호에 맞춘 영화는 가짜다.

 

    관객의 기호에 맞춘 그림은 가짜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은 가짜다. 실상 그게 거지같은 거다. 수준 떨어지게 말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가 핵심이다. 이건 감히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관객을 분노하게 하고 그들이 바보임을 인증시켜 버린 것이다. 예술적인 흥취를 고양하기는커녕 오히려 싸움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화를 냈고 개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렇게 본질을 들켰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인류의 상호작용은 증대되었다. 인류의 아이큐는 올라갔다. 진화했다.

 

    고흐의 그림은 그의 타고난 끼에서 나온 것이다. 고갱의 그림은 그의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와야 진짜다. (고갱이 형편없는 가짜라는 말은 아니다. 감히 고흐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서태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배운 고갱이다. 싸이는 타고난 고흐다.)

 

    원래 인상주의는 원근법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서양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나름대로 해석한 바 원경(주로 후지산)과 근경(예컨대 사꾸라)을 대비시켜 놓은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다. 김기덕의 모든 영화는 선과 악의 강렬한 대비다.

 

    김기덕은 빈 집에서 주인과 침입자를 뒤섞어 버리듯이, 풍산개에서 북한요원과 남한요원을 뒤섞어 버리듯이, 파란대문에서 혜미와 진아를 섞어버리듯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를 뒤섞어 놓고 거기서 인상을 얻는다. 주성치가 북경특급에서 처참한 돼지고기와 근사한 마티니를 함부로 섞어버리듯이 말이다.

 

    서양인들은 원래 그런데 익숙하므로 잘 이해한다.한국인들은 수준이 낮으므로 모른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설다.

 

    이런건 이론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센스에서 나온다. 본능에서 나온다. 그것이 끼다. 마네를 불러다 놓고 ‘왜 이렇게 그렸냐?’고 물으면 마네 본인도 잘 대답하지 못했을 거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그리고 싶었다는 거다.

 

    주성치도 마찬가지다. 그는 불필요하게 지저분한 장면을 삽입한다. 썩은 운동화에 떨어진 날계란을 더럽게 핥아먹는 식이다. 그 장면에서 오버이트 쏠리는 관객 많았을 거다. ‘왜 그랬니?’ ‘왠지 그러고 싶었어.’ 그건 끼다.

 

    싸이는 왜 그랬을까?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다. NG컷 넣고 싶어서 넣은 거다. 그래야 진짜다. 서태지의 춤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춤도사 이주노가 그래야 한다고 말하니까 그런 거다.

 

    ‘레게머리를 해야한대.’ ‘아 그렇구나. 레게머리를 해야하는구나.’ 그래서 레게머리를 한 거다. 끼에서 나온게 아니고 시장조사 해서 나온 거다. 가짜다.

 

    물론 이발소 그림도 약간의 가치는 있다. 그걸 원하는 수요가 있고 그걸 그려서 파는 장사꾼이 있다. 박찬욱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직도 있다. 근데 예술로 보면 아니다. 그건 아닌 거다. 끝났다. 이제 짬뽕은 안 판다. 그건 시장조사를 해서 맞춤주문한 상품이므로 원초적으로 예술이 아니다.

 

    물론 서태지도 상당히 끼가 있고 박찬욱도 약간의 끼는 있다. 그런데 싸이의 끼와는 레벨이 다르다. 싸이의 춤은 자기 몸에서 나온 진짜지만 서태지의 춤은 흑인 흉내를 낸 거다. ‘그렇게 해야하는가보다’ 하고 따라한 거다.

 

    서태지를 까려는건 아니다. 박찬욱도 나름대로 훌륭하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다른 거다. 다양성을 위해서 김기덕 영화도 하나쯤 있어야 해 하는 식의 발언을 일삼는 바보들을 꾸짖기 위한 거다.

 

    틀렸다. 김기덕이 주류고 박찬욱은 짝퉁이다.

 

    왜? 세잔 때문이다. 세잔이 뜨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미술시장이 살아있었다. 인상주의도 있고 아카데미즘도 있다. 그들은 공존했다. 김기덕도 있고 박찬욱도 있었다. 서태지도 있고 싸이도 있었다. 예술은 원래 다양하다.

 

    그러나 세잔이 나타나서 ‘진짜배기 그림은 이런 거야’ 하고 정리를 해준 후 가짜들은 사라졌다. 태양이 중천에 떴어도 안개는 한 참동안 남아있다. 그러나 5분 후에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진다. 필요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림도 아닌 이발소 그림이 아직까지 있는 것을 보면 박찬욱 영화가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없고, 이수만 음악공장이 내일 망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예술의 본질에서는 그렇다. 끼가 아니면 아닌 거다.

 

    무엇인가? ‘한국사회에 노무현 같은 사람도 한 사람은 있어야 해’ 하는 자는 정신 못차린 거다. ‘한국에 김기덕 같은 사람도 있기는 있어야 해’ 하는 자는 정신 못차린 거다. 세잔이 언제 뜰지 모르지만 반드시 뜬다.

 

    세잔이 뜨면 노무현만 남고 나머지는 소거된다. 김기덕만 남고 소거된다. 필요없다. 가짜는 간다. 안개 걷히듯 간다. 왜? 진짜는 족보가 있다. 한 줄에 꿰어진다. 그러므로 정통성이 있다. 주류의 전복이다.

 

    ◎ 다빈치 - 원근법의 제시

    ◎ 우키요에 - 원경과 근경의 대비를 통한 인상

    ◎ 마네 -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한 인상

    ◎ 싸이 -  Dress Classy와 Dance Cheesy의 대비를 통한 인상

    ◎ 김기덕 - 선과 악의 대비를 통한 인상

    ◎ 주성치 - 돼지고기와 마티니의 대비를 통한 인상

    ◎ 고행석 - 아이큐 250천재와 꺼벙한 촌놈의 대비를 통한 인상

    ◎ 세르반테스 – 기사도와 돈키호테의 대비를 통한 인상

    ◎ 고흐 – 강렬한 붓질과 편안한 전원풍경의 대비를 통한 인상

    ◎ 노무현 - 인권변호사와 상고출신의 대비를 통한 인상

 

    이들은 모두 공존할 수 없는 모순된 것을 하나의 그릇에 뒤섞어내고 있다. 공존할 수 없는 것을 공존하게 하는 바로 그것이 예술이다. 진짜다.


    인상주의 화가 한 두명의 외로운 활약에 그치면 낸시랭이나 한비야나 혹은 강의석이 욕을 먹듯이 또는 오노 요꼬가 배척되듯이 혹은 백남준이 한 동안 대중에게 이해되지 않았듯이 아웃사이더로 몰려 씹히게 되지만, 그들이 모여서 세를 이루고 이렇듯 족보를 형성하고 정통성을 창출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면 주류가 전복된다.

 

    정리하자. 단지 세잔 때문에 전통적인 회화가 사라졌을까? 그건 아니다. 세상이 실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반영하여 전통적인 회화가 사라진 거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 거기에 주목해야 한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박근혜는 나타난다. 박정희의 망령이 우리 주변을 계속 맴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있다. 북한과 대결하는 모드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모드로 바뀌고 있다.

 

    왜? 싸이 때문이다. 김기덕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데 뭣하러 조갑제마냥 북한과 아웅다웅하고 살겠는가? 21세기가 우리를 부르는데 뭣하러 전통적인 그림에 잡혀 있겠는가? 할 일이 많은데 말이다.

 

    모두가 우리를 부르러 오는데 말이다. 여기저기서 오라고 난리인데 말이다. 노홍철도 비행기표 끊어야 할 판에 말이다. 그렇다. 당신들은 결코 19세기로 도망칠 수 없다. 당신들은 절대 박정희 시대로 도망칠 수 없다. 문재인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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