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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6057 vote 0 2007.10.06 (14:07:31)

[데일리서프라이즈에 기고합니다]

정동영 딜레마
'승리지상주의 버리고 원칙 확인하기'

정치는 조직 대 바람이다. 경선 판이 어려워진 이유는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저쪽이 조직을 가동했기 때문이 아니다. 저쪽이 조직을 가동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알고도 참여한 것이다. 왜? 그래도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나? 그 승산은 뭐였지? 이쪽에서 단일화를 성사시켰을 때 광주가 호응해 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무산 되었다.

정동영 탓할 일은 아니다. 정동영 역시 정치의 격랑에 휘말린 한 명의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정의 어리석음은 우리에게 극복의 대상이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정은 비판할 가치도 없는 확신범이라는 말이다.  

논쟁과 설득으로 상대할 수준은 넘었다. 저들의 악행에 따른 반사이익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자체의 역량과 매력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했다. 그리고 지금 이해찬의 지지율이 의미하는 것은 그 우리가 가진 고유한 역량의 한계다.

정동영 정치는 지역감정 자극이고 인질정치다. 지역감정의 뇌관은 이미 기폭 되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과 같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정동영이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 상황에서 이해찬이나 손학규가 이기면 호남이 승복하지 않는다. 유일한 승산은 권영길이나 문국현을 띄워 3파전으로 가는 것이다. 권이나 문은 정치를 모르므로 당선 가능성이 없지만 97년의 이인제 역할은 할 수 있다.

2파전으로 가면 필패고 3파전이면 약간의 승산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승리한다 해도 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뒤가 감당이 안 된다. 이명박을 막은 것으로 절반의 승리가 되겠지만 우리의 가는 길은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신당은 내부적으로 이미 해체되어 있다. 저들은 결코 동지가 아니다. 지갑 주우러 온 손학규 그룹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적을 막기 위해서 일시적인 연대는 할 수 있겠지만 근본 우리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다시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하자. 승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기를 살리려면 정동영에게 양보하는 것이 맞겠지만 길게 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없는 전략적 판단은 삼가는 것이 옳다.

유시민, 이해찬이 애초에 저들만의 잔치로 설계된 경선과정에 참여해 준 것과 개혁후보 단일화를 한 것으로 이쪽의 할 일은 한 셈이다. 이만하면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가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말을 물가로 인도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우리는 지난 5년간 말에게 소금 맛을 알게 하여 갈증을 유발시켰다. 그 결과가 이렇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했고 그것으로 된 것이다.

논하자면 애초에 신당에 참여한 것이 잘못이다. 승리지상주의자라면 신당참여를 반대함이 옳다. 그러나 나는 유시민의 신당 행에 찬성도 반대도 말하지 않았다. 승리보다는 연대의 원칙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DJ가 이미 판을 깔았는데 우리가 그 판을 거부하면 국민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친노집단은 승리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무모한 도박을 하는 사람, 수틀리면 판 깨는 사람, 손잡고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눈앞의 승리보다 신뢰의 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로 보여야 한다. 아쉬울 때 연대하기 딱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설사 지더라도 그러한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광주는 위대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연대의 원칙을 버려서 안 된다. 어차피 우리는 소수파다. 호남도 소수파다. 소수파는 연대 외에 살 길이 없다. 저들이 반칙을 해도 연대하고 깽판을 놓아도 연대해야 한다.

우리는 신당참여로 한번 연대의 원칙을 확인했고, 단일화로 다시 한 번 연대의 원칙을 확인했다. 그리고 광주에 손을 내밀었다. 광주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내민 손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나오면 이렇게 한다’는 식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집단으로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우직하게 우리의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연대와 제휴다.

소수파의 살 길은 제휴와 연대 외에 없다. 만약 당신이 반한나라를 외치는 승리지상주의자라면 판이 깨져버린 지금은 정동영을 미는 게 맞다. 그것이 승리의 확률을 1프로라도 올리는 길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내 할일 한 것으로 만족한다. 신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판을 깨지 않고 연대의 원칙을 지킨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이용해 먹기 딱 좋은 만만한 호구로 보였고 정동영이 우리를 호구로 보고 달려들었으니 할 일은 다 했다.

일꾼이냐 말꾼이냐는 슬로건이 있었다. 대선은 일꾼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말꾼을 뽑는 선거다. 일은 국민이 하는 거고 대통령은 국민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판단기준이 될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삽들고 설치면 그것이 맹박이지 어찌 대통령이겠는가? DJ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의 원칙은 모두 그 새 시대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거다. 다음 단계에는 다음 단계의 기준이 제시되어야 했다.

필자가 강금실을 말한 것은 그런 의미다. 지난 10년간의 개혁으로 보안법 철폐 등 일부를 제외하고 민주화시대의 기준제시는 일정부분 성과를 냈다. 여세를 몰아 문화우선시대, 가치우선주의의 새 기준을 제시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새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람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동영을 비난하고 한나라를 비난하는 것은 반사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살려나가야 맞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연대의 원칙을 위해서는 패배를 감수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소수파의 살길은 죽어도 연대뿐이다. 단지 연대할 뿐 그 이상의 승리를 위한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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