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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001 vote 0 2007.09.29 (11:00:28)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합니다]

개혁+호남은 옳은가?
권영길 불판으로 확 갈아야 하나?

정치는 논리가 아니라 심리다. 말로 이겨서는 이길 수 없고 정(情)으로 이겨야 이긴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유권자와 정붙이지 못했다. 유권자와 정붙이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수틀리면 깽판친다.

‘수틀렸다. 깽판났다.’ 지금이 그 상황이다. 무엇인가? 보수심리다. 지금 우리의 적은 수구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유권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보수심리’다. 이건 다른 거다.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전쟁이냐 평화냐? 한나라당의 전쟁노선을 따르는 무리는 적다. 극렬한 수구 이데올로기는 대한민국 안에서 소수파다. 그러나 막연한 보수심리는 한나라당의 수구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유권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한 마디로 386이니 인터넷이니 하며 데모나 하던 젊은 사람들이 설치는 꼴이 아니꼬와서 못봐주겠다는 거다. 왜 이렇게 되었나?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위기가 해결되니 사소한 걸로 삐진다.

일해공원을 예로 들수 있다. 전 국민이 다 반대하는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걸로 국민의 주의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의 미래에 조금의 관심도 없다.(나는 죽을 때 까지 합천 땅을 밟지 않는다.)

일해공원이라도 있으니까 합천군을 우습게 보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비뚤어진 심리가 있다. 오기가 있다. 중앙과 지방의 대결심리가 있다. 중앙에서 결정하는 여론은 일단 반대하고 보자는 것이다.

자신에게 비토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다. 이런 심리는 호남에도 있고 영남에도 있다. 이번 신당 경선에서 호남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역시 이런 류의 보수심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나의 허락 하에, 나의 동의 하에, 나를 앞세우고, 내 이름으로 해야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반대하겠다는 심리다. 그렇다해서 그 분들에게 사전에 허락을 구하고 앞장을 서주길 부탁하면 그건 또 안 한다.

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라면 안하고 그래서 우리끼리 해보겠다고 하면 뒤에서 발목을 잡는다. 모든 지방사람들에게 그런 심리가 있다. 그것이 지금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식의 지방 이기주의는 서울에도 있다. 서울시도 하나의 지자체이고 대한민국 안에서는 하나의 지방이다. 서울시민이 서울시민이라는 자부심을 잃어버리고 땅값올리기용 님비주의에 혈안이 되어 있다.

보수심리가 팽배해 있다. 지방이 중앙에 등을 돌리고, 서울사람이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되고, 합천군이 대한민국의 공론을 무시한다. 국가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되는 역사의 흐름이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흐름에 빠졌다.

그들은 불만에 차 있다. 인터넷의 주도에 불만이고, 운동권의 주도에 불만이고, 먹물들의 주도에 불만이고, 중앙의 결정에 불만이고, 젊은사람의 주도에 불만이고 모든게 다 불만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이런 식의 비뚤어진 보수심리는 이웃나라와의 비교판단 혹은 국가적인 위기 혹은 역사적인 기회에 의해 극복된다. 80년대 민주화투쟁은 그 자체로 국가위기였다. 매일 최루탄이 터지고 시위대가 거리를 메워서는 나라가 결딴이 난다.

‘일단은 젊은 너희가 참아라’ 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해보지만 그래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민주화를 지지한다. 다수는 민주화를 찬성해서가 아니라 군부가 무너지니까 어쩔 수 없이 지지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군부는 대안부재였다. 전두환, 노태우가 답을 내지 못하니 군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군부가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서가 아니라 군부가 대안부재라서 어쩔 수 없었던 거다.

문제는 지금 국가적 위기(민주화 운동)가 없고, 역사적 기회(인터넷 등장)도 없고, 이웃에 비교할만한 나라도 없다는 데 있다. 일본이나 대만은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뒤졌고 중국과 러시아는 비교대상이 아니고 서구는 거리가 멀다.

유럽이 진보로 가는 것은 이웃에 비교할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몇몇 나라가 진보로 성공모델을 구축해 보이니 그게 부러워서 다른 나라들도 따라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비교할 나라가 주변에 없다는게 문제다.

97년은 국가적 위기였다. IMF가 터진 것이다. 2002년은 역사적 기회였다. 인터넷 신시대의 도래였던 것이다. 이런 때는 보수심리가 사라진다. 국가적으로 뜻을 모아 한번 해보자는 혁신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은? 위기도 기회도 없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잘 해결해 놓으니 나라를 거덜낸 김영삼의 신경제 100일 작전 그 짜릿한 경제도박 한번 더 해보자며 이명박의 눈치를 본다.

지금이 이명박 앞세우고 경제도박할 상황인가? 그렇다. 지금 한국인들은 배가 불렀다. 일본은 십년째 제자리걸음이고 중국은 우리보다 가난하고 미국은 전쟁통에 거덜났고 그러니 배가 불렀다. 지금 한국인은 오만해졌다.

일년에 몇 백만명이 해외여행을 나가고, 몇 십만명이 자녀를 해외유학 보낸다. 백만명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와서 하층계급을 형성했다. 이렇게 배가 부르니 김영삼이 했던 그 짜릿한 경제도박 한번 더 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수틀렸다. 수틀려서? 깽판났다. 깽판나서? 다 깨졌다. 무엇이 깨졌나? 개혁+호남의 연합구도가 깨졌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년에 DJP깨지듯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년에 개혁+호남의 구도가 깨졌다.

본질에서의 질문을 던져보자. 97년의 DJP연합은 김영삼의 3당야합과 달리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2002년의 개혁+호남 구도는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민노당 지지자라면 ‘둘 다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답한다. 왜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김영삼의 3당야합과 달리 DJP 연합과 개혁+호남의 구도는 소수파이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를 해쳤는가이다. 그것이 국민의 자주적 의사결정권을 침해했는가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다수파의 연합은 민주주의를 해친다. 3당야합은 선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다수파의 연합은 기본권 침해다. 소수파의 연합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담합해서 노조를 결성함은 정당화 된다. 반면 재벌의 담합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 본질은 국민의 자주적 의사결정권이기 때문이다.

‘개혁+호남’해도 물리적으로 과반수 안 된다. DJP 연합해도 과반수 안 된다. 이인제가 영남에서 백만표 넘게 빼줘서 겨우 되었다. 영남 일부가 DJ를 지지해서 DJ가 당선된 것이다. 그러므로 DJP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현실은 어떤가? 노무현 5년에 호남이 수틀려서 돌아섰다면 그것은 호남이 스스로 소수파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호남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개혁의 자부심, 민주화 성지로서의 자부심 뿐인데 호남이 자부심보다 경제적 실리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 데모나 하고 감방이나 들락거리다가 졸지에 벼슬한 안희정, 이광재, 천호선 따위 새파란 386 젊은이들이 무슨 실리를 어떻게 구해준다는 말인가? 언감생심에 연목구어다.

호남이 소수파이므로 저항적 지역주의가 정당화 된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호남은 어떻게 했는가? 호남이 정권을 냈으므로 당연히 51프로의 정치적 지분을 요구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쪽수로는 영남이 많은데 어떻게 51프로를 준다는 말인가?

51프로를 가져가면 또다시 지역대결이 되고 지역대결로 가면 인구가 많은 쪽이 항상 이긴다. 지난 5년은 호남정권이 아니라 연합정권이었다. 그것을 부인하고 호남정권 하겠다면 이야기 끝난 거다.

이 글이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오를 즈음이면 광주경선은 끝났을 것이다. 이번 경선은 개혁+호남의 구도가 과연 옳은가를 묻는 경선이 될 것이다. 호남이 스스로를 다수파로 여기고 51프로를 가지겠다면 개혁+호남은 옳지 않다.

또 호남이 민주화의 성지로서의 자부심 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원한다면 ‘개혁+호남’의 연합은 옳지 않다. 지난 5년간 나는 호남사람들의 얼굴에서 별다른 자부심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호남이 실리보다는 자부심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다수파가 아니라 소수파라고 여긴다면, 또 이번에 호남정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정권을 원한다면 광주는 옳은 결정을 할 것이다.

지금 국가적 위기(IMF)도 아니고 역사적 기회(인터넷 신문명)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말로 논쟁하여 이길 시점이 아니고 정(情)으로 이겨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우리는 정붙이지 못했다. 그래서 어렵다.

어쩔 것인가? 과연 ‘개혁+호남’이라는 한번 써먹은 불판은 여기서 끝인가? 이제 판은 깨졌으니 권영길 불판으로 확 갈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호남이 스스로 답해야 한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이미 그 답이 나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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