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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517 vote 0 2007.05.17 (16: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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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결이 있다

존재는 맞섬이다. 맞서기 때문에 결이 생겨난다. 결이 나이테다. 나무의 나이테는 그 나무가 추운 겨울과 무수히 맞섰다는 증거다. 진리는 존재의 나이테다. 진리는 존재의 결이다. 인간의 실존에는 다섯가지 결이 있다.

● 자연의 환경이 주어져 있고(세상)
● 그 환경에 맞서는 인간이 있다.(실존)
● 인간은 먼저 그 세상을 인식한다.(철학)
● 다음 그 세상에 맞서 판단한다.(사상)
● 그리고 타인과 함께 행동한다.(이념)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실존이라는 배우가 인식이라는 대본을 외고 판단이라는 연기를 하여 행동이라는 관객과 소통한다. 이것이 인간 실존의 일 사이클이다. 일 사이클로 스스로의 존재를 완성한다.

● 환경≫인간≫인식≫판단≫행동
● 세상≫실존≫철학≫사상≫이념

‘환경≫인간≫인식≫판단≫행동’의 일 사이클에서 인식≫판단으로 가는 것이 계몽이라면 판단≫행동으로 가는 것이 소통이다. 20세기가 계몽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소통의 시대이다.

계몽이 사실주의라면 소통은 인상주의다. 계몽이 고전주의라면 소통은 낭만주의다. 계몽이 신의 완전성에서 이상적인 질서를 추구한다면 소통은 불완전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에서 가치를 추구한다.

20세기는 지식인이라는 무대 위의 배우가 주목을 받았다. 21세기는 관객의 추임새라는 쌍방향적 소통이 강조된다. 인식에서 판단으로 가는 과정과 판단에서 행동으로 가는 과정이 이렇게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역사는 진보주의의 당초 기획의도에서 벗어나고 만다. 지식인이 민중을 계몽하기 위하여 개설한 광장은 거꾸로 민중에게 접수당했고, 배우가 관객을 휘어잡기 위하여 개설한 무대는 거꾸로 관객에게 점령당했다.

낭패다. 지식인의 낭패고 배우의 낭패다. 그러나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그러나 진정한 배우라면 그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민중이 지식인의 기대를 배반하고 그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을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면 말이다. 결국은 인간이 주인이고 인간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문명은 인간의 실존이라는 근원적인 한계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다.


자기다움에 도달하기

1. 세상이 있고 2. 인간이 와서 3. 그 세상과 맞선다. 4. 합치기와 가르기로 응전한다. 5. 합치는건 질서이고 가르는건 가치다. 6. 질서는 인식이고 가치는 판단이다. 7. 인식과 판단은 행동으로 전개된다. 8. 인식의 질서는 철학이고 판단의 가치는 사상이다. 9. 철학과 사상은 행동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소통으로 전개된다. 10. 소통은 이념이다. 이로서 인간 실존의 1사이클은 완성된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결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이테다. 인간의 리(理)다.  

모든 존재는 결을 가지고 있다. 리(理)를 가지고 있다. 조직에는 조직의 생리가 있고 담론에는 언어의 논리가 있고 사유에는 이성의 합리가 있고 자연에는 사물의 물리가 있다. 내부에 나이테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패턴으로 직관된다. 패턴은 존재가 외부와 맞서는 스탠스다. 스탠스는 축과 날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축은 질서로 내부를 통일하고 날은 가치로 외부와 잇는다.

무릇 하나의 존재는 내부를 통일하고 외부와 잇는 하나의 단위다. 존재의 1 단위를 성립시키는 요소들 상호간의 긴밀성과 정합성이 체계다. 모든 존재는 이러한 자기 자신의 조형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결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조형적 질서가 양식이다. 양식을 찾는 것이 미학이다. 미학적 양식의 완성이 패러다임이다.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패러다임의 완성이다.

각자가 자기다움에 도달하려는 것,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고유한 조형적 질서를 찾으려는 것이 현대성이다. 나의 내부에서 결을 찾아내기,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고흐를 일깨우기, 예민하게 반응하는 축과 날의 밸런스를 찾아내기다. 신의 완전성에서 비롯한 질서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한 가치의 맞섬을 찾아내기다. 구조주의, 실존주의, 열린사회, 포스트모더니즘, 인상주의, 대중문화 이 모든 현대의 모색들이 도달하려는 것은 산업화와 정보화에 따른 새로운 문명의 질서 곧 ‘현대성’이다. 현대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주관에서 직관으로

결이 있다. 결은 존재가 세상과 맞선 흔적이다. 그 맞섬의 단위가 있다. 결의 일 사이클이 있다. 그 일사이클의 전개에 따라 실존은 생산력의 객관에서 생산관계의 주관으로 그리고 미학적 양식의 직관으로 이행한다.

존재가 외적 환경과 맞서는 일 사이클의 전개에 따라 객관도 있고 주관도 있고 직관도 있다. 객관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 하나뿐인 큰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 주관은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각자 자기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직관은 그 각자의 집에서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똥 싸고 같은 드라마 보는 같은 생활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각자 위치는 다른데 행동은 같다. 패턴이 같다. 그러므로 양식이 성립한다. 양식이 같으므로 직관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객관과 주관을 거쳐 직관으로 전개된다. 인식이 판단을 거쳐 행동을 낳는 순서가 일정한 결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을 따라가야 생리가 되고 논리가 되고 합리가 되고 물리가 되고 진리가 된다.

결은 길이다. 길이 도(道)다. 그러므로 리(理)가 도다.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은 모든 마을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큰 길이다. 그러므로 도(道)는 객관이다. 그러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집이 있고 집에서는 각자의 주관으로 흩어진다.

어떤 일을 도모하든 객관≫주관≫직관의 순서를 거쳐야 한다. 모든 행동은 상대와 맞섬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상대와의 맞섬에서 룰이 정해지며 룰은 객관인 것이다.  

미술을 배운다면 처음에는 객관을 배워야 한다. 원근법과 명암이론과 색채이론을 배워야 한다. 안료와 붓과 캔버스를 다루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이는 과학이므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다음에는 주관을 터득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류의 조형적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기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 인식≫판단≫행동의 미학적 일 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다.

다음엔 직관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모든 관객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고유한 미적 본성 속에 숨은 조형적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남도 느끼는 것이다. 비로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객관에 도달하면 미술학원에서 계몽하는 강사가 될 수 있고 주관에 도달하면 독립하여 작가가 될 수 있고 직관에 도달하면 고흐나 이중섭과 같은 대가가 될 수 있다. 인류문명의 미학적 양식의 완성에 기여하는 사람이 대가다.

객관과 합리와 과학과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직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실패한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일천번을 연주하여 미세한 근육을 만들지 않고는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수 없다.

다만 객관≫주관≫직관의 일 사이클을 낮은 단계에서 재빨리 완성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다. 처음 회화를 배울 때 바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영원히 불가능하다.

낮은 단계에서 일 사이클을 완성시키고 다음 목표를 높여 더 높은 단계의 완성에 도전해야 한다. 언어라도 그러하다. 어린이 수준의 듣기와 말하기, 행동하기의 일사이클을 완성시킨 다음 높은 수준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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