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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62 vote 0 2007.04.17 (16:48:50)

서프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물우선 통합인가 정당우선 통합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고갱의 그림이다. 당신이 이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110년 전에 고갱이 이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는 거다.

고흐와 고갱의 대립에 대해서는 일전에 쓴 바 있다. 지누부인의 초상화를 두고 필자의 견해를 말하면 ‘고흐승 고갱패’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위의 그림은 고갱이 독자들에게 이를 질문한 것이다. 고갱은 위의 그림을 통하여 답변을 독자에게 떠넘겼지만..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스스로 대답했다.

목수가 어떤 집을 짓고자 하는..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집 그 자체가 가진 내재한 논리가 있다. 나무를 깎아 한옥을 지으려면 딱 이렇게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그것이 미학적 양식의 문제다.

나무는 어떻게 깎아야 하는가? 결대로 깎아야 한다. 만약 인간이 나무의 법칙을 어기고 임의대로 나무를 깎으려들면? 실패한다. 박정희가 시멘트로 지은 가짜 한옥처럼 실패한다. 그 엉터리 집은 나중 유홍준이 다 뜯어낸다.

먹은 먹의 논리로 서예가의 의지에 맞선다. 흙은 흙의 논리로 도공의 의지에 맞선다. 그 양식화의 법칙은 인간이 임의로 어길 수 없다. 그래서 ‘옥의 결’에서 진리(眞理)를 의미하는 리(理)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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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하면 근대회화의 아버지다. 진정한 20세기 회화의 창시자다. 고흐도 고갱도 피카소도 샤걀도 달리도 앤디워홀도 다 이로부터 나왔다.

인간은 그림의 주제를 해석하여 메시지를 전달받으려 하지만.. 그림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칼라와 명암과 구도와 질감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그림 자체의 내재적인 자기 완결성이 있다.

이 문제를 세잔이 처음으로 포착한 것이다. 세잔 이후 모든 서양화가의 그림은 세잔의 해석버전에 불과하다.

영화도 마찬가지.. 인간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와 상관없이 영화 자체가 인간에게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김기덕 감독이 그 점을 포착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 김기덕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회화에서 피카소의 큐비즘인 것이다.

피카소가 주목한 ‘입체’는..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어떻게 보는 바와 상관없이.. 그려지는 대상 그 자체가 인간에게 말하는 바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모델이 스스로 욕망을 가지고 움직여버린다.  

그렇다. 화가는 모델이 식물처럼 굳어있다 치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 순간에도 모델의 심장은 뛰고 있고.. 그 혈관에 피는 돌고 있고.. 그 마음에 감정은 흐르고 있다. 이를 어찌 나타낼 것인가?

고흐가 두텁게 떡칠해서 얻어낸 질감에는.. 그 모델들의 살아있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 그 묘사한 해바라기가 숨을 쉬고, 그 묘사한 밀밭의 태양이 입김을 토하고, 그 묘사한 밤하늘이 속삭이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정치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와 상관없이 정치 자체가 인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작동하는 정치시스템의 내재한 논리가 있다. 정치는 정치 그 자체의 일사이클을 완결시키고자 한다.  

무엇인가? 인간이 정치를 임의로 해석한 것이 ‘정책’이라면 정치 그 자체의 내재한 논리가 인간들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몸짓은 ‘소통’이다. 정치는 살아있다. 그리고 욕망한다. 그 점을 포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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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당이 인물중심론과 민주당 & 신당파의 정당중심론(소통합우선론)이 대결하고 있다. 개혁세력의 독자세력화 조짐도 불거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물이냐 정당이냐.. 그래봤자 정답은 ‘세력’이다. 그리고 그 세력은 DJ세력과 노무현세력이다. 그 세력을 움직이는 것은 인물이다. 그 인물은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 외의 모든 정치적 몸짓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단식도 코미디, 원탁회의도 코미디, 통합협상도 코미디,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사이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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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수님의 글 중에 서프라이즈는 인물 중심을 지양하고 정책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요지의 언급이 있었다.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왜 서프라이즈는 한사코 인물로 기우는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왜 자꾸만 인물쪽으로 가는가? 어디선가 자석이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석의 정체는?

늘 하는 이야기지만 서프에 노빠는 없다. 단지 노무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서프가 인물중심으로 간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인물중심으로 간다고 믿고.. 그 인물만 제거하면 된다고 보고.. 탄핵하다 망하고 반노질하다 망하는게 적들이다. 인물은 ‘세력’의 바다 위에 뜬 조각배다. 그 바다를 보지 못하고 그 조각배를 씹어봤자 성공 못한다.

노빠는 없다. 노무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김구와 장준하와 김대중과 노무현과 강금실 혹은 이해찬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가진 ‘대중과의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대중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소통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이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가진 소통능력을 이용하려 한다. 그분들이 가진 특별한 힘을 빌리려 하는 것이다.

정책이 아니라 소통이 필요하다. 물론 정책도 필요하지만 정책은 정당과 정치인과 지식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노상 정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기네의 할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식인에게는 정책이 중요하다. 그러니 지식인 당신들은 부지런히 정책하시라. 우리는 우리에게 더 절실한 ‘쌍방향 의사소통 시스템 구축작업’에 착수할테니.

‘정책이 중요하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빨리 정책을 내놓으세요.’

지식인이 대중에게 ‘정책에의 집중’을 강요하는 것은.. 목수가 이발사에게 ‘내집마련이 중요하냐 그따위 머리깎기가 중요하냐’ 하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생뚱맞다. 자기 할 일을 남 한테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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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통령의 발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고, 그것을 받치는 세력이 또한 중요하고, 그 다음의 것이 대화와 타협, 이것이 정치의 요체라고 생각하며 그런 결과로서 여기까지 왔다"

왜 대의명분이 중요한가? 지도자는 대의명분을 통하여 대중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이란 피아식별을 용이하게 하는 장치다. 대중은 피아식별을 통해 자기 포지션을 확인하고 이를 발판삼아 참여하는 것이다.

정책중심으로 열심히 하는 민노당은 대략 저조하고 대의명분 앞세운 우리당은 2003년에 성공했다. 물론 지금 우리당의 파산상태는 대의명분을 버리고 실용노선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정동영의 민생쇼.. 이걸로는 소통 안 된다. 정당이 실용하면 소통 못해서 망한다. 유권자 대중이 피아식별 못하고 포지션 잃어서 떠난다. 물론 실용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용은 청와대와 행정부와 공무원들이나 신경쓸 일이다.

아무리 좋은 라디오라 할지라도 안테나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방송국에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남산 꼭대기에 서울타워가 없으면 텔레비전에 전파를 송출할 수가 없다.

대중은 150명 모인 정당보다는 한 명의 대통령과 더 잘 소통한다. 우리당이 도무지 무슨 짓을 하려는 지는 유권자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가려는지는 대략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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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식인들은 정책을 고민하면서.. 보다 상위의 문제인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가? 지식인이 썩었기 때문이다. 전선은 조중동 앞에 형성되어 있다. 소통하려면 조중동과 싸워야 하는데 비겁자들이 전투를 회피하고 딴짓한다.

정책? 좋다. 그러나 소통하지 못하는 정책은 죽은 정책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소통하려면? 미디어를 가져야 한다. 미디어는 조중동에게 점령당했다. 우리당은 조중동에 맞아죽은 것이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 기관지조차 발행할 생각을 아니하고 있다.

진실로 말하자면.. 당이 당보를 발행하는게 아니라.. 당보가 발전해서 당이 되어야 한다. 우리당이 당보를 낼 것이 아니라 서프라이즈가 정당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다. 정책보다 소통구조 획득이 먼저다.

정책은 정당의 할 일이고, 지식인의 할 일이고, 논객의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리고 서프 눈팅이 할 일은 소통구조의 획득이다. 소통의 장애물인 조중동을 박살내야 한다. 인터넷으로 새 길을 내고 방송으로도 진출해야 한다.

정책의 문제는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의 문제에 불과하다. 소통의 문제는 살았나 죽었나의 문제다. 입이 없고 귀가 없고 눈이 없어 소통하지 못하니 죽은 시체 민노당이 왼쪽으로 간들 오른쪽으로 간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정치는 첫째가 세력이요 둘째가 대의명분이요 셋째가 지도자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소통구조다. 쌍방향 의사소통능력이 필요하고 신속한 의사결집능력이 필요하고 과단성있는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는 정당은 망한다. 그것을 못하는 세력은 죽는다. 그것이 없는 지도자는 몰락한다. 지식인 중심으로 가는 정당은 반드시 망한다. 지식인들에게 둘러싸인 지도자는 당연히 고립된다.

눈이 없고 귀가 없고 코가 없고 입이 없어서 죽는다. 생각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알아들어도 행동하지 못하니 죽는다. 소통하지 못해서 죽는다. 숨 막혀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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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과 한신이 비록 재주있다하나 왕이 되지는 못한다. 왜? 그들에게는 한 고조 유방이 가진 대중과의 소통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스스로 김대중, 노무현 보다 잘났다고 믿는 지식인 10만명 있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노무현 외에 없다.

진정으로 깨어나야 할 것은 지식인이다. 정책과 노선 속으로 도피하지 말고, 이념과 강령 뒤로 숨지 말고 조중동과의 거친 싸움판으로 나서라. 지금 당신들은 입이 없다. 조중동을 박살내서 입을 얻고 난 다음 그 입으로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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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자연을 재구성했다면 우리는 정치를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첨단 미디어로 무장한 각성된 대중이며 조중동의 압박을 물리치고 보다 너른 대중과의 소통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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