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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014 vote 0 2007.05.03 (16:58:14)

노무현 논객의 등장
오마이뉴스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이창호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84년부터 6년 반 동안 연희동 조훈현의 집에 내제자로 들어가서 숙식을 했다. 조훈현은 이창호를 위해 특별히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 정도면 사제지간이 아니라 부자지간이라 할 만 하다.

88년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하면서 이창호 돌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스승 조훈현과의 대결에서는 연전연패였다. 그무렵 신문사 바둑기전의 결승은 조훈현, 이창호의 사제대결로 되기 일쑤였고 승리자는 늘 조훈현이었다.

두 사람이 한 집에서 나와 나란히 대국장으로 이동해서 바둑을 두고 돌아가는 이상한 생활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손수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도 감겨주며 이창호를 키워온 부인 정미화 여사는 남편의 승리를 축하해야 할지 아들이나 다름없는 이창호의 패배를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묘한 상황이었다.

어느날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이창호를 보고 남편의 첫 패배를 깨닫는 기묘한 역설.. 누구를 칭찬할 수도 없고 누구를 위로할 수도 없다.

이창호가 조훈현을 꺾었을 때 흥분한 아나운서가 조사범에게 질문했다. ‘스승을 꺾은 제자가 기특하지 않느냐’고.. 이때 조훈현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내용을 필자가 기억은 못하지만 대략 의미를 옮기면)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제대결’이라 하지만.. 반상의 결투에 임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적수일 뿐이라고.. 사제관계라는 의식없이 대등한 위치의 프로기사 대 프로기사 간의 대결이며 그만큼 서로에게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15살 꼬마도 아니고 제자도 아니고 승부 세계의 라이벌일 뿐이라는 식의 냉정함이 느껴졌다. 필자는 조훈현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필자의 인식이 안이했던 것이다.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았을 때 ‘조훈현이 호랑이 새끼를 들였다’는 말이 있었다. 조훈현은 15살 꼬마 제자와 대국한 것이 아니라 ‘호랑이’와 마주하여 대국했던 것이다. 그런 자세로 승부에 임했던 것이다.  

이창호가 겸양하기 위해 스승에게 져준다든가 혹은 스승이 제자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타이틀을 하나 쯤 양보한다든가 하는 식의 일은 있을 수 없다. 프로 대 프로의 대결이다.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

언론이 사제대결로 타이틀을 달아 보도하는 일 자체가 이창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이창호가 핸디캡을 가지고 두는 즉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조훈현에게 또다른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조훈현에게는 그 많은 타이틀 중 하나 쯤 양보해서 ‘아름다운 미담’을 만들어 보라는 압박이 가해진다. 이창호에게는 감히 스승을 꺾을 수 있느냐는 압박이 가해진다. 스승이 봐줘서 쉽게 이긴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도 압박이 된다.

사제대결.. 흥미거리는 되겠지만 공정하지 않다. 이겨도 부담이고 져도 부담이다. 어쨌든 한 번 스승을 꺾은 이후 이창호는 연전연승으로 스승을 제쳐 버렸다. 그리고 짐을 싸서 연희동을 나왔다.

스승은 제자를 떠나보냈고 제자는 스승의 타이틀을 차례로 훔쳤다. 냉정하게도 말이다. 제 3자가 보기에는 누가 이겨도 부담이 없는 사제대결이었지만 두 사람의 내면에서는 용호상박의 진검승부였던 것이다. 인정사정 없는.

물론 두 사람 사이에 인정(人情)의 오고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4년 진로배에서 조훈현이 주장을 이창호에게 양보하고 부장을 맡아 이창호의 천적(?) 요다를 꺾어 이창호의 복수를 대신해주었는가 하면.. 주장이 된 이창호는 조훈현의 천적(?) 다케미야를 꺾어 스승의 복수를 대신해 주었다.

94년에 이창호는 스승이 주장을 양보했을 때 이를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95년에는 우겨서 주장을 양보하고 부장을 맡아 4연승을 일구었다. 뒷마무리로 섭위평은 주장 조훈현이 해결했고.

무엇인가? 이창호가 초반 스승에게 연패한 것은 꼼수로 이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연한 승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봐줘서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제지간에 아름다운 미담을 만들려고 하다가 도리어 상황이 우습게 될 수도 있었다. 조훈현은 제자라 해서 봐줄 생각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여 두는 것이 제자에 대한 예의다. 최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기는 것이 스승에 대한 예의다.

제자는 최선의 실력으로 스승을 이겼고 스승은 최선의 바둑으로 제자를 완벽하게 검증했다. 실력으로 이기는 것이 제자의 예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스승의 예다. 그러므로 그 이후는 완전히 이창호의 독무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자라 해서 봐주기라도 했다면.. 이후 패권이 급격하게 이창호에게로 옮겨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통터치는 완벽한 권력승계로 되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매우 살풍경한 것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무엇이 예의인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다. 봐주고, 양보하고, 서로 등 두들겨 주고, 눈 맞추고,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고, 배후에서 조정하는 것은 세간의 이야깃거리는 될 지언정 사제지간의 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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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예인가? 배려하는 것이 예다. 무엇이 배려하는 것인가? 봐주는 것이 배려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과연 그러한가? 노무현 대통령이 DJ를 봐준다면서 송금특검을 거부한다면 그것이 예인가?

노무현의 거부권 행사가 도리어 DJ의 명예회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가? 고수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DJ는 노무현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 예고 노무현은 철저하게 자력으로 일어서는 것이 예다.

DJ가 노무현을 봐주고 노무현이 DJ를 봐준다면 아름다운 미담이 되어 포장마차에서 술 먹고 떠들거리는 될것이나 정치적으로 불행해진다. 그러한 봐주기가 한나라당의 먹잇감이 되고 향후 정국의 운용에 커다란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조훈현과 이창호는 깔끔하게 끊었다. 인정이 있었으나 결코 그 정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의 권력승계는 살벌한 것이었고 -이창호가 상처받기 쉬운 15살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의 숨은 인정은 뒷날 요다와 다케미야를 응징할 때 간접 확인되었을 뿐이다.

최근 서프에서 일어난 논쟁과 관련하여 노짱방에서 나온 이런저런 말들이 생각나서 하는 이야기다.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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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남이 ‘바보노무현닷컴’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이 양반이 역설적인 의미로 ‘바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아니라 진짜로 ‘노무현=바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명계남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 분 행보.. 내가 보기에는 좀 그렇더라. 위태롭더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에 어떤 사람이 ‘꼴통노짱’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노짱’이라 한 것을 보면 대통령을 지지하는듯 하다. 그런데 ‘꼴통’이 뭐야? 이런 인간들.. 진짜 개념이 없다. 부아가 치밀었다. 아는 노빠가 그랬다면 찾아가서 귀싸대기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느낌..

‘바보 노무현’.. 선거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것도 하나의 전술이 되겠지만, 또 대통령의 우직한 정치행보를 비유하기 위해 역설적인 의미로 쓴다면 모르지만.. 비유가 아닌 상황에서, 선거전도 아닌 상황에서 공연히 이런 말을 한다면 진짜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예의가 아니다. 불쾌하다. 대통령도 속으로는 불쾌할 것이다. 겉으로 나타낼 사람은 아니지만. 참모들도 문제다. 눈치없는 자가 모르고 ‘바보’ 이런 말을 하면 찾아가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줘야지.. 그냥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은 이회창이 두려워서 노무현 찍는다-노무현을 지지해서가 아니라-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말이다.

대원군이 특별히 민비를 선택한 것은 민씨문중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안동김씨와 같은 세력이 없으니 만만해서 민씨가문을 선택한 것이다. 노무현이 만만해서 찍은 사람도 많다. (진정 노무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5프로 미만이다. 여러번 말했지만)

바보 노무현.. 노무현이 당선 후에 말 안들으면 물먹여서 어떻게 해 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회유하기 위해서다. 노무현은 적어도 크게 사고를 칠 위험인물은 아니라는 뜻.. 그러므로 안심하고 찍어도 된다는 뜻.

어떤 이유로도 바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 영삼 때 겪어봤지만 바보는 나라에 재앙을 가져온다. 반드시 그렇다.

분명히 말한다. 톨스토이 민화집에 나오는 ‘바보 이반’ 따위는 환상에 불과하다. 머리는 나쁜데 정신은 바르다? 평범한 국민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오천만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진 대통령 차원에서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머리가 나쁘면 절대로 바를 수 없다. 왜인가?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고 그런 사람은 한 방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간단하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면 된다. 잠못자게 만들면 된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물리적인 방어기제가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당하면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실제로 당해있는 상황을 조작하여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판하게 된다.

배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쓴다. 사전에 공식을 정해놓고 공식에 맞추어 대응하는 것이다. 매뉴얼대로 가는 것이다. 교범대로 가는 것이다. FM대로 가는 것이다. 시스템 위주로 가는 것이다.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지식인 특유의 스트레스를 피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인체의 물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환상을 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반드시 오판하게 된다.

‘머리는 나쁜데 감(感)은 있다?’ 야당대표라면 몰라도 적어도 대통령급에서는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지 않을 때는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이 중책을 맡으면 반드시 오판한다.

정치 9단을 자처하던 김영삼도 김일성이 죽자 돌연 바보가 되었다. 스트레스가 인간을 돌게 만든 것이다. 현철이 사고를 치자 스트레스를 받아 급속하게 퇴행하더니 결국 등신 중에서 상등신이 되었다.

강준만도 두 번씩 킹메이커를 해먹더니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 바보가 되었다. 과도한 책임감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이 잘못되면 내탓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인체의 물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런 신체작용은 기계적인 것이라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강준만이 변절한 이후 마음 하나는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속편하게 되었다. 잘되든 잘못되든 노탓하면 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 한마디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스트레스를 회피한 것이다.  

이명박 끌어내리는 방법도 간단하다. 50 대 50으로 상황을 교착시켜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면 등신본색을 드러낸다. 반드시 뻘짓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의 판단은 자기 정신력의 판단이 아니라 육체의 판단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레펠훈련을 받기 위하여 15미터 높이의 모형탑에 올라간다. 첫 번째 점프는 용하게 해낸다. 교관의 명령에 복종하여 점프를 한다. 그러나 그 추락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공포가 몸 속에 각인된다.

두 번째로 모형탑에 올라가면 쇠파이프를 잡은 팔의 근육이 경직되어 정신은 점프를 하라고 명령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굳어버린다. 이때는 대대장이 총을 머리에 겨누어도 점프를 못한다. 용기가 있는데 용기로도 못한다.

고소공포증을 극복할 정신력이 있어도 육체가 먼저 반란을 일으킨다.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정신이 육체를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식인의 매뉴얼을 가져야 한다. 아예 생각을 아니하고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사전에 판단해 놓은 것을 상황을 당하여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필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판한다. 필자는 이에 대비해서 역사의 경험칙을 동원하여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다. 이 경우는 뻔할 뻔자 이렇게 되고 저 경우는 뻔할 뻔자 저렇게 된다는 공식이 정해져 있다. 공식에 판단을 맡기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알아야 한다. 문명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예전에는 대통령 경호원을 뽑을 때 무림고수나 태권도 유단자를 뽑았는데 요즘은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 위주로 뽑아서 따로 무술훈련을 시킨다. 상황발생시 무림고수는 위기상황에서의 생존본능이 발동하여 비호같이 몸을 날려 달아나 버리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본능이므로 가르쳐도 안 된다.  

지식인 경호원은 평소에 수 없이 반복훈련한 매뉴얼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생존본능의 발동을 차단할 수 있다. 노무현은 훈련된 지식인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 20대에 지식인 훈련을 받았다면 노무현은 그 훈련을 30대 이후에 받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지식은 지속적으로 반복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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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천재다. 그러나 천재는 천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제갈량이 그 재주로도 사마의를 이기지 못했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끊임없는 도발에도 불구하고 응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재란 첫 한 점을 둘 때 마지막 한 점을 내다보는 사람이다. 한 번은 사회자가 이창호에게 물었다. 이 한 수에는 어떤 의미가 있죠? 이창호는 대답을 못한다. 왜? 이창호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왜 자기가 둔 수의 의미를 모를까? 모를 수 밖에. 천재가 두는 한 수는 상대가 이렇게 두든 저렇게 두든 상관없이 무조건 내가 이기는 수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내가 이렇게 두면 상대는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예상을 못한다. 천재라도 상대방의 마음 속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든 무조건 내가 이득을 보는 위치가 있다. 천재는 거기에 둔다.

노무현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할 필요도 없다. 정치의 밸런스 원리에 의해, 유권자의 균형감각에 의해,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든 무조건 이기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이 있다. 오늘 날에는 손자병법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손자병법을 유행시킨 것은 일본인들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사즉생’은 오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자병법은 교범위주의 정공법이다.

필자는 오자병법이야 말로 진정한 병법이라고 생각한다. 손자병법은 저급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그것으로 한 번의 전투를 이길 수는 있으나 그 수법이 두 번은 먹히지 않는다. 사람이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천재는 약은 수를 쓰지 않는다. 천재는 우직하게 외길을 간다. 왜? 그것이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고.. 그 신뢰로 하여 유권자가 자신의 행보를 예측하게 하고.. 그 방법으로 유권자와 소통의 채널을 마련하고.. 그 채널을 이용하여 결정적인 한 순간에 결정적 한 수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정치적 자산’ 말이다. 축적된 자산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가 그 사람의 정치행보를 신뢰하고 예측하는 정도가 바로 정치적 자산이다. 이 자산은 눈치를 보고 꼼수를 부릴수록 줄어든다.

DJ의 자산을 빌려보려고 동교동을 기웃거려서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정치자산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동영도 김근태도 한 때는 제법 축적해 놓은 자산이 있었으나 참여정부들어 거듭된 눈치보기로 다 까먹어 버렸다. 자산이 고갈되자 동교동을 기웃거린다. DJ인들 거덜난 인간에게 자산을 빌려주고 싶겠는가.

이창호의 수는 상대방의 응수를 복잡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창호의 행보를 예측하도록.. 스스로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거대한 심리적 밸런스의 축을 만드는 사전작업이었던 것이다.

상대는 이창호의 다음 수를 예측하려고 한다. 이창호는 막판에 조일 것이므로 미리 넉넉하게 집 수를 벌려놓아야 한다. 그러한 예단 때문에 무너진다. 그런데 요다는 평범한 바둑을 둔다. 한때 요다가 이창호를 이겼던 것은 평범하게 두는 요다는 그런 예측을 하지 않고 정석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노무현을 예측할수록 노무현에게 말린다. 노무현은 원칙대로 큰 길을 갈 뿐인데, 그 길에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바로 딴당이 스스로 판 제무덤인 것이다.

박근혜가 노무현의 연정제안에 화답을 했다면? 이명박이 개헌안에 찬성을 했다면? 그들은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그 경우 조중동의 공격을 받아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본능이 있다. 조중동의 존재 자체가 범이요 늑대다. 그들은 조중동 호랑이가 무서워 노무현의 모든 제안을 거절한다. 노무현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가한다. 끝없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 것이다.

노무현은 원칙과 상식에 따를 뿐인데 조중동 호랑이에 몰리고 여론조사 호랑이에 물린 그들에게는 노무현의 상식이 스트레스가 되고 노무현의 원칙이 스트레스가 되고 대한민국이 잘 되는 길이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 회피하려다가 제가 판 함정에 빠진다.

지금 박근혜와 이명박을 망치는 것은 두 마리 호랑이다. 조중동과 여론조사가 그들이다. 스트레스를 안받으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조중동도 무섭지 않고 여론조사도 무섭지 않다.

그런데 노무현은 자꾸 일을 만든다. 끊임없이 질문한다. 개헌약속 지킬 것인가 질문한다. 상식을 어기고 조중동의 눈치를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원칙을 어기고 여론조사 지지율에 연연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조훈현은 아들이나 다름없는 제자 이창호를 완벽하게 검증했다. 봐주지 않았다. 완벽하게 권력을 승계했다. DJ도 노무현을 봐주지 않았다. 탄핵을 앞두고 동교동 자택에 몰려가서 울부짖는 목소리를 눈 질끈 감고 외면했다. 봐주는 것이 도리어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고수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

노무현은 지금 차기 대선후보들을 검증하고 있다. 자신의 자리를 완벽하게 물려주기 위하여. 노무현의 성과를 완벽하게 물려받을 능력이 있는 자가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그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좋은 정치는 예측가능한 정치다. 시스템 대로 가고 매뉴얼대로 가고 교범대로 가고 정책대로 가는 것이다. 정치인의 가장 큰 자산은 ‘저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신뢰다.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려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 천재만이 반드시 바보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바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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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문이 비중있게 다룬 노무현 논객의 데뷔 칼럼을 오마이뉴스는 꽁꽁 숨겨두고 있다. 무엇이 두려워서일까?

퇴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글을 쓸 것이라는 사실이 뻔한데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그 예고편을 굳이 감추는 이유는?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침묵으로 버텨 보겠다? 개헌 제안에 침묵하다가 꾸지람 듣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 꼬락서니가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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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당 통합의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통합을 하려고 들지? 연합도 있고 연대도 있다. 통합은 원래 잘 안 된다. 정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3당야합은 통합이었다. DJP는 통합이 아니라 연합이다. 노몽은 연합이 아니라 연대다. 이번에는 더 낮은 수준의 제휴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책이 다르다. 정봉주의 가는 길이 다르고 내가 가는 길이 다르다. 그러므로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정책이 지식인의 지조다. 정책을 바꾸는 것은 지조를 버리는 것이다. 통합하려면 지조를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통합보다는 연합이 진일보다. 그러므로 연합보다는 연대가 진일보다. 그러므로 연대보다는 제휴가 진일보다. 이번에는 제휴다. 왜 모르나?

정책이 다른 이상 모든 통합은 야합에 불과하다. 통합이어야만 한다고? 대관절 정봉주 너는 누구와 비밀리에 통하여 두었길래 그렇게도 통하려고만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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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려면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DJ가 본진을 챙길 때 노무현이 외곽에서 새로운 전단을 열었다. 노무현이 본진을 챙길 때 유시민이 외곽에서 새로운 전단을 열어 활로를 개척해 주었다.

우리당의 본진이 망하자 노무현이 외곽에서 새로운 전단을 열어가고 있다. 노무현의 우리당 탈당은 정치발언을 쉽게 하기 위한 예정된 행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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