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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김기덕의 빈집은 흥행에 실패했다.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 다 쓸데없는 소리고(고뉴스에 낙인효과니 후광효과니 하는 분석이 있음.) 관객의 평가는 냉정한 법. 빈집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하나 뿐이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재미를 기대했는데 빈집에는 그 ‘재미’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빈집을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많은 관객들은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고 있지 않더라는 사실을 나는 확인했다.
 
관객들은 어렵지도 않은 김기덕의 영화를 두고 어렵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어렵게 생각하면 어렵다. 요소요소에 숨겨진 암호같은 코드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물론 나는 그 암호들 때문에 더 즐겁지만.)
 
내가 발견한 재미를 많은 관객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김기덕은 대한민국을 둘로 나누어버렸다. 김기덕 영화의 재미를 발견한 사람과 발견하지 못한 사람으로. 그리고 나는 김기덕 영화의 재미를 발견한 소수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행복해 한다.
 
빈집의 재미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세상은 그런 것이다. 홍어를 맛있게 먹는 사람과 홍어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홍어요리가 있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 중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많지 않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들도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일생에 한번만 보면 된다. 확실히 훌륭하긴 하지만 재미없기로 소문난 그의 영화를 다 본다는 것은 고통이다. 어쨌든 한번 쯤은 그의 영화를 봐야한다. 김기덕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 볼 필요는 없다.)
 
김기덕에게 올드보이의 성공과 같은 흥행과 작품성의 두마리 토끼 쫓기는 무리였다. 그래도 언젠가 한번 쯤은 대박을 내기를 기대한다. 열흘만에 저예산으로 후딱 찍어놓고 관객탓만 하지 말고 언젠가 한번은 100억 쯤 들여서 제대로 만들어보기 바란다.
 
용두사미가 된 '폰 부스'
‘폰 부스’라는 영화가 있다. 맨해튼 한복판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다. 매일처럼 여자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부스를 떠나려는 찰나 전화가 걸려온다. 무심코 수화기를 든다. 저쪽에서 한 남자의 협박이 들려온다.
 
“전화를 끊으면 넌 내 손에 죽어.” 그 남자는 이미 주인공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맨해튼의 빌딩군 사이 어디선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90분 동안 그 전화박스를 떠나지 못한다.
 
이 아이디어 기발하다. 대박이다. 헐리우드 최강의 진용이 달라붙었다. 영화는 그런 대로 되었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인색하다. ‘최강의 진용이 만든 범작.’ 이것이 정확한 평가다.
 
무엇인가? 헐리우드의 발달한 기획력은 아이디어만 좋으면 어떻게든 에피소드를 삽입하여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얼렁뚱땅 얼버무려 결말을 지은 결과 상품은 될지언정 예술은 되지 못한다. 미학적으로 완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디어 하나는 좋았던 '광복절 특사'
김상진감독의 ‘광복절 특사’를 예로 들수 있다. 한맥영화사 김형준사장의 아이디어를 김상진감독이 몇년동안 머리속에서 굴리다가 작가에게 맡겨 시나리오를 부탁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100분을 채워넣을 에피소드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시나리오의 귀재 박정우작가에게 맡겨 대충 얼버무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기발함에 비해 뒷심이 딸리는 점은 속일 수 없다. 이 영화 역시 흥행으로는 성공했으나 작품성으로는 의미가 없다.  
 
김기덕의 ‘빈집’을 두고 여전히 적대적인 쓰레기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아이디어 하나만 기발하다’는 식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 아이디어 던져줄 테니 니가 직접 영화 만들어봐라.’ 사실 빈집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영화가 안된다는 점이다. 폰 부스의 경우는 헐리우드 최강의 진용이 달라붙었기에 에피소드들을 억지로 구겨넣어 그럭저럭 90분을 땜방할 수 있었고, 광복절 특사도 원래 안되는 건데 박정우작가의 솜씨로 겨우 영화의 틀은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영화가 안된다. 이론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요는 이론이다. 김기덕의 성공은 아이디어의 성공이 아니라 이론적인 성공이다. 문제는 그 이론을 평론가들이 찾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폭영화가 성공한 이유
한국영화가 흥행에 잇따라 성공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조폭영화의 출현 이후부터다. 조폭영화의 원조는 무엇인가? ‘주유소 습격사건’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악당이 주인공인 상황에서 주인공이 죽지 않은 채로 영화가 결말을 지었다는 점이다.
 
이거 쉽지 않다.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시나리오의 귀재인 박정우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최민식의 파이란과 같이 단지 영화를 끝내기 위한 목적으로 주인공을 죽이는 태도는 바람직 하지 않다.)
 
많은 한국영화들이 실은 은연 중에 주유소 습격사건을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후 조폭영화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 이유는 악당인 조폭들을 극 속에서 죽이지 않고도 영화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찾아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악당인 주인공들이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죽어버리는 수 외에는 영화를 끝낼 방법이 없었다. ‘권선징악’이라는 봉건적 논리의 틀을 탈피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보다 더 나쁜 악당을 설정하여, 주인공인 소악당이 대악당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내는 편법을 동원해보지만 그 역시 권선징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선과 악의 대결’에서 ‘고수와 하수의 대결’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이다.
 
원래 서부영화는 철저하게 권선징악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다. 언제나 보안관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갱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등장한 것이다. 더 이상 보안관이 승리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아직도 ‘권선징악’이라는 봉건적 틀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보기 어렵다.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도 많지만 대개 악당이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주인공보다 더 흉악한 악당을 제거하는 것으로 역할을 인정받기도 한다.(대부분의 조폭영화들이 그렇다) 이런건 진짜가 아니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관점을 버리고 고수와 하수의 대결로 완전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주유소 습격사건의 경우 주인공들이 악당이긴 하지만 너절한 하수는 아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이 악당영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수법(막판에 모든 등장인물을 한곳에 모아놓고 폭파시키는)을 전수하기는 했지만 역시 불완전하다. 예컨대 이성재(노마크)가 돈만 밝히는 코치가 싫어서 야구를 그만두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과거를 변명하는 짓은 사실이지 너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악당이면 그냥 악당이지.. 원래 속마음은 착한데 환경이 워낙 안좋아서 결국 나쁜 쪽으로 인생이 풀리고 말았다는 식의 변명을 해서는 안된다. ‘달마야 놀자’의 착한 조폭이라는 설정도 조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면에서 극의 긴장을 떨어뜨린다. 이는 작품성의 실패가 된다. 그 결과 코미디가 되고 말았다. 하긴 코미디가 되어서 돈벌었지만.
 
왜 김기덕의 빈집인가?
빈집은 하루 종일 이야기 해도 다 못할 만큼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영화의 주제가 아니라 형식이다. 박정우-김상진 콤비식 끝내기가 다죽어가는 한국영화를 살렸던 사실에 점수를 주어야 하듯이 ‘김기덕식 끝내기’를 완성했다는 점을 평가해주어야 한다.
 
등장인물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아놓고 폭파시키는 박정우식 끝내기도 확실히 재미가 있지만 그건 코미디로나 가능할 뿐이다. 김기덕식 끝내기가 박정우식 끝내기보다 한 수 위다.
 
왜 김기덕인가? 세계가 김기덕에게 그 한 수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김기덕식 끝내기 초식을. 악어의 경우가 그렇다. 주인공 용패는 악당이다. 그가 개과천선 한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폭이 개과천선 해서 착한사람 되었다는 말은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했다는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뻔한 거짓말이다. 김기덕은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악어는 어떻게 결말을 지을 수 있었는가? 그는 악당에서 선한 사람으로 돌변하지도 않고 자기보다 더한 악당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사면받지도 않는다. 정면으로 승부한다. 그리고 성공했다. 악어는 아직도 한강에 살아있다. 여전히 악어인채로.
 
대부분의 영화는 예측이 된다. 다음 상황이 어느 정도 예측된다. 예측을 벗어나는 반전영화도 있지만 그 경우라도 기존의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단순뒤집기에 불과하다. 김기덕은 차원이동을 한다. 한 차원 위로 점프해버린다. 그래서 예측불가다.
 
마주달리던 두 열차가 충돌한다. 충돌을 피하는 방법은? 궤도를 수정하거나 브레이크를 거는 수 뿐이다.(궤도를 수정한다는 것은 조폭영화처럼 더 지독한 악당을 퇴치해주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죄를 사면받는 것을 의미한다.)
 
김기덕은? 차원이동을 한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점프해버린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혼란을 느낀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공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단순구조에서 입체구조로, 선에서 면으로 비약한다.
 
빈집에서 태석이 구속되었을 때 사실상 영화는 결말이 났다. 태석이 구속된 채로 끝난다면 영화는 실패다.(주유소 습격사건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경찰에 잡혀서 감옥을 가는 것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태석은 다시 돌아온다. 선화의 집으로. 태석과 선화의 승리다. 어떻게 그 러한 승리가 가능한가이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열차가 충돌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궤도수정? 패배다. 브레이크? 패배다. 승리는? 1차원의 선로를 달리던 개미가 3차원의 입체로 도약하는 방법은?
 
충돌하고도 견뎌내는 거다. 강해지는 것 뿐이다. 선화는 강해진다. 남의 빈집에 들어가서 태연히 낮잠을 자고 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
 
그것은 무엇인가? '부분과 전체의 대결'이다. 옛날 영화는 선과 악이 대결하여 선이 승리한다. 요즘 영화는 선과 악의 2분법을 극복하고 있다. 고수와 하수가 대결하여 고수가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 것이 보통이다. 김기덕의 영화는 부분과 전체가 대결하여 전체가 승리한다.
 
영화는 돌연 부분에서 전체로 도약해버린다. 관객은 어리둥절해 한다. 김기덕의 공식은 마지막에 와서 그 ‘전체’를 드러내기다. 그래서 김기덕은 우주를 축약한 고립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악어가 서식하는 한강.. 섬의 저수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절이 떠 있는 주산지, 어떤 고립되고 폐쇄된 공간. 그 공간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저울 속이다. 그 공간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4인은 마지막에 줄행랑을 놓았지만 선화와 태석은 집으로 돌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겨울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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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의 군중이 있다. 그 많은 무리들 속에 너와 내가 있다. 내가 태어난 이후 네가 이 세상이 없었던 적은 1초도 없었다(어떤 일본영화의 대사?)지만... 나는 너를 만날수 없다. 너는 나를 찾을 수 없다.
 
우리가 그 무리들 속에 섞여 있는 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만날 수 없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 무리들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대는 극점에 서 있어야 한다. 가장 앞이거나 가장 뒤거나 가장 높거나 가장 낮은 곳.. 극점에 서 있어야만 나는 너를 만날 수 있다.  
 
김기덕의 빈집을 본 특별한 소수가 된 당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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