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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222 vote 0 2004.10.16 (19:17:17)

이승만은 어쩌면 대단한 포퓰리스트다. 그가 전격적으로 실시한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혁명적이다. 포퓰리즘으로 유명한 남미 여러나라들에서도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토지개혁은 공산당보다 더 악랄한 빨갱이(!) 수법이었다. 토지개혁이 무엇인가? 부자들의 땅을 그냥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사유재산 제도를 원천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승만을 좌파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요는 ‘이상주의’다. 이승만의 이상주의가 좌파의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여러 정책들에 좌파적 요소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이승만이 토지개혁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수도.)
 
박정희의 정책들도 다분히 좌파적이다. 북한이 먼저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흉내낸 것이나, 천리마운동을 모방하여 새마을운동을 벌인 것이나 확실히 빨갱이 수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박정희를 좌파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박정희가 꿈꾸는 ‘부국강병’의 이상이 ‘더불어 살자’는 좌파의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이상주의’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이다. 더불어사는 세상을 꿈꾸면 좌파가 맞고, 남을 제치고 그 위에 올라서자는 식의 부국강병을 꿈꾸면 우파가 맞다.
 
DJ와 노무현은 우파정권?
마찬가지로 DJ나 노무현의 몇가지 정책을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우파정책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개별적인 정책들을 논거로 삼아 그 정권의 본질까지 우파라고 단정하여 말하는 찌질이들의 태도는 온당치 않다.   
 
필자가 이런 논의를 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기계적인 2분법이 얼마나 오류에 차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앞에서 역설적인 방법으로 설명했듯이 그거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본질을 두고 논해야 한다. 본질은 개별적인 정책 하나하나가 아니라, 이 정권을 창출한 주체세력이 공유하고 있는 이상주의다. 또 그 이상주의를 만들어낸 역사의 필연이다.
 
둘째는 좌파든 우파든 막론하고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맹랑한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수구들이 보통.. 자본주의의 원리가 어떻고 하며 시비를 거는데.. 이승만과 박정희는 그들이 말하는 ‘원리’를 간단히 무시하고 있다.
 
왜? 전쟁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원칙무시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요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차별로 용인된 것이다.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조중동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그 맹랑하기 짝이 없는 원리(?)를 뛰어넘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지지자라면 맹랑하기 짝이 없는 그 원리원칙(?)을 뛰어넘어 지도자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
 
그것이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고 가는 것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가리켜지는 달을 보고 가는 것이다. 좌우를 떠나.. 우리는 역사의 필연이라는 큰 길을 가는 것이며 좀스럽기 짝이 없는 찌질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다.(좌인지 우인지는 끝까지 가보면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  
 
성매매특별법 좌파정책 맞다
앞에서 말했듯이.. 법안 하나 하나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매매특별법은 성격상 봉건적 가부장제도를 옹호하는 우파들이 먼저 지지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가정을 보호하자는데 이를 반대한다면 빨갱이가 아닌가? 서구 일부에서는 역으로 좌파들이 앞장서서 성매매를 용인하자는 분위기다. 그러므로 성매매특별법을 우파정책이라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어떤 이상을 바라보고 이 항해를 하는가이다. 우파들이 앞장서서 지지해야 하는 성매매특별법을 두고 좌파라며 열을 올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자. 그들은 성매매특별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성매매특별법이 촉매로 작용하고 있는..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들이 공유하게 될.. 아직은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고 있는.. 그 이상주의가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여권(女權)을 옹호하고 가정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안내용보다는 진보세력들이 설계하여 국가의 역할이 커진다는 그 자체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커질수록 우리가 더 많은 부분을 장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매매 허용하는 김에 인신매매도 허용하자
그래 좋다. 원리원칙 좋아한다니까 자본주의 원리원칙 대로 가보자. 자발적인 경우에 한하여 인신매매의 자유를 허용하자. 자발적인 노예도 인정하자. 가난한 청년이 병든 부모를 위해 장기매매를 원할 경우 허용하도록 하자.
 
본인이 원한다면 노예결혼도 허용하고 심청소녀의 공양미 삼백석도 인정해주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범죄가 만연한다. 인신매매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어찌 범죄의 논리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먹고 살자고 성을 매매하는 사회에서.. 먹고 살자고 도둑질을 하겠다는데 누가 말린단 말인가?
 
사회는 하나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를 부인하고서야 어찌 도둑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울타리는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를 떠나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나면 멈출 수 없다. 그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총기소지도 허용해야 한다. 막 가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역으로 노예매매가 금지되었기에 인신매매가 금지된 것이다. 인신매매가 금지되었기에 장기매매도 금지된 것이다. 장기매매가 금지되었기에 성매매도 금지되는 것이다. 이렇듯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이다. 그것이 좌파와 우파를 넘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마땅히 우리가 꿈꾸어야 할 우리의 이상주의다.
 
결론적으로.. 성매매특별법은 좌파정책일 수도 있고 우파정책일 수도 있다. 둘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수도 있다. 중요한건 어떤 목적을 가졌는가, 그리고 누가 주도하는가, 그리고 어떤 역사의 흐름을 타고 있는가이다.  
 
결국 다 정리하고 정답을 내는 것은 역사다. 역사를 믿는다면 좌우를 떠나 그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의 불길에 기름붓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신발끈 고쳐매고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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