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일수록 지성의 목소리가 간절하다. 사방에 개 짖는 소리 가득할 뿐 사람 목소리 하나 들을 수 없다. 언론은 감성팔이 신파찍기 눈물쇼에 분주하다. 슬프다. 너희가 인간인가? 인간증명은 무엇인가? 소돔과 고모라에 없었다는 열 사람의 의인이 한국에 있는가? 박근혜가 무얼 잘못했지? 박근혜가 움직였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 유병언이 무얼 잘못했지? 유병언이 OJ 심슨 변호사를 써서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과연 유죄를 받았을까? 해경은 무얼 잘못했지? 해경이 많은 생명을 구했으니 상을 줘야하는거 아냐? 전쟁이 벌어진다. 적의 포탄이 빗발친다. 특공대 10명에게 임무를 줘서 보냈는데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 지옥을 탈출해온 한 명에게 또다시 임무를 줘서 보낸다. 왜? 다른 넘은 어차피 보내봤자 실패하므로. 가장 유능한 병사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질 수 밖에 없다. 군대에서는 중간만 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지휘관은 이기는 결정을 해야 한다. 영웅 하나를 죽여서 중간만 하는 평범한 다수를 살린다. 실력 없는 병사를 보내봤자 어차피 개죽음이니까. 우리는 착한 사람이 희생되고 악당이 보상 받는 모순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왜 박근혜가 유죄인가?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왜 유병언이 유죄인가?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왜 해경이 유죄인가? 그래야 대한민국이 산다. 법 조문을 시시콜콜 따지고 한동훈 뻔대술을 쓰면 박근혜, 유병언, 해경은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안한다. 왜 용산 경찰은 유죄인가? 거긴 전쟁터니까. 전멸 판정을 받은 것이다. 죄가 있어서 폭탄에 맞는게 아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폭탄을 맞는다. 세월호 해경이 유죄라면 이태원 경찰도 유죄다. 김건희 기술을 쓰면 세월호 이준석 선장도 무죄다. 유죄라는 증거가 있나? 이준석 선장을 처벌한 부작위범 개념은 지금까지 재판에서 인정된 적이 없다. 법원이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이준석을 처벌했다. 의회 대신 법원이 입법한 셈이다. 왜 국회가 할 일을 법원이 하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태가 재발하고 더 많은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이지중대만 해낼 수 있는 임무가 있다면 이지중대를 한 번 더 지옥에 보내야 한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하는 프레임 걸기 기술로 도피한다. 전쟁터에서 그런 프레임 놀음이 통하겠는가? 남탓하며 책임의 범위를 좁히는 사람은 자신을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구조론을 읽을 자격이 없다. 군중은 숫자가 많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므로 군중은 지도자 한 사람에게만 힘을 몰아줘서 단기 실적 위주의 성과주의로 간다. 장기 계획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은 없다. 군중은 오래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만만한 놈을 조진다. 작은 것은 해결하고 큰 것을 방치한다. 유병언 하나만 잡자거나 박근혜 하나만 잡자거나 하며 범위를 좁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생색낸다. 일회성 분풀이는 되나 사태의 재발을 막지 못한다. 축제에 간 사람은 잘못이 없다거나, 정권은 죄가 없다거나, 경찰은 죄가 없다거나 하는 식의 좁혀먹기 프레임은 잘못된 것이다. 축제에 간 사람 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모르는 사람은 죄 없다. 아는 것이 유죄다. 아는 사람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면 잘못한게 맞다. 이지 중대가 임무를 완수하면 한 번 더 지옥 속으로 보낸다. 그걸 알면서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유능한게 유죄다.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어야 했다는 열 명의 의인이 한국에는 있는가? 의인이 대한민국의 1/3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돌아간다. 이태원에 모인 사람 중에 1/3이 아는 사람이고, 의인이고, 지성인이고, 적어도 똥오줌은 가리는 지도자감이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태원에도 의인은 있었다. 1/3은 아니고 1/10도 아니었다. 1/100도 아니고 1/1000은 될지도 모른다. 극소수의 의인들이 112에 전화를 했다. 상인들 중에는 없었다. 그들은 인간증명에 실패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도입부에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군중이 양떼로 바뀐다. 찰리 채플린은 이 사태를 예견한 것이다. 그날 이태원에 양떼는 있었는데 목자는 없었다. 비겁하게 남탓 프레임에 숨는 자는 양떼이지 목자가 아니다. 유죄냐 무죄냐는 법조문에 의해 가려지는게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사느냐에 의해 가려진다. 지도자는 한계점을 넘어 거기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박근혜, 유병언, 이준석, 해경은 김건희, 한동훈처럼 법꾸라지 기술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국민이 처벌하라니까 처벌한 것이다.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처벌한 것이다. 이지중대를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투입하듯이. 전쟁은 원래 그렇게 한다. 여전히 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