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과 백남준의 대담 일부다. "당신의 성공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에 있어서는 노력이 별것은 아닌 것 같다. 착안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당신은 천재가 아닌가?" "난 천부적 재능은 없다. 친구들을 잘 사귀었을 뿐이다. 친구들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유명해진 것이다.” 진짜와 가짜는 다르다. 때로는 3초 안에 가려진다. 전광석화처럼 스치는 장면이 있다. 전율하게 한다. 필자가 상원사 동종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걸 3초 안에 못 알아보는 밥통들과 대화를 해야 하나? 딱 보면 알잖아. 말이 필요한가. 솔직히 답답하다. 느낌의 반도 글로 옮기지 못한다. 김용옥은 대중에 아부하는 자다. 이런 자는 길바닥에 널려 있다. 하긴 밥 먹어야 하니깐. 백남준의 성과는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대중이 듣기 원하는 말이다. '나도 안 해서 그렇지 성공할 수 있었어.' 대중은 이런거 되게 좋아한다. 위로받으려는 소인배의 어리광이다. 백남준은 장사꾼 행동을 정면으로 깬다. 김용옥 뒤통수를 후려친다. 용옥은 자신이 얻어맞은 줄도 모른다. 예술의 성과는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용옥은 소인배 짓을 추가한다. '그렇다면 백남준 당신은 타고난 천재야.' 기어코 한 방 더 얻어맞는다. '나? 줄 하나는 잘 섰지. 남들 뒤에 따라가다가 지갑 주웠지.' 세력에 가담하면 누구나 천재 행세를 할 수 있다. 이 점 구조론과 통한다. 천재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평범한 수학공식에서 나온다. 포드 시스템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투자비는 좀 들지만.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도 진작에 나와 있던 아이디어다. 신통방통한 기술이 아니다. 구조론은 하나의 방정식이다. 방정식은 아이디어 공장이다. 포드시스템으로 생각을 복제한다. 평범한 생각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세력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문명의 흐름에 맞춰가는 거다. 어느 나라든 흥하는 시대에는 거대한 물결이 있었다. 일본 만화의 양산박이라는 토키와장이 유명하다. 천재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다른 만화가들과 한 건물에 합숙하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다. 흑인음악이 성공한 것도 대놓고 표절하던 관행 덕분이었다. 그냥 해먹은 것이다.
흑인들이 저작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음악을 가장 알차게 해먹은 사람이 엘비스 프레슬리다. 에미넴은 거기에다 백인 탈을 씌웠을 뿐인데 대박이다. 김용옥은 '예술은 노력이다' 혹은 '백남준은 천재다'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유행이고 유행을 만드는 것은 패거리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에 천재가 안 나타나는 이유는 패거리가 안 생겨서다. 고독한 천재라는 것은 대략 환상이고 대부분 패거리가 있다. 물론 한두 명의 천재는 있다. 세종은 진짜 천재다. 아인슈타인도 천재다. 패거리 중에도 핵심이 있다. 객차를 이끄는 기관차가 있다. 백남준이 독일을 다 뒤져봐도 아는 사람은 다섯 정도뿐이더라고 했다. 나머지는 그냥 흐름에 묻어간다. 중요한 것은 천재가 있어도 흐름을 만들지 못하면 잊혀진다는 거다. 일본에도 근대적인 자유주의를 설파한 천재 철학자가 300년 뒤에 다락방 헌책더미에서 발견되었다고. 세종은 왕이었기 때문에 먹힌 거고 왕이 아니었다면 보나마나 씹혔다. 인상주의를 주도한 화가들 중에는 자신은 인상주의 작가가 아니라고 부정한 사람도 있었다. 답을 알고 가는 길이 아니다. 주인공은 문명 그 자체다. 역사의 흐름, 문명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촉각이 중요하다. 사람은 옳으니 그르니 따지기 좋아하지만 정답은 흐름이다. PC정책이 먹히는 이유는 그게 팔리기 때문이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백설공주를 만들었는데 팔리네? 장사가 되네? 그게 흑설공주지 백설공주냐고 비아냥하는 사람 덕분에 입소문으로 바이럴 마케팅이 저절로 되는데? 문명이 꿈틀거리면 흐름이 만들어지고 화상과 작가와 소비자의 밀당 속에 방향성이 만들어진다. 팝아트를 주장한 앤디 워홀의 작품은 팝아트가 아니다. 대중적인 소재를 선택한답시고 마릴린 몬로 사진이나 만화를 이용하고 대량생산을 한답시고 판화를 찍었지만 그것이 개념이다. 앤디 워홀이 주장하는 대중성은 컨셉이고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난해하다. 대중은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 개념미술은 대략 실패고 성공한 것은 대부분 반예술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뒤샹, 앤디 워홀, 바스키아, 뱅크시는 부르주아 계급의 취미생활인 예술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업도 같은 맥락이다. 왜 반예술이 예술이 될까? 예술의 출발이 공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art는 원래 장인의 손재주다. 예술의 원래 의미가 예술이 아니라 공예였기 때문에 공예를 파괴할수록 예술이 되는 것이다. 반면 동양의 예술은 선비의 기개를 나타내는 것이다. 동양인에게 예술은 선비의 수행이다. 동양화는 원래 인상주의다. 사람을 깜짝 놀래키려는 저급한 의도가 없다. 서양의 화려한 건물이 촌놈을 놀래킬 의도가 있는 것과 다르다. 못 배운 중세 서양의 왕들은 사람을 기죽이기 위해 거대한 궁궐과 화려한 초상화를 그렸다. 루이 14세의 초상화에는 그런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점잖은 조선 선비의 그림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예술은 의도의 배제가 중요하다. 본질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의도가 있으면 권력이 죽는다. 황제가 짐인 이유는 백성이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순간 인간들이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다. 제우스 신의 신들의 우두머리인 이유다. 제우스의 불벼락은 그대가 방심할 때 내려꽂힌다. 알면 누가 벼락에 맞겠는가? 칼뱅의 예정설도 같다. 구원될지 안 될지 신도가 알면 곤란하다. 신만 알고 당신은 모른다. 모르면 복종하고 알면 기어오른다. 기어오르면 지가 작가가 되겠다고 설친다. 개념미술이 난해한 이유는 그대가 기어오르지 못하는 방향으로 기동한 까닭이다. 상품은 쓸모가 있다. 쓸모가 있으면 알게 되고 알면 권력이 죽는다. 건담 수집가들은 포장도 뜯지 않고 모셔둔다.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사람을 탄복하게 하려는 의도, 눈물 콧물을 쥐어짜려는 신파, 감동을 선사하려는 의도, 노동자를 계몽하려는 의도가 있으면 안 된다. 진정한 예술은 전율하는 것이다. 어떤 만남의 순간에 인간은 전율한다. 만남의 순간에 방해자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예술은 미니멀리즘을 따른다. 장편보다 단편이 문학적 가치가 높다고 말하는 이유다. 장편은 원고 한 장당 얼마로 돈을 받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들어갈밖에. 중국풍의 화려한 가구나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가구가 쓰레기인 이유는 돈을 더 받기 위해 기계 놔두고 일부러 수공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제프 쿤스는 대놓고 기계로 생산하잖아. 장인의 손재주? 그건 공예다. 한국종과 중국종, 일본종을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한국종은 비천상이 주인공이므로 주변을 비운다. 중국종과 일본종은 칸을 복잡하게 나누고 뭔가로 빼꼭하게 채운다. 여백이 없다. 왜? 몇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예술은 만남이다. 예술은 모르는 사람에게 초대장을 날리는 것이다. 의도가 있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의도를 모르겠어.’ 이런다. 의도를 배제하는게 의도라는 것을 이해시키기는 참으로 어렵다. 남녀가 만나더라도 다른 의도가 있으면 불쾌하잖아. 예술은 권력이다. 권력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향을 미치려면 방해자가 없어야 한다. 사람들이 순수를 찾는 이유는 거기서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과거 키부츠에서 공동육아를 했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남녀는 커플이 되지 않는다. 침팬지도 같은 어미에서 나오면 헤어진다고 한다. 개도 오누이를 같이 키우면 싸운다. 궁극적으로 예술은 인간의 본능이다. 예술은 인간의 본능이 반응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과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