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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00 vote 0 2018.05.28 (17:12:18)

      
    깨달음이라야 한다       


    깨달음은 어떤 특정한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존재가, 자연이, 언어가, 인간의 뇌구조가 모두 깨달음의 복제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다. 사건은 플랫폼에 에너지가 입력되면 동일한 패턴을 대량으로 복제한다. 하나의 자궁에서 무수히 쏟아진다.


    복제본은 원본에 에너지를 의존한다. 원본이 복제본을 주변에 거느리고 세력을 이루면 방향성이 성립하여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우주의 팽창이고 생물의 진화이고 문명의 발달이고 자본의 번영이고 삶의 풍성함들이다. 사물이냐 사건이냐다. 사물의 세계와 사건의 세계는 방향이 다르다.


    사물의 세계는 다르다에 주목하고 사건의 세계는 같다에 주목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자궁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자궁은 같다. 플랫폼이 같다. 결과가 다르면 원인이 같고, 끝단이 다르면 시작이 같고, 꼬리가 다르면 머리가 같고, 부분이 다르면 전체가 같고, 출력이 다르면 입력이 같다.


    사물의 결과가 다르면 이름을 붙여 구분한다. 사건의 플랫폼이 같으면 이름이 없다. 존재의 자궁은 이름이 없다. 왜냐하면 경계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로 가리켜 지목될 수 없으므로 깨달음이다. 에너지나 플랫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깨달아야 한다.


    형식과 내용의 이중구조다. 랑그 속에 빠롤이 있다. 전제 속에 진술이 있다. 맥락 속에 의미가 있다. 관점 속에 팩트가 있다. 연결 속에 사물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절차가 반드시 있다. 에너지의 유도 속에 일의 처리가 있다. 사슬로 연결되어 존재를 이룬다. 당신이 어떤 말을 했다면 그 말은 틀린 말이다.


    당신이 입을 떼기도 전에 허튼소리다. 언어의 그릇에 담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진술을 말하는 자는 전제를 속이려는 자다. 의미를 말하는 자는 맥락을 속이려는 자다. 팩트를 말하는 자는 관점을 속이려는 자다. 내용을 말하는 자는 형식을 속이려는 자다. 이 사슬구조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원초적으로 없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어떤 말을 하든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틀어져 있다. 프로토콜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주파수가 다를 때 유일한 해결책은 배제하는 것이다. 진보가 보수를 설득하려 하면 실패한다. 진보는 세력을 이룬 다음 보수를 배제하는 방법으로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애초에 말은 소용없고 물리적 실천으로만 해결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깨닫는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나'의 개입이 그 연결을 끊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우주의 문제이지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무엇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진술될 수가 없다. 깨달음은 우주의 작동원리로 그저 있는 것이다.


    당신은 깨달음의 배에 승선을 하든지 말든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진보팀에 들지 보수로 남을지 선택할 뿐이다. 대승의 배에 승선할지 소승으로 남을지 선택할 뿐이다. 깨달음은 무리가 세력을 이루고 함께 가는 것이며 인간은 가담하거나 남거나 뿐이다. 천하가 함께 나아가는 길에 당신은 선택할 수 없다.


    자기소개 금지다. 개인이 마음의 평정을 찾고 삿된 것에 홀리지 않으며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정도의 문제라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구할 일이다. 깨달음은 당신과 상관없는 존재 자체의 전략이다. 동물은 생태계의 전략을 따르고 개인은 집단의 전략을 따르고 병사는 지휘관의 전술을 따라야 한다.


    대승의 배에 올라타야 한다. '나'를 배제하고 함께 어우러져 큰 길을 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원래 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일이다. 당신의 결정이 집단의 무의식에 의해 조종됨을 깨달을 일이다. 당신의 결정이 미리 주어진 큰 그림 안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일이다. 자궁의 존재를 깨달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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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정보를 처리하는 뇌와 외부정보를 받아들이는 눈코귀입몸 신체감관과 타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를 쓴다. 언어는 원시인이 얼떨결에 발명한 것이니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눈코귀입몸의 감각신호는 호르몬에 의해 감정으로 증폭되는 과정에서 왜곡된다. 인간의 뇌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인간의 뇌와 감각과 언어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아채고 그것을 바르게 고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의 뇌는 야생에서의 생존환경에 맞추어져 있다. 초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정보처리 능력이면 충분하다. 맹수와 다투는 야생환경에서는 즉각적인 대응능력이 필요할 뿐 고도의 추론능력은 필요하지 않다. 영리한 사람보다는 용맹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지혜로 생각하기보다 경험이 많은 동료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능은 의사소통 위주로 발달했다.


    간단히 말하면 깨달음은 귀납에서 연역으로 사유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귀납이 개별적인 정보들을 다룬다면 연역은 이미 획득한 확실한 정보를 개별적 사실에 대입하여 복제한다. 귀납은 자신의 지식을 동료들에게 전달하는데 쓰고 연역은 새로운 지식을 창발하는데 쓴다. 인간은 대개 귀납에 의지하지만 착각이다. 뇌기능적으로는 연역만 있고 귀납은 없다. 정확하게는 '귀납적' 태도라 하겠다.


    귀납은 부분에서 전체로 간다. 개별적 사실에서 보편적 원리를 구한다. 그냥 보편적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바람이 분다. 비가 올 조짐인가? 할아버지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인간은 대개 이러한 귀납적 학습방법으로 지식을 획득한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알려준 것이다. 즉 귀납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보급하는 것이다.


    개별적 사실에서 전체의 원리를 추측할 수 있으나 그 자체로는 지식이 될 수 없고 반드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증원리는 연역이다. 연역적 검증의 수단은 대개 수학이다. 진정한 지식은 모두 수학에 의지하며 수학이 연역을 쓰므로 연역이 유일한 지식의 획득수단이다. 귀납은 현장에서 자료를 모으고 학습하고 전달하는데 쓰인다. 지식의 획득수단은 연역이며 귀납은 보조적 수단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그 수학의 근거는? 가장 확실한 것은 인간에 의해 가리켜지는 개별적인 지식내용이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인간의 뇌구조 그 자체다. 왜냐하면 뇌구조가 틀렸다면 연산을 할 수 없을테니까. 만약 언어가 틀렸다면 서로 간에 말이 안 통할테니까. 수학 위의 것은 뇌구조와 언어구조다. 뇌구조와 언어구조는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검증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연역되어 수학이 일어난다.


    문제는 인간이 뇌기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천재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는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거지 논리적으로 사유해서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연산작용은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난다.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힘을 주다 보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는 CPU에 모니터를 달았다. 


    컴퓨터가 일하는 과정을 모니터로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그런게 없다. 뇌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면밀히 살핀다면 뇌 안의 컴퓨터 메모리 역할을 하는 영역에서 적확하게 연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뇌 속에 가상의 테이블을 펼치고 거기에 여러 카드들을 배치해 보면 대칭과 호응에 의해서 적합한 짝이 찾아진다. 바둑고수라면 바둑알의 배치를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훈련된 사람이라면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직관적인 사유를 논리적으로 재현해 보일 수 있다. 그것은 근원의 완전성이다. 그 완전성을 복제하는 것이다. 수학으로 치면 덧셈과 뺄셈은 자의 눈금을 옮기는 것이다. 낮은 수준이다. 눈금을 입체적으로 쌓으면 자에서 콤파스로 도약한다. 콤파스를 다시 입체적으로 쌓으면 됫박이 되고 됫박을 입체적으로 쌓으면 저울이 된다. 바둑판은 평면구조다. 


    바둑 고수는 머리 속에 평면으로 된 테이블을 펼친다. 직관은 그것을 평면에서 입체로 도약시킨다. 콤파스가 평면이면 됫박은 입체다. 다시 저울로 도약시킨다. 입체에서 한 단계 더 집적한다. 최대한 입체적으로 쌓아올린 상태 곧 밀도를 끌어올린 상태에서 작동하는 대칭과 호응의 구조를 떠올릴 수 있다. 머리 속에 입체 혹은 저울 형태의 고도화된 테이블을 펼쳐놓고 사유를 하는 사람이 천재다.


    동물은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 혹은 일부 통한다 해도 낮은 수준이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완전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것을 포착하고 복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 그 자체를 지식의 궁극적인 근거로 삼아야 한다. 컴퓨터와 같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것이 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뇌가 하나의 지식을 열 개의 지식으로 복제하고 있다.


    컴퓨터는 복제의 도구다. 컴퓨터는 주산을 고도화 시킨 것이다. 주판알은 손가락 끝부분을 복제한 것이다. 주먹구구는 자연의 사실을 손가락으로 복제한다. 주산은 다시 손가락을 주판알로 복제한다. 컴퓨터는 0과 1의 기호로 주판알을 복제한다. 복제의 원리는 모두 같다. 자연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방법이나 인간의 뇌가 직관하는 원리나 언어를 복제하여 전달하는 원리나 모두 복제의 원리를 쓴다.


    정보의 대량복제 시스템을 쓰는 것이 연역이다. 개별 단어에는 의미가 있고 문장에는 맥락이 있고 언어에는 관측자가 있다. 이러한 언어구조 그 자체로 지식을 낚는 것이 연역이다. 이러한 구조는 뇌에 갖추어져 있다. 단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인간에게는 깨달음이 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깨달아 있다. 컴퓨터라면 반도체가 이미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이를 집적하여 고도화 시키면 된다.


    점에서 선으로 각으로 입체로 밀도로 고도화 시키면 된다. 소립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도 같다. 우주는 작은 입자가 모여들어 크게 이룩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에너지가 복제되어 망라된 것이다. 우주가 복제를 쓰고 생물이 복제를 쓰고 뇌가 복제를 쓰므로 인간 역시 복제를 써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복제를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에게는 원래 그러한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쓰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는 기본 모드가 대화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핑퐁과 같다. 머리 안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카드들을 놓아보면 답을 알 수 있는데 상대방에게 말을 떠넘긴다. 묻고 답하는 대화를 통해 지식을 구하므로 실패한다. 대화는 자기를 개입시킨다. 관측자가 사건에 개입하므로 실패다. 호랑이와 마주친 아기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울어서 어른을 부르는게 가장 빠르다.


    인간은 상황을 당하여 생각하기보다 그냥 아는 사람을 부르는게 빠르다. 거기에 뇌구조가 맞춰져 있으므로 실패한다. 천재가 있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천재는 아니다. 천재는 뇌를 다르게 사용한다. 천재들은 관측자인 자기를 배제하고 그 자리에 체계와 구조와 패턴을 놓는다. 머리 속에 테이블을 펼친다. 사과가 있다. 나는 사과가 좋더라. 나는 사과가 싫더라 하고 자기를 개입시키므로 실패한다.


    중력을 발견하려면 뇌 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둥근 지구의 위와 아래와 오른쪽과 왼쪽에서 지구 중심을 향해 사과들이 일제히 떨어지는 그림이다. 사과들은 모두 지구중심이라는 한 방향을 바라본다. 어떤 사실을 알아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깨달음은 도구를 쓴다. 뇌구조와 언어구조 자체가 도구다. 천문학자는 망원경이 있어야 성과를 낸다. 무사는 칼이 있어야 힘을 쓴다.


    작가는 펜이 있어야 하고 의사는 청진기가 있어야 한다. 깨달음은 체계와 구조와 패턴을 쓴다. 그리고 연역한다. 어떤 대상을 보는게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본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을 본다. 에너지가 드나드는 입구와 출구를 본다. 그 사이의 의사결정구조를 본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본다.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는 형식에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직관하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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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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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 필요한 이유는 어떤 개별적 사실을 입수하려고 할 뿐 근본적인 사유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유에는 방향성이 있다. 한 번 그 방향으로 길이 나면 그 쪽으로 계속 간다.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귀납으로는 진짜 지식을 획득하지 못한다. 위 러닝 피라미드에서 학습정착률이 낮은 강의 독서 시청각 학습이 귀납에 해당된다. 


  구조론을 귀납으로 배운다면 곤란하다. 가장 효과가 높은 것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방법을 소년시절에 필자는 써 왔다. 그것은 복제하는 것이며 재현하는 것이고 연역하는 것이다. 실제 재현해보면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을 하려면 반드시 전제가 되는 무언가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연역의 딜레마가 있다.


  연역하려면 하나가 더 필요한데 그 추가되어야 하는 하나가 없기 때문에 연역을 못하는 것이다. A를 해야 하는데 A가 준비되었다면 전혀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글을 쓰려면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펜과 노트가 있어야 한다. 요리를 하려면 밀가루만 있으면 되는게 아니고 조리도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항상 예기치 못한 하나가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아는 것은 아직 모르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가 더 있다. 내용을 알았다면 이제부터 형식을 알아와야 한다. 칼을 받아올 때는 칼집까지 가져와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면허증까지 따와야 한다. 항상 하나가 더 있다. 그 추가되는 하나는 그 단계에 없고 보다 높은 단계에 있다. 1층을 접수하려면 사전에 2층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방해자에 의해 곤란을 겪는다. 이게 다 방해자 때문이다 하고 핑계대면 안 된다. 그 방해자의 등장을 사전에 예견하고 미리 조치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깨닫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데 별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펜이 없으면 빌리면 된다. 형식은 항상 빌려주는 이가 있다.


  내용만 채우면 된다. 결혼식장은 임대하면 되고 신부감만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말이다. 처음 가는 길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가 처음 어떤 발견을 할 때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신부감만 찾으면 되는게 아니고 결혼식장을 직접 지어야 한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들은 그런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깨달음은 새로운 분야에 대입하여 재현한다.


  재현하려면 머리 속에 모형이 펼쳐져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머리 속에 테이블을 펼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보통은 그게 안 된다.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없고 대상과 나의 대칭관계가 테이블이 된다. 대상과의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지식을 구한다. 건드려서 반응을 보는 것이다. 자기 안의 지식을 수학공식처럼 대입해서 풀어내야 바른 지식이다. 


 어떤 것이든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절차가 있다. 상부구조가 있다. 동사 이전에 명사가 있고 술어 이전에 주어가 있고 진술 이전에 전제가 있다. 에너지를 유도하는 절차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생략한다. 남이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기름을 넣을 때마다 주유소를 건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초로 차를 발명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기차를 만들기 전에 정거장을 만들어야 하고 수소차를 제작하기 전에 충전소를 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에너지 유도절차를 생략한다. 깨달음은 그러한 근본을 찾는 것이다. 그 근본의 근본은 뇌 안에 이미 세팅되어 있다. 그것을 복제해야 한다. 연역은 있는 것을 가져다가 쓴다. 최초의 것은 원래부터 주어져 있다. 그것을 찾아내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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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5 (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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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의 의미 http://gujoron.com/xe/997655

간화선 필요없다 http://gujoron.com/xe/1007357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08.16 (11: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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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어떤 사실을 깨닫는게 아니다. 언어로 가리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거나 '오온이 공함을 깨달았다'거나 '인생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거나 하는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의혹을 얻은 것이며 이제 한 가지 의심을 일으킨 것이니 초발심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깨달음으로 쳐줬다. 석구의 제자 500 비구가 모두 깨달았다는 말은 '세상만사 마음 먹기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귀신에 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 시대에는 자연환경이 무서웠다. 천재지변과 전쟁과 질병의 두려움을 이겨냈다면 그 정도로 충분했다. 죽음의 두려움만 극복한다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 덕분에 다들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하긴 요즘도 음모론이나 가짜뉴스 따위에 홀리는 자들이 있다. MSG니 사카린이니 안아키니 하는 것들에게 홀리는 바보들이 많다. 그게 왕년의 언어로 말하면 귀신에 홀리는 것이다. 음모론에 가짜뉴스만 극복해도 좀 아는 사람이라 하겠지만 이 정도는 똑똑한 애들은 초딩 3학년만 돼도 해낸다.


    과학이라는 강적이 등장해서 만사휴의가 되었다. 아직도 점 보러 다니는 바보들이 간혹 있지만 말이다. 전통적인 깨달음은 용도폐기 되었다. 문제는 일부 상태가 안 좋은 형님들과 언니들이다. 이 분들은 하나씩 자기 문제를 안고 있다. 성소수자거나 아스퍼거 장애로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성격문제로 겁이 많거나 사회생활이 안 되는 형님들이 주변에 있다.


    이 분들은 자기네가 사회의 평균 이하이므로 평균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가 된다. 반도사라 불리는 무리들이 있는데 지리산 주변에 잔뜩 포진해 있다고 한다. 수백 명이나 된다고. 버글버글 하다고. 깨닫는다는 것은 엘리트의 영역이며 평균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 양반들은 평균 이하로 내려가 있으면서 평균을 회복하는게 목표다.


    그러므로 작은 성취에도 감격해 한다. 평소에 위축되어 있다가 갑자기 한 소식을 들었다면서 오만해져서 반말투로 덤빈다. 며칠 전에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을 강퇴시켰다. 그런게 위축되어 있는 본인에게는 의미가 있을 지 모르나 그걸 과시하면 안 된다. 술이나 쳐먹고 폐인처럼 살면서 뻔뻔해져서 민폐를 끼치면서 다 내려놓았노라고 주장한다.


    유치찬란한 거다. 누가 물어봤냐고? 내려놓았든 들고 있든 그건 당신 사정이다.

왜 떠들어? 대인관계나 성격문제 따위 개인 사정을 가지고 깨달음이니 어떻다니 하고 떠들어대면 안 된다. 깨달음은 우주의 소식이어야 한다. 애초에 당신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다. 21세기에 천하를 고민하고 우주를 고민하지 않는 사사로운 소승적 깨달음은 안 쳐주는 거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 삿된 것에 홀리지 않으며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정도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만 받아도 해결된다. 진짜는 무엇인가? 깨달음은 어떤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존재가, 자연이, 언어가, 인간의 뇌구조가 모두 깨달음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거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가리켜 지목될 수 없으므로 깨달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랑그 속에 빠롤이 있다. 전제 속에 진술이 있다. 맥락 속에 의미가 있다. 관점 속에 팩트가 있다. 사슬 속에 사물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절차가 있다. 에너지의 유도 속에 에너지의 처리가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당신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이미 허튼소리다. 언어에 담을 수 없다.


    게시판에서 발톱을 숨긴 엉터리 질문하다 짤린 사람 있다. 진술을 말하는 자는 전제를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의미를 말하는 자는 맥락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팩트를 말하는 자는 관점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내용을 말하는 자는 형식을 속이려는 자다. 짤린다. 이 사슬구조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치 혀를 놀려 수작부리지는 말라는 거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어떤 말을 하든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틀어져 있다. 그러므로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이 이중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느니 색즉시공이라느니 마음을 어떻게 한다느니 하는건 모두 진술이다. 진술이므로 모두 개소리다. 무엇을 깨닫는다고 하면 전제되는 무엇이 앞에 붙었으므로 그건 이미 개소리다.


    이미 한정되었고 틀에 가두어졌고 형식이 박혔고 전제의 제한이 걸렸는데 무슨 깨달음이겠느냐 말이다. 결론은 '내가 깨닫는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우주의 문제이지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깨달았다'는 식으로 진술될 수 없다. 깨달음이 우주의 작동원리로 존재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배에 승선을 하든지 말든지 선택할 수 있다.


    개인의 문제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거나 선배의 조언을 듣거나 부인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 거창하게 깨달음타령 필요없다. 하여간 말을 안 듣는 놈들은 깨달을 자격이 없다. 깨달음은 존재 그 자체의 전략이다. 집단의 전략을 따르고 지휘관의 전술을 따라야 한다. 대승의 큰 배에 올라타야 한다. 큰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자기소개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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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15: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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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 있다


    라디오도 안테나가 없으면 고물이다. 스마트폰도 안테나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연결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인간에게도 그러한 안테나가 있다. 영혼이 있다. 영혼은 대표성이다. 대표성은 사건에 있다. 사건은 다음 단계로 연결되어 간다. 그 연결의 접점은 언제나 약하다.


    그곳에는 단 하나만 위치할 수 있다. 스위치의 단락과 같은 작은 점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연결되면서 단계적으로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인간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 에너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에너지를 켜고 끄는 스위치가 될 수 있다. 의사결정할 수 있다.


    사건 속에서 운명적으로 자신이 그 접점의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홀을 손을 치켜들고 이의있습니다를 외친 노무현처럼 대표자의 행동을 해야 한다. 5천만 한국인의 대표자가 되어 5천만 배로 에너지를 증폭시켰다. 에너지를 켜고 끄기를 마음대로 하였다. 5천만의 운명을 두고 의사결정에 나섰던 것이다.


    노무현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고 안테나가 있고 에너지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보였다. 홀로 고립된 개체에는 영혼이 없다. 집단 속에 섞여버린 희미한 존재도 영혼은 없다. 사물은 영혼이 없다. 사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사물은 그저 에너지를 통과시킬 뿐 격발하지 않는다. 동물도 영혼이 없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거나 아니면 집단에 얽매여 있다. 에너지를 증폭시키지 않는다. 대표하지 않는다. 스위치를 켜지도 않고 끄지도 않는다. 의사결정에 나서지 않는다. 우주 안에 진정한 사건은 하나 뿐이다. 그것은 생물의 진화와 문명의 진보와 우주의 팽창이다. 그 커다란 사건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주최측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 뿐이다. 그 사건의 가는 방향을 정하는 존재는 인간 뿐이다. 인간들 중에서도 실제로는 적은 숫자다. 대부분은 영혼이 없다. 그들은 영혼이 있는 극소수의 노무현들에 묻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대표성을 위임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 대표성의 조직에 기여할 수는 있다.


    깨달음은 영혼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의사결정권을 깨닫는 것이다. 안테나를 깨닫는 것이다. 사건의 연결방법을 깨닫는 것이다. 죽은 물질이 영혼을 얻어 생명으로 살아나듯이 인간은 깨달음을 얻어 대표성을 행사할 수 있다. 영혼의 존재를 말할 수 있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미도 살아있고 굼벵이도 살아있다. 영혼은 없다. 사건이 없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해야 영혼의 존재를 말할 수 있다. 보수는 영혼이 없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자기 운명을 개척하지 않는다. 의사결정하지 않는다. 진보에 속한다고 영혼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의사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패배한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이기는 진보만 에너지를 가지고 에너지의 고유한 활동성과 생명성을 행사한 진보만 영혼이 있다. 종교의 신도들은 영혼이 없다. 그들은 영혼을 교주에게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영혼을 타인에게 위탁해버린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을 팔아먹은 자들이다. 링 위에서 선수로 뛰는 자에게도 영혼이 없다. 그들은 주최측의 설계에 놀아날 뿐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중립에 서서 사건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판을 짜고 판돈을 올리는 진보가 진짜다. 사건의 주최측은 진보나 보수 어느 편에 가담하지 않는다. 


    선과 악 중에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개인의 편도 집단의 편도 강자의 편도 약자의 편도 들지 않는다. 단지 판을 관리할 뿐이다. 진보가 이겨야 판이 관리된다. 주최측은 진보나 보수 어느 편에도 들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진보가 약간 앞서도록 판을 관리한다. 진보가 에너지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이기면 사건이 거기서 종결된다.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시키려면 에너지 잉여가 필요하다. 기관차가 객차를 이겨야 기차가 전진한다. 기관차가 객차를 이기고 에너지를 조금 남겨야 다음 역에서 기름을 채울 수 있다. 진보가 이겨야 게임이 지속가능하다. 주최측은 둘의 상호작용을 관리할 뿐이다.


    어린이와 어른 중에서는 어린이가 이기고 약자와 강자 중에서는 약자가 이기고 개인과 집단 중에서는 개인이 이겨야 사건이 다음 단계로 연결된다. 사자가 사슴을 이기면 생태계는 파괴된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이기면 시장은 파괴된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이기면 안 된다. 거기에 관리해야할 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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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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