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이치] - 아제옹의 무성의한 오독을 탓하며
음은 공간 혹은 공간구성요소를 말하고 양은 시간성, 또는 에너지작용
을 말하는 바 '음은 여자, 양은 남자' 이렇게 무식하게 받아들이는 사
람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습니다.
잠시 아제옹의 성의없는 글을 검토하고 ~
아제옹은 주류/비주류의 개념을 물리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류는 에너지의 중심을 말하는 바 항상 비주류가 먼저이고 주류가 뒤
늦게 거기로 뛰어드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비주류 - 백성(에너지의 중심이 없다)
주류 - 정부(에너지의 중심이 된다)
백성이 먼저 나고 정부가 생기지 정부가 먼저 나서 정부에서 백성을
찍어내나?
만약 주류가 먼저라면 그것은 어떤 역할이 특정된 메타상황이며 그것
은 이미 상황이 상당부분 진행된 경우이다.
메타상황 -> 임무가 부여된 상태
최초에 원소 A가 있다.(중심이 없다) 원소 B가 침투한다. (중심이 생
겨난다) 양자의 투쟁과정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나 원소 C가 생겨난다
(여기서 C가 새로운 중심으로 등장하고 A와 B는 비주류로 밀려난다)
메타상황 -> 조직의 확대로 새로운 중심이 등장한 때
시작과 끝의 개념이 항상 혼란을 일으키는데 100미터 달리기는 총성이
울린 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이 마련된 시점부터 시작되며 운
동장에서 선수가 빠져나가고서 끝나는 것입니다.
운동장(음) -> 선수등장(양) -> 운동장이 선수를 지배(음) -> 선수가
운동장을 지배(양) -> 선수퇴장(음)
여기서 운동장은 환경이고 선수는 에너지작용이라고 볼 때 처음에는
운동장은 넓고 선수는 적기 때문에 선수가 운동장을 지배하지만 곧 선
수가 늘어나서 환경이 선수를 지배하게 되며 이때 조직의 힘으로 새로
운 운동장을 개척하므로 다시 선수의 지배로 바뀌고 그 개척된 운동장
으로 선수가 이동하므로 결국 운동장이 남는 것입니다.
국가의 건설과정에서도 먼저 환경(영토, 자원, 지정학적 환경)이 제공
되고 다음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며 어느 시점에서 환경이 인간을 제한
하고(인구증가로 한계에 달함) 다시 문명의 힘으로 인간이 환경을 극
복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환경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음양의 이치는 우주의 기본원리]
모든 조직이나 구성 또는 그 확장에 의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에는
반드시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에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
니다. 남자라서 몸속 세포에 음이 없고 양만 존재한다면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죽고 말겠지요.
고로 남자란 양의 동물이 아니라 양이면서 동시에 음이되 번식에 있어
서는 양의 역할을 하는 동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또한 음의
동물이 아니라 생식에 있어서 음의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음과 양의 이치는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시스템을 작동할 것이냐의
문제이며 적게는 세포 하나, 크게는 사회, 국가, 자동기계, 등 조직이나
기관에 작동하는 그 모든 곳에 공통된 하나의 절대원리인 것입니다.
조직, 혹은 시스템, 세포는 둘 이상의 개체가 하나의 에너지원을 공유
하는 모순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둘 이상의 개체가 하나의 단일자
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하원리에 입각하여 특별한 구성형태를 가져
야 하는데 수학적으로 그 구성형태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조직, 시스템, 생명체가 그 동일한 하나의 닮은 꼴을 복제, 반복
하는 점이 관찰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류가 비주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주류가 다시 피드백
으로(구심력)으로 에너지를 환원하는 과정이 존재하죠. 이 과정이 없다
면 조직은 붕괴됩니다.
저는 항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음이죠. 그러면서 주류를
지향합니다. 주류(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에서 주류로 나아가
는 것입니다.
비주류에서 머무르다 -> 무의미함, 아무것도 아님
주류에서 머무르다 -> 에너지를 소진함(사멸하게 됨)
주류에서 비주류를 지향하다 ->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음, 거짓말임
비주류에서 주류를 지향하다 -> 현명한 선택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성과가 된다. 조직을 만들
고 난 다음에 힘을 행사하려고 해서 안된다. 조직이 구성된 그 시점에
서 손을 떼는 것이 참된 리더의 역할이 된다.
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열사의 실험은
끝난 것이다. 열사가 다 만들어졌으니 이제 뭔가 사업을 해보자 하면
이게 본부놀이가 되는 것이다.
열사는 영원히 만들어질 수 있을 뿐 만들어진 이후의 역사가 존재해서
는 안된다.
권력은 권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역할을 끝낸다. 그 만들어진
권력을 휘두르려고 할 때 권력은 사멸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결혼하는 시점에서 사랑은 완결되며 결
혼해서 머 어쩌구 저쩌구 잘 사랑해보자는 없다. 새로운 테마가 주어
지며 새로운 테마에서 주인공은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자녀들이다.
글고 아제옹은 아직도 역할의 논리를 깨닫지 못하고 선과 악, 호와 오
로 판단하려고 하니 한참 공부해야 할 듯.
음은 공간 혹은 공간구성요소를 말하고 양은 시간성, 또는 에너지작용
을 말하는 바 '음은 여자, 양은 남자' 이렇게 무식하게 받아들이는 사
람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습니다.
잠시 아제옹의 성의없는 글을 검토하고 ~
아제옹은 주류/비주류의 개념을 물리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류는 에너지의 중심을 말하는 바 항상 비주류가 먼저이고 주류가 뒤
늦게 거기로 뛰어드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비주류 - 백성(에너지의 중심이 없다)
주류 - 정부(에너지의 중심이 된다)
백성이 먼저 나고 정부가 생기지 정부가 먼저 나서 정부에서 백성을
찍어내나?
만약 주류가 먼저라면 그것은 어떤 역할이 특정된 메타상황이며 그것
은 이미 상황이 상당부분 진행된 경우이다.
메타상황 -> 임무가 부여된 상태
최초에 원소 A가 있다.(중심이 없다) 원소 B가 침투한다. (중심이 생
겨난다) 양자의 투쟁과정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나 원소 C가 생겨난다
(여기서 C가 새로운 중심으로 등장하고 A와 B는 비주류로 밀려난다)
메타상황 -> 조직의 확대로 새로운 중심이 등장한 때
시작과 끝의 개념이 항상 혼란을 일으키는데 100미터 달리기는 총성이
울린 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이 마련된 시점부터 시작되며 운
동장에서 선수가 빠져나가고서 끝나는 것입니다.
운동장(음) -> 선수등장(양) -> 운동장이 선수를 지배(음) -> 선수가
운동장을 지배(양) -> 선수퇴장(음)
여기서 운동장은 환경이고 선수는 에너지작용이라고 볼 때 처음에는
운동장은 넓고 선수는 적기 때문에 선수가 운동장을 지배하지만 곧 선
수가 늘어나서 환경이 선수를 지배하게 되며 이때 조직의 힘으로 새로
운 운동장을 개척하므로 다시 선수의 지배로 바뀌고 그 개척된 운동장
으로 선수가 이동하므로 결국 운동장이 남는 것입니다.
국가의 건설과정에서도 먼저 환경(영토, 자원, 지정학적 환경)이 제공
되고 다음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며 어느 시점에서 환경이 인간을 제한
하고(인구증가로 한계에 달함) 다시 문명의 힘으로 인간이 환경을 극
복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환경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음양의 이치는 우주의 기본원리]
모든 조직이나 구성 또는 그 확장에 의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에는
반드시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에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
니다. 남자라서 몸속 세포에 음이 없고 양만 존재한다면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아 죽고 말겠지요.
고로 남자란 양의 동물이 아니라 양이면서 동시에 음이되 번식에 있어
서는 양의 역할을 하는 동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또한 음의
동물이 아니라 생식에 있어서 음의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음과 양의 이치는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시스템을 작동할 것이냐의
문제이며 적게는 세포 하나, 크게는 사회, 국가, 자동기계, 등 조직이나
기관에 작동하는 그 모든 곳에 공통된 하나의 절대원리인 것입니다.
조직, 혹은 시스템, 세포는 둘 이상의 개체가 하나의 에너지원을 공유
하는 모순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둘 이상의 개체가 하나의 단일자
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하원리에 입각하여 특별한 구성형태를 가져
야 하는데 수학적으로 그 구성형태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조직, 시스템, 생명체가 그 동일한 하나의 닮은 꼴을 복제, 반복
하는 점이 관찰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류가 비주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주류가 다시 피드백
으로(구심력)으로 에너지를 환원하는 과정이 존재하죠. 이 과정이 없다
면 조직은 붕괴됩니다.
저는 항상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음이죠. 그러면서 주류를
지향합니다. 주류(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에서 주류로 나아가
는 것입니다.
비주류에서 머무르다 -> 무의미함, 아무것도 아님
주류에서 머무르다 -> 에너지를 소진함(사멸하게 됨)
주류에서 비주류를 지향하다 ->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음, 거짓말임
비주류에서 주류를 지향하다 -> 현명한 선택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성과가 된다. 조직을 만들
고 난 다음에 힘을 행사하려고 해서 안된다. 조직이 구성된 그 시점에
서 손을 떼는 것이 참된 리더의 역할이 된다.
열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열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열사의 실험은
끝난 것이다. 열사가 다 만들어졌으니 이제 뭔가 사업을 해보자 하면
이게 본부놀이가 되는 것이다.
열사는 영원히 만들어질 수 있을 뿐 만들어진 이후의 역사가 존재해서
는 안된다.
권력은 권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역할을 끝낸다. 그 만들어진
권력을 휘두르려고 할 때 권력은 사멸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결혼하는 시점에서 사랑은 완결되며 결
혼해서 머 어쩌구 저쩌구 잘 사랑해보자는 없다. 새로운 테마가 주어
지며 새로운 테마에서 주인공은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자녀들이다.
글고 아제옹은 아직도 역할의 논리를 깨닫지 못하고 선과 악, 호와 오
로 판단하려고 하니 한참 공부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