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보는 색정남녀
솔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대 진솔한 마음가짐으로 읽지 않는다
면 이 이야기가 재미없을 것이니 곧 그대의 손해다.
-카사노바 콤플렉스-
18세기 이탈리아의 모험가 '조반니 야코보 카사노바'는 생애에 걸쳐
132명의 여성과 관계하였노라고 그의 회상록에 썼다. 20세기 싱가포르
출신의 '에너벨 청'은 251명의 남자와 관계하고 선댄스에 더큐멘터리를
출품하였다.
계몽주의 시절, 계급의 해체와 보편적 가치의 등장에 맞서 고상하고
근엄한 가치를 강조하며 세태의 변화에 저항하던 몰락한 귀족들의 위
선과 억압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에 허용된 약간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한껏 발랄하였던 대중들의 하수구문화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면 그대
카사노바를 용서하여도 좋다.
탈 산업화시대, 보편적 가치의 해체와 함께 파편화된 군상들의 저열하
고 황폐한 심성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면, 아무리 나빠도 더 나빠질 것
은 있으므로 또한 아무것도 나빠자지 않은 것과 같으며, 아무리 벗어
도 더 벗을 것은 있으므로 또한 아무것도 벗지 않은 것과 같다는 에너
벨 청의 뻔뻔스러움에 경의를 표해도 좋다.
-정조 혹은 순결이라는 테마-
무릇 '정조'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때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무슨 일을 하지 않고자 하는 데는 많은 쓸모가 있다.
거리의 약장수는 나무를 깍아 만든 원주민의 소박한 조각상이 뚜벅뚜
벅 걸어가는 마법을 보여주겠노라며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놓고선 잠시
막간을 요청하여 어색하게 모자를 내밀고 약을 판매하더라.
처녀라는 이름의 마법도 이와 비슷한 것이어서 장래의 어느 시점에 그
만 신통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고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해놓
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 많은 미성년의 날들을 속여넘기는
데에 성공해내곤 하더라.
그대가 당당하게 마법을 폭로하고, 솔직하게 정조를 버리고, 대담하게
처녀를 버리고, 이미 군중들이 흩어진 거리에도 남아있는 시간들이 두
렵지 않다면 이 글을 마저 읽어도 좋으리라.
-우연한 색정-
70년대 유행하였던 강철수화백의 가판대 만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 앞에서
"저 아가씨 이것도 인연인데 조오기 다방에 가서 커피라두 한잔 하실
까요?"
하고 말을 건네면
"네 아무려면 어때요. 그것도 좋죠"
하고 털레털레 따라나설 여자가 있을리 없다만 그대가 압구정동이나
혹은 신사동 거리에서 지나가는 스무명의 여자에게 스무번 프로포즈
한다면 스물의 하나 꼴로 기괴한 제안에 동의하곤 한다.
그녀가 그대의 제의에 응하였다면 그대가 미남이라서거나 혹은 돈이
많아보여서거나 혹은 말주변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자연스러웠기 때
문인 바 그 자연스러움은 많은 실패의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색정의 의미-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나빠지지 않은 것과 같다-
-더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타락하지 않은 것과 같다-
-더 벗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벗지 않은 것과 같다-
그대가 겉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양말을 벗고 팬티를 벗고 부끄러움을
벗고, 어색함을 벗고, 속내를 벗고, 연민을 벗고, 콤플렉스를 벗고, 아
이덴티티를 벗고서도 벗어야할 많은 허물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순수한 색정-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라도 좋다. 호롱불 기름이 아까우니 서둘러 이부
자리 펴고 자자. 긴긴 겨울밤에 따로 할짓도 없으니 그거나 하자. 토끼
새끼치듯 아홉이나 열이나 낳을 수 있되 허허롭다.
섹스 - 쾌락의 크기는 벗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네들은 순수하기 때
문에 본래 벌거숭이였고 별로 벗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별로 쾌락하지
않다. 역시 이 글의 주제인 색정과는 거리가 멀다.
본래 벗고 사는 아마존 정글족들이나 티위오리진들이나 야노마미들이
나 혹 사냥하여 구운 원숭이고기라도 뜯으며 북장단에 밤새 춤추다가
하나씩 둘씩 숲으로 흩어져서 거시기를 한다하나 밥묵고 똥누는거나
진배없는 일상사여서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
-타락한 색정-
그대 자신을 모멸하는 것도 해볼만한 취미가 된다. 전혀 중요하지 않
은 일들에서 없는 스트레스라도 제조하여 내지 않으면 양복에 졸라맨
넥타이와 앙상블이 아니라는 이유가 빌미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군바리가 존재하는 한 청량리 588은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특박이라도 얻어 상병 진급심사 떼씹(딱지를 떼는)을 하기로 그걸 떼
는데 길어서 3분이 아니되는 것은 그녀가 충분히 윤활하지 않기 때문
이거니 에너벨 청이 600분 동안을 251로 나누어 1인당 2분30초을 넘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색정은 상상력의 교환공간에 있다. 벗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이미 벗고
서 더 벗으려면 상상력의 조력을 얻어야 한다. 그녀들의 상상은 달콤
한 키스와 근사한 애무에서 얻어지는 법이다. 타락한 즉 이미 벗어버
린 그녀들에서, 상상함이 없는 섹스에서 색정이 있을리 없다.
-위험한 색정-
여제 에카테리나는 어디에 둔 것을 찾느라고 80명의 남첩으로 페테르
부르그의 동궁을 채웠더랬다. 불우했던 이멜다가 어디서 일찍 잃어버
린 것을 보상하고자 구두 3000켤레를 수집한 것에 비해서는 합리적인
수집취미가 된다.
그대 알수 없는 의혹에 휩싸여서 혹 무성한 것이나 혹 무모한(?) 형태
나 혹 풍부한 살집이나 혹은 앙상하게 부딛히는 촉감이나 각양각색 중
에 어느 것이거나 간에 수색하곤 하였다 해서 또는 심사가 예민한 신
데렐라의 왕자라서 이 신발도 맞지 않는 듯하고 저 신발도 치수가 아
닌 듯 하다며 온 도시에 남은 처녀의 초야를 모조리 박탈하고서야 맞
는 신발을 찾았대도 역시 색정은 아니다.(신발은 처녀성을 상징한다)
-색정남녀-
색정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배설이 아니며
죄악은 더욱 아니다. 마광수가 홀로 독립운동하여 얻으려는 그것이 색
정이 아님은 서갑숙이 멀티로 오르가즘을 운운하여도 분분한 수색에
지나지 않아 색정일수 없는 것과 같다.
색정은 소년에게서 탐구심이요 청년에게서 상상력의 허용공간이며 성
년에게서 창의력의 교감이 된다. 그 탐구심을 벗을 때, 그 상상력을 벗
보서, 그 창의력마저 벗어버리고서 참된 색정에 이른다.
소년이 탐구심으로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색정은 변명으로서 쾌락이
제시될 수 있고 청년이 상상력으로 분분하여도 꾸며지지 않으면 변명
으로서 정복욕의 모험드라마가 허울이 좋고 성년이 창의력으로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하면 변명으로서 위선적인 상징표지가 된다.
그리하여 색정을 잃어버린 어른들에 의하여 윤리 혹은 도덕률, 금제
따위가 생겨났다. 혹은 터부로 삼아 무난하였다. 언제든지 색정을 비난
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벗은 것을 벗으려 아니하
고 입은 것을 벗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색정은 온전한 섹스로 시작하여, 온전한 만남으로 나아가서 온전한 교
감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남은 가식과 계획과 드라마와 윤리
와 예의와 체면과 부끄러움을 벗고, 어색함을 벗고, 속내를 벗고, 연민
을 벗고, 콤플렉스를 벗고, 또 벗어야할 많은 허물들이 남아있기 때문
에 색정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참된 색정에 이르기-
여성의 봉곳한 젖가슴 선은 불완전한 타원이어서 뭇 남성들을 의혹에
빠뜨린다. 그 불완전을 보완하기 위하여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의
적절한 비례가 아래로 받치고 있으나 혹 여인이 그대에게로 다가온다
던가 지나쳐간다던가 간에 그대를 또다시 아찔한 의혹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눈빛이 마주친다면 - 두 눈동자가 그려내는 범위를 동그란 이마와 적
당한 뺨으로 완성하기 어려워 얄궂은 미소와 고느적한 목소리로 균형
을 꾀한다 하나 그대는 또다시 의혹에 빠져들고 말 것이 뻔하기 때문
에 역시 색정이 아니고서 안된다.
그대 그녀의 구석구석을 탐색할 수 있으나 활기찬 노력봉사가 색정일
수는 없다. 적절한 율동과 필요한 음향으로 꾸며볼 수 있으나 3일 밤
낮을 다그쳐도 덜 내어놓은 것이 있음을 알게된다. 무엇인가?
벗으려 벗어지지 않는 것, 다 벗고서야 벗을 수 있는 것, 내어놓고서야
담을 수 있는 것, 그대 내면의 커다란 자루, 그 안에서 퍼올릴 수 있는
것, 색정은 그대 원초적 의혹과의 만남을 위하여, 만남은 교감(사랑이
라고도 하지)을 위하여 교감은 직립을 위하여 직립은 자연스러운 존재
의 면피가 되곤 한다지.
- 이 글은 장국영, 서기 등의 영화 색정남녀를 위하여 씌어졌다 -
솔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대 진솔한 마음가짐으로 읽지 않는다
면 이 이야기가 재미없을 것이니 곧 그대의 손해다.
-카사노바 콤플렉스-
18세기 이탈리아의 모험가 '조반니 야코보 카사노바'는 생애에 걸쳐
132명의 여성과 관계하였노라고 그의 회상록에 썼다. 20세기 싱가포르
출신의 '에너벨 청'은 251명의 남자와 관계하고 선댄스에 더큐멘터리를
출품하였다.
계몽주의 시절, 계급의 해체와 보편적 가치의 등장에 맞서 고상하고
근엄한 가치를 강조하며 세태의 변화에 저항하던 몰락한 귀족들의 위
선과 억압의 크기에 비례하여 그에 허용된 약간의 틈새를 놓치지 않고
한껏 발랄하였던 대중들의 하수구문화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면 그대
카사노바를 용서하여도 좋다.
탈 산업화시대, 보편적 가치의 해체와 함께 파편화된 군상들의 저열하
고 황폐한 심성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면, 아무리 나빠도 더 나빠질 것
은 있으므로 또한 아무것도 나빠자지 않은 것과 같으며, 아무리 벗어
도 더 벗을 것은 있으므로 또한 아무것도 벗지 않은 것과 같다는 에너
벨 청의 뻔뻔스러움에 경의를 표해도 좋다.
-정조 혹은 순결이라는 테마-
무릇 '정조'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때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무슨 일을 하지 않고자 하는 데는 많은 쓸모가 있다.
거리의 약장수는 나무를 깍아 만든 원주민의 소박한 조각상이 뚜벅뚜
벅 걸어가는 마법을 보여주겠노라며 행인들의 발길을 잡아놓고선 잠시
막간을 요청하여 어색하게 모자를 내밀고 약을 판매하더라.
처녀라는 이름의 마법도 이와 비슷한 것이어서 장래의 어느 시점에 그
만 신통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고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해놓
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 많은 미성년의 날들을 속여넘기는
데에 성공해내곤 하더라.
그대가 당당하게 마법을 폭로하고, 솔직하게 정조를 버리고, 대담하게
처녀를 버리고, 이미 군중들이 흩어진 거리에도 남아있는 시간들이 두
렵지 않다면 이 글을 마저 읽어도 좋으리라.
-우연한 색정-
70년대 유행하였던 강철수화백의 가판대 만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 앞에서
"저 아가씨 이것도 인연인데 조오기 다방에 가서 커피라두 한잔 하실
까요?"
하고 말을 건네면
"네 아무려면 어때요. 그것도 좋죠"
하고 털레털레 따라나설 여자가 있을리 없다만 그대가 압구정동이나
혹은 신사동 거리에서 지나가는 스무명의 여자에게 스무번 프로포즈
한다면 스물의 하나 꼴로 기괴한 제안에 동의하곤 한다.
그녀가 그대의 제의에 응하였다면 그대가 미남이라서거나 혹은 돈이
많아보여서거나 혹은 말주변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자연스러웠기 때
문인 바 그 자연스러움은 많은 실패의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색정의 의미-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나빠지지 않은 것과 같다-
-더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타락하지 않은 것과 같다-
-더 벗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도 벗지 않은 것과 같다-
그대가 겉옷을 벗고 속옷을 벗고 양말을 벗고 팬티를 벗고 부끄러움을
벗고, 어색함을 벗고, 속내를 벗고, 연민을 벗고, 콤플렉스를 벗고, 아
이덴티티를 벗고서도 벗어야할 많은 허물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순수한 색정-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라도 좋다. 호롱불 기름이 아까우니 서둘러 이부
자리 펴고 자자. 긴긴 겨울밤에 따로 할짓도 없으니 그거나 하자. 토끼
새끼치듯 아홉이나 열이나 낳을 수 있되 허허롭다.
섹스 - 쾌락의 크기는 벗음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네들은 순수하기 때
문에 본래 벌거숭이였고 별로 벗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별로 쾌락하지
않다. 역시 이 글의 주제인 색정과는 거리가 멀다.
본래 벗고 사는 아마존 정글족들이나 티위오리진들이나 야노마미들이
나 혹 사냥하여 구운 원숭이고기라도 뜯으며 북장단에 밤새 춤추다가
하나씩 둘씩 숲으로 흩어져서 거시기를 한다하나 밥묵고 똥누는거나
진배없는 일상사여서 별로 흥미롭지 못하다.
-타락한 색정-
그대 자신을 모멸하는 것도 해볼만한 취미가 된다. 전혀 중요하지 않
은 일들에서 없는 스트레스라도 제조하여 내지 않으면 양복에 졸라맨
넥타이와 앙상블이 아니라는 이유가 빌미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군바리가 존재하는 한 청량리 588은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특박이라도 얻어 상병 진급심사 떼씹(딱지를 떼는)을 하기로 그걸 떼
는데 길어서 3분이 아니되는 것은 그녀가 충분히 윤활하지 않기 때문
이거니 에너벨 청이 600분 동안을 251로 나누어 1인당 2분30초을 넘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색정은 상상력의 교환공간에 있다. 벗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이미 벗고
서 더 벗으려면 상상력의 조력을 얻어야 한다. 그녀들의 상상은 달콤
한 키스와 근사한 애무에서 얻어지는 법이다. 타락한 즉 이미 벗어버
린 그녀들에서, 상상함이 없는 섹스에서 색정이 있을리 없다.
-위험한 색정-
여제 에카테리나는 어디에 둔 것을 찾느라고 80명의 남첩으로 페테르
부르그의 동궁을 채웠더랬다. 불우했던 이멜다가 어디서 일찍 잃어버
린 것을 보상하고자 구두 3000켤레를 수집한 것에 비해서는 합리적인
수집취미가 된다.
그대 알수 없는 의혹에 휩싸여서 혹 무성한 것이나 혹 무모한(?) 형태
나 혹 풍부한 살집이나 혹은 앙상하게 부딛히는 촉감이나 각양각색 중
에 어느 것이거나 간에 수색하곤 하였다 해서 또는 심사가 예민한 신
데렐라의 왕자라서 이 신발도 맞지 않는 듯하고 저 신발도 치수가 아
닌 듯 하다며 온 도시에 남은 처녀의 초야를 모조리 박탈하고서야 맞
는 신발을 찾았대도 역시 색정은 아니다.(신발은 처녀성을 상징한다)
-색정남녀-
색정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배설이 아니며
죄악은 더욱 아니다. 마광수가 홀로 독립운동하여 얻으려는 그것이 색
정이 아님은 서갑숙이 멀티로 오르가즘을 운운하여도 분분한 수색에
지나지 않아 색정일수 없는 것과 같다.
색정은 소년에게서 탐구심이요 청년에게서 상상력의 허용공간이며 성
년에게서 창의력의 교감이 된다. 그 탐구심을 벗을 때, 그 상상력을 벗
보서, 그 창의력마저 벗어버리고서 참된 색정에 이른다.
소년이 탐구심으로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색정은 변명으로서 쾌락이
제시될 수 있고 청년이 상상력으로 분분하여도 꾸며지지 않으면 변명
으로서 정복욕의 모험드라마가 허울이 좋고 성년이 창의력으로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하면 변명으로서 위선적인 상징표지가 된다.
그리하여 색정을 잃어버린 어른들에 의하여 윤리 혹은 도덕률, 금제
따위가 생겨났다. 혹은 터부로 삼아 무난하였다. 언제든지 색정을 비난
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벗은 것을 벗으려 아니하
고 입은 것을 벗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색정은 온전한 섹스로 시작하여, 온전한 만남으로 나아가서 온전한 교
감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남은 가식과 계획과 드라마와 윤리
와 예의와 체면과 부끄러움을 벗고, 어색함을 벗고, 속내를 벗고, 연민
을 벗고, 콤플렉스를 벗고, 또 벗어야할 많은 허물들이 남아있기 때문
에 색정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참된 색정에 이르기-
여성의 봉곳한 젖가슴 선은 불완전한 타원이어서 뭇 남성들을 의혹에
빠뜨린다. 그 불완전을 보완하기 위하여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의
적절한 비례가 아래로 받치고 있으나 혹 여인이 그대에게로 다가온다
던가 지나쳐간다던가 간에 그대를 또다시 아찔한 의혹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눈빛이 마주친다면 - 두 눈동자가 그려내는 범위를 동그란 이마와 적
당한 뺨으로 완성하기 어려워 얄궂은 미소와 고느적한 목소리로 균형
을 꾀한다 하나 그대는 또다시 의혹에 빠져들고 말 것이 뻔하기 때문
에 역시 색정이 아니고서 안된다.
그대 그녀의 구석구석을 탐색할 수 있으나 활기찬 노력봉사가 색정일
수는 없다. 적절한 율동과 필요한 음향으로 꾸며볼 수 있으나 3일 밤
낮을 다그쳐도 덜 내어놓은 것이 있음을 알게된다. 무엇인가?
벗으려 벗어지지 않는 것, 다 벗고서야 벗을 수 있는 것, 내어놓고서야
담을 수 있는 것, 그대 내면의 커다란 자루, 그 안에서 퍼올릴 수 있는
것, 색정은 그대 원초적 의혹과의 만남을 위하여, 만남은 교감(사랑이
라고도 하지)을 위하여 교감은 직립을 위하여 직립은 자연스러운 존재
의 면피가 되곤 한다지.
- 이 글은 장국영, 서기 등의 영화 색정남녀를 위하여 씌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