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초기에는 성이 없었다.
삼국사기에도 성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 많다.
거칠부라고 써놨으면 김거칠부인지 박거칠부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시기부터 성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씨족회의를 통해 성을 정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성을 정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인들은 명치시절에 집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서
산 맡에 살면 야마구치, 밭 가운데 살면 다나까 하는 식으로 정했다.
성은 원래 국가를 나타내는 것인데 아주 소국이다.
중국에는 수천개의 소국이 있었으니
오나라는 오씨, 월나라는 월씨 하는 식으로 된다.
또는 분가하면서 성을 새로 짓기도 한다.
백제는 부여에서 왔으므로 백제왕은 부여씨다.
고구려는 고씨다. 역시 국명에서 성을 취한 것이다.
신라는? 신씨?가 아니고 그들은 자신이 이주해온 원적지에서 성을 취했다.
박씨는 박트리아에서, 석씨는 인근한 스키타이에서,
김씨는 역시 이웃한 알타이에서 성을 취했다.
박트리아라는 말은 그리스식 표기이고
흉노는 묵특이라 하고 몽골은 바토르라고 한다.
용사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변했는데 원래는 지역명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중국넘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니들은 성이 뭐냐? 고 물었을 때 곤란해진 신라인들이
씨족회의를 열어 우리 성이 뭐지?
이웃나라의 방법을 참고하는게 적당하다.
백제왕은 성을 어떻게 지었지? 우리도 그 방법을 따르자.
이런 식으로 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제왕이 부여에서 왔다고 부여씨라면 우리는 조금 더 센 걸로 하자.
부여는 부리야트 지방으로 본다. 백제까지 2300킬로 거리다.
그렇다면 신라인은 5000킬로 넘는 박트리아 까지 가줘야 체면이 선다.
일단 추정이지만 부여씨, 박씨, 석씨, 김씨가
같은 원리로 일제히 창씨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역명을 따랐다는게 가장 설득력 있는 접근일 터이다.
영국인들에게 너희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모두 손을 뻗어 이쪽저쪽을 가리킨다.
한국인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지?
울주 반구대 암각화는 BC 1000년 경에 제작되었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고인돌 문화가 그때 거기까지 전해진 것이다.
반구대의 암각화 수법은 금속기를 사용한 것이니 연대가 오래 올라가지 않는다.
비숫한 수법은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에 널려 있다.
BC 1천년 경에 고인돌문화집단이 한반도로 이주해온 것이다.
고대 유목민들은 한번 이동을 시작하면 끝까지 간다.
중간에 멈추는게 불가능한게 멈추면 습격당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구가 장벽이라서 못 가지만
고대에는 인구가 적었으므로 쉽게 이동한다.
몽골인들은 기본 1천킬로 이상 이동한다.
한반도인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이주해 온 것이다.
청동기 혹은 철기시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