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시민사회가 눈을 뜨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왕을 섬기던 부족민이 스스로 권력을 창출하는 시민으로 각성하고 있는 시대다.
과도기라는 말은 시민과 비시민이 섞여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혼란기라는 말이다. 대통령을 뽑는 큰 선거는 물론이고 마을의 더 작은 공동체를 들여다 봐도 이러한 시민사회의 격동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른바 '난방열사'로 불리게 된 김부선씨는 아파트 공동체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아파트라는 양식의 공동주택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 문화다.
이 덕에 급속도로 주거복지의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지만 하드웨어의 발달만큼 그 안에 채워진 공동체의 수준은 형편없다는 사실이 김부선씨의 고발로 밝혀지게 되었다.
직설하면 내부의 권력을 통제할 대안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입주민의 의사결정은 부녀회나 입주민
대표회에 위임되는데,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치 공동체가 활성화되지 못해 스스로 대안
권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즉 주민 자치의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돼야 하지만 현실적 필요성 만큼 실제로 공동체가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살면 당연히 교류가 많아지고 활기가 돌아야 하지만 어느 아파트를 가도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적 활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웃의 허물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가볍게 확대 재생산되면서 소통의 기회는 일순간에 날아가버린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광장에 울려퍼진 이웃의 허물은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예전에는 마을에 경험많은 연장자나 학식있는 선비가 현명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노인은 시대에 쉽게 뒤처지고 지식인은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갈등을 중재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조화롭게 승화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중요한 중재자의 자리에 역량이 채 갖춰지지 못한 사람이 자리하게 되면 그는 본의 아니게 공동체의 방해자가 된다.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과도한 역할이 주어지면 누구라도 공동체의 밖으로 난 문을 닫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폐쇄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공동체는 활기를 잃게 되고 건전한 대안 권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회, 회사, 국가, 시민, 이런 개념들은 근대를 나타내는 개념들이다. 다시 말해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체를 만드는
일이 비로소 최근에서야 가능성이 확대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회사라는 것도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회사를
만들어 자본주의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민사회가 주체적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며 운용할 수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자리잡은 나라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이를 보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배경이 다른 사람이 모여 의사결정체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무리를 이뤄 함께 살아가는 일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근본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혹은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의탁해놓은 권력을 까마득히 잃어버린 탓에 대중들은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우를
범한다.
기존 권력이 새로운 권력으로 대체되는 속도가 그 사회의 성장 속도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 있으면 대항하는 권력이 신속히
만들어져야 하며, 이렇게 두 권력의 대결을 통해 공동체에 긴장을 불어넣게 된다. 건강한 주민 공동체의 대안모델을 만드는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세력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독재를
향수하지 않고도 국제사회에서 자주독립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금 세상은 모두 '어리석은 갈등'의 숲으로 내몰리는 세상 같습니다.
갈라치기 신공이 '공공의 리더십'이 되버린 세상.
시스템 신뢰도 제로로 수렴하는 세상.
굴러들어오는 황금은 주워야 하는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은 허비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