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란 이런 것 드물지만 진짜가 있다. 태양이 있듯이 진짜는 있다. 진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진짜는 있다. 그 진짜가 세상 앞에서 어떻게 쓰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 어딘가에 진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진짜는 있다. ### 바둑이라면 어설프게 둘줄 알아도 두는 것이요, 잘 두어도 제대로 두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는 몇 명의 프로기사가 있는 것일까? 200명쯤? 그 중에 제대로 두는 사람은 몇일까?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조훈현 정도? 피아노라면 어설프게 쳐도 치는 것이요, 제법 잘 친다해도 제대로 치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는 몇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있을까? 100명쯤? 피아니스트 협회라면 전공한 사람의 숫자만큼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급 연주자들은 다르게 말할 것이다. 열 손가락으로 꼽아보일 것이다. 그들은 쉽게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알아도 아는 것이요, 제법 알아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아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라거나, 혹은 여기까지 모르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거나 하고 금을 그을수는 없다. 그것은 한국기원이 인정하는 프로기사라 해서 바둑을 둘줄 아는 사람이라거나, 혹은 피아니스트 협회에 가입하고 라이선스를 가졌으니 피아니스트요 하고 말할 수는 없는 이치와 같다. 진짜가 있다. 누군가에 의해 인가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몇몇 프로바둑 기사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바둑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연주자들이 주도하여 ‘음악계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새로운 삶의 형태를! 미학을! 모랄을! 공동체를! 그러므로 낳음이 있어야 한다. 부단히 새로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자유의 영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변주하여 내기에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훗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때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날 인간의 삶이 더 자유롭고, 더 풍성하고, 더 세련되고, 더 매력적인 것으로 변하였다고. 인간 개개인의 값어치가 더 향상되었다고. 19세기에 개척자들이 오지를 탐험한 바 그들이 세상끝까지 가보고 와서 보고서를 썼듯이, 그때 그곳에서 그들 인간 내면의 탐험가들이 신 앞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탐험하고 와서 보고서를 썼다고. 그리하여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 진짜는 진짜의 맛과 향과 칼라를 가진다.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러므로 느낄 수 있다. 구분할 수 있다. 진짜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정상에서 본 느낌과 기슭에서 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최고의 연주를 한번 들은 사람은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 그 세계에 등뼈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큰 강이 무수히 많은 지류와 작은 계곡을 품는 것과 같다. 그 큰 강의 본류를 발견하고 마침내 그 등뼈를 얻은 사람은 그 세계의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싶은 욕망에 빠져든다. 백두대간을 발견한 사람이 마침내 완주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듯이. 완전히 매혹당하는 것이다. 작은 조각들을 주워모아서 그림을 꾸며보이려 하는 사람이라면 미처 그 등뼈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다. 매혹당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 열망의 초극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 열망을 넘어서고서야 진정한 자유의 지평이 얻어지는 법이다. 바둑돌을 하나 둘 놓아서 집을 지어보이려는 사람은 아직 그 등뼈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다. 음을 하나하나 쳐서 그 음들이 모여서 연주가 된다고 믿는 사람은 그 밸런스의 아스라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다. 실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작은 잎새의 그 전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다. 큰 만남에 의해, 큰 부딪힘이 있고, 큰 깨뜨려짐이 있고, 그 다음에라야 비로소 더 높은 세계의 시선이 얻어지는 법이다. 진정한 자유는 참된 사랑의 지경을 넘어서 얻어지는 것이다. 자동차를 사랑한 사람이 그 자동차를 타고 여행이라는 자유를 누리듯이. 사랑이 결핍된 자유, 열정이 없는 자유, 매혹당하지 않은 자유는 진짜가 아니다. 모조품에 불과하다. 저 하늘의 새가 종횡무진으로 나는 것은 날개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날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신들린 연주자가, 미친듯이 그리는 화가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것과, 그것이 없으면서 그저 타인을 의식하지 않겠다고 결의하는 것은 수준이 다르다. 이야기가 다르다. 연역과 귀납이 다르듯이 다가서는 방향이 다르다. 미인 한번보고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그건 너 모두들 잠든 고요한 이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왜 불러 왜불러 왜 불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