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심양면이라고 한다. 육체가 있으면 정신이 있다. 체體가 있으면 용用이 있다. 정靜이 있으면 동動이 있다. 하드웨어가 있으면 소프트웨어가 있다. 둘은 세트로 존재한다. 물物과 심心은 분리될 수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불가분의 양면성이 있다. 원자가 있으면 구조가 있다. 불변하는 물질이 있으므로 변화하는 성질이 있다. 사물의 원자가 있으므로 사건의 구조가 있다. 우리가 물심양면은 알면서 원자구조 양면을 모른다면 이상하다. 공간의 위치에는 원자가 있고 시간의 변화에는 구조가 있다. 구조가 먼저다. 우리는 컴퓨터가 먼저 발명되고 다음에 인간이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믿지만 수요가 공급에 앞선다. 반도체로 만들어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생각 속의 컴퓨터가 있었다. 소프트웨어가 먼저다. 구조의 연결이 원자의 단절에 앞선다. 구조는 객체가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이고 원자는 그것이 외부에 나타나는 방식이다. 안을 보면 구조고 밖을 보면 원자다. 밖을 보면 물物이고 안을 보면 심心이다. 밖을 보면 체體고 안을 보면 용用이다. 우리는 그동안 밖을 봤을 뿐 안을 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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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그런데 여기서는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구조(안) - 단위 - 관계(밖)
우리는 내부 구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의 관계를 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피상적 관찰이고
구조(배우의 연기)- 필름 - 스크린
우리는 필름을 체라고 믿고 스크린의 그림자를 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배우의 연기가 용입니다.
칼의 속성이 용이고 형태가 체라면 칼의 쓰임은 속성이 어떤 사물에 투영된 것입니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용이고 하드웨어가 체인데
단말기에 나타난 컴퓨터의 작업결과를 용이라고 잘못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속에 있지만 감정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겉으로 드러난 감정은 속일 수 있지만 속마음은 진실입니다.
즉 구조론은 이런걸 피상적으로 관찰하지 않고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용을 내부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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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은(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용이고, 그 가능성이 나타낼 수 있는 틀은 보이는 밖에 있기 때문에 체로 이해합니다.
밖을 보면 체體고 안을 보면 용用이다
문맥 상 안을 보면 체고, 밖을 보면 용이다. 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