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은 변화를 결정한다. 세상은 변화다. 변화는 계 내부의 대칭이 깨져서 형태를 잃는 마이너스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내게 필요한 것을 얻는 플러스 세계관을 버리고 방해자를 제거하는 마이너스 세계관을 얻어야 한다. 플러스는 운신할 공간의 상실하므로 객체를 통제할 수 없지만 마이너스는 공간을 획득하므로 객체를 통제할 수 있다. ### 원자론의 세계관은 작은 것이 모여서 큰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플러스 관점이고, 구조론의 세계관은 큰 원형이 쪼개져서 작은 복제본이 된다는 마이너스 관점이다. 둘의 관점은 완전히 상반된다. 구조론을 이해하는 방법은 원자론을 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원자.. 깨지지 않는다. 원자.. 작은 것이 모여서 커진다. 어떻게 모이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구조.. 큰 원본이 작은 복제본으로 나눠질 때 에너지를 원본에 의존하므로 법칙을 따른다. 변화는 에너지 조달이 가능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므로 예측할 수 있다.
원자.. 작은 것이 모이므로 플러스다. 원자.. 외력에 의해 변화한다. 외력의 원인은 외부사정이므로 설명하지 않는다. 구조.. 내력에 의해 변화한다. 내부에서 비용조달이 가능한 방향으로 변한다.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다. 자연의 자발적 변화는 액션을 최소화 하여 변화의 비용을 최소화 하며 그것은 파동이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경로다.
원자.. 방향이 없다. 공간성이 있을 뿐 시간성이 없다.
원자.. 공간을 채운다. 크기가 있다.
원자.. 크기가 있지만 더 작은게 등장하여 곤란해진다.
원자.. 변하지 않는다.
원자.. 인력이 있다.
원자..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원자..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귀납적 사고다.
원자.. 개체 중심의 사유다.
원자.. 법칙이 없다.
원자.. 강체다.
원자..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자발성이 없다.
원자.. 원인은 언제나 밖에 있다. 원인이 외부에 있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원자.. 깨지지 않으므로 통제할 수 없다. 안전하다. 방어적 사고, 수동적 사고다.
원자.. 내부에 질서가 없다.
원자.. 사유를 공유화 하는 과정에 갈등이 일어난다. 자본주의와 마찰한다.
원자.. 변화가 산술급수적으로 일어나므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원자.. 원자는 내부가 없다고 간주하고 내부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밖에서 보이는 것만 본다. 정보가 제한된다.
### 이유극강이라 했다. 유가 강을 이긴다. 탈레스의 물은 유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강이다. 원자론 역시 일원론이라는 점에서 데모크리토스는 탈레스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에너지를 품은 유의 움직임은 안정되어 강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에너지를 잃은 강은 움직일 수 없다. 물은 멈출 수 있으나 산은 흐를 수 없다. 구조론은 유와 강의 변증법적 통합이다. 유가 강에 앞선다. 부드러운 생명도 죽으면 꼿꼿해진다. 자연의 변화는 유에서 강으로 가며 그 반대는 없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증명한다. 에너지는 막힐때까지 진행하므로 결국 막힌다. 파스퇴르가 벡조목 플라스크로 세균의 유입을 차단하였듯이 외부의 교란요인을 차단하여 노이즈를 제거하면 닫힌계 안에서 일어나는 우주 안의 모든 자발적 변화는 유에서 강의 일방향으로 진행되므로 예측가능하다.
탈레스의 물 - 세상은 유로 나타나는 변화다. 세상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변화이며 변화는 유다. 유가 총이라면 강은 총알이다. 쏘는 총은 원인이고 과녁에 박히는 총알은 결과다. 사건은 총에서 총알로 진행된다. 변화에서 안정으로 진행된다. 유에서 격발되고 강에서 종료된다. 인류는 원인의 총을 보지 못하고 결과의 총알만 봤을 뿐이다. 구조가 사건을 격발하는 사격장을 보지 못하고 원자가 과녁에 박힌 표적지만 확인했다. 넓은 시야로 보면 진화론은 창조설을 계승하고 있다. 창조는 특정 시점에, 특정 위치에서, 특정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윤회설과 같이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은 책잡히지 않으려고 밑도 끝도 없는 애매한 말을 하는데 말이다. 빅뱅이론은 특이점을 인정하는 점에서 창조설과 통한다. 진화론도 특정 시점에 DNA라는 특정 요인에 의해 진화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을 부정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승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을 부정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승하고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탈레스를 부정했지만 본질에서는 계승하고 있다. 구조론은 원자론을 부정하지만 계승하고 있다. 밖을 보면 원자이고 안을 보면 구조다. 인류는 지금까지 존재의 밖을 봤을 뿐 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사결정은 계 안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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