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조론게시판이 알파고와 인공지능 이슈로 뜨거운 것 같습니다.
알파고는 과연 기존 인공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궁극적 신호탄이 되는 것일까요?
이세돌이 이길지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만
동렬님이 링크하신 [알파고는 어떻게 바둑을 둘까(https://brunch.co.kr/@madlymissyou/9)] 를 찬찬히 읽어보다가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띄어 적어봅니다.
알파고가 기존의 다른 인공지능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보니 대략 아래와 같은 이야기인 듯 합니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현재의(아마 알파고를 포함해서) 컴퓨터 계산용량을 넘어선다.
그리고 몬테카를로 트리서치 알고리즘만으로는 프로바둑 수준에 이를 수 없다.
(즉, 알파고는 하드웨어발전을 통해 모든 경우의 수를 완벽히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현된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알파고는 몬테카를로 트리서치 알고리즘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신경망(neural network)을 추가로 활용한다.
정책망은 머신러닝의 방법으로 구현했나 봅니다.
수많은 기보와 데이터를 입력받아서 알파고로 하여금 바둑의 효과적인 다음 착점을 구해내도록 훈련하는 겁니다.
가치망이란 정책망을 통해 얻어진 몇가지 다음 착점들마다의 예상승률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이라고 합니다.
즉, 알파고를 대략 후려쳐서 설명하자면,
머신러닝을 통해 효과적인 다음 착점이 될 수 있는 것을 몇 가지 구해낸 후,
이중 어느 옵션을 선택하는 게 가장 승률이 좋은지 판단하는 머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람이 바둑 둘 때 머리 속에서 하는 짓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인류가 현재까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인공지능의 구현방식이라는 건
대략 다음의 방식으로 인간의 뇌가 하는 사고과정을 [복제]한 것 같습니다.
1)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정책망)
2) 이 중 어느 것을 하는 게 가장 좋은가? (가치망)
다만,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둑이라면 가치망을 구현하는 기준이 명확하다. 집을 많이 얻으면 되는 것이다.
바둑에서 가치의 문제는 [내가 얻은 집의 숫자]로 표현 가능하다.
바둑에서 가장 좋은 다음 착점은 내가 얻을 집의 숫자를 극대화하는 점이라고 명확하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숫자로 표현하기 힘든 영역에서도 여전히 유용할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인공지능에게 훈련용으로 입력할 수 있는 입력값은 어쨌거나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다면, 0/1로 치환되는 입력값을 가지는 구조 속에서의 인공지능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0/1로 치환되지 않는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무엇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알파고가 우리에게, 적어도 구조론을 아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함의는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당면한 문제는 머신러닝의 알고리즘의 발전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계에게 어떤 입력값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는 인공지능의 문제를 입력 >> 저장 >> 제어 >> 연산 >> 출력의 단계 중 입력 곧 질의 단계에서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가? 무엇이 가장 정의로운가? 의 문제에 대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가치망을 설계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인간의 사고란 것도 결국 뉴런의 전기적 작용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만
가치의 문제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뇌에 가해지는 그 전기적 작용의 입력값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요?
구조론은 이렇게 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입력값은 질에서 온다.
그 입력값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온다.
기계가 스스로 [좋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으려면
누구에게, 어떤 집단에게 좋은 것인지 숨겨진 전제를 드러내고
경계설정을 하고 피아구분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집단 내의 관계를 드러내고, 그 관계 속에서 오는 어떤 작용들을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구조론이 인공지능에게 향후 제시할 발전방향이 될 것입니다.
기계에게 어떤 입력값을 던져줄 수 있을까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일이 너무나 많을 것 같지 않으십니까?
사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이미 플랫폼화 되어있습니다.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들을 플랫폼 형태로 제공하는 IT 기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렬님이 링크하신 글 말미에 언급된 쿨리타(인공지능 작곡), 딥드림(인공지능 회화) 등을 보면
음악이나 이미지를 수치화하여 기계에게 입력값을 던져주고 이를 패턴화하는 방식으로
예술도 인공지능화하는 시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가치의 측면에서 이 결과물들이 정말 [좋은가]를 볼땐 어설퍼 보입니다.
생체데이터를 입력받아 의사보다 더 빨리 암을 발견하는 인공지능 이야기도 지나가다 눈에 띕니다.
무엇을 입력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세상을 얼마나 놀랍게 바꿀 수 있을지의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건 개발자들이 좀 유심히 봐야할 대목. 기상예측에서도, 시간텀을 공간텀으로 바꿔서 계산해내니, 선제대응이 없지. dynamics라는 개념을 도입하지만, 영국 양치기의 확율통계로 도망갈뿐.
하나의 중력계 위에 있는 시소에서
상호작용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인공지능이 완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한다는 관점을 가지는한
결코 깨달을 수 없다는거죠.
인간의 프로기사는 무리의 대표로 나섰습니다만,
알파고는 인간의 지식체계를 빌린다라는 보이지 않는 전제를 깔고 들어오므로 이세돌과 승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대표랑 노예랑 싸움이 될리가.
근데 우리가 흔히 인공지능을 인간을 닮게 만든다고 하는데, 이때 인간은 도대체 어떤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
찰스 수준의 인공지능이라도 만든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을 좀 해봐야합니다. 지금의 알파고는 딱 찰스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체스에서는 어떻게 인공지능이 이겼는가? 바둑이 있기 때문이겠죠.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려면 바둑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모순.
선수란 구조의 시작을 스스로 만드는 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이며 이때 시간을 쓴다는 것은 구조의 전개를 시작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됩니다.
결국 스스로 사건을 일으키는지 여부입니다. 바둑에서는 두 기사가 실력 차이가 있을 때, 고수가 나중에 두는 것으로 아는데, 나중에 두지만 선수를 둘 수 있다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고수는 선수를 둡니다. 하수가 이미 그 판에 들어온 순간, 심지어는 상대가 먼저 두게 하는 것조차 고수의 덫입니다. 하수는 알리가 없죠. 혹은 알아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게 사건을 일으키는 자의 절대권입니다. 응하는 순간, 쳐다보는 순간 넘어간 겁니다.
아직 진짜 인공지능 근처에 가지도 못했소.
누가 이겼나 졌나와 상관없이 지금은 전략개념이 없소.
즉 어떤 비교판단만 하고 있을 뿐 상황을 만들어가는 개념이 없소.
질 입자 단계가 없고 힘 단계만 있소.
정책망은 힘, 가치망은 운동으로 보여집니다.
선수를 치고 선제대응을 할 줄 모릅니다.
공간을 볼 뿐 시간을 볼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