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노무현이 콩코드를 타는 이유는?

노무현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결석을 시키고 함께 여행을 가는 등 자유방임적인 교육을 한다. 그러다가는 이를 후회하고 『지금 다시 아이를 키우라면 망설이지 않고 경쟁의 대열로 밀어넣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이 잘못되었을 때는 그 제도와 구조를 고쳐야지 혼자 외면해서 안된다고 변명하고 있다. 어색하다. 안해도 되는 변명을 왜 하는 것일까? 누구를 의식해서?

 “지금 세대에게 고시란 너무나 안정된 피난처이다.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노무현어록 - 아들 노건호씨의 졸업식에서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휴학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만 두라’고 한 일을 끄집어내며]

노무현은 고시를 치러 법관이 되겠다는 아들 노건호씨를 만류하여 LG전자에 출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게 만들었다. 아들이 편안한 길을 가기 보다는 세상의 쓴맛을 경험하기를 바란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지금 다시 아이를 키우라면 망설이지 않고 경쟁의 대열로 밀어넣을 것』이라고 쓴 자서전의 내용과 배치된다. 그 사이에 맘이 변한 것일까?

자서전은 기자들을 불러놓고 과시하기 위하여 자전거를 타고 국회의사당에 나오는 위선적인 의원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 노무현은 콩코드를 탄다. 이를 변명하기 위하여 초선의원 시절 자가용 없이 버티어보려고 마음먹었다가 택시잡기가 힘들어서 고생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역시 구차한 변명이다.

중요한 점은 초선의원 시절 자가용 없이 버텨보려고 적어도 시도는 해봤다는 점이다. 왜?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노무현은 역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이다. 자전거 출근이 비판받아 마땅한 쇼라면 자가용 없이 버텨보려 했던 시도는 누구의 시선을 의식한 쇼일까?

노무현은 뒤늦게 골프도 배웠다. 그의 변명은 정치인들이 모두 골프장에 가 있기 때문에 골프를 배우지 않으면 정치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고 본다.

쇼라도 좋다. 자전거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자전거로 버텨야 한다. 80년대 말 농민출신으로 당선된 서경원의원은 한복을 입고 등원한 적도 있다. 중요한건 일관성이다. 서경원의원이 과연 끝까지 한복으로 버틸 수 있는가이다. 끝까지 버틸 자신이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쇼다. 자전거 쇼도 좋다. 이회창의 지하철 쇼가 문제인 것은 한 두번 하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한 번 하면 쇼이지만 계속하면 쇼가 아니다. 여의도에서 자전거등원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무현이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색하다. 자기변명이다.

노무현도 한때는 선거자금을 원 없이(?) 쓰기도 했다. 2001년 12월 기자들과 저녁식사하는 자리에서 ‘2000년 부산에서 출마했을 때는 한도 원도 없이 돈을 써봤다.’ 한 말이 국민경선에서 이인제씨에게 공격당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예전에 천당과 지옥이 재판을 한 일이 있었다. 지옥이 승소했음은 물론이다. 유능한 변호사는 모두 지옥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변호사다. 변호사만큼 세상의 온갖 지저분하고 야비한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타락하려면 변호사만큼 타락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무현도 타락한 것일까?

왜 노무현은 안해도 되는 변명을 굳이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 타는 차를 타고, 다른 사람이 치는 골프를 친다는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그러한 자신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노무현은 자신의 서민적 정체성을 그만치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해도 되는 변명을 굳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보좌하는 386 세대 젊은이들의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노무현이 콩코드를 타는 이유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이다. 노무현이 골프를 배운 이유는 마찬가지로 그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자서전에 쓰는 이유는 서민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차츰 그들 세계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며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의 서민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의식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하여간 노무현은 이렇게 조금씩 자신의 타락을 허용했다.

폭로하자! 노무현은 고집 센 원칙가가 아니었던 거다. 그는 유연한 실용주의자였다. 해볼 수 있는 것은 한번씩 다 해보는 사람이었다. 여자 있는 집에서 술도 마셔보고, 골프도 쳐보고 요트도 타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단히 자신을 상승시켜 가는 것이다.

노무현의 원칙은 선비의 지조가 아니며 열녀의 절개가 아니다. 고집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386세대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덤에서 지켜보는 큰형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역사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거 뿐이다. 그것이 원칙으로 나타난다.

소년시절 노무현은 거짓말도 했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작은 형과 과수원을 하기 위해 김해 농업시험장에서 묘목을 슬쩍하기도 했다. 노무현의 원칙은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다. 언제든지 유연하게 협상하고 타협하고 적응하는 사람이다. 서민 출신인 원효스님의 무애행(無碍行)과 같다. 동학에서 불교로 기독교로 바꾼 김구선생의 사상편력과도 같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바꾸는 거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라.』[노무현어록 - 기자들이 자꾸 가훈이 뭐냐고 묻자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한번 써봤다며.]

탄로가 나고 말았다. 자신에게 엄격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자들이 자꾸만 보채니까 한 번 써본 것에 불과하다. 노무현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다. 큰 형님 믿고 사고나 치던 응석받이다. 자신에게 이것 저것 골고루 한번씩 해볼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노무현의 원칙은 자신에게 엄격한 선비의 지조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는 것이며 역사 앞에서 지도자로서 태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과 만나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노무현만큼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단 바른 판단일 경우에 한해서이다. 바른 말이면 자존심도 버리고 체면도 버리고 이쪽의 의견을 전폭 수용한다. 그러나 노무현이 판단해서 바르지 않은 주장이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설득해도 조금도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 노무현이다.

김대중대통령과 비교할 수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논리의 천재다. 어떻게든 거꾸로 이쪽을 설득해버린다. 논리로 김대중대통령을 설득해내는데 성공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김대중대통령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은 읍소작전 하나 뿐이다. 마음 약한 김대중은 눈물작전에 넘어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살을 잘 피하고 물살을 잘 타는 사람의 묘기를 지켜보며 좋아하지만 거대한 흐름에 굽히지 않고 비바람을 뚫고 나가는 꿋꿋한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노무현어록]

결론을 내리자. 노무현이 아들 노건호가 법관이 되는데 반대한 이유는 대를 이어 법관이 되므로서 법관집안으로 고착되어 상류층 계급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골프도 한번쯤 쳐보는 것은 인생에서 하나의 도전이 되므로 좋은 일이지만 골프나 치는 그룹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계급의 적에 투항하는 것과 같다.

중국에서도 본국에 돌아가면 강가놈 원수갚겠다 되뇌셨을 정도야. [백범의 아들 김신의 증언]

오나라 왕 부차는 섶에서 잤고 월나라 왕 구천은 쓸개를 씹었다. 백범이 고향 마을 양반 강가놈의 원수를 갚겠다고 되뇌인 것은 정말로 그리할 생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단히 자기를 단련시키기 위한 일종의 자기암시였던 것이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처음 세상과 맞서 각을 세웠을 때의 초심을 잊어서 안된다. 언제까지라도 자신을 도전자의 포지션에 위치시켜 두는 전략을 잊어서 안된다. 서민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 노무현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덧글.. 원칙가는 많다. 그러나 원칙이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있어 원칙은 일종의 종교 비슷한 거다. 그들은 위기에 몰리면 종교인이 하느님께 매달리는 심정으로 원칙에 매달린다. 이건 아닌 거다.

위기상황이다. 기도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그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노무현도 원칙가이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종교적인 원칙, 혹은 원칙으로의 도피가 아니다. 그는 현실과 맞서 싸우지 않는 수단으로 원칙을 악용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원칙은 합리주의다. 그는 원칙이 결국은 승리하더라는 역사와 인생의 경험칙에 의존할 뿐이다. 그의 원칙은 승산이 있는 원칙인 것이다.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원칙, 끝끝내 현실과 맞서 현실을 직시하는 원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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