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자유, 신뢰, 실용의 지도자 백범

인생은 고해라더니 살기도 어렵고 죽기도 어렵다. 자살도 자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서대문 감옥에서 안명근이 굶어죽기를 결심하자 눈치 빠른 왜놈이 계란을 풀어서 강제로 먹이므로 자살을 단념하였노라고 알려온 것을 보면 자유를 잃으면 자살도 어렵다. [백범일지]

이승만이 미국에서 수입한 데모크라시라는 것은 자유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으나 거기에는 자주의 의미, 주체의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그 자유가 수입되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개척자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사라지고 그 후손들이 누리는 성과만이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김구의 자유는 다르다. 그것은 죽음조차도 초극하는 것이다. 백범의 자유가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자유의 결핍을 겪어보지 못한 양반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모른다. 책상물림 지식인들이 자유의 참뜻을 안다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다.

배우지 못한 상놈들도 자유의 소중함을 모른다. 오직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려는 자 만이 자유를 안다. 그 상승의 과정에서 무수히 꺾이어 본 자 만이 참된 의미에서의 자유를 안다. 속박에서 벗어난다 해서 자유는 아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freedom)로 안된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해방(liberty)이어야 한다.

liberty는 본래 노예가 주인에게서 독립함을 의미한다. 사랑(love)이라는 단어는 본래 해방(liberty)에서 나왔다. 삶(live)이라는 단어는 본래 사랑(love)에서 나왔다. 그러한 즉 자유(liberty)가 없으면 사랑이 없으며, 사랑(love)이 없으면 삶(live)이 없는 즉 죽음이다.

1775년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에서 패트릭 헨리가 영국군을 향하여 외쳤다.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는 사랑, 사랑은 삶, 삶을 빼앗기면 죽음 뿐이다. 백범이 두 번이나 자살을 결심한 이유를 알만하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가슴 저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이었다.

자유는 주체다. 자유는 사회구성체의 일 단위가 되는 개인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구성의 1분자로서 그 사회전체에 대하여 경제적인 자립, 정신적인 자주, 정치적인 자기주도권이 없이 자유는 없다.

자유는 참여다. 개인이 사회구성의 일 분자로서 그 사회의 집단적 의사결정에 참여함이 없이 자유는 없다. 자유는 가진자로부터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시혜가 아니다. 사회구성의 1분자로서 제 몫의 기능을 해낼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부단한 상승함이 없이 자유는 없다. 한 마리 새가 날개짓을 하듯 자유는 부단한 상승이다.

일을 맡김에 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람이 의심스러우면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일생을 통하여 이 신조 때문에 종종 피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바꾸지 못하였다. [백범일지]

노무현의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선보인 파격적인 인사 스타일도 사람을 완전히 믿고 맡긴다는 점에서 김구선생의 리더십과 유사하다. 무엇보다 업무의 효율성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해 본다.

『노 후보의 인사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검증하고 일단 한 번 일을 맡기면 100% 권한을 주는 식이다. 노후보 보좌관 출신인 서갑원 의전팀장은 『국회의원 시절엔 보좌관 한 명을 뽑을 때도 인터뷰를 수 차례나 하고 여러 채널을 통해 뒷조사를 했다』며 『그러나 한번 채용하면 전권을 맡겼다』고 전했다.』[동아일보]

엘리트 지식인들은 툴(tool)을 사용한다. 그 툴은 집단 내부에서 인맥과 선후배관계와 서열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스템이다. 유능한 엘리트라면 이러한 툴을 사용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들은 상대방의 신분이 자신보다 낮은 위치인지 높은 위치인지를 눈치도 빠르게 판단하여 그 위상관계가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잘도 사용한다.

서민 출신의 노무현은 그러한 툴을 사용한는데 서투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하에게 전권을 주고 아예 개입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현명한 것이다. 대신 신뢰라는 무기로 그 약점을 커버하고 있다.

대통령후보 결정과정에서 정몽준씨가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단일화협의회니 뭐니 하여 노무현을 곤란케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래 이 분야에 서투른 노무현이 바뀐 정치적 위상관계를 재빨리 정립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도무지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노무현이 힌트를 던져주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어색해진 것으로 감정을 상하게 되고 곧 탈당으로 이어진 것이다. 줄을 댈 노무현의 보좌진이라곤 대개 38살 전후의 386세대여서 의원들과 나이가 스무살이나 차이가 나니 창피해서 줄을 대려고 시도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국민경선 이후 당선자의 보좌진들이 점령군 행세를 한다니 어쩐다니 하며 성토하고 있지만 본질은 도무지 어디에 줄을 대면 되는지 힌트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렁탕이라도 한그릇 사주었다면 눈치를 채고 그쪽으로 재빨리 줄을 섰을 일인데 말이다.

정몽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은 후보단일화 이후 달라진 두 사람의 위상관계에 대해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았다. 총리라도 한자리 얻으려면 알아서 기라고 시키면 기기라도 하겠는데 기라는 것도 아니요 서라는 것도 아니니 앞날이 불안해져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지지를 철회하게 된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이다. 누구에게 줄을 대고 누구의 부하나 보스가 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처신을 분명히 하여 미묘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위상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노무현은 20여년 정계에 몸담았지만 실로 정치에 대해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다. 주자가 방귀를 뀌어도 향기인줄 안다고 기성세대를 비웃던 그 입으로 마르크스와 레닌의 방귀는 달다고 하는 청년들이여! 정신 좀 차릴지어다. 나는 유교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고 마르크스를 배척하지도 않는다. 우리 국민성에 맞는 주의, 제도를 연구하는 자 있는지, 만일 없다면 이보다 슬픈 일은 없으리라. [백범일지]

김구선생의 실용주의자다운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유교와 동학, 불교와 기독교,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섭렵하며 어떤 사상이든 좋은 점은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범의 실용주의는 근데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합리주의는 본래 전근대의 종교적 태도에 반하고 있다. 18세기 지리상의 발견과 뉴튼의 고전역학 이후 모든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의 주체가 기독교의 교리에서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바뀌게 된 것이 곧 합리주의다.

말로는 과학을 주장하면서도 그 과학의 적용에 있어서는 종교의 교리를 적용하듯 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편향이다. 대개 지식인들은 현실에 부대껴 보지 않았으므로 어떤 일이 진행되면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거쳐 점차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지식은 밑에서부터 하나씩 쌓여진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된 것이어서 일방적으로 작용할 뿐 조정하고 제어하는 기능이 없다. 자동차에 비하면 엔진과 바퀴는 있으나 핸들과 클러치와 브레이크가 없는 격이다.

조정과 제어의 개념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감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빌어온 권위에 의지하게 되니 이나라에서 과잉 발달된 주자학이 그러하고 코민테른의 지시에 복종하는 이 시기의 공산당이 역시 그러하였다.

원동 3당 통일회의를 열어 한국독립당을 새로 탄생시켰다. 7당과 5당의 통일은 실패하였지만 3당 통일이 완성될 때 하와이 애국단과 하와이 단합회가 자기 단체를 해체하고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가 성립되니 실은 3당이 아니고 5당이 통일된 것이다. [백범일지]

해방후 건국을 앞두고 백범이 단정에 반대하고 남북합작을 성사시키려 끝까지 노력한 이유는 이 시기 민족주의세력과 공산당의 합작을 성공시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의 국공내전을 통하여 남한의 단정수립은 곧 625의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변호사업무를 통하여 서로 적대하고 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중재해 본 경험이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중재로 이어지고, 또 정몽준 등 이질적인 정치세력과의 연대도 성사시켜내는 것이다. 경험이 있어야 한다.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사람들과 부대껴 보아야 한다.

백범이나 노무현이나 원칙에는 철저하나 타협할 때는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밑바닥에서 무수한 사람과 부대껴 본 경험으로 인간이 분열하고 적대하며 다시 뭉치는 데서의 본질을 알기 때문이다. 백범과 노무현이 일견 강고한 원칙주의자로 보이는 것은 그 중재와 타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먼저 강경하게 원칙을 지켜서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무기로 중재하고 타협하고 조정함에 성공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원칙을 저버리고 타협을 주장하는 자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고한 원칙가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용주의자일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지식인들은 원칙을 지킬 때와 타협할 때의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수이다. 김근태의 최근 행보가 전형적으로 타이밍에서의 실패사례가 된다는 사실을 김근태 본인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1932~ 1945년]

64세, 임시정부 중경으로 옮기다.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당을 통합하여 한국독립당을 발족시킨다. 국광복군을 조직하고 총사령관에 이청천, 참모장에 이범석을 임명한다.  

68세, 미국 O.S.S와 합작으로 광복군 특공대를 편성하여 국내진공 작전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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