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5338 vote 0 2004.09.07 (22:27:33)

9. 기적을 부르는 사람

국모보수(國母報讐) 네 글자가 이상하게 여겨져서 임금에게 보이니 대군주가 즉시 어전회의를 열고 일단 생명이나 살리고 보자 하여 전화로 친칙하였다 한다. 이상한 것은 그때 경성에서 인천까지 장거리전화가 완공된지 3일째 되는 날이라서 만일 전화 준공이 못되었어도 사형이 집행되었겠다고 한다. [백범일지]

노무현과 김대중의 당선과정은 한 편의 그림 같은 드라마였다. 기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기적은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구매하지 않은 복권이 당첨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기적은 그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어떤 방법으로 기적에 대비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드라마다.

드라마의 반전은 주로 주인공을 배척하고 악당을 추종하던 주변인물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약자인 주인공을 돕는 형태로 일어난다. 왜 그들은 주인공을 돕는 것일까? 그것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기적이 아니다. 실은 평소에 주인공이 그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엘리트 출신 지도자와 서민 출신 지도자의 가는 길이 갈라진다. 엘리트는 초패왕 항우가 그러하듯이 애초에 출중한 실력을 가졌으므로 어떤 핵심적인 가치를 먼저 장악한 후 그것을 부하들에게 나누어주는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해 나간다. 한 고조 유방이 그러하듯이 서민 출신의 지도자에게는 그 나누어질 핵심의 뭔가가 없다. 그 부하들에게 나누어줄 뭔가를 획득하는데 서툴러서 권력의 장악에 실패한다.

중심부와 외곽이 있다. 엘리트출신 지도자는 먼저 중심을 차지하고 서민 출신 지도자는 항상 외곽을 맴돈다. 자신이 먼저 중심부를 차지하고 그 차지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엘리트의 방법이라면, 반대로 끊임없는 희생과 양보를 통하여 외곽에서 자기편을 늘려가는 것이 서민의 방법이다.

기어이 건곤일척의 결전이 있게 된다. 당연히 엘리트가 이기고 서민은 패배한다. 이때 그동안 서민출신 지도자의 희생으로 하여 도움을 받았던 주변 세력들이 약자인 서민 지도자의 편에 선다. 이것이 드라마다. 극적인 반전이다. 이것이 기적이다.

그것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실은 평소에 끊임없는 희생과 양보를 통하여 행운의 확률을 높여놓았기에 가능한 당연한 귀결이다. 기적은 일어난다. 그러나 기적은 그 기적을 준비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희생과 양보가 그 준비가 된다. 평소에 희생과 양보를 통하여 그러한 행운의 확률을 높여놓아야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김구는 일생을 통하여 무수히 타인의 도움을 받아 극적인 회생을 한 기적의 체험을 가지고 있다.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는다.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게 된다. 왜? 그 기적을 믿으므로.

 

10. 서민출신 지도자의 성공사례 

당시 강화에 두 인물이 있었는데 양반에 이건창이요 상놈에 김경득이라 한다. 흥선대원군이 김경득의 인물됨을 탐색하고 포량감의 중책을 맡겼다고 한다. [백범일지]

김경득은 수십만냥의 재물을 모은 상민계급 출신 지도자이다.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김구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김구 구명운동을 벌여 가산을 탕진하였다. 용사 십수명을 모아 인천 감리영을 파옥하고 김구를 탈출시키려 하였으나 그때 김구는 이미 탈출한 뒤였다.

상민출신 지도자에게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문제는 신뢰다. 어떤 사회이든 지식인들은 공론을 형성하고 신뢰를 창출하여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상민 출신으로는 김경득처럼 돈을 써서 사람을 모으거나 아니면 완력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돈의 힘과 완력의 힘으로는 지도자로서 명백한 한계가 있다. 김경득과 같은 상민출신 지도자는 일정 범위 안에서 소집단의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으나,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는 없다. 전봉준의 동학민중항쟁의 실패와 홍경래의 난의 실패 또한 그러한 서민출신 지도자의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바 된다.

대부분의 농민 출신 지도자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양반 출신의 명망가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이때 양반에 몸을 의탁한 서민출신 지도자는 그 자신의 섬기는 주군에게는 절대 충성하나 자기 자신은 결코 타인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 즉 신뢰의 결핍으로 하여 스스로는 온전한 한 사람의 지도자로 우뚝 서지 못하는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이런 서민 출신의 지도자를 모아서 자기의 심복으로 삼곤 하였다.  

김구 역시 서민출신 지도자로서 명백히 한계가 있었다.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진사 안태훈의 식객이 되어 양반출신 지도자의 심복노릇이나 했을 것이다. 김구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데 성공한 유일한 서민 출신의 지도자이다.

김구는 후일 양반 출신 지도자들과 손잡고 교육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요는 여기서의 합리주의적 태도이다. 양반의 심복이 되거나 충돌하지 않고 그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데 성공한 것이다. 기성질서와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은 전봉준과 홍경래 그리고 기성질서의 충실한 심복이 된 김경득류와 달리 김구는 서민 출신 지도자로서 제 3의 길을 열어제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백범의 합리주의적 태도야말로 대부분의 서민 출신 지도자에게 부족한 즉 배우지 못한 상놈의 한계이다. 백범과 노무현, 김대중이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전모를 본 자 만이 가능하다. 김구는 양반과 손을 잡고 교육사업을 하면서도 서민출신 지도자의 정체성을 끝까지 잃지 않는데 성공하고 있다.

민족의 지도자라는 면에서 볼 때 김구는 서민출신 지도자로서 완벽하고도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결코 김구는 실패하지 않았다. 노무현에 의해 김구는 계승되었다. 아니 계승되어야 한다.

[1897~1898년]

23세, 치하포에서 왜놈 간첩 토전양량(土田讓亮)을 살해한 죄로 투옥되었다가 처형 직전에 고종황제의 특별지시로 사형집행이 유예된다. 이듬해 3월 인천 감리영을 탈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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