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연재를 중단했다가 서프라이즈의 사이트 개편에 맞추어 연재를 재개합니다. 제가 2년 전에 본 노무현과 지금의 노무현..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권양숙여사는 왜 노무현을 돕지 않았나?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는 젊은 시절 아내에게 손찌검 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자서전에 묘사한대로 노무현은 밥상 좀 들어달라고 하면 밥상을 엎어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사람일까? 천만에!

비유다. 행간을 읽어야 한다. 숨은 암유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94년의 자서전이 사실상 대통령 출마선언이라고 생각한다. 부인은 '민중'에 대한 비유다. 노무현이 젊은 시절 가졌다고 고백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실은 민중에 대한 편견을 의미한다.

운동권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비로소 여성을 보는 시각을 교정했다는 이야기는 실은 노무현이 민중에 대한 관점을 교정했다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한다.

노무현은 왜 ‘여보 나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것일까? 자서전에 씌어있는 대로 부인 권양숙님은 노무현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일까? 천만에! 또한 속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은 자기연출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다.

엘리트출신 지도자는 자신의 장점을 이용하고 서민출신 지도자는 자신의 단점을 역이용한다. 장점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출세의 사다리에 타인을 끼워주므로서 아랫사람으로 거느린다는 것이다. 서민출신 지도자는 그 출세의 사다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남을 도와줄 수 없다. 대신 타인이 자신을 돕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가까운 가족들이다. 엘리트라면 가족들의 인맥이 도움이 된다. 이회창씨라면 처가 쪽의 빵빵한 인맥이 도움이 되는 식이다. 권양숙님에겐 노무현을 도와줄 대단한 친인척이 없다. 그런데 왜 노무현은 권양숙님의 도움을 호소하는 것일까?

노무현의 ‘여보’는 권양숙님이 아니라 바로 유권자들이다. 노무현은 유권자들을 향해 도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 여러분 나좀 도와줘’이다. 무엇일까? 야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94년 노무현은 이미 대통령후보로의 출마결심을 굳혔다고 볼 수 있다.

94년 권양숙님은 노무현의 대통령출마 야심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 권양숙님에게 투정을 부리는 형식으로 실은 유권자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출마할거야! 나의 야심을 믿어줘”

‘여보 나좀 도와줘’에 의하면 권양숙님은 정치인 노무현을 돕기는 커녕 정치를 그만두고 변호사시절로 돌아가기를 종용했다고 한다. 이른바 '정치인의 내조'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과연 내조를 하지 않았을까? 하긴 빵빵한 친인척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지만.

백범일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부인 최준례(崔遵禮)여사는 모친 곽낙원(郭樂園)여사와 한통속이 되어 백범을 몰아붙이는 통에 부부싸움에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한다.  

다른 가정에서 부부간에 말다툼이 생기면 어머니는 주로 자기 아들의 편을 들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아내가 내 의견을 반대할 때는 어머님이 열배 백배의 권위로 나만 몰아세운다. 이 때문에 부부싸움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늘 지기만 했다. [백범일지]

속아서 안된다. 서민출신 지도자는 일종의 응석심리가 있다. 자신을 불리한 위치에 빠뜨려 놓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돕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동정심에의 호소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반복적인 낙선은 역시 유권자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법인 것이다. 서민출신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서민적인 평등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서민들은 누군가 자신의 위에 군림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거부하는 습관이 있다. 엘리트라면 윗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대신 자신의 밑에도 아랫사람을 둘 수 있지만, 서민은 그 자기 밑에 둘 아랫사람이 없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숙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무현에게는 스스로 남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인디언의 포틀라치 축제와 같은 원리이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냉대 받았다. 노무현도 고향 부산에서 낙선하였다. 자신과 가까울수록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을 때 천하사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다. 노무현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인이 노무현의 야심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천하가 노무현의 야심을 인정하게 된다.


덧글.. '노무현의 전략'을 이야기 하면서 과연 노무현이 계산된 언행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좌충우돌식 돌출발언을 일삼아 왔는가 하는 점에서 독자들로 부터 많은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이 글은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전에 쓴 글입니다. 참여정부 1주년이 된 지금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재신임선언'만 해도 그렇습니다. 1년 반 전에 쓴 이 글이 이미 노무현의 그러한 정치스타일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한대로 재신임선언은 '자신을 불리한 위치에 빠뜨려 놓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돕도록 유도하는 응석의 전략'입니다.

10년 전 '여보 나좀 도와줘' 하고 권양숙여사님께 투정을 부리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유권자들에게 도움을 호소하였듯이 대통령 취임 이후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폭탄발언에서 부터 여의도의 시민혁명발언이나 그 외에 논란을 불러 일으킨 무수한 발언들, 그리고 오늘 3.1절 기념사에서 고이즈미를 겨냥한 발언까지 모두 계산된 발언입니다.

노무현이 무려 10년 후를 대비하여 발언하듯이, 또 제가 1년 반 전에 노무현의 이러한 정치행보를 예측했듯이 노무현의 발언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계산된 발언입니다.

그러나 이를 결코 잔머리나 꽁수로 착각해서 안됩니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잔머리 쓰는 사람 봤습니까? 10년 앞을 내다본 계산이라면 그것은 잔머리가 아니라 철학입니다. 노무현의 정치철학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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