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12번째 글입니다. 지난해 대선 이전에 씌어진 글이나, 일부는 지금 현실에 맞게 고쳤습니다. 』

9. 간호보조원과의 첫사랑

노무현청년은 울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건축용 목재에 얼굴을 맞아 이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입원한다. 병실에서 노무현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원에게 첫사랑을 느낀다.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를 위해 단편소설 습작을 쓴다.

물론 결과는 헛물을 켠 셈으로 된다. 그녀는 실은 문병을 온 노무현의 대학생 친구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미남이 못되는 노무현의 주름진 얼굴, 작은 키, 가난한 집안, 배우지 못한 학력, 생각하면 노무현은 콤플렉스 덩어리다.

아니다. 열등감 만으로는 콤플렉스가 되지 않는다. 열등한 사람은 노무현 말고도 세상에 많다. 그들은 보통 체념한다. 콤플렉스는 열등감과 우월의식이 공존할 때 그 모순에서 생기는 것이다.

콤플렉스(complex)라는 어휘에는 ‘두 가지 이상이 포개져 있다’ 뜻이 있다. 열등감과 우월의식이 포개져 있는 것이 콤플렉스다. 그 모순의 크기 만큼, 그 분노의 크기 만큼 가슴 밑바닥에 열정이 응축되는 법이다.

나쁜 콤플렉스가 있고 좋은 콤플렉스가 있다. 신분은 높은데 실력이 없는 자의 콤플렉스는 나쁜 것이다. 반면 노무현처럼 실력은 있는데 신분이 낮아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 가슴 밑바닥에 쌓인 분노가 거대한 에너지원이 된다. 열정이다.

노무현, 얼굴로 겨루어서는 진다. 학력으로 겨루어도 진다. 애초에 불리한 조건으로 출발선에 선다. 핸디캡이다. 이래서는 승리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연출이다. 어차피 질 싸움이라면 재빨리 포기하고, 대신 게임의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노무현의 승부수는 항상 성공했다.』[노무현어록 - 2002년 11월]

사회에서 먹어주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게임의 규칙’으로는 이길 수 없다. 오직 실력으로서만이 이길 수 있다.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룰’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노무현은 승부사다. 승부사는 결코 질 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의 인생에는 무수한 패배가 있다. 왜? 또한 트릭이다.

작게 여러 번 져주는 방법으로, 노무현이 이길 수 있는 지점까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지점까지 적을 조금씩 유인해 와서, 크게 한번 이기는 것이다. 그 한번의 승부로 아주 결판을 내는 것이다. 이것이 승부사기질이다.

노무현의 삶에는 무수히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크게 한번 이기기 위해 작게 여러 번 져주기다. 그것이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아주 습관이 되었는지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서도 부러 굽히고 들어가는 때가 많다. 오해를 받곤 한다.

일정부분은 연출이다. 연출하기 위해서는 비워놓아야 한다. 미리 자신의 행동반경을 넓혀놓기다. 직함이나, 체면이나, 위신 따위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어서는 그러한 포지션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막말’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포기할 때 까지 언론과 국민을 길들여놓기다. 그래야만 나중 융통성을 발휘하여 귀신도 속여넘기는 극적인 승부수를 둘 수가 있다.

판사도, 변호사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노무현에게는 단지 한번 쯤 해보는 것에 불과했다. 그는 힘들게 얻은 것을 하나씩 버리면서 노무현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유리한 지점으로 조금씩 포지션을 이동시켜 왔다.

그 인생이 통째로 그러하다. 그는 때로 불리한 지점에서 지는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 무모하게 싸움에 뛰어든다. 미끼다. 유리한 지점으로 적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그는 그가 애써서 이룬 것을 하나씩 버려온 것이다.

그렇게 판사도 버렸고 변호사도 버렸고 의원직도 내던져버렸다. 마침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자리인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허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사 감추어둔 진짜를 꺼낼 때이다. 마른 침을 삼키고 기대해도 좋다. 노무현이 진정으로 보여주려 했던 그 무언가를.

덧글.. 노무현청년은 왜 단편소설 습작을 썼을까? 첫사랑의 그녀에게 바치기 위해? 천만에! 노무현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거다. 어차피 지는 게임이라면, 어차피 손해보는 사랑이라면, 그 손실을 보상받을 단편 하나는 건져야 했던 거. 노무현방식이다.

패배할 줄 뻔히 알면서 지는 싸움에 뛰어들기, 깨끗이 물러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기, 투자는 이쪽에 하고 본전은 다른 데서 회수하기. 여우는 굴을 파도 두개 이상의 출구를 둔다. 노무현의 배팅은 언제나 둘 이상을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

 

10. 7개월만에 판사를 때려치우고

1977년 노무현은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를 지내다가 7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한다. 노무현판사는 판사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변호사를 개업하여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물론 있었을 것이나 그보다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교감선생님께 대든 사건에서 보듯이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식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제는 인간관계다. 좋은 판사는 좋은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좋은 인간관계는 대개 학창시절의 좋은 선후배관계에서 싹트는 법이다. 대학을 다니지 못한 노무현에게는 좋은 인간관계를 배울 좋은 학창시절이 없었다.

가슴에 쌓인 분노와 저항의식과 콤플렉스로는 좋은 판사가 될 수 없다. 노무현에게는 당시의 관행이었던 변호사의 로비를 감당할 수 있는 냉철함이 없었다. 자기편이 너무 없어서 외로웠던 노무현은 그를 이용하기 위해 거짓미소를 띄고 수작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뿌리칠 정신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좋은 배경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단점은 그를 이용해먹기 위해 접근하는 가면 쓴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노무현은 판사가 되기까지 거의 10여년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너무 외로웠던 거다. 너무 순수했던 거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시점이다. 그걸 알므로 떠나야 했다.

노무현에게 고독은 숙명이다. 이후 변호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많은 친구를 얻게 되지만 그래도 그는 늘 혼자였다. 중요한 일은 혼자 결정해야 했고, 혼자 고독하게 세상과 싸워나가야 했다. 국민경선에 도전하기 직전까지 그는 단 한 명의 계보원도 두지 못했다.

처음에는 외로움과 맞서지만, 나중에는 외로움이 병이 되고 기어이는 외로움이 숙명이 된다. 노무현은 외로운 판사생활이 싫어서 친구와 부대낄 수 있는 변호사가 된다. 외로운 변호사가 싫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정치인이 된다. 노무현은 외로움을 벗어나려 할수록 숙명적으로 외로움 속에 갇혀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무실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서류나 넘기는 판사보다는 정다운 친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변호사가 좋다. 그래도 외롭다. 더 많은 친구를 얻기 위해 운동권에 투신한다. 그래도 가슴 한 켠이 허하다. 마침내 국회의원이 된다. 그래도 그는 늘 혼자이다. 소신과 원칙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노무현어록 - 젊은 참모진이 다리를 꼬고 않아 담배를 피우는데 놀란 50대 참모가 질책하자]

이 일화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무현의 대화상대가 되는 보좌진은 나이 차이가 20살이나 되어 외로움을 달래줄 허물없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친구가 될만한 50대 보좌진은 노무현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이하게도 노무현의 보좌진은 386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스무살이나 차이가 나서는 보좌진들에게 속마음을 이해받는다거나 혹은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푸근한 느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흉허물없는 친구가 될법한 50대는 왜 노무현 주변에 얼씬도 안하는 것일까?

먹을 것이 있어야 파리떼가 달려드는 법, 노무현은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던져버렸다. 모두들 노무현을 도와주려고만 했지 아무도 노무현에게 얻어먹으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외로울 수 밖에.

여전히 세상은 노무현의 진면목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직도 노무현에게 얻어먹으려는 사람이 없다. 아니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무수히 있지만 노무현은 습관처럼 그들을 내쫓아 버린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랫사람들에게 떡고물을 나눠주고 생색을 내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정치라는거 말이다. 노무현은 체질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수줍음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 수줍음의 진원지는 어디이겠는가?

대통령은 인의 장막 속에서 고독한 직업이다. 어쩌면 고독에 길들여진 노무현에겐 안성맞춤인 직업이기도 하다. 세상이 인간 노무현의 감추어진 전모를 온전히 이해하기 전까지 노무현은 결코 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독이 숙명이었던 노무현! 가슴 밑바닥의 분노와 열정 때문에 고독으로부터 달아나려 할수록 더욱 더 고독해진 노무현! 마침내 국민 모두와 친구가 된다. 하늘과 친구가 되고 신과 친구가 되고 역사와 친구가 되고, 대한민국과 친구가 되는 방법으로만이 노무현은 그 고독에서, 그 외로움에서, 그 수줍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그때 노무현은 나직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 봐요 내 말이 맞았죠? 하느님!”

(하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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