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10번째 글입니다. 지난해 대선 전에 씌어진 글이나, 일부는 지금 현실에 맞게 고쳤습니다. 』

 

5. 끝없이 떠나는 사람 노무현

노무현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만 관심을 가졌을 뿐, 의원노릇 하는데는 영 관심이 없었던 듯 하다. 그 쪽 세계에 물들기 싫다는 식이다. 해양수산부장관이 되는 데는 관심이 있었지만 장관 노릇 하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말하자면 장관도 한 번 쯤 해본다는 식이다.

노무현은 의원노릇을 하기 위해 금뺏지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실은 정치를 배울 목적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관노릇을 하기 위해 장관이 된 것이 아니라 그의 리더십을 실험해 볼 요량으로 장관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번 거쳐가는 정거장이다.

같은 정거장을 두 번 거쳐갈 필요는 없다. 국회의원은 한 번 해본 것으로 충분하다. 이미 판사가 되었으므로 판사노릇을 계속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재야활동 역시 경력을 쌓은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버리고 떠나야 한다. 어디로?

그의 삶은 부단한 도전이었고 끊임없는 승부의 연속이었다. 그는 도전하고 승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노하우를 획득하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고의로 국회를 떠난 것이다. 그는 고의로 낙선한 것이다. 대통령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출마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 역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거쳐가는 하나의 디딤돌일 뿐이다.

끝없이 떠나는 사람 노무현! 부단히 자기를 상승시켜온 사람 노무현! 마침내 더 올라갈 곳이 없는 곳까지 상승해버린 노무현! 5년후 노무현은 또 어떤 사업에 도전하고 있을까?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곳은 어디일까?  

 

6. 돌아온 탕자 노무현

노무현은 1946년 8월 경남 진영에서 농민 노판석(盧判石)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통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 중에는 셋째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장남은 동생을 돌보아야 하고 가문을 책임져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 모험적인 도전보다는 안전한 출세를 지향한다.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어 있으므로 모험적인 투자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이유로 장남은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큰 인물이 되기 어렵다.(요즘은 한자녀 시대라서 이 속설이 맞지 않게 되었지만.)

둘째는 동생들과 형님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해야한다. 한 집안의 둘째 아들은 대개 균형감각 있는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장남 보다는 책임감이 부족하고 셋째 보다는 모험심이 부족하다.

셋째는 기세등등한 형들의 위세에 눌려 뭔가 손해보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당연히 반항적이 된다. 또 형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되므로 한편으로는 응석받이가 된다. 뭔가 사고를 쳐도 능력 있는 형들이 다 해결해 주겠지 하는 낙관적 태도를 지니게 된다.

노무현은 삶을 두 단어로 규정하라면 ‘원칙과 낙관’이라 하겠다. 이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386세대, 인터넷세대의 정서와 맞아떨어진다. 왜인가? 결정적으로 노무현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없었던 거다.

노무현은 어머니가 집안일의 결정권을 가지는 여왕봉형 가정에서 자랐다. 사업에 실패하고 나약해진 아버지,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을 해내는 믿음직한 큰형, 손재주도 많은 둘째형, 자상하게 돌보아주는 두 누나들 사이에서 귀염을 독차지한 막내 노무현! 응석받이 노무현, 낙관주의자 노무현!

참고로 말하면 필자도 집안의 셋째아들이다. 월드컵의 영웅 구스 히딩크감독도 아버지 헤레트 히딩크씨의 셋째아들이다. 세종대왕도 태종 이방원의 셋째아들이고 세조임금이 된 수양대군도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이다. 필자의 소년기를 떠올려 보아도 형들에 대한 반항심과, 형들에 의존하는 응석심리를 동시에 가졌다고 생각된다.

소년 노무현은 학교에서 보내는 책값 통지서의 글자를 위조하여 부모님께 타낸 돈으로 주머니칼과 물총을 사곤 했다. 법대를 다닌 큰형 노영현과 손재주가 많아서 곧잘 장난감을 만들어준 둘째 형 노건평을 믿기에 가능한 셋째의 일탈이다.

노무현소년은 또 어린 시절 친구를 속여서 새 필통을 자신의 헌 필통과 바꾸기도 하고 몰래 남의 가방을 면도칼로 찢어놓기도 한다. 잘못이 있어도 두 형님이 해결해주겠지 하는 식의 낙관적인 태도가 반항적이고 모험적인 소년 노무현을 만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가문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큰형이다. 둘째나 셋째는 어쩌면 이 집이 내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을 느껴 집안에서 도망치려는 심리가 있다. 언젠가 되돌아와서 형들에게 자랑하고픈 심리도 있다. 반항이기도 하고 응석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이러한 태도가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무책임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본능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자기의 포지션을 두는 습관이 있다. 강자의 권위주의에 무책임이 더해진다면 재앙이 되겠지만, 약자의 낙관은 나쁘지 않다. (하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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