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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770 vote 0 2007.09.13 (18:01:58)

 [정치칼럼 아님 - 개인적인 글]

‘철학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철학은 원래 답이 없는 것이야’ 하고 둘러대기도 하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는 자세, 바로 그것이 철학이라네’ 하며 우스개 뒤로 숨기도 한다.

비겁하다. 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자세여야 한다.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 눈 똑바로 뜨고 정면으로 덤벼야 한다. 필자는 열 넷에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바르게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언어를 만들어야 했다. 단어를 넘어 문법을 만들어야 했다. 문법이라는 집을 건축할 토대가 되는 상황을 발견해야 했다. 상황은 자연에 있다. 자연의 존재 그 자체와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은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의 구조다. 철학이 무엇인지는 철학의 구조로 설명함이 옳다. 구조가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자기 내부에 ‘A면 B다’의 식을 갖추고 있다. 철학 안에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사기와 필름과 스크린에서 객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있다. 전달받아 전달하는 것이다. 컵은 주전자의 물을 받아 사람의 입으로 전달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러한 전달구조가 있다.

철학의 전달구조는? 사실≫의미≫가치≫이야기≫관(觀)의 구조다. 사실은 자연의 존재이고 관은 인간의 인식체계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철학은 전달한다. 무엇을 전달하는가? 의미와 가치와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가 영상을 전달하듯 컵이 물을 전달하듯 모든 존재하는 것은 전달한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한 개의 돌멩이도 질량과 형태를 전달한다. 그것을 내부에 저장한 채로 유지하고 있다가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 일을 가진다. 역할을 가진다. 그 역할로 둘 사이에 선다. 그리고 전달받아 전달한다. 역할하기 위해서는 안으로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하고 밖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심과 날을 가지고 있다. 심으로 자기 포지션을 지키고 날로 손을 내밀어 전달한다. 컵이 주전자로부터 물을 전달받아 자기 내부에 저장함이 심이며 그 물을 사람의 입으로 전달함이 날이다.

톱니바퀴의 바퀴축이 심이면 톱니는 날이다. 철학의 심은 가치(價値)고 철학의 날은 의미(意味)다. 철학은 자연의 사실에서 의미로 전달받아 가치로 제어하고 이야기로 저장하며 관으로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낸다.

철학은 최종적으로 관(觀)을 얻는 것이다. 관은 계 전체를 한 줄에 꿰어보는 전지적 관점의 시야다. 총체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연쇄적인 고리로 풀어내는 연역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연역적 사고는 사슬의 고리처럼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양파껍질처럼 겉에서부터 속까지 차례로 벗겨진다. 그 사슬의 마디들은 의미로 연결되고 그 양파껍질의 층위들은 가치로 집적된다.  

의미는 전달받아 전달한다. 수평적 전달이다. 숟가락이 국을 떠서 입으로 전달하듯이 의미는 정보를 전한다. 가치는 낮은 포지션에서 높은 포지션으로 상승한다. 더 본질에 가까운 고급정보를 끌어낸다.

의미로 해서 너와 나는 만날 수 있다. 연결될 수 있다. 무리 가운데서 찾아낼 수 있다. 가치로 해서 나의 전부로 너의 전부를 만날 수 있다. 나의 전부로 너의 전부를 끌어낼 수 있다. 완성될 수 있다.  

의미는 A와 B를 연결시킨다. 가치는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여 정보의 집적도를 높인다. 의미는 표면의 정보를 단선적으로 전달하고 가치는 이면에 감추어진 본질에서의 모습까지 입체적으로 배달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네트워크 안에서 하나의 정거장이다. 평면적 연결이 의미라면 입체적 연결은 가치다. 의미와 가치를 통일하여 완성하는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미학적 완성도, 곧 테마다.

이야기는 사건을 구성하는 동기와 역량과 보상을 통일한다. 계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부분과 전체를 결합하여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되게 한다. 그리하여 정체성을 얻었을 때 곧 테마다.

이야기로 내부를 통일하고 난 다음이라야 외부와 통하는 창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곧 관(觀)이다. 관은 소통가능성이다. 마침내 시야를 얻고, 전모를 알고, 관을 얻었을 때 비로소 연역할 수 있다.

● 사건 - 실존은 하나의 존재를 곧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다. 사건은 유발되는 것이며 반드시 맞섬이 있다. 짝이 있다. 상대가 있다. 존재는 곧 사건이고 사건은 곧 일이다. 일의 시작과 끝이 있다.

● 의미 - A와 B를 연결한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톱니와 같이 맞물리는 이가 있다. 날이 있다. 동기와 역량과 보상을 연결하는 링크의 고리가 있다. 원인과 진행과 결과를 의미로 연결해야 한다.

● 가치 - 더 높은 수준에서 맞물리게 한다. 심이 있다. 톱니바퀴의 바퀴축이 있어다. 바퀴축 안에 더 깊은 바퀴축이 있다. 5단계의 심도와 층위가 있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 어느 레벨에서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 이야기 - 요소들을 한 줄에 꿰는 테마가 있다. 정체성을 성립시킨다. 동기와 역량과 보상을 통일하여 일의 1 사이클을 완성시킨다. 부분과 전체를 결합하여 미학적 완성도를 성립시킨다.  

● 관(觀) - 전모를 보게 한다. 내부를 통제하고 외부와 소통하게 한다. 울림과 떨림을 낳는다. 소실점이론처럼 일률의 기준으로 계 전체를 장악하고 통제하고 조율하는 것이 있다. 철학은 관의 획득이다.

철학의 내부에 이런 구조가 있다. 철학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철학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다. 철학은 관을 통하여 사건들에서 의미와 가치와 이야기를 뽑아내고 그것을 인간에게 전달한다.  

의미는 맞물려 있는 것이다. 전달하는 것이다. 의미는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가치다. 가치의 일은 제어다. 제어란 무엇인가? 몰아주기다. 51 대 49로 기울어질 때 100 전체를 51쪽에 몰아주는 것이 제어다.

금과 돌이 섞였으면 금이다. 취한다. 밥과 쓰레기가 섞였으면 쓰레기다. 버린다. 언제라도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가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몰아주기의 위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

주먹으로 사과를 치면 사과가 깨진다.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 주먹이 깨진다. 어느 쪽이 더 밀도가 높은가에 따라 결정된다. 주먹이 사과보다 밀도가 높다. 바위가 주먹보다 밀도가 높다. 밀도가 높은 쪽이 전부 가져간다.

선거제도가 그렇다. 승자가 독식한다. 제어의 세계에서는 밀도가 높은 쪽이 100퍼센트 독식한다. 살짝 치면 내 주먹만 아프고 세게 치면 상대방만 아프다. 한쪽만 피해를 입는 것이다. 가치가 결정한다.

금이 돌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금+돌은 금이다. 낮은 수준과 높은 수준이 있다. 높은 수준의 판정을 100퍼센트 수용한다. 낮은 수준에서의 이의제기는 기각된다. 그 따위는 안 쳐주는 것이다.

철학의 핵심은 가치관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이 의미를 알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깨닫는 것이다. 의미도 알고 가치도 알되 미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곧 미학이다.

99퍼센트와 100퍼센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잔에 따르지 않은 술과 같아서 100퍼센트 완성되지 않으면 안 쳐주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성을 추구하는 미학의 세계다. 이야기의 획득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사건은 맞서는 짝이 있다. 짝을 찾아 연결함이 의미다. 더 본질에 가까운 높은 수준에서 연결함이 의미다. 100퍼센트 완성함이 이야기다. 철학은 내 안에 의미와 가치와 이야기를 세팅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는가? 어떻게 더 높은 세계로 상승하는가? 어떤 내 삶의 테마를 얻어 완성시키는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한 줄에 꿰어 내 안에 셋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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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동어반복인 경우가 많았다. ‘유방’은 ‘젖’으로 설명되고 ‘젖’은 ‘유방’으로 설명된다. 그냥 우리말을 한자어로 바꿔놓은 것이다. 구조와 일을 설명해야 한다. 유방은 어떤 일을 하는가?

존재는 일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 일을 가진다. 그 일을 전달하는 짝이 있다. 산을 삐죽하게 깍아놓은 것은 강이다. 나무를 우뚝하게 키운 것은 태양이다. 아무 일도 없어보이지만 돌은 구르는게 일이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 '만남과 맞물림과 맞섬과 하나됨과 열어감'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동기와 역량과 보상의 구조를 가진다. 그것이 없다면 존재가 미약한 허깨비거나 그림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일이 내 정체성을 결정한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연결하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중요하고 가벼운 일을 판단하는 가치가 있어야 하고, 내 인생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테마가 있어야 한다.

언어를 바로잡아야 세상이 바로 된다. 국어사전이 잘못되어 있으므로 언어가 바로잡히지 않는다. 국어사전은 일을 중심으로 다시 기술되어야 한다. 사전은 뜻을 알려줄 것이 아니라 뜻을 머금는 체계를 알려줘야 한다.

개념이란 그 단어의 속성들을 한 줄에 꿰어내는 것이다. 단어가 뜻을 머금은 것이다. 국어사전이 잘못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한 줄에 꿰어 생각하지 않는다. 한 줄에 꿰어 생각하지 않으므로 개념이 없다.

개념이 없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정돈되지 않은 생각의 부스러기를 가지고 함부로 의견을 조직하려 든다. 자신의 사유를 신뢰하지 않으므로 타인의 의견도 신뢰하지 않는다.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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