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왜 지금 전여옥이 문제인가? 얼마 전에는 교수들의 논문표절 사건과 유명인들의 도서대필 논란, 그리고 가수들의 음원표절 사건이 한 동안 사회를 시끄럽게 하더니 이번에는 학력위조 사건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필상 총장의 논문표절, 가수들의 음원표절, 한젬마 씨의 도서대필,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이것은 개인의 윤리 차원을 넘어 사회의 패러다임의 문제다. 시대정신의 문제다.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발언으로 한나라당의 성추태 시리즈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의 기억이 옳다면 참여정부 이전에는 이런 사건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도덕성이 있었는데 최근에 한나라당이 갑자기 타락한 것일까? 아니다. 학력위조나 논문표절 혹은 성추태가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시대가 문제인 것이다. 예전에는 언론이 이런 것을 잘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 등장 이후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는 뒷골목에서 일어나서 증인도 없는 가십성 사건을 보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증인이 많아졌다. 인터넷이 증인이고 네티즌이 증인이다. 예전에는 어두운 뒷골목이었던 곳이 지금은 환한 백주대로가 된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사회가 관용을 베풀어서 관대하게 용서하고 넘어가야 할지 아니면 엄격하게 따져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만약 인터넷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건들에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용 때문에 이것이 유야무야 되어서 지금껏 감추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된다. 이제는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넘어가려 해도 그것이 도리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인터넷에 의해 세상이 바뀌었으므로 이제는 바뀐 룰을 적용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의 마사지 업소 발언도 마찬가지다. 과거라면 썰렁한 농담으로 치부하고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사회의 통념상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세상은 날로 좁아지고 있다. 고속도로가 거리를 좁히고 비행기가 거리를 좁힌데 더하여 인터넷이 더욱 개인 간의 거리를 좁힌다. 세상이 더 좁아졌으므로 더 좁아진 시대에 맞는 엄격한 룰이 채택되어야 한다. 지하철에 공간이 널찍하다면 치한이 나타나지 않는다. 지하철이 만원이므로 치한이 등장하는 것이다. 세상이 좁아졌으므로 더 부딪힐 일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배려해야 한다. 이제는 더 신경 써야 한다. 앞으로는 더 엄격한 룰이 적용되어야 한다. 반칙이 많아졌으므로 더 많은 심판이 투입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이미 바뀐 룰에 적응해 있다는 것이다. 지난 4년 간 우리당에서는 성추태 사건이 거의 없었던 예로 증명이 된다. 우리 사회의 앞서가는 일부는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다면 우리 사회가 성추태가 용인되던 낡은 패러다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들의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세상은 바뀐다. 과거에는 축첩제도가 용인되었다. 남녀차별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랍에서는 아직도 차별이 자행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할례가 있다. 중국의 전족제도는 없어졌는데도 말이다. 킹 목사의 투쟁 이전에는 흑인을 깜둥이라 불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일부 한국인들은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공공장소에 있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예산낭비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보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데 그들은 그것을 보아도 전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인식의 괴리가 있다. “임신한 여직원에게 ‘너는 애까지 2인분이니 술을 2잔 마셔라’ 하고 또 어떤 과장은 포청천주라며 여직원 이마에 라이터불로 뜨거워진 술잔을 붙여놓고 희희낙락이고”(네티즌의 글 인용)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 씨의 아이디어를 훔쳐 ‘일본은 없다’를 쓴 전여옥 의원이 1심에서 표절판결을 받아 망신을 당하고도 부족했는지 필자와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5명의 피고 앞으로 항소장을 보내왔다. 언론이 전여옥 씨에 대해서만 유독 관대한 이유를 모르겠다. 전여옥 씨의 범죄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더 악독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한 사건이 아니라 가해자가 적반하장 격으로 피해자를 고소한 것이다. 이대로 대법원까지 간다면 변호사 비용만 해도 1억 원이 넘는 부담을 피고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가진 자의 돈을 무기로 한 노골적인 폭력행위다. 법은 재판기간이 길어져서 심판하지 못하고 언론은 한나라당이 귀여워서 응징하지 못한다면 네티즌이라도 나서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모른다. 신정아의 거짓말, 이명박의 무개념, 문화일보의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 전여옥의 뻔뻔, 조중동의 왜곡보도들이 얼마나 젊은이들의 기를 죽이고 사기를 꺾고 의욕을 짓밟고 공동체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 젊은이들이 이런 일에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상처받아 하는지를.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에 비해 유독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약한지를. 공공장소에서 여성이나 어린이를 구타하는 행동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줘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수준문제인 것이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노예노동 사건만 해도 그렇다. 가해자 개인을 나무란다면 기성세대다. 젊은이들은 그 사건을 보고 마치 자기 자신이 죄인이 된 양 부끄러워한다. 마음 아파한다. 상처받는다. 젊은이들의 그 마음 이해해야 한다. 잘못된 패러다임은 바꾸어야 한다. 잘못된 상식은 고쳐야 한다. 바꾸지 않고는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다. 저 썩은 세력의 대표선수 전여옥을 지금 응징해야 한다. (www.drkimz.com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