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지식은 피아구분이다. 남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편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우리편이지? 가만히 있다가는 친구따라 강남가게 된다. 그 친구가 국힘일지도 모르는것이 함정이다. 그래서 먼저 천하인이 되어야 하는 것.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야만과 각을 세우고 문명에 편에 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문명을 알려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문명이라는 시스템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문명은 집단지성의 시스템이라는 일대사건이다. 문명을 알면 비로소 타인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주최측이 될수 있고, 리더가 될 수 있다.
주최측이 되서 비대칭적인 의사결정은 할 수 있다면 인생은 성공이다. 학문하는 의의는 그것에 있다. 어차피 대부분의 인간은 가족 따라가고, 친구 따라간다. 부족민의 길에서 벗어나서 천하인의 길로 가야한다. 진보를 만나고, 시민사회를 만나야 한다. 다른 의사결정구조에 속해야 한다. 의사결정구조가 다른 것이 문제다. 공과 사, 문명과 야만은 의사결정구조가 다르다. 다른 동료를 만나고, 다른 미션을 수행한다. 김용 who 전 에이즈국 국장의 이야기를 담은 벤딩 디 아크란 다큐를 보면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아프리카인들은 간염으로 고생하다 기껏 의사에게 약을 받고도, 약을 복용하지 않아 사망율이 높았다는 것. 김용씨는 지역 조직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에게 환자들을 방문하게 만들어 약의 복용률을 높힌다. 왜 약을 먹어야 사는 데도 약을 먹지 않을까? 또 왜 같은 아프리카인이 신경쓰면 약을 먹을까? 이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본질이다. 아프리카인에게 서양의사는 아군인지 애매하다. 지역의 똑똑한 젊은이는 아군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군의 말을 듣는 판단을 한다.
인간은 원래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냐 남이냐? 선을 잘그으면 대통령이 되고, 잘못 그으면 범죄자가 된다. 대중과 만날때는 이런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인이 아무리 합리적인 이야기를 해도 대중의 피아구분을 넘지 못하면 표를 얻지 못한다. 괜히 시장에서 악수하는 것이아니다. 인간본능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다큐에서 김용씨는 어차피 아프리카인들은 약을 먹지 않기 때문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의사들과 싸우고, 또 약을 먹지 않는 환자들과 싸우다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런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아마 잘 알 것이다.
치명적인 것은 이게 아프리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시스템은 똑똑한 한명이 올바른 판단을하면 그 판단이 집단 전체로 증폭되어야 한다. 그게 잘 안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매일 시험에 들고 있다. 이런 것은 선생이나 교수가 말해줘야 하는데, 야만한 권력과 싸워야 한다는 진실을 말하는 용자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