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을 사이에 둔 네티즌과 종이신문의 싸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필자가 지적하려는 점은 네티즌이나 기자들이나 사전에 답을 정해놓고 판에 박힌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아야 한다.
|
『추미애의 파워가 점점 세지고 있소. 대략 다이어트를 권하고 싶소만..』 |
종이신문의 팔은 처음부터 안쪽으로 굽었다. 조중동이나 한겨레도 큰 흐름에서 볼 때 예외는 아니다. 굿데이에 협조했던 지식인들 중 일부가 나중 태도를 바꾸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공기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행동통일, 그 판에 박힌 행동이 빚어내는 그 불순한 공기에는 그들 지식인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대소의 차이는 있으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네들이 김병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훈계할 자격이 있다는, 그 ‘기득권’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국민을 계도하는 위치에 선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데 있어서 그들은 크게 공통되고 있다. 한겨레도, 조중동도, 지식인들도, 스포츠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들을 이심전심으로 묶어준 보이지 않는 고리의 실체가 무엇인가?
반대로 네티즌들은 처음부터 작심하고 김병현을 옹호했다. 필자부터 그러하다. 김병현이 백번 잘못했다 해도 나는 김병현의 편에 설 것이라고 일찌감치 밝혀놓고 있다. 무엇인가? 그렇다. 이 싸움은 애초부터 개인의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본질은? 권력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1라운드는 김병현의 판정패다. 그는 박세리처럼
경호원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사태를 예방하지도 않았다. 매니저의 선수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연봉이 50억이면 중견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는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회사를 경영하는 오너는 없다.(역설적 표현은 양해를~)
2라운드는 굿데이의 판정패다. CCTV가 증언하겠지만 설사 재판에 이긴다 해도 굿데이가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 커 보인다. 요는 싸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전체적인 과정을 보고 최종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그 결과에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네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으니 난 책임없다.”
이런 식의 발뺌은 인정되지 않는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우리당과 민주당간의 싸움 또한 누가 먼저 단초를 제공했느냐 보다는 ‘누가 성공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가’에 따라 판결이 날 것이다. 지금 누가 사태를 잘 수습하고 있는가?
노주완이라는 사람을 비정상적인 경로로 개입시키고 있는 굿데이가 사태를 잘 수습하고 있는가? 전혀 아니올시다.
굿데이는 수습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 간에 일어난 문제를 공공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김병현에게 맞았으면 둘이 만나서 뒤로 조용히 해결하면 그만이다. 치료비는 받아내면 되고 카메라도 변상 받으면 그만이다.
근데 왜 보도를 해서 스타를 매장시키려 드는가?
사적인 일을 공의 영역으로 끌어낼 때는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실제로 일을 잘 마무리지으므로서 결과적으로 공익에 기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사건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아무도 굿데이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김병현이 크게 반성하고 심기일전하여 내년에 20승을 거둬주며, 이 사건을 지켜보고 크게 감화를 받은 박찬호도 열심히 해서 사이영상을 따주는가? 더욱 이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스타들이 기자들의 취재에 성실히 협조하는 문화가 정착이 되어 독자들이 최종적인 이익을 얻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 굿데이를 칭찬할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조용히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던 일을 굿데이측에 사과하지 않는 방법으로 일을 크게 벌여놓은 김병현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신문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데 기여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김병현이 영웅이다. 김병현 덕분에 이 나라 언론의 질이 향상되고, 기자들의 수준이 향상되고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혜택을 보게 된다면 말이다. 가능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네티즌들이 김병현을 위하여 단결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승부는 명분에서 난다. 무엇이 명분인가? 전체과정에 책임을 지는 방법으로 최종적인 이익은 독자들에게 돌아가게 하고,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명분이다.
|
『 역사는 히틀러의 잘못, 박정희의 잘못 까지 최병렬에게 책임지운다.』 |
역사를 배워야 한다
흔히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다. YS가 이런
소리를 잘한다. 근데 그 역사를 누가 쓰는가? 강준만선생이 쓴다. 아시다시피 강준만은
지금 현대사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 즉 YS들은 강준만에게 자신을 심판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짓인가?
필자의 견해를 말한다면 그건 바보같은 짓이다.
무슨 뜻인가? 일을 벌일 때는 반드시 최종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에 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근데 결과를 어떻게 알 수 있지? 100년 후에 역사가 어떻게 심판할지 내가 어케 알어?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역사에는 다 나와있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악역인지 역사에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추미애는 ‘뭣도 모르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우를 범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는 얼치기는 정치판을 떠나라!"
정치는 책임이다. 그 책임은 기승전결의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이다. 말당선생 서정주의 “일제가 망할지 누가 알았나?”이런건 인정 안된다. 마찬가지로 노무현의 “부시가 이렇게 죽을 쑬지 누가 알았나?”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히틀러가 “독일이 질지 누가 알았나?”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긴 독일이 이겼다면 히틀러의 죄를 물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일 수 있다. 잘못을 저질러 놓아도 승리하기만 하면 책임이 면해진다? 천만에!
그런 식으로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이기는 게임과 지는 게임은 정해져 있다. 히틀러는 결코 승리할 수 없고, 일제는 결코 승리할 수 없고, 부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역사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부를 해야한다. 역사를.
쌓아둔 업보는 지워지지 않는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굿데이는 그동안
여러번 패배해 왔다. 굿데이는 그간의 허위보도로 하여 독자들의 지탄을 받는 형태로
수도 없이 패배해 왔다. 단 그 패배는 한번도 ‘공식화’
되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그간 무수히 이루어졌던 굿데이의 패배들을 몰아서
한꺼번에 ‘공식화’ 하려는 것이다.
김병현의 잘잘못과 무관하게 네티즌들은 언젠가 한번은 날을 받아서 굿데이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며 굿데이는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민주당은 여러번 패배해 왔다. 총선에 졌고 지자체에 졌다. 그 패배들을 일시에 추궁 당하여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추궁하는가? 역사가 추궁한다. 그 이전에 쌓인 업보가 있었다는 말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수도 없이 패배해 왔다.
선거에는 이겼을지 모르나 국민의 신뢰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날마다 패배해 왔다. 박정희정권 때부터 이어져온 업보가 귀신처럼 따라다닌다. 그들은 지금도 부단히 패배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 패배들을, 그 업보들을 몰아서 한꺼번데 추궁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역주의의 방패 뒤에 숨는 방법으로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데 성공하곤 한다. 그럴수록 언젠가 한번은 집행될 형량은 곱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은 승리해 왔다. 개혁이다. 그 작은 승리들은 지금 공식화 되지 않고 있다. 그 개혁의 성과는 2년이나 3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공식화 된다.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방법으로 보상된다. 그게 민심이다. 그게 역사다. 그 역사를, 그 민심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