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본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에 있습니다. 다수결은 소수의 승복을 전제로 만장일치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헌이라면 2/3 이상의 의원이 찬성하고도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합니다. 주택조합을 결성하려 해도 주민 80퍼센트 이상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수가 승복해서 결과적으로 만장일치가 된다는 거지요.
핵 폐기장을 주민투표에 붙여서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시켜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던가 봅니다. 참으로 한심한 발상입니다.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다니요? 주민투표가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겠지만 소수의 승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주민투표로 통과되었다 해도 소수가 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내부적으로 핵폐기장 철회를 결정해놓고 단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무모한 ‘행정실험’을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안군민의 궐기에 밀려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을 철회한다는 시늉을 하고 싶은 거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결정해놓고 이제 와서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이를 백지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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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릭스가 이 고비를 잘 극복해야 하는데.』 |
서프의 역할은 바람잡이 정도
새만금 문제나 핵폐기장에 대해서는 발언을
자제해 왔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나설 계제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된 경우 함부로 개입하다가는 오비이락이 되어 서프가 권력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중앙일보가 파병문제 결정과정을 청와대 내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결에서 자주파가 승리한 결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숨어있는 교묘한 함정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체도 없는 청와대 ‘386그룹’을 씹어서 재미를 보더니, 있지도 않은 ‘자주파’라는 것을 꾸며내어 빌미를 잡아 한꺼번에 날려버릴 속셈으로 올가미를 친 것입니다.
청와대에 젊은 참모들이 몇 있지만 개인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를 이른바 ‘코드가 맞는’ 하나의 세력으로 엮어서 모함해 보겠다는 겁니다. 끼리끼리 붙어먹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권력집단으로 조작하여 국민의 반감을 유도할 목적으로 ‘코드’니 ‘386’이니 ‘자주파’니 하는 것입니다.
조중동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려면 서프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지나치게 현실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여 발언한다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인사권의 경우 자제해야 합니다. 강금원씨가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한 것처럼 보도되었는데 역시 조중동의 올가미죠.
서프는 되도록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혹은 현실보다 한걸음 앞질러 가서 바랍잡이 역할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지철회 운운하며 요구조건을 내걸어 대통령을 압박하고 그래서 뭔가를 얻어내고.. 이건 아니지요.
그래서 못하는 말도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참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안 핵 폐기장, 이건 아닙니다. 노무현정부가 시스템을 강조하더니 지금 ‘주민투표 시스템’ 시험가동 해본다고 저러고 있다면 미친 짓입니다. 실험할 것이 따로 있지 지금 부안주민을 상태로 ‘시스템 테스트’하게 생겼습니까?
지금 조중동이 “제발 걸려라 걸려라! 옳지 고건총리 한걸음만 더!” 하고 주문을 걸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입니까?
일단은 관계부처 장관들과 총리에게 책임이 있지만 지금처럼 사태가 확대된 마당에는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돌아갑니다. 대통령이 결단할 사안입니다. 탈권위주의도 좋고, 토론공화국도 좋고, 시스템행정도 좋지만 그걸 아무데서나 실험하려 들어서는 안되지요.
정치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다
제가 노건호씨를 청와대 경내에 연금시켜야
한다고 쓴 때가 3월입니다. 기어이 구설수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물론 노건호씨 잘못은
없지요. 그러나 정치의 책임은 무한입니다. 부안주민이 폭력을 행사했다면 1차적으로는
부안주민에게 책임이 있지만, 사태가 확대되면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도록 사태를
악화시킨 노무현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돌아갑니다.
책임이란 것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최종적으로 사태를 수습했어야 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노건호가 잘못한 것이 없지만 LG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렸다면 역시 최종적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은 노무현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대통령의 판단력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도 사람입니다. 주말엔 휴가도 찾아먹고 싶고, 휴일엔 골프도 치고 싶고, 자식들도 일반인처럼 회사에 출근하는 그런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었을테지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나 핀란드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대통령 자리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입니다.
핵폐기장 건립여부를 떠나 주민들의 의견을 적절히 반영하는 절차를 거쳐 정책을 시행하는 좋은 행정의 선례를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랬다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본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말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대통령은 가족도 포기하고 사생활도 포기하고, 체면도 포기하고, 국가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왜? 지금은 치세가 아니라 난세이기 때문입니다. 태종이 심심해서 며느리 일가를 도륙한 것은 아닙니다.
목숨 내놓고 왔던 길입니다.
부차는 장작더미에서 잠을 잤고 구천은 쓸개를
핥았습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서 가족을 베어야 했던 계백의 마음으로
싸워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