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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게시판 상단에 링크하고 있는 '노무현의 전략' 일부이나 노무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므로 칼럼으로 고쳐 올립니다.

『개혁신당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축배를 들어도 좋겠습니다!』

정치란 무엇인가? 다수의 유권자들로부터 신임받는 것입니다. 곧 세상이 나를 알아주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치가들은 이천만명이나 되는 유권자들에게 인정받는 수고로움을 선택하기보다, 단 한 명의 보스에게 인정받는 지름길을 택하는 현명함을 발휘하곤 합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가 있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야심의 동기가 되는 법이지요. 누가 노무현을 알아줄 것인가?

특히 밑바닥 출신은 윗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벌과 인맥 없이는 얻은 지위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과장된 몸짓으로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척 연출하는 것이 엘리트코스를 거치지 못한 김용옥, 이문열류 소인배들의 특징입니다.

노무현은 그 반대에요. 노무현이 386 보좌관들과의 친분관계에서 보듯이, 또 이기명선생에 대한 도를 넘는(?) 애정표현에서 보듯이 노무현이 인정받으려고 하는 대상은 윗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아랫사람들입니다. 왜?

노무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80년대 고락을 같이 했던 학생들이 노무현을 ‘그렇고 그런 정치인들 중의 한 명'으로 보지 않을 까 하는 것입니다. 이후 노무현의 정치적 부침은 혹시나 이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하여 일어났습니다.

보통사람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원합니다. 엘리트로 이루어진 이너서클에 소속되기를 열망합니다. 18세기 부르조아 집안의 처녀들이 목을 길게 빼고 혹시 귀족들의 무도회에 초대장이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리듯이, 윗사람의 사랑방에 드나드는 멤버들 가운데 한 명으로 소속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노무현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왜? 자존심 때문입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 윗사람과 교유 할 때는 남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절차가 하나 더 필요한 법입니다. 학벌이 있다면 명함 한장으로 간단히 통과되는 그 문턱이 노무현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필연 어색해지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콰큐틀 인디언의 경우
북아메리카 '콰큐틀인디언'에게는 기이한 풍습이 있습니다. 마을의 유력자들이 포틀라치(potlatch)라 불리는 축제에서 자기 재산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거나 싸그리 불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이때 더 많은 재산을 불태운 사람이 부족의 영웅으로 대접받습니다.

아직도 이와 유사한 풍속이 곳곳에 남아있어요. 이는 인디언 특유의 평등주의입니다. 뉴기니아 마링족의 돼지도살축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서 부족 특유의 평등주의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재산을 버려서 이웃과 대등해지는 대신 명성을 얻고 지도자로 떠오르는 것이지요.

서민들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평등주의입니다. 누가 자신보다 위에 올라서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규칙을 자신과 같은 서민출신 지도자에게만 가혹하게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반면 자기와 신분이 다른 귀족출신 지도자는 이방인으로 보고 관대하게 대접합니다.

민중은 엘리트 지도자가 자기들을 억압하고 착취할수록 더욱 순종하여 떠받드는 노예근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왜? 그들에게 잘 보여서 귀족만이 가진 그 출세의 사다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서민출신 지도자는 그 인맥과 학벌과 혈연이라는 사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잘보여봤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습니다. 때문에 민중은 자신과 신분이 같은 서민출신 지도자가 자기보다 위에 올라서는 꼴을 못 봅니다. 어떻게 해서든 방해공작을 벌여 낙마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서민출신인 당신이 혹 출세할 기회를 잡았다면, 어린시절 함께 미역감고 물장구 쳤던 소꿉친구들과는 절교하는 것이 처세술이 됩니다. 혹 모르고 우정을 이어가다가는 뒤통수 맞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노무현은 왜 386 학생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오는 것일까요?

'가짜가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추미애 김민웅들의 오판
특히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노무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민웅, 추미애 등 엘리트적 사고에 젖은 사람들이 노무현과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오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5.18 기념식 때 있었던 한총련의 예의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최병렬의 ‘대통령으로 인정 못하겠다'는 발언이나 홍사덕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발언에 분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는 서민지도자 특유의 ‘가족’을 얻는 전략입니다. 민중은 '콰큐틀 인디언'의 경우처럼, 또 수호지의 108 두령들처럼, 또 삼국지의 유비삼형제처럼 위아래가 없는 '수평적인 구조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트가 피라밋구조로 이루어진 서열의 사다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데 비해, 노무현은 어떤 그룹 전체로부터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민중은 엘리트에게는 관대한 반면, 자신과 신분이 같은 서민 지도자에게 열배로 가혹하다는 사실을 무수한 경험을 통하여 체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트들이 얻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는 그 인맥과 출세의 사다리는 노무현과 같은 상고 출신 지도자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김민웅의 공갈, 한화갑, 추미애, 김경재들의 위협, 최병렬, 홍사덕들의 망언도 본질에서 ‘엘리트만의 특권인 그 인맥과 출세의 사다리’에서 밀어 떨어뜨리겠다는 위협입니다. 허나 노무현은 그 사다리의 가치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게 복수하는 바보 이반의 백성들
톨스토이가 정리한 ‘바보 이반’류 러시아 민화집를 보면 러시아 농민이 그들을 착취하는 귀족들에게는 애정을 가지고 있는 반면, 같은 농민 출신으로 약간 출세한 마름들, 세리들에게는 귀족의 심부름이나 했을 뿐인데도 아주 가혹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귀족이 망하면 대성통곡하며 슬퍼하지만, 같은 농민 출신인 마름이나 세리가 망하면 만세를 부르며 떼로 몰려가서 그 집에다 불을 질러버립니다. 시체를 난도질하여 거리마다 끌고다니며 모욕을 가합니다. 끔찍하지요. 왜?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혹은 권위주의 지도자가 실패하면 민중은 그 엘리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노무현과 같은 상고출신 지도자가 실패하면 그 집에다 불을 지르고 만세를 부릅니다. 이것이 이나라 민중의 본성입니다.

자신과 같은 서민출신이 출세하는 꼴을 못봅니다. 이를 ‘못 배운 민중의 질투심’, 혹은 ‘노예근성’으로 판단해서 안됩니다. 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귀족은 망해도 그 '사다리'가 남아있지만, 상고출신이 망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의 여러 행보들은 이 점에서의 생존본능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민주당이 멀쩡하게 있는데 왜 피땀으로 일군 자기 당을 깨부수고 새 당을 만드는가? 목에 칼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노무현만이 그걸 느낍니다.

노무현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임을 그들 엘리트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보따리까지 찾아주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몇배로 보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될 것인가 이방인으로 남을 것인가?
민중은 지도자에게 가족과 이방인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요구합니다. '가족'을 선택하면 '신고식'이라는 시련을 안겨주고, 이방인을 선택하면 '손님'으로 대접합니다. 노무현이 엘리트의 길을 포기하고 서민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는 이방인이 아닌 '가족'이 된 것입니다. 행복 끝 고생 시작입니다.

그러나 민중은 지도자를 일단 '가족'으로 받아들인 다음에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치상황은 노무현이 대한민국 전체로부터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요 신고식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진짜 지도자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므로 노무현은 편한 길 놔두고 어려운 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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