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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627 vote 0 2003.09.16 (16:06:21)

어제 문화일보 윤구 논설주간의 시론에 ‘대통령 잘못 뽑았나’ 하는 제목의 글이 눈에 밟힌다. 제목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이 논의의 본질은 대통령을 잘뽑았냐 혹은 잘못 뽑았냐 하는 차원의 논의가 아니다. 시론을 부분 인용하면..

“대통령은 우선 나라를 완전히 바꿔 놓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라를 바꾸고 안바꾸고는 국민이 정할 일이지 대통령이 정할 일이 아니다.”

여기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 잘못 뽑았느니 어쩌니’ 하는 논의는 주로 조중동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그들은 노무현을 찍지도 않았다. 아니 전여옥들은 지들이 뽑은 대통령도 아닌데 왜 대통령 잘못 뽑았다며 거품무는 것일까?

그렇다면 뭔가 있다.

아하! 뽑아 놓고 보니 이건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뽑고, 철학자를 뽑고, 사상가를 뽑은 것이다. 윤구 논설주간의 말의 곰곰이 되씹어보면 노무현이 정치인처럼 처신하지 않고, 한 시대의 물꼬를 돌려놓는 사상가나 철학자처럼, 혹은 겨레의 큰 스승처럼 처신하고 있는데 그게 위태로와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말이 맞다. 그래 대통령 잘못 뽑았다. 뽑아놓고 보니 노무현은 대통령이 아니라 철학자이고 사상가이고 겨레의 큰 스승이다. 어쩔래?

생각하자. 대통령은 정치가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흥정도 않고 거래도 않는다. 대신 판을 갈아 엎는다.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꿔놓으려 한다.

그러니 그 돌아가는 판에 꼽사리 끼어 흥정에 참견하여 이문 남기고, 거래에 개입하여 뒤로 개평이나 뜯던 정치판 주변의 날파리들 입장에서 보면 이건 대통령을 잘못 뽑아도 아주 잘못 뽑은 것이다.

노무현의 ‘무위의 정치’가 드디어 효험을 내고 있다. 흥정도 없고 거래도 없으니 브로커들만 개점휴업이다. 하여간 전여옥류, 김용옥류 뚜쟁이들의 비명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무위의 정치가 드디어 효험을 내다
노무현이 '무심정치'로 정치판을 평정하고 있으니 김경재가 안달이 나서 제안을 한다.

김경재.. “신당 좋다. 그러나 정동영 밑으로는 죽어도 못간다.”
노무현.. “......”

만약 노무현이 ‘정동영은 밑으로 가라고는 안했다’ 하고 김경재들의 제안에 응하여 의중을 밝혀주면 김경재, 추미애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김경재 추미애.. “뭐시라? 그렇다면 나더러 김근태 밑으로 들어가라고? 내사 마 그렇게는 못한다.”

이에 대응하여 노무현이 ‘누가 김근태 밑으로 들어가라고 했나?’ 하고 또 의중을 밝혀주면 그들은 또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김경재, 추미애, 조순형.. “뭬야! 정동영도 아니고 김근태도 아니면 우리더러 유시민 밑으로 들어가란 말인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나 안해.”

이런 식으로 끝 없이 엉기고 나온다. 그게 이들의 생리다. 이 게임의 본질은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래과정에서 자기 몸값 올리기다. 그런다고 몸값이 올라가나?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식으로 딜을 해보고 싶어 한다. 노무현이 무심정치로 그러한 흥정에 일절 응하지 않으니 안달이 났다.

낯간지러운 김경재들의 몸값올리기
아랍이나 남미를 여행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싸구려 물건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팔려는 장사치들이 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예컨대 3000원 쯤 하는 물건을 놓고 흥정을 하자면 대뜸 1만원을 부르는 것이다.

“아니 이 양반들이 지금 나를 사기쳐 먹겠다는 거야 뭐야?!”

뒤도 안보고 돌아서는데 장사치가 가격을 반으로 뚝 자른다.

“좋소! 내 뚝 잘라서 단 돈 5000원에 드리리다.”

그래도 안산다 하고 돌아서는데 바지가랑이 잡고 매달린다. 3000원, 2000원, 결국 1000원까지 떨어졌다. 이젠 아주 울상을 짓는다. 못이기는 척 하고 1000원에 산다.

이 상황을 복기해 보자. 3000원짜리 물건을 처음 4000원이나 5000원 불렀다면 내가 3000원에 샀을 것인데 터무니없이 1만원을 부르는 바람에 결국 1000원의 헐값에 사게 되었으니 장사꾼 치고는 멍청한 장사꾼이 아닌가? ㅎㅎㅎ

과연 그럴까? 천만에! 그대가 속은 거다. 사실 그 물건의 원가는 100원도 안된다. 쓸모도 없는 것을 장사꾼의 허풍선이 상술에 속아 비싸게 산 거다.

여기서 장사꾼이 판매한 상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살펴야한다. 장사꾼은 그 1000원짜리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10000원짜리 물건을 1000원까지 깎아봤다’는 무용담을 판매한 것이다. 즉 관광객은 무려 9000원이나 가격을 후려치는 흥정의 귀재가 되어 동료들에게 이를 자랑하는 데서 만족감을 맛보는 것이며 장사꾼은 바로 그 ‘쾌감’을 판매한 것이다. 이것이 상술이다.

“물건을 팔지 말고 가격을 깎아봤다는 쾌감을 판매하라”

김경재, 추미애, 조순형들이 다투어 딜을 하고 나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식으로 백날 설쳐봤자 지들 몸값 10원도 못올린다. 대신 언론을 타고, 이름을 알리고, 지역구민들에게 어필하는 보이지 않는 후방효과를 얻는다. 소인배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산다.

“그래 니들은 그러고 살어라.”

강금실장관 정치인 자질이 보인다
강장관이 서울대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학장이 '장관 그만두면 학장으로 모시고 싶다'고 말을 건네니 강금실이 ‘장관 그만두면 데이트나 한번 하자는 말인줄 알았다’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화제인 모양이다.

최근 강금실의 행보가 예쁘다. 정치인의 행보는 아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게 또 고단수의 정치다. 이거 알아야 한다. 지난번 유시민의 튀는 행동을 복기해 보자.

유시민이 평상복 차림으로 의회에 등원해서 점수를 많이 깎였다. 그러나 20년 후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두 종류의 유권자가 있다.

40대 유권자.. “유시민 저 철딱서니 못쓰겠군.”
20대 유권자.. “유시민 짱이다.”

그리고 20년 세월이 흐른다. 40대는 60대가 되고 20대는 40대가 된다.

60대 유권자.. “20년 전에는 까불더니만 그 사이에 많이 점잖아졌어. 찍어줘야지.”
40대 유권자.. “20년 전에 내 알아봤지. 인물이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40대는 '유시민을 길들였다'는 쾌감을 얻고 20대는 유시민에 공감한다. 단점은 잊혀지고 장점은 추억된다. 정치인 일생에 튀는 행동을 할 기회는 많지 않다. 김근태라면 튀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 3일간 단식 해봤자 비웃음만 산다.

유시민! 튀려면 지금 튀어놓아야 한다. 당장은 욕먹어도 나중 보약이 된다. 강금실! 튀는 행동으로 점수 따려면 지금 따놓아야 한다. 10년 후에는 이쁜 짓 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체면 때문에 못한다. 어쨌든 강금실은 타고난 정치인의 자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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