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5525 vote 0 2004.09.02 (17:13:03)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쓴 글이어서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문장 일부는 고쳤습니다. .』

제 3라운드 - 백범의 전략
- 우리가 백범을 오해하고 있는 15가지 이유 -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나, 벼랑에서 잡은 가지 마저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장부이다. [백범일지]

이 한 줄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 셈이다.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겠다. 지금 우리가 벼랑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 몇이나 될것인가?

왜 백범이어야 했는가?

백범이라면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고집 센 민족주의자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천만에! 우리는 백범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조선 왕족의 후예 이승만, 해주 양반의 후예 안창호를 비롯하여 해외의 명망가들이 즐비한 임정에서 배우지 못한 상놈의 신분으로, 요즘으로 치면 경찰청장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임시정부 경무국장 백범이 마침내 주석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혼란기였다.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는 철폐되었다지만 반상의 차별 구습은 여전히 남아있던 때였다. 좌우파의 극단주의에 선 명망가들이 거듭 조각에 실패하여 물러나게 되므로서 김구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왜 그들은 조각에 실패하였나? 왜 그들이 실패한 조각을 김구는 성공시킬 수 있었나? 이유가 있다. 왕족 이승만이 실패하고 양반 안창호가 실패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만큼 백범이 마침내 성공시키는데도 그만한 배경이 있다.  

김구는 강격한 원칙가가 아니다. 탁월한 중재능력을 가진 온건 합리주의자였다. 지금 이라크에서 시아파 지도자 ‘알 시스타니’ 만이 극단주의자 ‘알 사드르’를 중재할 수 있듯이 왕족과 양반출신 중심의 명망가들과, 상놈 출신의 젊은 좌파들 사이에서 양쪽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김구만이 중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낡은 신분질서는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붕괴되었으나 새 질서는 자율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과도기 상황에서 김구 만이 양쪽의 극단주의 세력을 중재할 수 있었고, 그토록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오직 김구 만이 조각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과 백범은 닮았다. 백범일지에는 무수한 노무현들이 숨어있다. 백범이 생각한 것을 노무현도 생각하였고, 백범이 분노한 것을 노무현도 분노하였다. 백범이 결단하였을 때 노무현도 결단하였다. 백범을 읽으면 노무현이 보인다.  

 

1. 너희가 김구를 아느냐?

백범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주사상이다. 두 가지로 말하면 자주사상과 교육사상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로 말하면 거기에다 자유주의를 추가할 수 있다.

백범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자주와 자유, 교육 이 세 가지는 상민계급 출신으로 양반계급에 대항하면서, 또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 대항하면서 추구해온 저항과 전복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의리는 학자에게 배우고 일체 문화와 제도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면 국가에 복리가 되겠다고 생각한다. [백범일지]

더 이야기해도 좋다면 거기에 다원주의, 실용주의, 합리주의를 추가할 수 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동학 등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섭렵하면서 다원주의를 얻었고, 어려서 배운 유학의 정신에 서구의 신학문을 접목시키면서 실용주의를 얻었고, 현실의 삶에 뛰어들어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합리주의를 얻었다.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배웠고 좌파와 합작하면서 사회주의까지 두루 섭렵했다. 백범은 이 중 어느 하나도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고 장점은 있는 대로 취하였다. 선생의 그 넉넉한 그릇의 크기를 우리가 헤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비유하면 정치이념은 자동차의 운전과 같다. 자주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기 소유의 승용차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자유정신이 없는 사람은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다. 민주주의가 없는 사람은 교통법규를 준수되지 않는 경우이다.  

합리주의가 없다면 그 자동차에 핸들이 없는 격이며, 실용주의가 없다면 그 자동차에 손님을 태울 좌석이 없는 격이며, 다원주의가 없다면 그 자동차에 기어가 없는 격이다.  

중요한건 우선순위다. 자주와 자유가 맨 앞에 와야 한다. 민주가 중간이고 최종적으로는 진보이다. 진보가 없는 사회는 엔진이 없으니 나아가지 못하는 자동차와 같다. 이 중에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필요한 것은 판 전체를 조망하는 철학과 균형감각, 그리고 중재와 조정, 제어의 개념이다. 백범의 큰 그릇 안에는 그 모든 것이 갖추어 있었던 것이다.    

 

2. 선생이 백범일지를 쓰신 뜻은?

이 글을 쓴 동기는 내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하면서 당시 본국에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날을 알리자는 목적에서였다. [백범일지]

백범일지는 상, 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상편은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앞두고 아들들에게 보내는 유서 대신으로 쓰여졌다. 하편은 중일전쟁의 와중에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주와 하와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남기는 유서 대신으로 쓰여졌다.  

백범일지는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의 소소한 일, 상놈의 출신으로 당하였던 부끄러운 일들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왜 백범은 그런 시시콜콜한 일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을까?  

“우리 국민성에 맞는 주의, 제도를 연구하려고 머리를 쓰는 자 있는지, 만일 없으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으리라.” [백범일지]

백범이 평소에 우리 국민성에 부합하는 주의 제도를 연구하여 얻은 백범의 정치철학이 백범일지의 행간에 담아져 있는 것이다. 백범일지가 어린 시절의 시시콜콜한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백범철학의 탄생배경을 설명하여 보이기 위함이다.  

백범일지는 자서전의 형식을 빌린 철학서이며, 고국의 아들들에게 보이기 위한 유서가 아니라, 이 겨레에 보이기 위해 씌어진 유서인 것이다.  

백범은 철학자가 아니다. 백범일지는 철학가의 언어로 씌어지지 않았다. 백범은 타고난 문장가이다. 백범일지를 읽으면 뛰어난 소설가가 쓴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백범은 누구보다도 깊은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철학가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당신의 철학을 펴 보이기 위해서 소설가의 문체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소원’은 내가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적은 것이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의 소원]

비록 일생의 소원이던 조선의 완전한 독립은 보지 못하고 가셨으나 그 철학과 그 정신은 백범일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백범일지야 말로 민족의 바이블이라 할 것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쓰는 심정으로 선생은 백범일지를 쓴 것이다.  

1949년 6월 26일 선생이 가시기 3년전 1946년 8월 6일(음력) 경남 진해에서 노무현이 출생하였다. 바톤은 물려졌다. 백범사상은 노무현에 의해 계승될 수 있게 되었다. 김구를 아는 것이 노무현을 아는 길이다. 김구가 거쳐간 길이 노무현이 지금 가고 있고 또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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